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우석은 포장해 온 초밥을 한 손에 들고 민재의 숙소 앞에 섰다. 민재는 끼니를 챙기는 편이 아니라 가만히 두면 정말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아서 우석이 거의 매일 챙겨주거나 같이 먹는 편이었다.
우석은 벨을 누르거나 노크하지 않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54321. 카운트다운처럼 대충 지은 번호였다. 우석은 그 번호를 누를 때마다 기가 찼다.
“민재야.”
우석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민재를 불렀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암막 커튼을 쳐둬서 원룸 안은 어두웠다.
우석은 작은 테이블 위에 초밥을 내려놓고 침대 위에 형성된 번데기 쪽으로 걸어갔다.
“민재야.”
우석은 이불을 끌어 내리고는 눈을 감고 있는 민재를 잡고 짤짤 흔들었다. 아… 민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우석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민재를 야무지게 털었다.
“토할 거 같아.”
민재의 말에 우석은 몸을 일으키고는 암막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환해진 방에 민재는 몸을 더 웅크리고는 꾸물거렸다.
“일어나라고.”
우석이 덧붙이자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민재는 눈을 비볐다. 우석은 민재의 손바닥에 있는 상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 그거 뭐야.”
“뭐가.”
“너 손에.”
“아, 가이딩 모자라서.”
민재는 손목에 뜬 노란색 경고등을 우석에게 보여주었다. 우석은 빠르게 민재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는 민재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목덜미를 짚은 채 가이딩을 주입했다.
“알약은.”
우석이 물었다.
“떨어졌어.”
“근데 그냥 잤다고?”
“노란색이잖아.”
우석은 심란한 마음으로 민재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민재의 몸에 상처가 있는 건 꽤 오랜만에 보았다. 정확히는 치료되지 않은 채 방치된 상처를. 우석은 화상을 입어 발갛게 부풀어 올랐던 민재의 손을 떠올렸다.
우석은 8살에 센터로 왔다. 테러 현장 근방에 있다가 한 에스퍼에게 구조되었다.
그리고 그 에스퍼는 아무래도 우석이 가이드인 것 같다며 국가에 보고했고, 그대로 우석은 히어로 센터로 이송되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데. 이딴 곳에 있어야 한다니. 우석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고를 치면 자신을 내보내 줄까 싶어서 크고 작은 사고도 치고 다녔으나 센터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센터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우석이 완전히 깨닫게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우석은 등급 검사에서 늘 불안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S등급이 찍혀 나왔을 때, 그리고 그다음 검사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가 우석을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석은 누가 자신의 팔을 꼬집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우석은 늘 땡땡이를 깠다. 훈련에 불참했다는 뜻이었다. S급을 달고 나니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우석은 주방에서 뭘 자주 훔치기도 했는데 자신을 가둬둔 곳에서 무언가를 빼앗는다는 작은 승리감과 고취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민재를 처음 만난 날도 주방에서 뭘 좀 훔쳐보려던 날이었다. 갑자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뜨거운 냄비가 폭발하면서 우석 쪽을 덮쳤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우석의 어깨를 누군가가 움켜쥐었다. 강하고 억센 힘과 달리 조그마한 손이었다. 빠르게 고통이 잦아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에게 쏟아진 뜨거운 기름을 털어내고 치료해 주느라 벌겋게 손이 달아올라 있는 아이를 우석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은 치료해 주고 정작 본인 손은 치료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손목에 붉은 경고등이 떠 있었다.
우석은 울면서 아이를 받쳐 안았다. 우석의 우는 소리를 들은 센터 직원들이 달려왔다. 우석아, 민재야!!!
그때 우석은 알았다. 자신을 구해준 이 아이의 이름이 민재구나.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우석은 어릴 때부터 종종 민재의 침대에서 그를 기다렸다. 민재의 방에 놀러 갔을 때 민재가 있는 적이 드물었는데 기다리면 또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같이 가위바위보나 했고-할 줄 아는 놀이가 많지 않았다-, 어떤 날은 자는 민재를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는 또래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버틸 만했다.
민재는 팔에 주사 자국이 많았다. 첫 만남을 기억한 우석은 민재가 많이 아픈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석은 민재를 만나면 무조건 손을 잡았다. 가이딩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도 민재의 손목에 뜨는 경고등은 매번 오락가락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어떤 날의 민재는 울면서 몸부림쳤다. 그럴 때마다 민재의 몸은 덜덜 떨렸다. 팔이나 다리가 이상하게 뒤틀리기도 했다. 민재는 우석보다 어른들을 싫어해서 누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우석은 그냥 민재를 끌어안고 그가 떨어대는 진동을 함께 견뎠다.
“잠 못 잤어?”
민재가 물었다. 어? 잠시 멍하게 있던 우석이 민재와 눈을 맞췄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민재는 자신의 손에 힐을 주입했다. 옅은 빛과 함께 민재의 손에서 상처가 사라졌다.
“이제 됐냐?”
그가 하염없이 상처를 바라보고 있었단 걸 눈치챘다는 듯 민재는 웃어 보였다.
“초밥 먹어.”
“아, 센스 없어. 오늘은 햄버거의 날인데.”
우석은 민재를 노려보았다. 네가 미취학 아동이냐, 새끼야! 민재는 짓궂은 표정으로 눈을 찡긋하고는 초밥 포장을 대충 풀어내고 젓가락을 뜯었다.
우석은 턱을 괴고는 밥을 먹기 시작하는 민재를 바라보았다.
***
우석이 사다 준 점심을 먹은 민재는 조 박사의 실험실로 향했다. 가이딩을 거부하던 여자아이를 만난 후로 계속 기분이 찝찝했다.
생각보다 ‘까마귀’의 규모가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은 좀처럼 틀리는 편이 없었으므로 민재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 박사는 자기가 자릴 비우는 동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실험실 안쪽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러 들어갔으니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민재는 처참한 몰골을 한 남자 앞에 마주 앉았다.
“선생님, 오늘은 말할 마음이 들어요?”
민재가 물었다. 남자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이걸 끝내고 싶어요.”
“…….”
바닥만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민재를 향했다. 실핏줄이 서 있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들리긴 해요?”
민재의 질문에 남자는 눈을 살짝 깜박였다. 고개를 끄덕일 힘도 없어 보였다. 민재는 남자의 목 부근에 힐을 주입해 얼굴 쪽에 가득한 울혈을 조금 옅어지게 만들었다.
쿨럭, 남자는 작게 기침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찌푸렸다.
“…이봐요.”
“…네?”
“…진짜였어…. 진짜… 그 증거는….”
“증거? 증거를 누구로부터 받았죠?”
“…….”
남자는 더 말을 하지 않을 요량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또 길어지겠군. 민재는 그냥 힐부터 주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 테러범을 일반 검찰 측으로 넘겨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상처부터 치료하고 몇 개의 질문이라도 더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민재는 손을 뻗었다.
“또 까마귀가 올 거다.”
민재는 다시 시작된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까마귀는 신의 전언을 가지고 금빛… 컥.”
“뭐야, 왜 이래?”
남자는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거품을 물었다. 몸이 축 늘어져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아, 이제 약효가 돌았구나.”
민재는 어느새 옆에 와 서 있는 조 박사를 쳐다보았다. 조 박사는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면서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뭐 하는 짓이에요?”
“아니, 아까 주사 넣은 게 한 30분 걸리더라고. 밥 먹고 오니까 딱 되잖아.”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거 같아요?”
“그냥 머릿속을 조금 헤집어놓는 것뿐이야. 오늘 검찰 쪽으로 가야 된다며.”
“…지시받았어요? 아니면 단독 판단이에요?”
민재의 질문에 조 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 닦은 다음 다시 고쳐 썼다.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조 박사는 언뜻 보면 허당에 겁 많은 과학자로 보이지만 신체에 대한 탐구심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여러 가지 실험을 즐기는 놈이었다. 도덕심이라고는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이 과학자는 그의 연구 결과들로 센터장의 환심을 샀고, 신뢰를 얻었다.
보나 마나 무슨 언질이 오고 가 민재가 오기 전에 손을 써놨을 게 뻔했다. 이 남자는 일반 검찰 쪽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헛소리만 해댈 것이다.
“까마귀는 신의 전언을 가지고 금빛 물결로 뛰어든다.”
조 박사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금빛 물결? 민재는 중얼거렸다.
애초에 까마귀가 신의 말을 전하는 새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이비종교였다. 교주는 자신만이 까마귀의 말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전언자라고 주장하는 사이코 새끼였다.
“나 잘했지?”
조 박사가 당당하게 웃어 보였다. xx 새끼 입 좀 닫았으면. 민재는 착잡한 심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까마귀는 이능력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교였다.
이능력자들은 외계 행성에서 온 씨앗들에 몸을 점령당해 숙주가 된다며, 이능력자들을 모조리 말살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메인 메시지였다.
죄다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온라인에서 전도 행위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표면적인 그들의 이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교주에 대해서도.
까마귀 집단은 인터넷에 이상한 자료를 가져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증거라고 내놓으며 혐오 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다분히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사람들로부터 돈을 갈취한다거나 집단 폭행이 이루어지고 있다거나 하는 제보는 아직까진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정보가 많아 보이나, 실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좀 더 정보를 캐보려고 한 것인데. 조 박사가 다 조져놨다.
“실험하는 내내 짜증 날 정도로 중얼거려 대서 말이야. 이미 외웠어. 그거 외엔 어차피 건질 게 없었어.”
“…다른 말은요?”
“엉? 다른 말? 글쎄…. 없었는데. 내가 못 들은 걸 수도 있고!”
“하… 장난치지 말고요.”
“진짜야! 내가 실험에 집중하면 잘 못 듣는 거 알잖아.”
조 박사는 억울하다는 듯 진짜라고 몇 번을 더 강조했다.
민재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조 박사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긴 하지만 우선 뭔가 하나 힌트를 얻긴 얻은 셈이었다.
“치료 잘 부탁해! 내가 진짜 민재 군 없으면 어쩔 뻔했나 몰라.”
조 박사는 그 말을 하며 민재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안경을 치켜올리며 조 박사는 턱을 까딱거렸다.
“오랜만에 좀 보자.”
조 박사는 민재가 치료하는 상처를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서 아무는 상처들을 가까이서 봐야 원리에 대해 추측해 보기 좋다는 이유를 댔다.
미친 새끼. 민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씹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의 몸에 힐을 주입했다. 상처들이 말끔하게 아물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재미있단 말이야.”
조 박사는 그걸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재수 없는 새끼. 민재는 속으로 계속 욕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