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은정은 정신을 잃은 범인을 한 손으로 질질 끌며 교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은정아.”
“알아. 일 층에선 고쳐 잡을 테니까.”
민재가 엄한 목소리로 부르자 은정이 대꾸하고는 밖으로 향했다. 은정이 나가자마자 민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현재 방영 중인 뉴스를 틀었다.
[히어로 센터의 히어로들이 현장에 투입된 지 한 시간. 센터 측은 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조된 아이들의 신원도 모두 확인했습니다.]
[히어로 센터 측은 인질범이 새로운 사이비종교 집단의 일원일 가능성이 있으며, 심문을 센터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혀 국회 내에서의 논의가 뜨거울 것으로 보입니다.]
민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환은 민재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밖으로 나서려던 민재는 뒤를 돌아 지환을 바라보았다.
“호영아.”
“네!”
“신입 청소시키고 내려와라.”
민재는 지환을 보면서 호영을 불러 지시를 내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호영은 지환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핏자국만 좀 닦고 내려와.”
호영이 말했다. 지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영까지 교실을 나간 뒤, 지환은 혼자 남았다.
교실 안의 청소도구함에서 걸레를 꺼낸 지환은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고 창문과 책상, 바닥을 닦았다.
창문 밖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학생 신분이었던 지환은 어쩐지 오늘 교실이 이전보다 작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교실이란 공간이 원래 이랬던가. 중학생들 건물이라 좀 작게 지었나?
지환은 민재의 피를 말끔히 닦아냈다. 아직도 총성이 지환의 귓가를 때리는 듯했다.
지환의 귓가에서 민재의 손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눈을 감고 있어서 그 소리가 자신의 머리통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팠겠지? 지환은 개수대에 물을 받고 걸레를 박박 문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구급차 앞에 데려다주고는 호기롭게 다시 학교 안으로 향했던 지환은 범인과 마주쳤을 때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다리가 바닥에 달라붙었다.
상상 속 자신은 언제나 나쁜 악당을 무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총구 앞에서 굳어버리는 경우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순간 지환은 날기는커녕 걸을 수도 없었다.
커다란 소리로 총성이 울릴 때, 지환은 민재를 쳐다보았다. 목덜미를 잡힌 채 고개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라볼 데가 없기도 했다.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지환과 똑같이 총구를 마주하는데도, 민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민재와 마주하고 있을 때 지환은 알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도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홀린 것처럼 지환은 오로지 민재만 바라보았다. 단호하고 서늘한 눈. 그 눈으로 영웅은 그를 쏘라고 했다.
“쏴.”
그리고 지환을 구했다.
만약 내가 건너편에 서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총구를 틀어쥘 수 있었을까? 지환은 걸레를 마구 쥐어짰다. 물이 후드득 떨어지면서 지환의 신발을 적셨다.
청소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간 지환은 나이가 지긋한-누군가 교감선생이라고 그를 불렀다-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민재를 발견했다.
“그럼 우선 교실 문 3개와… 창문은 괜찮나요?”
“깨진 곳 있어요?”
가만히 들어보니 망가진 비품 배상에 대해 이야길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가 저번처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을 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지환은 어쩐지 조금 머쓱해졌다.
지환은 조심스럽게 민재에게 다가갔다.
“저, 선배님.”
“…뭐야.”
민재가 지환을 노려보았다. 헙. 지환은 입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민재는 분명 지환에게 숙소로 복귀하라고 했지만, 말을 안 들었다가 인질로 잡혔다가… 하여간 또 민폐를 끼치긴 했다. 지환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제가 뭔가… 뭔가 도울 거라도….”
민재는 조금 전 그를 구해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싸늘한 눈을 하고 있었다. 지환은 그 눈에 주눅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저 멀리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날아와 지환의 귀에 꽂혔다. S급 아냐? 제1팀에?
“…도와?”
네가? 하. 민재의 입이 비뚜름한 호선을 그렸다. 그 미소 때문에 지환은 자신이 또 무언가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민재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지환은 따라가지 못하고 멀어지는 민재의 등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
“흐어어….”
은정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옷가지들을 헤치며 침대로 나아갔다. 침대에 몸을 던진 은정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최근 며칠간 일이 많아 제대로 몸을 눕혀본 기억이 없었다. 가이딩을 받아 어느 정도 피로 회복은 했지만 그래도 침대에 눕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아, 맞다.”
한동안 미동 없이 누워 있던 은정은 꾸물꾸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어, 은정아. 부드러운 미성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가 은정의 이름을 불렀다.
“쟈기~ 보구 싶어어.”
은정이 목소리를 늘이며 애교를 부렸다. ‘쟈기’라고 불린 상대방은 그런 은정의 반응이 익숙한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곧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서연이 힘들겠다. 거기 먹을 건 좀 괜찮아?”
서연은 은정의 가이드였다. 가이드로 매칭된 후로 둘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서연은 출장이 잦았는데, 그러다 보니 은정이 서연에게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서연도 언제나 다정하게 그런 은정을 받아주었다.
[응,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아? 잘 챙겨 먹고 있어?]
“그럼, 그럼. 아, 서연아. 너 센터 소식 좀 들은 거 있어?”
[응? 센터에 무슨 일 있어?]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는데. 하여간 우리 서연이 둔하다니까. 그 왜 민재 선배 있잖아. 혹 붙었어.”
[…혹? 민재 선배님 얼굴에 문제 생겼어?]
서연의 엉뚱한 질문에 은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이.
“새로운 S급 있잖아. 걔랑 페어 결성되었다고 기사 쫙 퍼졌어.”
[새로운 S급이 들어왔구나.]
“엉. 비행계인데 애가 좀….”
[어떤데?]
“…좀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은데….”
은정은 잠시 지환을 떠올렸다. 사고뭉치. 은정이 속으로 붙인 별명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다니는 놈이었다.
그래도 하는 거 보면 그렇게 미운 타입은 아니던데….
[언제 그렇게 되었어?]
“오늘 오전에. 이거 완전 따끈따끈 뉴스야.”
[아…. 그럼 센터 분위기….]
“완전 망했지.”
[은정이 너도 눈치 보이겠다.]
서연은 다정한 목소리로 은정을 걱정했다. 그 목소리에 은정은 짓궂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나? 내가 왜?”
[아무래도 같은 팀이니까…?]
“난 재밌는데? 좀 이따가 우민재 표정 구경하러 갈 거야.”
뭐? 너도 참. 서연은 못 말리겠다며 웃었다.
그 재밌는 구경을 놓칠 순 없지. 은정은 학교에서 지환을 바라보던 민재의 표정을 떠올렸다.
짜증 나 죽겠다고 쓰여 있는 얼굴. …성가신 건가? 어느 쪽이건 그렇게 대놓고 싫어하는 얼굴을 은정은 오랜만에 봤다.
“재밌는 구경 하러 얼른 와.”
[응. 은정아, 나 끊어야겠다. 몸 꼭 잘 챙기고.]
서연은 인사를 건네고 통화를 끝냈다. 꺼진 핸드폰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던 은정은 침대 구석에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던졌다.
“빨래해야 하는데….”
은정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
민재의 등 뒤에서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탁, 하는 소리가 유독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민재는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가이드와 에스퍼를 모두 총괄하는 센터장, 김진성. 에스퍼도 아니고 가이드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에 불과한 그가 히어로 센터의 수장 자리에 앉아 있다. 그것은 그가 엄청난 정치가이자 수완가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분 좋으신가 보네요.”
민재는 빈정거려보았다. 그래 봤자 타격도 없겠지만.
“아, 우리 민재 군 아닌가! 잘 왔네.”
우리는 개뿔. 민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센터장의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았다.
“혹 붙이고 다닐 생각 없어요.”
민재는 본론부터 꺼냈다. 지환의 말에 센터장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분 나쁜 웃음이라고 민재는 생각했다.
“지환 군 말이야, 국내에서 보기 드문 S급 에스퍼일세.”
역시. 이어지는 진성의 본론에 민재는 헛웃음을 삼켰다.
“뭘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자네가 이 센터의 선배 아닌가. 또 에스퍼실장이기도 하고.”
“예.”
“좀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나? S를 단 후배 아닌가.”
진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재는 마주 웃었다.
“제가 왜요? 팀에 비행 에스퍼라면 이미 한 명 있습니다.”
“그렇지, 맞아…. 최근에 비행 에스퍼가 좀… 흔하지 않나.”
진성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가늠하는 듯했다. 그런 표정을 지을 때의 진성의 얼굴은 마치 독사 같았다.
“…그래서요?”
“지환 군이 아주 뛰어난… 케이스도 아니고 말이야. S급인데 이러면 국가에서 조금….”
말꼬리를 흐리며 진성이 민재를 쓱 훑어보았다. 씨발. 민재는 욕지거리를 삼켰다.
쓸모없다, 라는 말을 돌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민재는 진성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SSS급인데 힐러라니, 국가에서 조금….
“곤란하게 여기고 있다네.”
“그래서요.”
확실히 한국에서는 비행 에스퍼 발현이 높은 편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염력이나 일부 신체 강화가 많았다. 물론 종류를 막론하고 S급의 발현은 드문 편이었지만.
뽑기 게임도 아닌데 센터장은 에스퍼들을 수집하고 싶어 했다. 높은 급의 다양한 능력자들을 자신의 구역으로 들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민재는 진성을 노려보았다. 그런 민재를 진성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훈련도 자네가 직접 시키고, 교육도 시키고. 어차피 실장 과업 중 하나이기도 하지 않나.”
“능력 시연까지 시키셨잖아요.”
민재는 다른 공격 카드를 꺼내보았다. 말을 꺼내고 보니 더 열이 받았다.
진성은 그에 곤란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자네도 자네지만 여론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히어로 센터 전체를 욕보인 데다, 실제로 민심이 술렁이질 않았나. 아니, 우리의 역할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데 안심시켜 드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
진성은 풋내기를 달래는 유능한 직장 상사처럼 말했다.
“예, 덕분에 제가 너무 많이 바빠져서요. 신입을 교육시킬 여유가 될지 모르겠네요.”
민재가 최근 가는 현장에는 언제나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덕분에 민재는 계속 무리를 해야 했다. 상대는 ‘우민재’가 가는 현장을 물어뜯으려고 오는 것이니까.
“이제 저 없어도 할 만하신 건가요?”
“…….”
“찔리는 게 없진 않으시죠?”
민재의 말에 진성이 잠시 민재를 바라보았다. 여유가 조금 빠진 미소는 어딘가 비릿했다. 재수 없는 새끼. 뒤졌으면. 민재는 되뇌었다.
“그럼 지환 군의 거취 문제는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지.”
그냥 이렇게?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릴 줄 알고? 민재는 진성의 얼굴을 살피며 섣부르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제 이미 팀 배정이 끝났는데. 지환 군은 갈 데가 없어 큰일이겠네. 그러나 에스퍼실 실장인 자네가 이미 팀 소속이 된 S급 에스퍼를 내쫓는다고 하면 내 말리지 않겠네.”
이 씹새끼가 진짜. 민재는 선심을 베푸는 척 비꼬는 말을 늘어놓는 센터장을 노려보았다.
“쓸모없는 에스퍼의 결말은 보통 좋지가 않지.”
진성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진성의 말에 민재는 자신이 지고 말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저 능구렁이는 자신이 S급 에스퍼를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호구 새끼. 민재는 스스로를 욕했다.
진성은 민재의 표정을 보고는 미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승리의 미소였다.
“나중에는 민재 군도 이해할 거야. 이게 다 그대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그 말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민재는 이를 악물었다. 저 주름진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민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까딱이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더 앉아 있다가는 무엇이든 게워낼 것만 같았다.
“잘 부탁하네, 민재 군.”
나가는 민재의 등에다 대고 진성이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