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히어로 센터 가이드실 실장 최우석은 상태가 심각하다는 신입 에스퍼 때문에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가이딩실에 들어선 참이었다.
“흐… 선생님.”
파리한 안색으로 간이침대에 누워 헐떡이고 있는 소년은 몇 주 전 새로 센터에 입성한 에스퍼였다. 몸은 계속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호흡이 일정하지 않았다. 핏줄이 솟은 데다 피멍이 계속 번지는 걸 보니 내상이 심한 모양이었다.
“선생님 아니고 선배님.”
무심한 목소리로 답한 우석이 그에게 다가갔다. 울먹이던 에스퍼는 우석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저… 죽어요?”
“안 죽어.”
안심시키는 말치고는 매우 성의 없는 말투였다. 우석을 잡고 있는 에스퍼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야, 힘 조절 못 하냐. 아파. 우석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에스퍼의 손을 살짝 떨쳐냈다.
“끕….”
에스퍼의 눈에 눈물이 잔뜩 고였다. 어려도 너무 어린데. 우석은 생각했다. 앳되어 보이는 이 에스퍼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야, 얘 바이탈 체크했어?”
“네, 실장님. 가이딩 수치 이십 퍼센트 이하로 측정되었습니다.”
“그래? 밥 처먹으러 간 새끼들 튀어오라고 해.”
“네!”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은 빠르게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우석은 엉엉 울어대는 에스퍼를 보다가 그의 흉부를 손으로 지그시 압박하고 가이딩을 시작했다. 평소의 우석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우석은 민재와 은정 외에는 정말 응급 상황일 때에만 가이딩을 했다.
보통 등급별로 한 번에 가이딩할 수 있는 가이딩 양이 정해져 있는 편이었다. SSS급을 감당할 수 있는 S급 가이드 우석은 민재를 위한 상시 대기조였기 때문에 가이딩을 하는 상황이 드물었다.
“아….”
작은 탄식을 내뱉은 에스퍼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2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A급. 이제 어느 정도 찼으니까 만땅 채워서 보내.”
우석이 몸을 일으키자 3명의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붙어 가이딩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광역 가이딩을 함께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에스퍼의 몸 곳곳에 퍼져 있던 피멍들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우석은 간이침대 옆에 던져두었던 차트를 집어 정보 확인을 시작했다.
폭파로 인한 터널 붕괴 현장에 파견되었던 A급 에스퍼는 16살이었다.
2달 정도 전부터 가이딩실에 상태가 엉망이 된 10대 아이들이 실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애들을 임무에 투입하는 이유는 동정여론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초능력을 경계하고 이능력자들이 계급사회의 꼭대기에 앉는 것을 경계하는 현 여론에게 ‘일반 시민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어린 영웅’의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었다.
경험이 없는 어린 에스퍼들은 커다란 임무가 아니더라도 쉽게 다치기 일쑤였다. 그런 에스퍼들의 모습에서 우석은 어린 자신과 민재를 발견했다.
“개새끼.”
나지막하게 욕을 지껄이며 고개를 저은 우석은 차트를 옆에 있던 가이드 한 명에게 던지듯이 건네주고는 가이딩실 밖으로 향했다.
그대로 우석이 향한 곳은 센터장의 사무실 앞이었다.
“지금은 부재중이십니다.”
“있는 거 아니까 문 열어요.”
우석은 문 앞을 막고 선 비서를 노려보았다.
김진성의 비서 윤오준은 어디를 보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흐린 눈을 하고 우석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아둔한 이 작자가 젊은 나이에 센터장의 비서직을 꿰찬 이유가 뭘까. 우석은 궁금했다.
매번 저렇게 겁먹은 표정으로 문지기 역할이나 하는데. 아, 그래서 꿰찬 건가. 우석은 어찌 되었든 오준이 달갑지 않았다.
“윤 비서님. 제가 여기 몇 번째 왔는지 기억하시나요.”
우석은 악센트를 주어 말했다. 일곱 번째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준은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실장님, 지금 들여보내 드리면 제가 죽어요.”
오준은 입을 안으로 말아 넣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우석은 오준을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왔었다는 건 꼭 전하세요.”
“네, 그럼요.”
“…안 전하실 거죠.”
“…네.”
오준은 대답하고는 다시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이 와중에 솔직하고 지랄이야.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인 우석은 몸을 돌려 나갔다. 아니,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오준은 갑작스러운 우석의 행동에 눈의 크기를 급격하게 키웠다.
“왜, 왜….”
우석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오준은 제 앞으로 내밀어진 핸드폰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혹시… 충전 필요하신가요?”
비서의 말에 우석의 눈썹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하. 헛웃음을 흘린 우석이 비서에게 핸드폰을 좀 더 내밀면서 말했다.
“번호요.”
“번호… 어… 제 번호요?!”
경기를 일으키듯 물어보는 비서의 반응에 우석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네. 비서님이 센터장님 일정을 아. 주. 잘 아시니까. 제가 연락드릴 일이 좀 많을 것 같아서요.”
“아… 하하….”
오준은 손을 덜덜 떨면서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우석은 그 모양새를 빤히 바라보았다.
“차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오준은 억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그런 오준을 우석은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저렇게 표정이 안 숨겨져서야. 한숨을 삼킨 우석은 말을 더 잇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살, 살펴 가세요, 실장님!”
오준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빠르게 인사를 했다. 우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
“이거 들어.”
“네! 네?”
새로운 과제를 주겠다던 민재의 말에 잔뜩 기대에 차서 잠을 설친 지환은 민재가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날벼락을 맞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던 지환이 노선을 틀어 의문형의 답을 내놓았다. 그에 역시 민재의 미간이 구겨졌고, 지환은 자신의 입을 찰싹 때렸다.
민재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커다란 상자였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으나 딱 봐도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이게 뭘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예.”
어떻게든 돌려서 질문 아닌 질문을 해보려던 지환은 말을 하다 포기하고 바로 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민재는 명료하게 답을 들려줬다.
“상자.”
“아, 하… 아하~!”
아니, 그걸 누가 몰라요? 안에 든 게 뭐냐고요. 지환은 살짝 발끈했다. 물론 속으로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 지환은 미적미적 상자 쪽으로 다가가 몸에 힘을 주고는 들어 올렸다.
“끄으으.”
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안에 아령 500개는 들어 있는 거 아니야? 지환은 남몰래 원망의 눈길을 민재에게 보냈다.
설마 이거 들고 스쿼트 시키는 건 아니겠지. 지환은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통한 건지 민재는 다른 과제를 주었다.
“날아.”
지환은 눈을 꽤 크게 떴으나 이번에는 ‘엥?’이라든가 ‘네?’라든가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살짝 굽혀서 몸을 바닥에서 띄워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왕복해.”
민재는 훈련장 양쪽 끝을 가리켰다.
지환은 왼쪽 어깨에 상자를 짊어진 채로 천천히 비행을 시작했다. 그러자 지환의 어깨 위에서 상자가 흔들렸다.
상자 안에는 무거운 공이 몇 개 들어 있는지 지환이 움직일 때마다 굴러다니며 상자 옆면을 툭툭 건드렸고, 상자와 지환의 몸이 흔들렸다.
“다시.”
민재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네? 지환은 되물으려던 것을 억지로 눌러 참고 바닥에 내려선 채 민재를 쳐다보았다.
“상자가 흔들리지 않고 왕복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야.”
그럴 수가 있나? 지환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애초에 상자 안에서 공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할지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지환은 질문을 돌려서 말해보았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모르면 안 되지.”
민재는 천천히 지환에게로 걸어왔다.
지환은 잠시 기대했다. 민재가 저에게 준 과제를 거두어주진 않더라도 어떤 비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민재는 다가와 상자를 짊어지지 않은 지환의 오른쪽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안 흔들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불러.”
그러고는 민재는 망설임 없이 훈련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지환은 하루가 다 가도록 민재를 부를 수 없었다. 그건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
지환의 몸이 덜컹거렸다. 그와 더불어 커다란 상자도 덜컹거렸다. 휘청이는 지환의 몸을 슬쩍 잡아준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에서 뭐 하는 거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겠네요. 지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창밖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영들이 있었다. 민재에게 받은 두 번째 과제를 해내기 위해 지환이 혼자 훈련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창밖에서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쟤야? 쟤구나. 지환을 가리키는 말들이 적나라하게 들렸다. 대단하다고 감탄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이따금 별거 없다느니 왜 하필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는 지환에게 태현은 2가지 이유를 일러주었다.
“첫 번째, 너는 S급이니까. 두 번째, 너는 대외적으로 우민재 실장의 페어가 되었으니까.”
멍한 지환의 얼굴을 한심하게 바라본 태현은 그 후로 지환이 훈련을 할 때 시간이 맞으면 훈련장에 같이 와 시간을 때워주었다.
“진짜 그냥 괴롭히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태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지환은 고개를 내저었다. 지환은 계속 훈련장에 혼자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매일 상자를 드는데도 상자는 흔들리기를 멈추질 않았다.
“…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태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훈련장 구석으로 걸어갔다.
“벌써 가게?”
지환이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올 데가 있어서.”
여기선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거야? 지환은 질문을 삼켰다. 이미 두 시간 넘게 자신의 곁을 지켜준 태현에게 더 응석을 부릴 수는 없었다.
태현이 나가고 지환은 다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적응이 영 되지 않는 무게였다. 상자 안의 알 수 없는 것들이 사정없이 벽면을 때렸다. 이따금 지환은 그것에 얻어맞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결국 지환은 상자를 놓치고 넘어지다시피 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쟤라고? 생각보다….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초능력이 생기고 유명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 지환은 여러 번 상상해 보았다. 히어로가 꿈이었으니까.
그러나 지환이 생각해 본 그 어떤 경우에도 이런 상황은 없었다.
“뭐 해?”
훈련장 안으로 호영이 얼굴을 쏙 내밀었다. 어? 선배님! 지환의 부름에 호영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제1팀에다 센터에서 활동한 지 꽤 오래된 호영의 등장에 창밖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선배님… 완전 구세주세요.”
감동받은 얼굴로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지환을 미소 띤 얼굴로 말없이 바라보던 호영은 손을 올려 지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이제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
“이런… 거요?”
지환은 호영의 말에 카메라 앞에 서 있던 민재의 얼굴을 떠올렸다. 툭 치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지환은 순간 생각보다 몸이 앞섰었다.
…민재 선배는 이런 것들에 익숙한 걸까?
“음… 아무래도 신입이 제1팀에 들어온 건 처음이니까…. 다들 궁금한가 봐. 애초에 우리 팀에 새로운 팀원이 들어온 것도 조금 드문 케이스라….”
“아….”
“너무 마음 쓰지 마. 저런 관심은 금방 사라져.”
위로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으나 지환의 기분은 더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지환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호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환은 자신의 발치에 놓인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지금의 시선들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런 관심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내가 이 상자를 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민재 선배님께 인정을 받을 수도 없고, 어떤 임무에도 참여를 못 한다면? 지환은 초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