043
민재는 비누 냄새를 맡았다. 웬 비누 냄새? 하는 생각이 들자 일정하게 삑삑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온몸이 격통에 휘말렸다. 사지가 너덜너덜한 것 같았다.
민재는 자신이 격추당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눈을 떴다. 눈이 뻑뻑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살았네. 민재는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쯤 되면 알 수 없었다.
시야가 확보되자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지환이 보였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을 줄은 몰랐던 터라 민재는 조금 민망해졌다. 그래도 앉아 있을 기력이 있는 걸 보니 멀쩡한 모양이었다.
“멀쩡하냐.”
예의상 한 질문이었다. 민재는 괜찮다는 대답을 듣거나 괜찮으냐는 질문을 돌려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환은 죽다 살아난 사람이 좀처럼 듣기 힘든 질문을 했다.
“왜 그랬어요?”
왜 살았냐는 뜻일까, 멀쩡한지는 왜 물어보냐는 뜻일까. 민재는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분노를 느꼈다. 내가 지금 이딴 질문을 왜 이해해야 하는 거지?
“뭐가.”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힘주어 말하려던 것이 삐끗해 말투도 높낮이도 이상하게 말이 나갔다. 지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우습게 보인 것 같아 민재는 더 기분이 상했다.
“뭐냐고. 너….”
“알겠어요.”
지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보기 싫어 죽겠는 걸 마주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거기다가 지환은 민재의 말을 잘라먹기까지 했다. 알겠다고? 뭘? 민재는 어이가 없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치료 좀 하세요. 제발.”
지환은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민재는 기가 차서 지환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지환의 말대로 힐을 써야 했다. 얼마나 다친 건지 입술을 달싹이는 데도 큰 힘이 들었다.
“나가 있어.”
“싫어요.”
민재의 말에 지환이 다시 반기를 들었다. 뭐 하자는 거야. 민재는 더 말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치료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험체가 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민재는 지환이 나가지 않으면 자신도 꿈쩍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좋게 말할 때 나가.”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상처 보여주는 게 좀 그러시면 제가 뒤돌아 있을게요.”
민재의 말을 또 거절한 지환은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벽에 붙어 섰다. 벌 받는 것 같은 자세였다.
진짜 미친놈인가? 민재는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취급이 믿기지 않았다.
지환은 정말로 버티고 서 있을 생각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민재는 밀려드는 고통에 버티고 있는 것은 자신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능력을 사용해도 가이딩 수치가 계속 최상이었다. 폭주 직전까지 내몰리고 난 후에는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이럴 때 민재는 운명이나 신 같은 것에 적선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석이 다급한 마음에 가이딩을 퍼부었을 테니 그것도 영향이 있을 터였다. 민재의 기분과는 별개로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에는 좋았다.
민재는 멀끔해진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야.”
민재가 지환을 불렀다. 지환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천천히 뒤돌았다.
민재는 상체를 뒤로 살짝 젖혀 팔로 몸을 받친 채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눈을 내리깔면서 노려보니 지환이 어깨가 조금 처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지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핏자국 좀 닦으시게 거즈나… 그런 것 좀 받아올게요.”
장난치나? 민재는 뒷골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 하자는 거야. 너 좀 전에 했던 말 다시 해봐. 뭐라고?”
지환은 대답하지 않고는 벽을 노려보았다. 민재는 지환의 옆얼굴을 계속 노려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지환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민재를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죽을 뻔했잖아요.”
…뭐? 민재는 순간 지환의 말에 멍해졌다.
“…근데?”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왜….”
“…….”
“거기서 왜 나한테 힐을 썼어요? 본인한테 안 쓰고?”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이 새끼가 지금 자기 왜 살려줬냐고 따지는 건가. 민재는 이 반항아 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그가 원래 처했어야 할 상태로 돌려놓고 싶었다.
“안 죽었잖아.”
“…네?”
“살았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민재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쏘아붙이자 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렇게….”
지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눈과 코가 빨갰다. 민재가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민재는 그제야 지환의 태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지환의 표정을 통해 자신이 정말로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건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지만 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으로 출근하는 것과는 달랐다.
민재는 문득 자신이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 씁쓸해졌다.
“네가 나를 데리고 센터로 도착하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았어.”
민재는 말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솔직하게 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면 자신이 그를 두고 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길 돌려 전했다. 지환의 부채감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저를… 믿었어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민재는 지환을 건방진 애송이에다가 철부지로는 생각했어도, 쓰레기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가 자신을 끝까지 센터로 데려오리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고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지환에게 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두고 가지 않는다며. 그게 히어로라며.”
“선배님은 히어로가 아니라면서요.”
말장난하자는 건가? 민재는 지환이 무엇을 얻고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지금 자신이 활약했어야 할 상황에 그러지 못한 분노를 표출하는 건가? 나한테? 민재는 괘씸한 마음이 들어 지환을 노려보았다.
지환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붉어진 얼굴에 자꾸 눈가가 떨리는 듯했다.
불안한가? 민재는 지환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가늠해 보기 시작했고, 처음 겪는 일들에 정신이 좀 나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렸다.
“일단은 좀….”
“선배!!!”
쉬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던 민재는 문을 열고 뛰쳐 들어와 안기는 은정에 의해 뒤로 넘어졌다. 정확히는 침대에 도로 엎어졌다.
은정은 민재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민재를 자빠뜨린 모양새가 되었지만, 민재는 우는소리를 하는 은정의 어깨를 다독였다.
“야, 야. 나 도로 죽이겠다.”
“아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은정이 민재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잠깐 훌쩍거리다가 얼굴을 번쩍 들었다.
“봐봐, 치료했어? 어디 놓친 데 있는 거 아냐? 아파?”
은정은 민재를 샅샅이 살피려고 들었다. 다 치료했어. 멀쩡해. 민재는 장단을 맞추듯 대강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은정의 한쪽 팔이 휙 들리더니 뒤로 젖혀지듯 당겨졌다.
“선배님 무거우실 거 같은데요. 아직 회복하신 지 몇 분 안 되었어요.”
지환이었다. 거의 처음 듣는다 싶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다.
아아. 순간 당황한 은정이 몸을 뒤로 살짝 물렸고 다시 민재를 살피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가주세요.”
지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민재와 은정은 동시에 굳었다.
은정이 천천히 몸을 돌려 지환 쪽을 바라보았다. 침대에서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했어?”
“나가주시라고요. 선배님 절대안정 하셔야 한다고요.”
민재의 시야에 은정의 목 뒤쪽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민재는 지환이 격추 당시 뇌 손상을 입은 게 아닌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
우석은 사무실로 들어와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민재의 상태를 살피려 병실에 들렀다가 환장할 난장판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은정이 신성한 가이딩실 특실에서 S급 에스퍼의 멱살을 잡고 휙휙 흔들면서 어마어마한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 xxxx가! 내가 입 닫고 있으니까 호구로 보이나! 야! 내가 여기 못 올 이유가 뭐가 있어? 어?! 너야말로 비행을 어떻게 했으면! 이 xxx가! xx하고 있어!”
“그러니까요. 다치셨고 지쳤으니까 안정 취하게 해드려야 한다고요. 들어오자마자 질식시킬 듯이 달려든 게 누군데요.”
“뭐?! 이 xxxx 말하는 거 봐라?”
“야, 야.”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민재만 바라보고 있던 신입 S급은 살벌한 표정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환은 멱살을 잡힌 채였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도리어 은정을 빈정대기까지 했다. 오늘 일이 꽤나 악에 받친 모양이었다.
민재가 침대에 기대어서 피곤에 절은 얼굴로 둘을 부르고 있었지만 난리를 치는 둘은 그런 민재의 기분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덕분에 우석은 죽다 살아난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끌어안는 것보다 먼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야 했다. 우석은 들고 있던 차트로 지환과 은정의 머리를 팡팡 내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회복해야 되는 애 앞에서 왜 이 난리야. 안 꺼져?”
우석을 발견한 민재가 몸을 슬쩍 일으켜 입구에 선 우석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실장님 쟤네 좀 쫓아줘.”
“선배님!”
“선배!”
민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정과 지환이 소리쳤다. 둘은 똑같은 얼굴로 씩씩거렸다. 승자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둘은 특실 바깥으로 쫓겨났다.
“…좀 어때.”
“덕분에 컨디션 최상이야.”
우석의 질문에 민재는 초록불이 들어온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 그 말이 아닌데. 우석은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되었으나 듣는 귀가 있을 수도 있는 곳에서 여러 이야기를 꺼내기도 망설여졌다.
“씻고 싶어.”
민재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저녁에 갈게. 우석은 얌전히 숙소에 붙어 있으라는 당부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은 민재의 몸에서 눈에 띄는 핏자국들을 소독솜으로 닦아주었다. 혹시라도 숙소로 향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이 핏자국을 보고 이상한 소문이라도 낼까 봐서였다.
민재를 배웅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우석의 사무실 문을 누군가 또 두드렸다.
“들어와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싱긋 웃어 보이면서 얼굴을 빼꼼 내민 사람은 서연이었다. 우석은 허허 웃어 보이며 자리를 권했다.
“네 친구가 깽판 치는 거 말리고 오는 길이야.”
“들었어요. 은정이가 민재 선배 센터 들어온 거 늦게 전해 들어서 급하게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무슨 깽판을 쳤어요?”
“…아니야.”
“민재 선배님은 좀 괜찮으신가요?”
“뭐. 멀쩡해.”
우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가 얼마나 개판으로 센터에 들어왔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한껏 부풀려진 소문이 센터 안을 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왔어?”
우석은 몸을 일으켜 잔에 티백을 우려 서연 앞에 내려놓았다.
“제가 조금 알아보았는데요. 가이딩 약품이요.”
“아, 그래. 뭔가 성과가 있었어?”
“암시장에 팔린 적이 없었어요.”
팔린 적이 없다고? 그럼 그게 대체 어디로 간다는 거지? 우석은 이마를 짚었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제가 며칠 전 가이딩 약품이 들어올 때 지키고 서 있어 봤거든요? 근데 한 상자를 내리지 않고 도로 가져가더라고요.”
“다른 센터에 보낼 물량이었던 건 아니고?”
“아뇨. 그게 이상해서 따라갈 수 있는 만큼 따라가 봤는데… 센터에서 나가서 나오는 두 번째 사거리에서 놓쳤어요. 그래서 그 방향 고속도로를 검색해서 근교 도시에 있는 센터 지부에 연락을 다 돌려봤어요. 근데 그중 어디도 그날 가이딩 약품을 받은 곳이 없더라고요.”
“…그럼.”
“암시장에도 나오지 않는 가이딩 약품이 배달되는 곳이 이 도시 안에 있다는 거죠.”
우석은 서연이 설명한 길을 머릿속으로 따라가다 한 곳을 떠올렸다.
“짚이는 곳이 있으세요? 제가 좀 더 그 근방 지역을 조사해 볼까요?”
우석의 얼굴을 살피던 서연이 물었다. 우석은 민재와 이야기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 이후로는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지. 뭐라도 나오면 너한테 말할게. 진짜 너무 고맙다.”
“뭘요. 더 잘 알아냈으면 좋았을 텐데요.”
여기서 더? 우석은 엄청난 정보를 캐내오고는 아쉬워하는 서연의 앞에서 담담한 직장 상사의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