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지환은 민재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폈다. 민재는 자는 것인지 쓰러진 것인지 눈을 감고 있었다.
지환은 구급상자를 거칠게 열어젖혔다. 붕대? 약? 무엇부터 해야 하지? 지환은 멍청한 자신을 마구 때려주고 싶었다.
붕대나 응급처치용 물품 옆에 가이딩 알약이 있었다.
가이딩은 에스퍼의 폭주를 잠재울 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일반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회복하는 에스퍼들의 회복력을 가속하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에스퍼가 큰 부상을 입었을 때에는 치료에 앞서 긴급 가이딩을 주입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환은 생각해 냈다.
민재의 손목에서는 붉은 경고등이 빛나고 있었다. 잡은 손목이 너무 차가웠다.
“선배님, 일어나 보세요.”
지환은 민재의 턱을 벌리고 알약을 먹이려고 했다. 그러나 민재는 알약을 삼키질 못했다.
지환은 방송에서 이럴 때 어떻게 했었는지 생각했다. 실전 경험이 적은 지환은 그런 정보에라도 기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대체 뭘 해야…. 지환은 중얼거렸다.
지환은 알약과 민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고 알약을 입에 물었다.
지환은 민재의 목 뒤를 손으로 받치고 입술을 겹쳤다. 지환이 민재의 입안으로 알약을 밀어 넣었다.
혀 안쪽에 무언가 닫는 게 싫었는지 밀어 넣으면 무의식적으로 민재가 약을 삼키는 것 같았다. 피부와 달리 민재의 입안은 따뜻했고, 지환은 그것에 안심이 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지환은 알약을 계속 밀어 넣었다.
상자 안의 알약은 8개였다. 알약을 모두 소진한 지환은 차가운 민재의 손과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약효가 돌 거야. 지환은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민재가 어둠 속에 누워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환은 다리를 뻗고 앉아 민재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대신 흙바닥에 닿은 지환의 다리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지환은 민재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민재의 상체가 자신에게 기대지게끔 들어 올렸다. 선배님, 이러면 덜 춥죠? 지환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차가운 민재의 몸을 느끼며 지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길바닥에 누워 있던 순간을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 사람을 구했던 날, 폭주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쓰러져 있었던 날.
도시의 길바닥은 너무 차가웠다. 쓰러진 지환은 등을 타고 오르는 한기와 멀찍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사이를 뚫고 저벅저벅 걸어오던 한 명의 발소리가 없었더라면 지환은 죽었을 것이다. 유령처럼 왔다가 사라진 그가 지환을 살렸다.
어쩌면 그때 그 사람이 다시 와줄 수 있지 않을까. 지환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지환은 지금 자신과 민재를 구해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올 거야. 누군가 나타날 거야. 지환이 중얼거렸다.
민재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일었다. 자신이 계속해서 주물러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민재의 손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은 그게 자신의 착각일까 점점 무서워졌다.
펑!
작은 폭발음이 일었다. 지환은 머리 위에서 터진 신호탄을 바라보았다.
“지환아, 선배님은? 괜찮으셔?”
멀리서 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민재의 몸을 끌어안고 날아올랐다.
***
펑.
플래시가 터졌다.
번쩍이는 빛에 민재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촬영을 하던 사진작가가 천에서 고개를 빼내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재를 쳐다보았다. 사진작가의 얼굴형이 어딘가 흐릿했다.
꿈인가. 민재는 생각했다.
“선생님, 계속 찌푸리시면 어떡해요.”
“아, 죄송해요.”
잘 손질된 머리에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이 불편한지 몸이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프로필 촬영일인가 보군. 민재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사진작가는 살짝 손짓하며 그 행동을 제지했다.
“부드럽게 미소 지어 주세요.”
민재는 입가를 올려 보였다. 매우 어색했다.
“제 손가락을 바라봐 주실까요?”
검은 천 아래서 팔이 뻗어져 나왔다. 카메라 우측 위쪽으로 뻗어진 손가락을 민재는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찍으나 저렇게 찍으나 별다를 게 없었다.
“자, 나라를 대표하는 에스퍼시니까. 좀 더 그윽하고 믿음직스럽게 바라봐 주세요. 그런 거 있잖아요. 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각오가 담긴 그런 거요!”
각오 같은 게 있을 리가. 그윽이랑 믿음직은 어떻게 하는 건데. 민재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놓고는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허공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눈을 고정했다. 그리고 입가를 다시 끌어 올렸다.
펑!
날카로운 빛이 민재의 눈을 파고들었다.
사진작가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 사진을 들여다보는 민재를 힐끔거렸다.
민재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내 얼굴인가. 거울을 그다지 유심히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민재는 생각했다.
꿈을 꾸는 게 맞으면 지금 민재가 보고 있는 건 무의식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목구비 위치가 다 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민재를 처음 본 사람들 중 솔직하게 첫인상을 말할 용기가 있는 자들은 죄다 ‘의외로 예쁘장하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주변에 있는 자들이 당황한 얼굴로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민재는 그런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예쁘장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민재는 자신의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한 적이 없었다.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
민재는 그냥 대중이 상상하기에 좋을 만한 ‘영웅’에 가까운 얼굴만 던져주면 되었다.
“눈이 좀 더 선명한 게 좋지 않을까요.”
민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좁은 사진관에 울렸다. 멍하니 포토샵 화면을 들여다보던 사진작가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 어… 네.”
사진작가는 빠르게 눈매의 끝을 살짝 올리고, 눈두덩이가 깊어 보이게 음영을 조절했다.
“콧대를 좀 더 올리고 광대도 좀 더 넓게 해주세요.”
“…네? 그럼 얼굴이 좀 넓적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사진작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국민들에게 좀 더 믿음을 주기 위해 듬직한 인상이었으면 좋겠어서요.”
“지금 본인 얼굴보다 못생겨 보일 수 있는데요…?”
“그럼 더 좋죠.”
뭐가 좋다는 거죠. 떨떠름한 사진작가의 말에도 민재는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좀 전에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웃어주시지… 중얼거리던 사진작가는 ‘네?’ 하고 되묻는 민재의 말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 뒤로도 민재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민재의 얼굴이 점차 변해갔다.
“출근 시간인 것 같은데 밖이 한산하네요.”
“오늘 수능이니까요.”
민재의 말에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을 살짝 어두운 톤으로 바꾸고 있던 사진작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군요.”
시험 하나로 미래가 결정된다니 참 이상하죠. 없어지네 마네 하더니 없어지지도 않는 제도네요. 사진작가는 중얼거렸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죠?”
사진작가는 조용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었다. 네? 민재가 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분 중 하나시잖아요. 국민을 수호하는 일을 하시는데. 당연히 자랑스러워하시겠죠?”
아, 알겠다. 민재는 왜 자신이 이날을 꿈으로 꾸게 되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질문 때문이었다.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민재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작가님은 자식이 에스퍼가 된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글쎄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니까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포토샵 화면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사진작가는 민재의 대답이 딱히 궁금했던 것도 아닌지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잠시의 정적 후에 우민재는 다시 하나 마나 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마무리 부탁드려요.”
사진작가를 향해 말한 민재는 제복 윗옷을 벗어 자신의 가방에 쑤셔 넣고는 그 안에서 회색 후드티를 꺼내어 몸에 걸쳤다. 그러고는 검정 야구모자를 꺼내 깊이 눌러썼다. 단정하게 멋 낸 머리가 순식간에 짓눌려 모양을 잃었다.
밖으로 나서자 찬바람이 민재를 파고들었다. 꿈이라기엔 감각이 선명한 느낌이었다. 민재는 가볍게 몸을 떨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능생 아니야?”
“불쌍해….”
민재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두 명의 여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외투 앞섬을 여미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수능이라. 9살 때 발현이 되어 센터에 들어온 뒤로 에스퍼 전용 학교를 다니다 18살부터 임무를 맡아온 그와는 어차피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민재가 걸음을 옮길수록 한군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도로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 수군거리고 있었다. 민재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교복을 입은 소년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기다 입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걸 보아 폭주 전조 증상이었다.
에스퍼는 보통 발현되면 바로 폭주로 이어진다. 빠르게 전문 가이드들이 투입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
더군다나 몸 안의 에너지를 갈무리하지 못해 일어나는 에스퍼들의 폭주는 대개 폭발을 동반한다. 그게 무서운 건지 사람들은 소년으로부터 모두 2m씩은 떨어져 있었다.
수군거리다 도망가는 사람들 가운데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안은 여자가 소년 쪽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눈물이 맺힌 눈이었다. 아들인가? 민재는 생각했다.
“이봐요, 그쪽으로 가까이 가면 안 돼요!”
소년 쪽으로 다가가려는 민재를 누군가 붙잡으며 말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민재는 가볍게 그 손을 뿌리쳤다.
“에스퍼 폭주 시 폭발 반경은 일 킬로미터 내외이니 더 물러서는 게 좋을 겁니다.”
민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행을 붙잡고 빠르게 뒤로 물러서서 소년의 근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이를 안은 여자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면서 서성였다.
쿨럭!
소년이 피를 한 번 더 왈칵 토해냈다. 꽤나 위험해 보였다. 눈에 초점이 없는 걸 보니 지금쯤 정신도 온전치 않을 거였다.
어떻게 할까. 민재는 잠시 망설였다.
“도망… 치세요….”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소년은 말을 했다. 겨우겨우 내뱉는 듯 숨이 섞여 미약한 목소리였다.
에스퍼로 발현하면 오감이 일반인의 몇 배로 발달한다. 몸이 뒤틀리는 상황에 누워 있는 자신을 두고 쑥덕거리는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민재는 소년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
“진심이야?”
민재가 물었다. 소년은 그 와중에 힘이 남아 있는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민재의 발목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밀어냈다.
“빨… 리….”
소년의 말끝이 흐려졌다. 민재는 그런 소년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다가 몸을 숙였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가이딩 물약을 꺼내 소년의 입에 쑤셔 넣었다.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머리를 들어 올려준 채였다.
그리고 피를 토해낸 가슴과 조금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는 한쪽 다리를 손으로 살짝 쓸어내렸다. 민재의 손에서 옅은 빛이 일었다.
“운이 나쁘네, 너.”
소년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으나 호흡은 잠시 전보다 안정되었다. 긴급 처치만 한 것이지만 소년은 아마 살게 될 것이다. 민재는 몸을 일으켜 가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재가 걷는 곳마다 어두워졌다. 민재는 희끄무레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민재 선배.”
누군가 민재를 불렀다.
“민재 선배!!!”
목소리가 너무 컸다. 귀 아파. 민재는 손을 올려 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거대한 손이 민재의 어깨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놀이기구에 탄 것처럼 덜덜거렸다. 토할 것 같아. 민재는 생각했다.
“어떡해요?”
누군가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금 날 흔드는 건 너잖아. 민재는 생각했다.
민재를 흔들고 있는 것의 얼굴이 자꾸만 바뀌었다. 사진작가였다가. 센터장이었다가. 포토샵으로 변경된 자신의 얼굴이었다가.
“민재 선배님!!!”
“헉.”
민재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그리고 눈물이 그득 차 있는 지환의 눈과 마주쳤다. 커다래진 지환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민재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지환은 일그러진 얼굴로 민재를 부둥켜안았다. 그 덕에 가슴에 묵직한 고통이 느껴졌다. 살았네. 민재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