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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42)화 (4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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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은 땅만 노려보고 있는 지환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민재의 목숨을 어떻게든 붙여놓고 나니 지환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물어봐야 할 것도 있었고, 어찌 되었건 S급 에스퍼가 선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구조해 왔는데 챙기지도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지환은 우석의 호출에 숨이 넘어가라 헐떡거리며 우석의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문도 거칠게 열어젖혀서 꽤나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생각으로 달려왔는지 뻔히 보였다. 씻다가 뛰쳐나온 건지 머리칼이 푹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옷도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부르, 부르셨다고….”

지환은 사무실 안을 빠르게 두리번거리다가 민재가 없음을 발견하고 순간 흠칫했다. 그러더니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일단 좀 앉지.”

우석이 자리를 권하자 지환은 정자세로 얌전히 앉았다. 그러고는 그 뒤로 쭉 땅만 봤다. 눈으로 땅을 팔 기세였다.

어떤 말로 운을 떼면 좋을지 우석은 고민했다.

“그… 몸은 좀 어때.”

우석이 물었다.

“…멀쩡해요.”

자신이 멀쩡해선 안 된다는 듯한 말투였다.

우석은 지환의 상태를 잠시 살펴보았다. 말 그대로 지환은 너무 멀쩡하긴 했다. 다 죽어가는 표정이 아니었다면 사고 당사자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민재를 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굳이 자신도 같이 터져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센터로 같이 복귀할 이유가 없었다. 우석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특이점 같은 건 없었어?”

“…비행 시작하고 바람이 강한 편이었어요.”

“다른 건?”

“선배님이 잠깐만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바로 멈추지 않았어요.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하고 지환은 고개를 더 숙였다.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닌데.”

“…네, 죄송합니다.”

“아니… 하, 네가 민재랑 같이 있었으니까 범인이 누군지 추측할 만한 단서를 찾고 싶었을 뿐이야.”

“네….”

아무래도 글러 먹은 것 같다고 우석은 생각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짜가 뭘 아는 것도 이상하지만. 하… 우석은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를 스스로 쥐어뜯었다.

S급 비행능력자 박지환이 발현한 뒤, 민재는 능력을 공개해야 했다. 그리고 저렇게 위험 상태로 자신 앞에 나타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거기다 오늘은… 정말로 위험했다.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끔찍했다.

만약 서툰 신입을 데리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면 민재는 지금보다는 괜찮았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석은 지환의 존재가 달갑지 않았다.

이렇게밖에 생각 못 하나, 나. 진짜 최저다. 우석은 여전히 땅바닥을 뚫고 있는 지환을 힐끔 쳐다봤다.

“…그때 민재랑 까마귀 본거지에 같이 들어갔었다며. 그때 정체를 들킨 건 아냐?”

“…네? 까마귀요?”

“몰라?”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환은 정말로 까마귀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듯했다. 아… 우민재. 그 자식이 아무것도 말 안 했구나. 우석은 다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다.”

“말씀해 주세요.”

우석은 잠시 침묵했다.

“너희 둘이 대낮에 비행 시연하다가 도중에 폭발음과 함께 실종됐어. 실시간으로 온갖 언론사에서 기사가 쏟아지고 있어. 죄다 추측성이고.”

“…….”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센터도 완전 초상이었어. 어떤 보고도 받을 수가 없었으니까. 수색 작업도 섣불리 못 하고 대기해야 했어.”

“수색 작업은 왜….”

“상대가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지환의 이마에 핏줄이 선 게 보였다.

센터 내부의 가이드들은 민재를 믿고 따르긴 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했다. SSS급은 가이딩을 섣부르게 도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조금 전과 같이 여럿이서 가이딩을 퍼부어야 하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일대일로 민재와 마주해서 가이딩할 상황은 없었다.

그러니 폭주 직전인 에스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가이드가 없었던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에스퍼 본인의 입장에서야 너무 무정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수색대 인원으로 에스퍼들의 다수가 센터를 비웠을 때 허술해진 센터 본부를 공격할 수도 있고, 너네를 미끼로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

지환은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삼킨 우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번 일로 확실해진 건 민재를 노리는 자가 있다는 거야.”

“그럼….”

“불특정 인원을 노리는 테러가 아니라 암살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는 거지. 이것도 가설일 뿐이지만.”

“…그럼 제가 선배님과 복귀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거네요.”

지환은 우석이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그래. 우석은 담담하게 긍정했다. 지환은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이런 말 하는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가이딩실 사람들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줬음 해. 그 사람들도 다 민재를 미워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실장님은 안 무서우세요?”

“뭐가?”

“민재 선배님이… 그냥, 다요.”

고개를 든 지환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석은 순간 지환이 조금 부러워졌다. 다른 것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민재를 걱정하는 것은 원래 우석의 몫이었다. 우석은 민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친구인 민재 하나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건 민재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워도 두려워할 수 없었다. 자신의 두려움보다 먼저 우선시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실장직 따위 맡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석은 뻐근한 눈가를 손으로 지압했다.

“오늘 나랑 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발설해선 안 돼.”

“네.”

“민재가 위험할 수 있어서야.”

“알고 있습니다.”

지환은 민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지환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 안은 적막했다. 심장박동을 알려주는 기계음 소리가 있었으나 그 때문에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지환은 민재에게 다가가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엉망이네요.”

지환은 자신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민재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가이딩을 그렇게 퍼부었는데도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 몸은 계속 저 꼴일 터였다.

머리를 숙이자 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환은 자신의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민재의 침구에 닿을까 봐 몸을 뒤로 물렸다.

우석의 호출을 받기 전, 정신이라도 차리자 싶어 숙소에 들러 찬물로 샤워를 했다. 몸 아래로 아마도 자신이 흘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핏물이 희석되어 씻겨 내려갔다. 붉은 핏물이 흐르는 욕실 바닥을 보고 있자니 실감이 났다.

정말로 죽을 뻔했다. 풀숲에 처박혀서, 그렇게 죽었을 수도 있었다. 눈앞의 이 사람이 자신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최우석 실장의 연락을 받자마자 지환은 미친 듯이 뛰었다. 아무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급할 때 지환은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지환은 민재가 깨어나 있을지, 그의 눈을 보고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했다. 만약 깨어나 있지 않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면? 그런 불안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최우석 실장은 민재 선배가 노려지고 있다고 했다. 누굴까? 비행 시연 일정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었다. 대충 어느 구간에서 비행할지를 짐작하는 것은 쉬웠다. 그 또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구역을 공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타이밍을 맞춰서 격추시킬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된 적이 있었나?

“어디에도 발설해선 안 돼.”

내부에 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노려지는 거지? 지환은 창백한 민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참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지환은 핸드폰을 꺼내 최우석 실장이 말했던 까마귀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그냥 평범한 새 까마귀에 관한 정보가 나왔다.

뭐야. 중얼거린 지환은 스크롤을 내리다가 한 카페에 게시된 사진을 발견했다. 여러 명의 사람이 캠핑을 하는 걸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어?”

지환은 사진 속에서 낯이 익은 사람의 사진을 발견했다.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때 길거리에서 민재에게 사이비 종교를 영업했던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 선배는 뭔가 알고 있었던 건가. 혹은 연관되어 있거나.

“…왜 그렇게 비밀이 많아요?”

지환이 물었다. 당연하게도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히어로란 그런 건가. 지환은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영화 속의 히어로도 언제나 위험에 처하긴 했다. 주인공이니까 살아남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별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곳은 영화 속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에서 구조팀을 보내지 않았고, 가이드들도 섣불리 도우려 들지 않은 것이다.

덜컥 불안해진 지환은 민재에게 몸을 가까이 붙여 앉았다. 그리고 민재의 코 앞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미약하게 뱉어지는 숨이 지환의 검지를 간지럽혔다. 지환은 그것으로부터 안정을 찾았다. 그는 한동안 손을 치우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선배가 눈을 뜬다면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환의 젖은 머리칼이 퍼석하게 말라가는 중이었다. 민재는 조용히 눈을 떴다. 깜짝 놀란 지환은 빠르게 손을 치웠다.

“살았네.”

민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살았다는 사실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고는 눈을 깜박이다가 지환을 슬쩍 바라보았다.

“멀쩡하냐.”

민재가 물었다. 갈라진 목소리였다.

지환은 이를 앙다물었다. 그는 사과를 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말을 못되게 해서 죄송하다고 비행 시연을 성공시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혹은 감사 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선배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거나 자신을 두고 가지 않아서 고맙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민재가 쓰러진 후의 상황을 침착하게 보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환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울컥 튀어 나갔다.

“왜 그랬어요?”

지환은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그러나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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