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제가 진짜, 얼마나….”
지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서웠다는 말로는 그 순간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민재가 지환의 팔을 툭 밀어냈다.
“무거워.”
민재의 말에 지환은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미지근한 물 갖다드릴까요? 앉혀드릴까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가슴은요? 목은요?”
지환은 몸을 일으켜서 미지근한 물을 떠왔다. 민재의 입가에 갖다 대자 민재가 물을 몇 모금 마셨다.
민재가 몸을 일으키려고 해서 지환은 민재의 등을 손으로 받쳐주었다. 힘이 드는지 민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만 울지.”
민재가 말했다. 네? 지환은 멍청하게 반문하고 나서야 자신이 계속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광대와 턱이 축축했다. 지환은 옷소매로 대강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안 죽어서 아쉽냐.”
민재가 피식 웃으며 지환을 놀렸다. 선배님! 지환이 민재를 부르며 인상을 썼다.
“…상황은?”
민재가 물었다.
“네? 아, 네! 그게….”
딸꾹. 지환은 딸꾹질을 했다. 계속 울어서 그런지 기도가 좁아진 기분이었다.
지환은 최대한 딸꾹질을 하지 않으면서 보고하려고 했다. 테러범의 목숨은 붙어 있고, 대외적으로는 구조 완료로 결론이 났고, 조사가 비밀리에 진행 중입니다. 지환의 말이 계속될수록 민재의 안색이 나빠졌다.
“선배님, 진짜 괜찮으세요?”
지환이 물었다. 그러자 민재가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민재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다행이다. 지환은 생각했다. 저 눈이 다신 떠지지 않을까 봐 얼마나….
“근데.”
민재의 입이 열렸다. 지환은 민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네가 왜 현장에 온 건지 설명을 좀 해볼까?”
울음을 완전히 그친 지환은 다소곳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그리고 무릎에 가지런히 두 손을 올렸다.
저도 모르게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구해줘서 고맙다거나 칭찬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바로 혼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환은 조금 억울했다.
“현장 오지 말라는데도 오고, 심지어 현장에서도 말 안 들어먹고.”
“현장에는, 솔직히 조금 울컥해서 간 거 맞아요. 그렇지만 현장에서 선배님 두고 가라고 하신 거 이야기하시는 거면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안 들었어요.”
“…허.”
지환은 단호했다. 민재는 지환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민재의 반응에 서러워진 지환은 눈물을 떨구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민재가 손을 뻗어왔다.
“핸드폰.”
그냥 넘어가시는 건가? 지환은 빠르게 협탁 안 서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민재에게 내밀었다. 아- 핸드폰을 잠시 들여다보던 민재가 나지막하게 신음했다.
“어디 아프세요???”
지환이 다급하게 물었다. 고개를 든 민재는 싸늘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의 눈앞에 핸드폰 화면이 들이밀어졌다.
-SSS급 에스퍼 우민재의 인성.
-우민재 에스퍼의 페어 박지환 군. 괴롭힘당해 오고 있었다?
-SSS급 에스퍼와 S급 에스퍼의 불화설 불거져.
이게… 뭐지? 지환은 눈을 비볐다. 그러나 눈을 깜박였다 다시 들여다보아도 똑같은 글자들이 보였다.
“이게….”
“어때?”
민재가 물었다.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저런 인터뷰를 한 적도 없고, 저런 말을 한 적도 없다. 아니에요, 선배님. 지환은 오해를 풀고 싶었다.
“난 내 말을 듣지 않는 놈과 팀플레이를 하지 않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지? 뭐라고 해야 선배님이 믿어주시는 거지? 지환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민재의 손가락이 문을 가리켰다. 민재의 손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팔목에는 치료되지 않은 상처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지환은 그것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나가.”
민재가 말했다.
***
민재는 지환을 내보낸 후 몸에 힐을 주입해 남은 상처들을 회복시켰다. 한가롭게 누워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민재는 곧바로 조 박사의 실험실로 향했다.
“죽다 살았다며? 괜찮아?”
조 박사가 물었다.
“신경 끄세요.”
“어떻게 꺼. 내 동료의 일인데.”
조 박사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언제 씻은 건지 기름이 번들거리는 얼굴 때문에 자꾸만 흘러내리는 안경을 계속 추켜올렸다. 민재는 손을 올려 조용히 코를 막았다.
“근데, 진짜 테러범 맞아?”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럴 배포가 안 되던데….”
“조 박사님, 또 내가 오기 전에 조져놨어요?”
“이번엔 진짜 아니야. 난 묶어두기만 했어.”
저 미친놈 손 타기 전에 내가 왔어야 했는데.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문 열어요.”
민재가 턱 끝으로 문을 가리켰다. 조 박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인간을 위하여!”
그 구호는 인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이 진행된다는 그들의 믿음이 담긴 구호. ‘까마귀’의 구호였다.
남자는 철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아마도 의식을 차린 후로는 계속 자살 시도를 해 이렇게 해놓은 것 같았다. 입에도 혀를 깨물지 못하게 하는 마우스피스가 끼워져 있었다.
정말로 크게 건든 건 아닌지 남자는 눈에 띄는 외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고개 좀 들지.”
민재가 말했다.
누가 들어오든 말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들어 민재를 발견하고는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계속해서 말을 하려는 시도를 했고, 결박을 풀기 위해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진정해.”
민재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그 말에 남자는 조금 차분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씨발, 진짜 뭐야. 민재는 생각했다.
“혀 안 깨문다고 약속하면 마우스피스를 제거해 줄게.”
민재의 말에 남자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덥석 받아들이는 것 같아 의심스러웠으나 마우스피스를 제거하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민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우스피스를 고정한 고리를 풀어내고는 남자의 입에서 천천히 빼내었다.
“우민재 히어로님 맞으시죠? 저 좀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마우스피스를 완전히 제거하자마자 남자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뭐?”
민재는 되물었다.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민재는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겁에 질린 듯이 계속해서 울면서 민재에게 구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조 박사가 저번 테러범에게 놓았던 주사는 사람의 뇌를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그 주사를 맞고 나면 이렇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조 박사는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조 박사가 조져놓은 게 아니라면….
“갑자기 잡혀왔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요. 그쪽은 히어로잖아!”
남자는 절박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민재는 그런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에스퍼 따위는 싫다고 자신의 치료도 받지 않으려던 남자였는데, 지금 남자의 눈에는 공포만이 가득 차 있었다. 고도로 훈련받은 연기자이거나 혹은….
“가족들이 절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남자는 울부짖었다. 민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지압을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편두통이었다.
***
민재는 싱크홀에서 살아 돌아온 후 평소에는 들여다보지도 않던 사무실에 처박혀서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우석은 친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에스퍼실 실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똑똑.
우석은 복도 구석에 있는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뭐야. 안쪽에서 꺼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석은 대답하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너냐.”
민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석은 문 안으로 들어서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책상, 좋은 의자, 그리고 조그마한 소파가 놓여 있는 사무실이었다. 책상 위에 명패에는 ‘실장 우민재’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람 냄새가 안 나네.”
우석이 말했다.
“잘 안 들어오니까.”
민재는 의자에 몸을 파묻다시피 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런 민재가 익숙한 우석은 놓여 있는 소파에 대충 걸터앉았다.
“고명하신 실장님, 괜찮냐.”
우석이 물었다.
“갈비뼈 아작 난 건 금방 고쳤잖아.”
민재가 답했다.
“그, 너 말이야 걔랑 이야기는 좀 해봤어?”
우석은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민재의 눈치를 슬쩍 보며 물었다.
“개랑 이야기하는 취미는 없는데.”
우석이 말한 ‘걔’는 지환을 의미했으나 민재는 삐딱하게 말을 돌렸다.
유치하긴. 우석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친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얼마 전 개떡이 되어 실려 들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참아냈다.
“깨어나셨어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열흘 전, 지환은 우석에게 다 죽어가는 얼굴로 민재가 깨어났음을 알리고는 가이딩실을 나갔다.
민재가 깨어나기 전에는 잠깐 숙소에 다녀오는 걸 제외하고는 늘 민재가 누워 있는 1인실에 틀어박혀 있었던 지환이었으나, 그렇게 나가고 나서는 민재의 병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매일 가이딩실에 와 우석에게 민재의 상태를 물어보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돌아갔다.
우석은 회복 중인 민재에게 무슨 일인지 캐묻기가 뭐해서 알아보려다가, 둘 사이의 불화설과 더불어 민재의 인성을 운운하는 기사들이 도배된 것을 보고 짐작했다.
민재의 몸이 회복되어 가는 동안 지환은 점점 퀭해졌다. 삭았다고 해야 하나.
우석은 상당히 곤란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민재를 슬쩍 떠보려고 해도 매번 말을 돌렸다. 뭐야. 우석은 찝찝함을 담은 시선으로 민재를 쳐다보았다.
문자 왔숑! 문자 왔숑! 민재의 핸드폰이 크게 울렸다. 우석은 저도 모르게 민재의 핸드폰을 흘끔 쳐다보았다.
-선배님, 잘못했어요….
아마도 지환의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창이 떴다가 사라졌다. 민재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우석의 얼굴을 보고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야, 그래도 거기서 너 구해온 게 누군데 너 좀….”
“피곤하네.”
민재가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턱 끝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지금 나한테 축객령 내리는 거지. 우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야, 새끼야. 나도 바빠.”
“그럼 왜 왔어.”
“할 말 있어서.”
“그럼 해.”
민재는 빨리 말하고 꺼지라는 듯 대놓고 귀찮음을 표출했다.
하여간 귀엽지가 않아. 그렇게 생각한 우석은 잠시 민재를 쳐다보았다. 테러범에 대해 물어보러 와놓고는 막상 물어보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한참을 이렇다 할 말이 없자 민재가 눈을 돌려 우석을 흘깃 바라보았다. 우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977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
우석이 물었다.
“아.”
민재는 딱 한마디를 했다. 아? 그게 다야? 우석이 다시 물었다.
“조졌어.”
민재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석이 물었다.
“나를 기억을 못 하더라고.”
“조 박사 짓이야?”
우석이 물었다.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석은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센터 내로 침입해서 기억을 조작하거나 정신 조종을 했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까마귀에 정신계 에스퍼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민재가 말했다. 어째 일이 무지막지하게 커지는 느낌이네. 우석이 중얼거렸다.
민재는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는.”
우석이 물었다.
“아직.”
“어떡하려고.”
“글쎄다….”
민재가 말꼬리를 늘였다. 우석은 그런 민재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조심해. 알겠지?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하고.”
우석이 걱정을 늘어놓았다. 최근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문자 왔숑! 문자 왔숑! 다시 한번 민재의 핸드폰이 울렸다.
-선배님. 저 이제 상자 들 수 있어요.
-보러 와주실 수 있나요?
무표정으로 핸드폰의 알람을 확인한 민재는 핸드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알겠냐고! 우석이 소리쳤다. 예- 예- 할아버지. 민재는 건성으로 손을 휘적거리며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