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우민재 씨와 페어가 되셨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페어로써 어떤 활동을 하실 예정인가요!”
질문들이 쏟아졌다. 지환은 민재와 관련된 질문을 듣게 되자 겁이 났다. 이런 질문들에는 선뜻 대답했다가 또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 큼큼! 호영이 알 수 없는 신호도 보내고 있었다.
지환은 상황을 대강 마무리하고자 입을 열었다.
“어… 제가 여기 막 도착을 해서요…. 구조 활동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환이 싱크홀 쪽을 열심히 가리켰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선 너머로 손을 뻗어 마이크를 내민 기자들이 계속해서 소리치며 질문을 퍼부었다. 지환이 살짝 뒷걸음질 치며 두 손을 내저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지환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냥 뒤돌아 버려도 되나? 이상하게 기사가 나가면 어떡하지?
“왜 뒤늦게 도착하셨나요. 센터 내에 다른 일이 있었나요?”
“우민재 씨와의 사이는요?”
선배와의 사이라. 지환은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자신이 지금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상기하게 되어서였다.
손을 내젓던 지환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기자들은 더 자극적인 질문을 쏟아부었다.
“표정이 어두우신데 우민재 씨와 사이가 좋지 않나요?”
“우민재 씨와 다툰 적이 있나요?”
“괴롭힘을 받으셨나요? 센터 내3 급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 세례에 당황한 지환은 또다시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선배님은…!”
지환이 입을 열자 기자들이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분위기에 놀란 지환은 눈을 굴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선배님이 무척 잘해주세요! 저희는 사이가 무척 좋습니다!!”
누가 들어도 매우 어색한 말투였다. 아…. 호영이 탄식했다. 그때였다.
쿠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폭발이 인 것 같기도 했다.
어? 뭐지?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와 호영의 눈이 마주쳤다. 호영은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네? 지환은 되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이차 붕괴가 일어난 건가요?”
안전을 위해 싱크홀에서 꽤 떨어진 위치에 서 있던 기자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소리에 무서움을 느낀 것인지 근방에 서 있던 시민들 중 몇몇이 비명을 질렀다. 뭐야! 어떡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지환 군! 박지환 군!”
기자들은 계속해서 지환을 불렀다. 지환은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호영이 싱크홀 쪽으로 눈짓을 했다.
“일단 내려가서 선배님 모셔와.”
살았다. 그렇게 생각한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싱크홀 안으로 점프했다.
“잠시만요. 지환 군! 대답해 주세요!”
소란스러운 소리가 잦아들었다. 싱크홀 안은 어두웠다. 빛 능력을 가진 에스퍼들이 띄워놓은 조명탄들이 있었지만 앞이 잘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선배님?”
민재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환은 막연하게 선배를 찾아 불렀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주위를 살피던 지환은 갑작스레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왼쪽 관자놀이를 부딪쳤다.
“억!”
고르지 않게 무너진 지반이라 튀어나온 돌이나 단단한 나무뿌리 같은 것에 부딪힌 것 같았다. 아니면 철근 같은 것이거나.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너무 아팠다.
혹 나겠네. 머리를 움켜쥔 지환은 눈물 고인 눈을 끔벅였다.
그때였다. 저 앞쪽 구석 쪽에서 흰 빛이 일었다.
선배다. 직감한 지환은 그쪽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근방에 떠 있는 희미한 조명탄을 손으로 잡아끌었다. 살짝 뜨거운 것도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재 선배의 목소리 같아. 지환은 그쪽으로 계속해서 다가갔다. 조명탄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앞쪽이 보였다.
민재가 한 사람의 입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이상한 검은 줄이 칭칭 감겨 있었다.
“선배님…?”
지환은 조심스레 민재를 불렀다. 그를 바라본 민재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검붉은 피를 토했다.
“선배님!!!”
민재의 상체가 기울었다. 지환은 빠르게 다가가 민재의 상체를 받쳐주었다. 어어… 어어… 이상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리는 것 같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지환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자신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귓가가 울렸다.
그때 지환의 입이 누군가에 의해 틀어막혔다. 비릿한 혈향이 입속을 파고들었다. 지환은 숨을 멈췄다. 민재가 힘이 빠진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닥… 쳐….”
쿨럭. 민재는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지환은 자신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턱도 덜덜 떨렸다.
“밖에, 기자들, 여태, 깔렸지.”
민재가 물었다. 말뜻을 알아들은 지환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의 반응에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지환은 생각했다.
윽… 민재가 작게 신음했다. 지환은 빠르게 민재를 살폈다.
“이 새끼, 좀, 기절시켜.”
“네?”
민재는 힘에 부치는지 숨을 겨우겨우 내뱉듯이 말을 했다. 지환은 너무 당황한 상태인 나머지 민재와의 절대 규칙도 모조리 까먹고 반문했다. 그러나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리자 민재가 입에 손을 쑤셔 넣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턱에 힘을 주는지 핏줄이 서 있었다. 씨이발. 민재가 고통스러운 듯 눈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다.
어어어. 지환은 놀라서 손을 뻗어 그 남자의 턱을 손으로 부여잡고는 벌렸다. 으으! 남자의 신음이 벽을 때렸다. 지금 이 남자 자살하려고 하는 건가? 지환은 생각했다.
“빨, 리. 좀.”
민재가 덧붙였다. 민재의 말에 지환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턱을 붙잡고 있던 손을 빼자 남자의 턱에서 으득 하는 소리가 났다.
아. 민재가 다시 신음했다. 지환은 이를 악물고 남자의 목 뒤쪽 언저리를 힘껏 내리쳤다. 퍽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민재는 한숨을 내쉬며 남자의 입에서 손을 빼냈다.
“어, 어, 어.”
지환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어’라는 음절만 튀어나왔다. 민재는 손을 남자의 코 부근에 갖다 대었다.
“안, 뒤졌어.”
민재의 말에 지환은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민재는 천천히 움직여 그의 몸에 감긴 검은 줄을 빼내려고 했다.
“제, 제가 할게요.”
지환은 정신을 차리려고 자신의 뺨을 착착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러고는 몸에 감긴 줄을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 민재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몸을 살짝 물려 겨우겨우 앉아 있었다.
줄은 고무로 덮인 전선이었다. 중간중간 뭉개진 플라스틱 파편 같은 것들도 있었다.
선배님, 이게 다 무슨 일일까요? 지환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물어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이 두려웠다.
“위로 올려.”
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재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져서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지환은 그게 제일 무서웠다.
지환은 민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재가 턱을 아주 살짝 까딱여 남자를 가리켰다.
“선배는요.”
지환이 물었다. 지환은 자신이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서야 깨달았다.
“올리라면, 좀, 올려.”
민재가 인상을 썼다. 아파서 그런 것인지 자꾸 말대꾸하는 자신에게 화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올라갔다가 오면 왠지 선배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정도로 민재는 위험해 보였다.
“갔다, 다시, 와.”
“선배님 두고 못 가겠어요….”
지환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 심하게 다친 사람을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곁에는 동료가 있었다. 자신의 상처도 다른 사람들의 상처도 민재 선배가 다 치료해 줬다.
그런데 그 민재 선배가 이렇게 다쳤다.
“너, 진짜… 민폐다….”
그렇게 말한 민재는 헛웃음을 짓다가 아픈지 입을 꾹 다물었다.
“선배님 말 많이 하지 마세요.”
지환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기자들, 모르게, 위에 애한테만… 977 상황이라고 하고… 기자들 좀 치우라고 해….”
민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지환은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했다. 977? 의아해하던 지환이 돌연 표정을 굳혔다.
977은 테러 상황이나 외부 인물 침입 확인 시 쓰는 은어였다. 그럼 조금 전 자신이 기절시킨 남자가 테러범이라는 건가?
“구급, 상자… 갖고 와.”
“선배, 선배….”
버티실 수 있죠. 지환은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걸 물어보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민재는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손으로 지환을 슬쩍 밀었다. 지환은 민재의 팔을 잡고 조심스레 누울 수 있게 도왔다. 그러고는 조명탄을 끌어다 민재 근방에 띄워놓았다.
지환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싱크홀 밖으로 향하고 있는데 지환은 계속 아래로 몸이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튀어 오르다 싶게 날아오른 지환은 눈이 부셔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구급차. 아니, 호영 선배는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는 지환의 시야에 구급차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호영이 보였다.
“선배! …977이요.”
남자를 구급차 앞에 내려놓은 지환은 구급 물품을 옮기고 있던 호영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구급대원들이 시민 쪽으로 다가섰다. 호영의 눈이 커다래졌다.
“민재 선배는?”
호영이 물었다.
“기자 정리해 달라고 그러셨어요. 선배가 다쳤는데… 일단 구급상자 좀 주세요.”
지환은 빠른 속도로 우다다다 말했다.
호영은 매우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대처했다. 그는 구급대원들에게 시민 쪽으로 섣불리 다가가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는 구급 물품 중 에스퍼용 상자를 찾아 지환에게 건넸다.
지환은 낚아채듯 상자를 잡아 품에 안고는 날기 시작했다.
“신호탄 쏠게!”
호영이 지환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지환은 어두운 싱크홀 속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빨리. 빨리. 빨리. 지환은 계속 되뇌었다. 자신의 비행 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았다. 기어가는 게 이것보단 빠르겠다. 지환은 자조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것 같기도 했고, 아예 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싱크홀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처음 안으로 들어설 때는 조명탄이 여러 개 떠 있는 것이 반가웠으나 지금은 거슬렸다. 지금의 지환은 단 하나의 조명탄만 필요했다. 민재를 찾을 수 있게.
지환은 기억하고 있는 방향으로 무작정 날았다.
“선배!”
민재를 불렀으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얼마나 날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둠 속을 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찰 때쯤 저 앞에 희끄무레한 민재가 보였다. 지환은 숨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