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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41)화 (4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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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통이 민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살았네. 밀려드는 고통을 느끼면서 민재는 생각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다행히 햇빛이 반짝이는 걸 보아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은 듯했다.

기계음과 같은 이명이 계속되었다. 그제야 민재는 비행 시연 도중 습격을 받고 추락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민재는 잠시 기다렸다. 전문 킬러가 고용된 것이라면 숨통이 끊어졌는지 확인하러 올 수도 있었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능력을 써재꼈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상대가 자신의 숨통을 끊어놓는 걸 넋 놓고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변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민재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컥, 켁. 민재는 숨 막히는 소리를 겨우겨우 내뱉었다.

오른팔은 너덜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왼팔로 상체를 어느 정도 지탱해야 했다. 온몸이 피범벅이었으나 회복 불능까지 간 신체 부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새끼지. 대낮에 격추라니. 대범하고 자시고 너무 노린 바가 노골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걸 당했다는 데에 있었다. 기자들이 바글바글 모인 곳에서 다친 일반인이라도 있다면…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민재의 눈에 검은 깃털이 들어왔다. 그것은 민재의 허벅지 위에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윤기가 나는 인조 깃털은 실제 새의 깃털이라고 생각하면 꽤 오싹해질 만큼 길이가 길었다.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다는 건가. 대놓고 날리는 경고장일지도 몰랐다.

민재는 떨리는 손으로 깃털을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가슴 안쪽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역시나 부서져 있었다. 고철이나 다름없는 것을 민재는 다시 집어넣었다.

컥… 자신의 것과 닮아 있는 숨소리에 민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 못지않은 몰골로 뒹굴고 있는 지환이 보였다. 아직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민재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주황색과 빨간색 빛이 번갈아 깜박이고 있었다.

“씨발… 진짜 운도 좋지.”

민재의 입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갔다.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힐을 사용한 다음 이동한다고 치면, 센터까지 갈 수 있을까. 징징 울리는 머리로 아무리 계산을 때려봤지만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었다.

민재는 지환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안정적인 초록빛이었다.

조금 전까지 지환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민재는 지금 자신이 하려는 짓이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민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후. 민재는 호흡을 고르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두 팔을 지환의 몸 위로 올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지환의 쪽으로 엎어지다시피 해야 했다.

민재는 지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빛이 새어 나갔다.

***

무언가가 지환의 귓가를 간질였다. 부드러운 바람 소리도 들렸다. 눈부시다. 지환은 눈을 감고 있는데도 그렇게 느꼈다. 빛이 얼굴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지환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따금 눈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풀의 가장자리가 보였다.

풀밭…? 지환은 순간 멍해졌다.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뿐했다. 명치 쪽은 묵직한 느낌이었지만 다른 곳은 괜찮았다.

내가 뭘 하다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지? 지환은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풀썩.

무언가가 옆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명치 쪽의 묵직한 느낌이 사라졌다. 지환은 자신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욱!!”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지환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민재의 몸에서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다. 거기다가 온몸이 심한 상처투성이였다. 살점이 깊게 파여서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다.

어… 지환은 자신이 이상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제야 지환은 자신이 비행 시연을 하다가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고, 정신을 잃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선배님?”

지환은 조심스럽게 민재를 불렀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환은 작게 숨을 들이켜고는 민재의 코끝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숨을 쉬는 걸까?

하지만 바람이 불고 있어 민재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환은 피로 젖은 민재의 옷을 헤치고 가슴 쪽으로 귀를 가져다 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지환은 다급하게 자신의 옷을 뒤졌다. 핸드폰이든 뭐든 아무거나 나오길 바랐으나 추락하면서 사라진 건지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환은 자신의 몸이 피범벅임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환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마르고 있는 핏자국을 벅벅 문질러 보았다. 팔이 매끈했다.

왜 이게 매끈하지? 이게 왜… 지환은 끔찍한 상태인 민재의 팔을 노려보았다. 눈이 화끈거렸다.

“잠깐만-”

추락 직전, 민재가 뭐라 말하려 했던 것이 떠올랐다.

선배는 위험을 감지했던 걸까? 바람이 몰아치는 순간, 분명 선배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오기로 자신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폭풍 같은 것이면 중심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폭탄 같은 것일 줄은. 이렇게 될 줄은….

삐빅. 삐빅.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지환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민재의 손목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지환은 민재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아 확인했다. 깜박이지도 않는 적색등이었다.

경고음의 의미는 폭주 직전. 이 경고음은 에스퍼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반경까지 도망치라는 경고.

“…왜.”

지환은 화가 났다. 짓씹듯이 허공에다가 말을 뱉었다. 왜 화가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환은 민재의 팔을 조심스레 안쪽으로 접었다. 그리고 천천히 민재를 안아 들었다. 폭주 직전의 에스퍼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었다. 지환이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우민재가 한 미련한 행동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봐요.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선배. 선배도 별것 없네요. 지환은 고도를 높였다. 바람의 저항을 느끼면서 지환은 속으로 되는 대로 지껄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귓가에 경고음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

센터까지 날아가는 시간이 억겁 같았다. 그사이 지환의 품에서 민재는 발작을 일으켰다. 민재는 딱딱하게 굳어진 몸을 덜덜 떨었다. 더 나올 피도 없을 것 같은데 입에서 피가 울컥 나오기도 했다.

지환은 떨림이 느껴질 때마다 민재를 조심스레 고쳐 안았다. 파리한 얼굴을 마주했던 지환은 민재가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떠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살아 있다는 걸 계속 확인받을 수 있으니까.

어떻게 센터로 날았는지 지환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센터 건물이 보일 때까지 날았다. 급박하기 그지없는 마음과 달리 몸은 구름처럼 천천히 떠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난 히어로가 아니야. 됐냐?”

그 긴 시간 동안 지환은 민재의 그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말하는 민재의 얼굴은 담담했다. 사실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맞다. 이 사람은 히어로가 아니다. 내가 동경하던 그런 영웅이 아니다. 지환은 되뇌었다.

지환은 민재에게 따질 것이 많았다. 당신은 위선자라고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센터 가이딩실 문이 보이게 되었을 때야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지환은 민재를 안은 채로 가이딩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모두가 지환을 바라보았다. 민재의 상태를 본 가이드들은 모두 눈 크기를 키운 다음 뒤로 물러섰다.

경악과 공포는 아주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홍해가 갈라서듯 가이드들이 벽으로 붙어 선 것이다.

지환은 황망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전에 최우석 실장이 민재를 데려갔던 가이딩실이었다.

사방이 가려진 공간으로 간 지환은 침대에 민재를 눕혔다.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정말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민재의 모습에 어떤 가이드도 쉽사리 들어오지 못했다.

어떻게 좀. 입술을 달싹이는 지환의 귀에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민재의 얼굴만큼이나 창백하게 질린 우석이 들어섰다.

“민재야….”

우석은 속삭이며 무너지듯 민재 쪽으로 몸을 겹쳤다. 상체를 최대한 붙여 가이딩을 있는 대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지환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최우석 실장은 빨간 눈으로 민재의 얼굴을 어루만져 핏자국을 닦아냈다. 엄살이니 뭐니 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눈에서 애틋함이 흘러넘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민재의 손목에서 주황색 불이 들어오자 A급 가이드 몇몇이 추가로 투입되어 민재의 손목과 발목을 붙잡고 가이딩을 시작했다.

가이드 중 한 명은 지환을 가이딩해 주려고 했으나 지환이 거절했다. 자신의 가이딩 수치는 아직 양호했다.

지환은 가이딩실 밖으로 나와 대기용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옷이 찢어진 부분들에 말라붙은 핏자국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면서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지, 그것을 이렇게 말끔하게 고치는 데 얼만큼의 능력을 써야 했을지 가늠해 보았다.

지환은 짙은 패배감을 느꼈다. 히어로가 맞니 어쩌니 하는 치기 어린 말을 듣고도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지환을 구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사람.

“가이딩 수치 안정권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이딩실 안에서 한 가이드가 외쳤다. 순식간에 가이딩실 내부의 공기가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예 문 앞에 모여서 안쪽으로 고개를 슬쩍슬쩍 내밀어보던 가이드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은 몸을 일으켜 가이딩실을 나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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