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지환은 급식실 앞에서 메뉴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자한테 하루 종일 농락당하고 있는 지환은 요 며칠 네모난 것만 봐도 화가 치미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 메뉴판은 사각형으로 만든 거지? 모서리도 네 개나 되고! 진짜 재수 없게 생겼잖아?
최근 지환은 잠들 때마다 상자에 갇혀서 데굴데굴 구르는 악몽을 꿨다. 그러면 어디서 나온 건지 같은 팀 선배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 지환을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지환아?”
“왜요!”
누군가 지환을 불렀다. 간밤의 꿈을 떠올리고 있던 지환은 순간 울컥해 옆을 돌아보았고, 당황스러운 듯 눈 크기를 키운 호영의 얼굴과 마주쳤다.
“아, 선배님. 죄송합니다….”
지환이 놀라 사과했다.
“너… 괜찮아? 몰골이 말이 아닌데?”
호영은 다정하게 뼈아픈 말을 했다. 지환은 메뉴를 고르는 터치형 스크린을 노려보며 구시렁거렸다.
“괜찮아요. 짐꾼도 아니고 맨날 들었다 옮겼다 하느라 어깨랑 팔도 쑤시고 허리도 아파 죽겠고 맨날 악몽도 꾸지만요! 저는 지인짜! 괜찮아요.”
쿨쩍. 코를 먹은 지환이 호영을 바라보았다. 호영은 두 손을 지환을 향해 펼쳐 보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를 다루는 조련사 같았다. 지환은 조금 더 서러워졌다.
“선배님, 저 밥 좀 먹여주시면 안 돼요?”
“어어?”
“저 팔이 아예 안 올라가서 주문도 못 해요. 태현이 형도 지금 없고….”
지환의 말에 순간 호영의 얼굴이 구겨졌다가 펴졌다. 지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웅- 웅- 둘 사이에 진동음이 울렸다. 호영은 빠른 게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고 눈 크기를 키운 호영은 지환의 어깨를 다독였다. 지환의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어어, 지환아. 나 민재 선배님 연락이 와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결국 밥도 먹지 못하고 터벅터벅 훈련장으로 다시 돌아온 지환은 아픈 팔을 미적미적 움직여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수신함에 2개의 문자가 와 있었다.
지환은 순간 팔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핸드폰이 부서져라 빠르게 터치를 해 문자를 확인했다.
-비행 에스퍼 및 체력계 에스퍼 전원 소집.
-넌 오지 마.
센터에서 보낸 공지 문자와 민재의 문자였다. 민재의 문자는 마치 전원 소집 명령이 떨어질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소집 문자가 도착한 뒤 10초도 안 되어서 도착해 있었다.
민재의 지시는 명확했다. 전원 소집이 될 것이지만 넌 오면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왜? 지환은 입술을 짓씹었다.
민재 선배의 호출을 받았다면서 급하게 뛰어가던 호영의 뒷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호영 선배는 나랑 같은 비행계인데. 멘토 맡아주신다고 하셨고 센터에서는 페어로 활동하라는 지시도 받았는데….
지환은 민재의 호출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자신이 미움받을 짓을 한 것은 맞다. 그리고 상당한 미움을 받고 있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지환은 눈치가 더럽게 없었지만 민재의 태도는 그런 지환의 눈치도 이겨 먹을 만큼 노골적이었다.
그래도 너무하잖아. 지환은 중얼거렸다.
지환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빠르게 락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옷을 갈아입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 얼마 늦지 않을 것이다.
***
도로 한가운데 커다란 싱크홀이 생겼다. 갑작스레 지반이 무너지면서 생긴 커다란 구멍 아래로 6대가량의 차가 그대로 추락했고, 6중, 9중 추돌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흔한 일이었다.
에스퍼가 발현된 이후로는 싱크홀 발생이 좀 더 잦아졌고 에스퍼 추방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이를 ‘종말’과 엮었다. 어떤 이들은 이능력자 전체를 악마의 자식으로 칭했다.
“여길세. 여기야!!”
김 박사가 멀리서 날아오는 민재를 향해 두 팔을 벌려 흔들었다. 김 박사는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일반인 응급 전담 의사 겸 기현상 연구가였다. 소방대원들과 자주 움직이는 터라 민재와도 안면을 튼 사이였다.
민재는 호영에게 안긴 자세 그대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렇게 안 하셔도 다 보여요.”
퉁명스럽게 대답한 민재는 고개를 돌려 호영의 어깨를 다독였다.
“고맙다. 그… 박사님, 우리 팀….”
“호영이요!”
소개하다가 말끝을 늘어뜨리는 민재에 호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아까 오영이랬나, 고영이랬을 때 가만히 있기에 그게 맞는 줄 알았는데. 씩씩거리는 호영을 민재는 성의 없이 토닥였다.
“어어. 그래 알아, 호영아. 고맙다.”
“선배 진짜 미워.”
타격감 없는 호영의 성질에 민재는 피식 웃으며 살짝 꿀밤을 먹였다.
“많이 컸다? 반말도 하고.”
“악!”
아픔을 호소한 호영은 계속해서 꿍얼거리면서 김 박사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민재의 뒤로 바싹 따라붙었다.
“상황이 어떤데요?”
“차 여섯 대가 추락했어. 깊이가 너무 깊어. 팔 미터는 꺼진 것 같아.”
김 박사는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
“생사 유무는요?”
“알면 이러고 있었겠나…. 그래도 자네가 빨리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건 봐야 알죠.”
무감한 표정으로 덧붙인 민재는 소방대원들이 설치해 둔 안전선을 넘어갔다. 민재는 망설임 없이 허리를 숙이고 몸을 최대한 뻗어 구멍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선배!!”
“어어, 거긴 지반이 불안정해요! 조심하세요!”
소방대원과 호영이 동시에 소리쳤다. 민재의 코앞에서 추가로 지반이 살짝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뒤쪽에 있던 호영은 기겁하며 민재를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호영아.”
“네!”
민재는 망설이지 않고 호영의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호영은 빠르게 대답했다.
“들어갈 수 있지.”
말끝의 음이 올라가지 않는 질문이었다.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구조할 수 있는 인원이 줄어들 터였다. 호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민재와 호영이 2대의 차량에 있던 사람들을 구조했을 때, 추가 지원팀이 도착했다.
민재는 지원팀이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훑어보았으나 지환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기자들도 도착했다.
그 자식이 왔으면 더 시끄러워졌겠네. 민재는 안도했다.
민재는 싱크홀 내부를 돌아다니며 전복되거나 찌그러진 차를 찾아 그 안의 사람들을 응급처치했다. 그러고 나면 호영이 그 사람들을 싱크홀 밖으로 데려다주는 식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난 커다란 구멍 안으로 계속해서 불빛이 번쩍였다.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펑! 펑!
촤르르륵!!!
“야, 이 기레기 새끼야! 그만 좀 해라!”
싱크홀 주변 안전선 밖에서 기웃거리던 주민들 중 누군가 외쳤다. 그것을 기점으로 시민들 몇이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자 싱크홀 내부를 촬영하는 일은 잠시 중단되었다.
지원팀의 도움으로 구조가 빨라졌다. 구조된 사람들을 챙기러 지원팀이 잠시 위쪽으로 향하고 호영은 5번째 차량에 탑승해 있던 사람을 안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민재가 흙에 반쯤 파묻힌 6번째 차량에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6번째 차량 창문 밖으로 하얀 손이 나와 손짓을 했다. 민재는 걸음을 빨리했다.
“시민님, 부상을 입으셨나요? 움직이는 게 가능하신가요.”
민재는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 손을 움직일 수 있는데 문을 못 연다면 배나 다리 쪽에 큰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문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얀 손이 창문에서 계속 까딱거리며 이상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오라는 것 같기도 하고 저리로 가라는 것 같기도 했다.
민재는 빠르게 다가가 차 주변 지반과 창문 안쪽을 살피려고 했다.
“시민님. 말씀하시는 게 가능하신가요?”
“하여….”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민재는 되물었다. 의식이 있는 것 같긴 하니 다행이었다. 문을 먼저 열어젖혀야 할지 민재가 고민하는데, 운전석 쪽이 덜컥 열리기 시작했다.
민재는 반사적으로 힐을 먼저 주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능력을 발산했다. 뻗어낸 손에서 흰 빛이 일렁였다.
“인간을 위하여!”
빛 안쪽에서 다소 정확한 발음이 들려왔다. 뭐? 민재는 생각했다. 그리고-
쾅!
폭발음이 일었다. 민재의 앞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충격에 민재의 몸이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가슴 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면서 숨을 쉬기가 버거워졌다. 헉. 헉. 민재는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으로 온몸에 상처와 화상을 입어 벌겋고 까만 남성이 천천히 쓰러지는 게 보였다. 그의 몸에는 폭파를 끝낸 자그마한 폭탄 3개가 군데군데 타버린 전선과 엮여 있었다.
“으어….”
핏발 선 남성의 눈이 보였다. 남성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왜? 민재는 생각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싱크홀도 이자가 만든 건가. 아까 그 손짓은 자신을 부르기 위함이었나.
“무슨 일이 있나요!”
커다란 소리에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몇 에스퍼들이 안쪽으로 다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이었지만 민재는 가슴 쪽을 부여잡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씨발.
민재의 손목에는 주황색 불빛이 경고의 표시를 내뿜고 있었다.
민재는 거의 죽어가는 남성 쪽으로 몸을 옮겨갔다. 그러자 남성은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 같았다.
“싫… 어….”
남성은 싫다는 말을 내뱉었다.
“나도 컥… 좋아서 하는 게 아냐.”
헉. 헉. 숨을 몰아쉬며 민재는 남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다시 흰 빛이 일었다. 남성의 상처들이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타버린 그의 옷만이 남성이 불길에 휩싸였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싫어…. 에스퍼 따위….”
상처가 아문 남성이 내뱉은 말이었다.
“나도, 싫어.”
민재에게는 자신을 치료할 능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씨발. 씨발. 씨발! 민재는 속으로 되뇌었다.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구든 이 남성을 들고 사라져 줬으면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남자가 죽어서는 안 되었다.
밖에는 기자가 깔렸다. 이 남성이 어느 테러 단체든 반군이든 그것과 별개로, 이 남성이 죽어 나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남성이 천천히 입을 움직여 혀를 빼물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민재는 남성 쪽으로 기어가 그의 입속에 손을 욱여넣어 입을 벌렸다.
“억….”
그의 입속은 더럽고, 축축했다. 괴물의 입속에 손을 쑤셔 박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민재는 남은 손으로 턱을 부여잡고 남자가 혀를 깨물지 못하게 고정했다.
“더, 럽게….”
민재가 중얼거렸다.
“선배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민재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돌렸다.
그곳에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환이 있었다.
씨발. 왜 왔어. 민재는 말했다. 아니,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민재의 입에선 말 대신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튀어 나갔다.
“선배님!!!”
지환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시끄러워. 민재는 생각했다.
***
자신을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날아가는 내내 지환은 그 생각만 했다.
선배는 분명 오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가면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민재의 반응만을 생각하며 날아가던 지환의 시야에 거대한 구멍이 들어왔다.
도로 한복판에 저렇게 커다란 구멍이 생겨도 되는 걸까. 아래쪽 깊이가 깊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싱크홀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에스퍼 몇몇과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어, 왔어?”
호영이 지환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인사했다. 지환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민재 선배님은요?”
“아래 계셔. 나도 다시 내려가 봐야….”
“박지환 군! 박지환 군!”
누군가 지환을 애타게 불렀다.
지환은 고개를 돌려 누가 자신을 부른 것인지 확인했다. 안전선 뒤에서 상체를 뻗으며 애타게 외치는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였다.
지환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요…?”
“네! 잠시만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저는 와이비엠의 김명석 기자입니다!”
지환의 시선이 자신의 이름을 밝힌 기자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