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속보]거대 멧돼지 앞을 가로막은 소년 히어로!
-00일 00시경, 갑작스레 도심에 나타난 거대 멧돼지 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진 소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속 소년은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들을 막아선 채로 실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장한 표정이 늠름해 보였다.
사진에 다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어린 소년을 보고 감탄하는 것과, 민재가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장면들이 지환의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펼쳐졌다.
지환은 기사 사진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는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선배님, 제가 이제는 좀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말고, 할 수 있을 때 부르라고.
-그럼 할 수 있게 되면 불러도 되는 거 맞죠? ㅎㅎ
새로 도착한 답은 없었다. 아직 화나셨나. 지환이 시무룩한 얼굴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눈에 띄지 마라 사건’ 후로 지환은 30통이 넘는 사과 문자를 보냈다가 민재에게 도리어 욕을 들어먹었다. 쓸데없이 문자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답을 받은 후 지환은 사과를 멈추었다.
그 대신, 자신의 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이렇게 문자로 보냈다. 답이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예 무시를 당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지환은 손으로 땀에 젖은 머리를 털었다.
‘히어로’. 거대 멧돼지 앞을 가로막았다던 소년에게 붙은 칭호가 지환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발현도 늦었는데 센터에 들어온 후로 제대로 해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멘토한테 미움 받기나 하고.
“하아아아아아.”
지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뿅. 뿅. 태현은 지환이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벽에 기대어 앉아 핸드폰으로 게임을 계속했다. 지환은 그런 태현을 힐끔 보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우우우.”
그 소리에 태현은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누가 봐도 억지로 웃는 듯한 표정으로 태현이 지환을 바라보았다. 태현의 관심에 지환의 눈이 반짝였다.
“태현이 형.”
“왜.”
“아니이… 아니다.”
지환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그럼.”
태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을 켰다. 아니이…. 지환이 다소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어디에.”
“현장에. 열다섯 살짜리 애가 공을 세웠대.”
“아, 멧돼지?”
태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쿠당탕! 바닥에 있는 상자를 소심하게 발로 살짝 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 그렇게 형편없나?”
지환의 어깨가 처졌다. 목소리도 낮아졌다. 그런 지환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던 태현은 혀를 찼다.
“야, 넌 진짜 눈치가 없다.”
“…엉?”
“…조금만 기다려 봐. 어차피 곧 네 차례야.”
태현은 마치 예언자처럼 호언장담하며 지환을 위로했다. 여태 태현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지만 지환은 이번만큼은 그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게 언젠데? 지환은 하지 않은 질문을 혼자 곱씹었다.
***
-실장님, 가이딩실 좀 와주셔야 할 듯요.
민재는 새벽부터 우석의 호출을 받았다. 우석이 평소와 다르게 민재를 ‘실장님’이라고 지칭할 때는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있던 민재는 모자를 대강 눌러쓰고 빠르게 가이딩실로 향했다.
“손대지 마!!!”
가이딩실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엄청나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목소리였다.
또 무슨 일이야. 민재는 가이딩실 문을 열어젖혔다. 흰 가운을 입은 가이드들이 한쪽 침대에 몰려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민재가 물었다. 그를 본 가이드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어, 왔냐.”
우석은 퀭해진 얼굴로 민재를 맞이했다.
“싫어어!!!”
어린 여자아이가 침대에 특수 제작된 끈으로 묶여 있었다. 아이는 계속 싫다, 손대지 마라. 그런 말들만 반복해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자꾸 몸을 비틀고 발길질을 해서 묶인 손목과 발목의 피부가 붉어져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도 있는 건지 입고 있는 옷의 군데군데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애가 자꾸 자해를 해서 묶을 수밖에 없었어.”
“…가이딩은?”
“조금은 어떻게든 했는데… 얘가 커터야.”
커터의 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몸에 흐르는 파장을 날카롭게 벼려 상대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민재는 주변을 살폈다. 아니다 다를까,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몇몇 가이드들이 보였다.
“몇 급인데?”
“…D급.”
등급이 낮고 아이의 나이가 어려 그래도 손이 베인 정도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민재는 우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물약.”
“어… 어.”
우석은 비품 상자에서 가이딩 물약 병을 몇 개 꺼내 민재의 손에 들려주었다.
“새벽까지 고생 많으신데 다들 식사라도 좀 하고 오세요. 매점이라도 다녀오시고.”
민재는 침대 주변에 가림막을 치며 말했다.
“어, 나가서 커피라도 좀 사와. 내가 카드 줄게.”
우석은 민재의 말에 눈치껏 후배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민재는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아이 옆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는 민재와 단둘만 남게 되자 긴장을 한 것인지 소리를 지르던 것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내가 누군지 혹시 알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민재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누군데?”
“괴물.”
꽤나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 민재는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알 만하다고 생각했다.
“너 이름이 뭐야?”
민재가 물었다.
“…괴물한텐 말 안 해.”
“내가 왜 괴물인데?”
“히어로 센터에는 괴물이 된 애들만 간다고 했어.”
“누가?”
“선생님이.”
“…너도 여기 왔잖아.”
“…….”
아이의 눈이 빨개졌다. 순간 아이의 어깨 쪽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민재는 별다른 말 없이 상체를 뒤쪽으로 살짝 물렸다.
야! 자극하지 말라고! 가림막 뒤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우석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민재에게 면박을 줬다.
민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속상해?”
“…끔찍해. 난 이제 죽을 거야.”
“왜? 너 안 죽어.”
“괴물이 나 죽인댔어.”
“아니야. 아저씨는 너 살려줄 건데?”
훌쩍. 아이는 코를 먹었다. 빨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민재는 손을 뻗어 아이의 묶인 손목을 잡았다. 순식간에 민재의 손날 쪽이 베였다. 민재의 손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우으….”
“괜찮아.”
아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민재는 아이의 몸에 힐을 주입하면서 자신의 손도 함께 치유했다. 아이는 실눈을 뜨고 힐끔거리면서 민재의 손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몸에 생긴 상처를 모두 제거하고 나서 민재는 손을 뗐다.
“어때, 죽은 것 같아?”
“…아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거봐. 그 선생님 말이 틀렸지?”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허공만 노려보았다.
민재는 이번에는 아이의 입을 잡고 벌린 다음 가이딩 물약을 쏟아부었다. 아이는 반쯤은 뱉어냈지만 저도 모르게 몇 모금을 삼켰다.
“켁!”
“별로 맛없지? 너 아까 네가 아야 하게 한 가이드들 말 안 들으면 이거 맨날 마셔야 된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분이 풀리진 않는지 씩씩거렸다.
“…엄마 보고 싶어.”
아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계속 울음을 참아 그런지 코끝이 빨갰다.
만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민재는 생각했다. 아이가 말하는 걸 보아 부모가 ‘까마귀’의 신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는 부모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자식이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믿는 부모가 만나려고 할 리가 없었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내놓았다.
“…백 밤 자고 만나.”
***
“오늘은 비싼 센터장님 얼굴 꼭 봐야겠는데요.”
우석은 오준 앞에 묵직한 차트를 탕 내려놓았다. 오준이 어깨를 들썩이며 놀라더니 차트와 우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석은 오준과 눈을 맞추며 웃어 보였다.
“잘 지냈어요, 비서님?”
“어… 실장님 약속은….”
오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태블릿 화면을 켜 일정을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그의 방문이 일정에 포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석은 오준의 태블릿 화면 위에 손을 올렸다. 우석의 손을 타고 오준의 시선이 올라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어색한 행동이었다.
“왜 문자 안 받아요?”
“네?”
우석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켜 오준에게 보여주었다.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문자를 가리키기까지 했다.
-오늘 센터장님 언제 출근하십니까.
아. 오준은 어색한 미소로 일관했다.
“차단했어요?”
“아뇨???”
차단했네. 우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좀 서운한데요. 제가 차단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기억 안 나세요?”
“…어, 어떻게 한다고 하셨죠?”
오준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우석은 오준을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오준이 의자를 살짝 뒤로 물리는 게 보였다.
간도 콩알만 한 게 차단은 왜 한 건데. 우석은 책상을 짚으며 물었다.
“센터장님 지금 계시죠?”
“지금 부재중이십니다.”
자기가 무슨 알림 뻐꾸기야 뭐야. 똑같은 말만 반복하게. 우석은 뻐근한 목을 옆으로 꺾었다. 오준의 의자가 더 뒤로 물러났다.
“저 센터장님 출근하시는 거 보고 따라 올라왔는데요?”
우석의 말에 오준이 입을 말아 넣었다. 우석은 그런 오준을 힐끔 보고는 차트를 들어 올렸다.
“들어가도 되죠?”
우석이 몸을 틀어 오준을 지나치려던 순간이었다. 오준이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켜 우석을 막아섰다. 오준은 우석의 어깨를 손으로 짚기까지 했다. 덜덜 떨리는 손의 진동이 우석에게 느껴졌다.
“센터장님 정말 안 계십니다….”
“장난치는 거 아닌데요, 나.”
“저도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한숨을 삼킨 우석은 자신이 들고 있는 차트 앞면을 열어 오준에게 보여주었다.
“윤 비서님. 열다섯, 열여섯 살짜리 애들이 지금 임무를 나가요.”
“…….”
“그 애들이 죄다 어떤 상태로 복귀하는지 알아요?”
오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석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대각선으로 눈을 깔고는 바닥만 노려보았다.
우석의 어깨에 올린 오준의 손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끔찍한 무언가를 참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시발. 우석은 욕을 짓씹었다.
“…내가 무서워요?”
“…아뇨.”
“사람이 아니라서?”
“아뇨, 그….”
우석은 들고 있던 차트를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오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사방팔방으로 종이가 흩어졌다. 오준은 방금 일어난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을 깜박였다.
“왜 이딴 멍청한 새끼를 비서로 앉혀놓나 늘 궁금했는데. 이제 알겠네.”
“…뭔가 오해를-”
오준의 몸이 우석에 의해 휘청거렸다. 오준의 손이 멱살을 잡은 우석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우석은 힘을 빼지 않았다. 말을 멈추지도 않았다.
“이능력이 발생했다는 애들 처넣어서 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굴리는 이 좆같은 곳에 대단한 공감이라도 하시나 봐요. 아, 그쪽한테는 애들도 아닌가? 어차피 같은 인간도 아니니까?”
“잠시만요.”
“이러고 빌어먹고 살면 좋아요? 하긴, 좋으니까-”
짝!
우석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오준이 우석의 뺨을 내리친 것이다. 맞은 충격으로 우석은 말을 멈추었다.
오준은 빨개진 눈으로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툭 치면 눈물이 후드득 쏟아질 것 같았다.
왜 네가 그런 얼굴을 하는데? 우석은 이를 앙다물었다. 멱살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오준은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오준은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흩어진 종이들을 줍기 시작했다.
오준이 우석의 차트를 모두 모아 데스크에 올릴 때까지 우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살펴 가세요.”
오준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우석은 말없이 데스크 위의 차트를 들고 센터장실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