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민재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뒤에서 지환이 옷소매를 당기는 게 느껴졌다.
민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망설이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제 동생이… 뭔가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한가요?”
사이비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님? 지환이 속삭이듯 민재를 불렀다.
민재는 더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뒤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원 안의 사람들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된 건가? 민재는 경계했다.
“이해해요.”
눈물 고인 눈으로 여자가 말했다. 뭘? 민재는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어쨌든 공감을 산 것은 좋은 출발이었다. 민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좋은 분이시네요.”
민재와 지환은 원 안에 속하게 되었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묘사는 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가족, 혹은 가까운 주변인이 가이드나 에스퍼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당시 상황을 ‘끔찍하게’ 묘사했다. 민재는 지환을 쳐다보았다. 그는 살짝 굳어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잘 버티고 있는 건가. 민재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까 괜찮아질 수 있다고 했잖아요. 뭔가 방법이 있는 건가요?”
민재가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방법은 당연히 없겠지만. 민재는 속으로 자조했다. 옆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지환의 시선이 느껴졌다.
원 안의 사람들과 사이비남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민재는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임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원래 이렇게… 허술한 게 맞나? 눈빛 주고받는 거 너무 잘 보이는데.
“우리 아이들 역시 동생분과 비슷한 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요.”
한 남자가 말했다. 아주 가늘고 작은 목소리였다.
“거기가 어디죠?”
민재가 물었다.
“혹시 신을 믿으세요?”
그러자 사이비남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혹시 까마귀에 얽힌 신화를 아시나요? 원래 흰 새였던 까마귀는 신의 총애를 받아 그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며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에게 진실만을 고하다가 미움을 사 털이 까맣게 타버리게 되었답니다.”
그걸 목격한 인간 하나는 용기를 내 신에게 찾아갔습니다. 인간은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언제나 진실만을 전하고 충실하게 당신의 종이었던 까마귀를 왜 내치시나요?
남자는 어린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연극조로 말했다. 민재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신은 처음에는 노여워했으나 자비를 베풀 줄 알았습니다. 신은 까마귀를 다시 불러 까마귀만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을 전하는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죠.”
명예를 되찾은 까마귀는 자신을 돕기 위해 신을 찾아갔다던 인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너는 이제 내가 전하는 신의 전언을 가장 첫 번째로 듣게 될 아이다. 너는 그것을 너를 위해 써도 좋고, 인간을 위해 써도 좋다. 그리하여 그 인간은 까마귀 밑에서 일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이비남은 인자한 얼굴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스 로마 신화랑 성경이랑 이거저거 섞인 거 같은데. 민재는 생각했다.
“지금 현재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 그 사도의 후손이세요.”
사이비남은 두 손을 포개며 말했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저 이야길 믿는 건가? 민재는 조금 궁금해졌다.
“그럼 우리 동생도 나아질 수 있는 건가요?”
민재가 물었다. 사이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할까요?”
사이비남은 아주 자연스럽게 식사를 제안했다. 그 덕분에 민재와 지환은 건물 안에서 식사까지 하게 되었다.
지환은 먹는 음식의 출처나 성분이 의심스러운지 젓가락으로 음식을 내내 휘적거렸다.
이제 민재와 지환이 완전히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이비남은 밥을 먹는 공간을 돌아다니며 다른 신도들과 인사하는 여유도 보였다. 새로운 신도들이 왔다며 민재와 지환을 인사시키기도 했다.
“선배님.”
사이비남이 멀어지자 지환이 민재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민재는 지환을 힐끔 돌아보았다.
“왜.”
민재가 묻자 지환은 애꿎은 밥알만 세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아니에요.”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민재는 ‘아까’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긴 했으나 지환에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저쪽에서 경계를 풀었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도청하고 있을지 모르니 섣부른 대화는 안 하는 게 나았다.
“아마 조금 있으면 자고 가라고 할 거야.”
민재가 말했다. 지환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해.”
“…네에?”
용케도 지환은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차피 안 내보내 줄 거야.”
민재는 수저를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누가 요리한 건지는 몰라도 맛이 형편없었다.
민재와 지환은 강당 구석 자리를 배정받고 이부자리를 폈다. 다른 신도들도 근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아니, 다들 집이 없나? 민재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으나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나란히 눕자 지환이 민재의 팔을 끌어당겼다. 당황한 민재는 뿌리치려고 했다.
“무서워서 그러는데… 이러고 자면 안 돼요?”
지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는 산만 한 게 뭐가 무서워.”
지환은 대답하지 않고 민재의 손을 꽉 잡았다. 민재는 한숨을 내쉬며 팔에 힘을 뺐다. 그러자 지환은 바디 필로우를 껴안듯이 민재의 팔을 안았다. 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날, 민재는 자신의 앞으로 들이밀어진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가게 될 비밀의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건 왜 있는 건데요?”
비명을 지르지 말 것. 불쌍하다는 말은 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을 보고 지환이 물었다. 사이비남은 또다시 이상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게 될 게 일종의 악령 퇴치술이나 엑소시즘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근데 들어가셔서 애들을 자극하게 되면 오히려 애들이 힘들어지니까 꼭 지켜주셔야 해요.”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지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이들을 돕고 있죠.”
낮게 가라앉은 지환의 목소리와 달리 사이비남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본인은 정말로 아이들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민재는 지환이 앞으로 튀어 나가 돌발 행동을 할까 걱정되어 그를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지환은 몸에 힘을 주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이비남은 둘을 지하로 안내했다. 조명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꽤 어두웠다. 계단에서 지환이 넘어질 뻔해서 민재가 잡아줘야 했다.
습한 복도를 걸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병원에서 사용할 법한 낡은 철제 침대에 누워 있는 몇몇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뼈의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민재는 섣불리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쥐고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아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끙끙 앓았다. 앓을 기운도 없는지 소리가 미약했다. 아이들의 안색은 파리했고 몇몇은 발작적으로 몸을 떨기도 했다. 민재는 그게 무슨 증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폭주 직전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은 위태로워 보였다.
“이게… 이게….”
지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이 아이들은 필요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겁니다.”
사이비남은 눈에 뭐가 쓰이기라도 한 건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라니. 이 아이들이 당하고 있는 건 절대로 치료가 아니었다.
“애들이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데요?”
지환이 물었다.
“정확히는 질병이라기보다는 오염된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버틸 수 있고요.”
지환은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눈에 힘을 주고 최대한 안 된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지환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땅만 바라보았다.
버틴다고? 민재는 끔찍함과 별개로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폭주 직전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이자들은 ‘관리’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힘들어하더라도 폭주까지 가지는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 집단에 가이드가 있다는 뜻인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흰 천을 몸에 두른 남자는 작은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저게 교준가? 민재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이비남은 절을 하거나 허리를 숙이거나 하는, 높은 사람에게 하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
남자는 돌아다니며 양동이에 담겨 있는 액체를 손으로 아이들에게 뿌렸다.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눈을 감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뭘 뿌리는 거죠?”
민재가 물었다.
“성수입니다.”
민재는 남자에게 다가가 양동이 안에 손을 넣었다. 선배님. 지환이 다소 다급하게 민재를 불렀다.
민재는 손으로 물을 퍼 올려 냄새를 맡아보았다. 약품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냥 수돗물이겠지. 민재는 손으로 물기를 문질러 보았다. 점성도 그냥 물과 같은 수준이었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봐도 되나요?”
민재가 물었다. 사이비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사이비남은 이 공간에 들어선 뒤로 아이들에게서 꽤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민재의 머릿속에 하나의 확신이 들어찼다. 저 새끼 애들이 폭주해서 뒤질까 봐 무섭구나. 민재는 아이들 중 한 명의 가까이에 다가가 상체를 숙였다.
“어…? 얘가 뭔가 이상해요.”
민재는 상체를 일으키며 아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가 몸을 살짝 웅크렸다. 떨어져 서 있던 사이비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도, 사도님. 아니 담당 신도를 불러와야겠어요.”
물을 뿌린 남자와 사이비남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민재는 후드티 안쪽에 쉽게 뜯어낼 수 있도록 꿰매놓은 가이딩 알약을 뜯어냈다. 그리고 아이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거 알아?”
민재가 물었다. 아이는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약을 안다고? 그렇다면 조제하는 인간이 있을 터였다. 민재는 아이들 손에 2~3알씩 쥐여주며 속삭였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불꽃이 팡! 하고 터지면 먹는 거야. 지금 먹지 말고 숨겨놓았다가. 알겠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손으로 알약을 숨겼다.
“선배님, 저놈들 복도를 완전히 벗어났어요. 지금 빨리 애들 데리고 나가요.”
지환은 복도를 두리번거리다 다시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복도 밖으로 밀어내며 방을 나섰다.
“선배님?”
지환이 민재를 불렀다.
“지금 나가야 돼. 지금 아니면 못 나가.”
“하지만.”
“지금 애들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민재의 단호한 말에 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없어요? 제가 안고-”
“전부 다 안고. 나까지 데리고?”
“네, 할 수 있어요.”
“데리고 나가면서 아무도 안 죽이고 데리고 나갈 수 있어?”
민재의 질문에 지환이 말을 멈추었다. 지환의 어깨가 억울한 듯 들썩거렸다.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날 데리고 여기서 나가. 팀장으로서 하는 명령이야.”
지환의 눈에 날이 섰다. 민재도 그에 비슷하게 응수했다.
잠시 뒤 지환은 민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하를 벗어나 건물 창문을 열고 날아올랐다. 민재는 까마귀 소굴의 위치를 머릿속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인적이 드문 골목에 지환이 내려섰다. 민재도 안전하게 땅에 발을 디뎠다. 민재는 지환을 보며 말했다.
“다시 그곳으로 혼자 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지환은 침묵했다.
“대답.”
민재는 재촉했다.
“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지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말을 뱉은 지환은 뒤돌아 날아가 버렸다.
허. 민재는 실소를 흘렸다.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맞지만. 민재는 자조했다. 그리고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