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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0)화 (1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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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두둑-

은정은 가이딩실 입구 쪽에서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하는 중이었다.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큰 키와 다부진 근육을 자랑하며 침대 옆에서 관절을 꺾어대고 있는 은정 쪽으로 지환이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선배님….”

“왜.”

은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저… 어떡해요?”

“뭘 어떡해.”

뚜둑-

왼쪽 관절과 오른쪽 관절을 야무지게 꺾은 은정은 허리를 팡팡 두드리고는 몸을 뒤로 돌렸다. 시원~ 하다! 약수터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를 내면서.

“어? 사고뭉치.”

은정이 손을 앞으로 뻗어 지환의 머리를 툭 쳤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은정이 덧붙여 물었다. 은정의 호칭에 지환의 어깨가 더 처졌다.

“어째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기쁘지 않아 보인다?”

원하는 대로…? 지환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자 은정이 웃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프러포즈하고 선배랑 같은 팀 되었잖아. 저의 가이드가-!!”

은정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발사되려고 하자 지환은 탈곡기처럼 고개를 짤짤 흔들어댔다. 선배님, 선배님!!!

“왜.”

“…민재 선배님은 저 싫어하시겠죠…?”

그 말을 하고 지환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글쎄? 은정은 미묘한 얼굴로 웃으며 지환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아무도 안 싫어해.”

은정은 지환의 얼굴을 잡고 찌그러뜨렸다. 우! 하는 소리를 내며 지환이 아프다고 꿍얼거렸다. 그 소리에 은정은 즐겁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지환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근데 너….”

은정이 말을 이으려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을 멈췄다.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지환은 의아해져 은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좀 알아?”

무심한 듯 툭 내뱉는 질문이었지만 은정의 목소리가 묘하게 무거웠다.

지환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에스퍼의 기본 규칙이라면 나름대로 열심히 외워 곧잘 말할 수 있었지만, 눈치가 없는 저라도 지금 은정 선배가 말하는 것이 그런 류의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뭐지.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게 있는 건가?

은정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 가라.”

어. 어. 은정의 가벼운 손짓에 지환이 툭툭 밀려났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같은 팀인 은정에게 나름의 조언을 얻어보려던 지환은 왠지 찝찝함만 얻어버렸다.

“선배님 무슨 말씀을….”

“아니다. 이리 와봐.”

은정이 손을 까딱였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 지환은 몸을 살짝 움츠리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네?”

“술 마시러 가자. 그럼 다 해결돼.”

“네?? 아뇨, 저는…!”

은정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는 지환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가이딩실 밖으로 끌어냈다.

“잠시만요!”

버티려는 지환의 반항이 너무 쉽게 수포로 돌아갔다. 홱 가이딩실 밖으로 내쳐진 지환은 어안이 벙벙했다.

“좋지?”

은정이 이를 악물고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바로 움츠러든 지환은 은정은 말을 따라 했다.

“네…. 좋습니다….”

“오냐~”

그 말과 함께 은정은 지환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지환의 소리 없는 절규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

“으어어어-!”

“…몬스터냐….”

술을 많이 처먹으면 사람이 개가 된다더니, 지환은 개가 아니고 몬스터가 되었다. 주량도 모르고 처음 마셔보는 술을 꿀떡꿀떡 삼킨 지환은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런 주제에 소리는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양 컸다. ‘달려 포차’에서 초저녁부터 이렇게 취한 사람은 지환밖에 없었다. 은정은 쪽팔렸다.

“확- 메다꽂아 버릴까.”

은정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머리 한번 꿍! 하면 술이 확 깨지 않을까.

“스어어언배애애!!!”

지환이 은정을 불러댔다.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지환을 흘끔거렸다. 은정은 자신의 앞에 놓인 강냉이를 한 움큼 집어 지환의 입에 쑤셔 넣었다.

“왜. 왜, 후배님~”

“즈어~ 어떠캅! 켁!”

무언가 말하려던 지환은 사레가 들려서 강냉이를 후두둑 뱉어내며 기침을 했다. 은정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야, 너 진짜….”

“흐엉….”

“강냉이 털리고 싶어?”

은정의 말에 지환은 또 잽싸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존 본능에 따른 빠른 행동이었다. 입도 합 다물었다.

“…슨배님.”

그러나 지환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은정은 눈을 질끈 감고 맥주를 들이켰다.

“저능여….”

꼴깍.

“히어로가… 구하는 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시펐거등여?!”

꼴깍꼴깍.

“긍데 막…! 밍재 슨배는…이케… 이케… 막…! 비켜…!”

꼴깍.

“즈에가! 그케 잘모탰나여?!”

꼴깍. 꼴깍. 꼴깍.

“아무도…! 아무도…! 됭다고 안 해줬는데….”

“…….”

“그애도… 노려카면 되능 거 아닌가…. 내가 누구 때무네 히어로… 그게 하고 시펐는데!”

지환은 눈을 치껴뜨려고 노력했으나 눈꺼풀이 자꾸만 처졌다. 끄어억! 은정은 맥주잔을 내려놓고 트림했다.

“디러….”

그 와중에 지환은 할 말은 다 했다.

“뒤질래.”

“아녀….”

은정은 입가를 손으로 쓱 닦으며 지환을 쳐다보았다.

“히어로가 그렇게 되고 싶었냐.”

은정이 물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지환의 머리를 거칠게 쓱쓱 쓰다듬었다.

지환은 손을 떨구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누구를… 구하자나여.”

“…구하면?”

“멋지자나여. 위허말 때 쨘! 하고 오며는 모두가 와아아!! 막 반겨주고오. 환호도….”

지환이 허공에 팔을 뻗어 허우적거렸다. 시야에 잡히는 자신의 팔이 느물거리는 미역 같았다. 어디선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좋아?”

다소 낮아진 목소리가 지환에게 물었다. 어, 왔어요?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이런 질문을 하는 은정 선배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민재 선배도 그런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선배님들은 다 그런가…. 이상해…. 지환은 중얼거렸다.

“슨배님은 시러여?”

지환은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 초점을 잡으려고 인상을 쓰는데 자꾸만 테이블이 자신 쪽으로 튀어 올랐다.

어어…! 슨배님…! 탁자 빌런! 탁자 빌런!! 외쳐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 싫어.”

단호한 목소리가 답했다. 어… 선배님, 목소리가…. 지환은 은정 선배가 무언가 슬픈 일이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은정 선배를 위로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지환은 무작정 손을 뻗었다. 단단한 게 손에 닿자 지환은 손을 겨우 들어 올려 토닥이기 시작했다.

토닥… 토닥….

“아, 미치겠네…. 진짜 개 웃겨.”

신난 은정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토닥여서 은정 선배의 기분이 좀 나아진 모양이라고. 다행이라고 지환은 생각하며 멀어지는 의식의 끈을 놓쳤다.

***

눈을 감고 있는데 바닥이 빙빙 돌았다. 천장도 돌았다. 아니 세상이 돌고 있었다. 지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신음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지환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숙소였다.

눈을 몇 번 끔벅인 지환은 빠르게 주변도 살펴보았다. 자신도 옷을 입고 있고 주변에 옷을 벗은 타인도 없다. 지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은 자신의 옷을 뒤져 핸드폰을 찾아냈다. 다행히 배터리가 다 나가진 않았다. 안부를 묻는 엄마의 문자와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가 있었다.

-10시까지 훈련장. B 구역.

지환은 시계를 확인했다. 9시 45분이었다. 훈련장까지는 전력으로 달려도 15분이 걸렸다.

“미쳤다! 미쳤다아!!”

패닉에 빠진 지환은 화장실로 날아 들어가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열고 손에 물을 묻혀서 퍽퍽 얼굴을 닦았다.

달릴 준비를 하면서 다리를 털어대던 지환은 잠시 멈칫했다. 진짜로 날아가면 되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환은 신이 났다. 그러고는 다시 생각했다. 근데, 누구지?

칫솔을 입에 물고 지환은 문자를 전송했다.

-누구세요?

문자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우민재.

끔벅. 지환은 눈을 끔벅이며 이름 옆에 붙은 마침표를 바라보았다. 우민재… 우민재???

-늦게 올 거면 오지 마라.

9시 48분이었다.

퐁당-

지환의 칫솔이 변기에 빠져 생을 마감했다. 칫솔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 것만 같았다.

지환은 칫솔을 잽싸게 건져서 버리고는 미친 듯이 입을 헹구기 시작했다.

***

“선배님, 안녕하세요!”

인사성 밝은 호영이 인사를 해왔다. 민재는 고개를 까딱여 보이고는 옆 훈련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훈련장은 모두 홀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훈련장에서 쓰는 무기는 실제 무기보단 화력이 떨어지지만 중력이나 압력, 충격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적용되어 있어 전투 상황과 최대한 유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내려꽂혀 땅이 갈라졌다. 옆방에선 건물이 무너지고, 불길이 솟구쳤다. 그 옆방에선 집채만 한 파도가 항구를 덮치고 있었다.

방마다 펼쳐지는 풍경을 민재는 무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B 구역 훈련장 구석 의자에 앉은 그는 손을 뒤로 짚은 상태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딱. 딱. 딱.

“되게 눈치 많이 보더라.”

어젯밤, 뜬금없이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다 쓰러져 잠든-민재가 지환을 죽이려는 걸 은정이 말렸다- 지환을 보면서 은정이 했던 말이었다.

진짜 뭣도 모른다…. 그건가. 같잖은 영웅 타령이나 내내 해대고. 그게 진심이라면 그거대로 짜증 났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수통을 꺼내 안에 있는 보드카를 들이켰다.

굿! 모! 닝! 빠빠빠 빠~ 빠!

10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민재는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갔다. 10시까지라고 친절하게 알림 문자까지 했으니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흐억, 히엑, 헉, 흐허, 허, 서, 서, 서, 선배, 님.”

그러나 문을 연 민재의 눈앞에는 어디서 찢어먹었는지 눈가가 찢어져 피를 줄줄 흘리며 호러 연출을 하고 있는 지환이 있었다.

“늦었어.”

민재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안, 늦, 었… 헉.”

반면 지환은 엄청나게 헐떡였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지환의 가슴께를 본 민재는 몸을 삐딱하게 기울여 문가에 기대서서 입구를 막았다.

“시계 봐.”

“흐억, 저, 지금 폰, 없어요….”

“어쩌라고.”

네…? 민재의 답변에 지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재는 지환에게 비키라는 듯 옆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 선배님 제 번호는…. 아, 아니! 어제는….”

어버버거리는 지환을 보는 민재의 눈썹이 비뚜름해졌다.

“어제, 기억나?”

“네??”

문자 왔숑! 그때 민재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화면을 지환 쪽으로 내밀었다. 지환은 목을 살짝 움츠리면서 화면을 살폈다.

-후끈후끈!

은정이 보낸 메시지였다.

지환은 의아해하며 아래 은정이 첨부한 사진으로 시선을 옮겼다. 볼이 벌게져서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지환이 흐느적거리며 민재의 허벅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 어….”

지환은 고장 난 장난감처럼 멍한 목소리만 내뱉었다.

역시 필름 나갔네. 민재는 지환의 반응을 보고는 핸드폰을 거두었다.

“꼬맹이.”

민재가 지환을 불렀다.

“네… 네???”

지환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민재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우민재, 너는 개 멍청이 호구 새끼다. 결심한 민재는 입을 열었다.

“내가 너의 전담 멘토다.”

“아… 그… 죄송합니다. 제가… 네???”

지환은 황급히 사과의 말을 내뱉다가 민재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하나.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그….”

“둘. 늦으면 훈련 없어. 오늘도 예외는 없다.”

“네….”

“알아들었으면 비켜.”

냅다 규칙들을 읊어준 민재는 옆쪽으로 턱을 까딱였다. 지환은 그런 민재의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비켜섰다.

민재는 지환을 지나쳐 가려다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지환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지환이 숨을 멈추는 게 보였다. 총구가 겨눠졌을 때보다 지금이 더 인질 같은 표정이었다.

툭.

민재의 손가락이 지환의 찢어진 눈가 근처에 닿았다. 지환은 소스라치며 몸을 웅크렸다. 목 뒤부터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지환은 아… 하고 작게 신음하더니 고개를 거세게 저어댔다.

그렇게 세게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엄살은. 민재는 손을 거둬들였다.

“의무실 가서 치료받아라.”

민재는 그대로 몸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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