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지환은 잠시 망연한 얼굴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알겠습니다.”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한 지환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민재는 다시 은정을 데리고 학교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교실 문 너머에서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는 남자를 발견했다.
“문 여세요. 구조 에스퍼팀입니다.”
민재의 말에도 남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슬쩍 보이는 그의 뒤편으로 아이들의 불안해하는 얼굴이 보였다.
교실 안의 남자는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던 걸로 보아 학교 선생들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은정은 옆에서 핸드폰을 꺼내고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제가 그걸 어떻게 믿죠?”
남자는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범인이 누군지 이쪽은 아직 파악이 안 되었나? 민재는 말을 덧붙이려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복장이 히어로 센터 정직원 복장이니까요.”
민재는 소매에 수놓아진 날개 문양을 손으로 가리켰다. 남자는 교실 안쪽을 살짝 살피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히어로래!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얘들아~ 안녕!”
그때 운동장 쪽 창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파란색 점프수트를 입고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웃어 보이는 남자를 보고, 아이들은 제각각 반응을 내보였다.
“호영이 왔니!”
은정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공중에 떠서도 예의 바른 호영은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창 쪽에 발을 붙이고 창틀을 붙잡고 섰다.
호영은 비행계 에스퍼라 바깥을 날아다니며 정찰 및 구조 활동을 돕다가 은정의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저씨 누구예요?”
아이들 중 하나가 물었다. 이십 대 초반인 호영은 그 말에 살짝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하하… 차라리 삼촌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
“문 열게요. 선생님이랑 학생분들 뒤쪽으로 물러서세요.”
상처받은 호영을 신경 쓰지 않고 민재가 말했다.
“의자 치워드릴게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뒤쪽으로 물러서세요.”
선생은 당황한 듯 문 쪽으로 다가서다 뒤로 물러나 아이들을 운동장 방향의 창 쪽으로 붙어 서게 했다.
책상과 의자는 어설프게 문 앞에 얼기설기 놓여 있었다. 민재는 안쪽을 슬쩍 살펴보고는 은정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은정도 고개를 기울여 안쪽을 살피더니 손을 내밀어 문을 열었다.
우지끈. 끼긱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문을 열지 못하게 막아놓은 책상과 의자들이 뒤쪽으로 밀려나고 부러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문 반대편에 옹기종기 모여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자, 친구들. 아래에 매트리스 근방까지 내가 옮겨줄 테니까 나 믿고 두 명씩 내 팔 잡으면 돼요.”
호영이 창문을 열며 말했다.
“복도로 안 가요…?”
“복도는 위험해서 안 됩니다.”
저 아래 보이는 지면이 무서웠는지, 한 아이가 울먹이며 묻자 민재가 교실로 들어서며 대답했다. 한쪽에서는 은정이 책걸상을 머그컵 치우듯 가볍게 들어 교탁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복도엔 범인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수색에 시간이 걸리니 구조를 우선으로 합니다.”
은정이 웃으면서 설명했다. 남자 선생은 긴장이 조금 풀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 다친 아이가 있는데….”
“누구요?”
선생이 팔에 붕대를 두른 아이를 가리켰다. 민재는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아이의 팔을 살피고는 힐을 주입했다.
민재의 손에서 하얀 빛이 일자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호영이 빠르게 움직여 준 덕분에 아이들은 거의 다 교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두려움에 호영의 목을 조르다시피 안긴 아이 때문에 호영이 컥컥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은정은 그런 호영을 보며 히죽거렸다.
민재는 몸을 일으키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은 애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움과 신기함, 그리고 거북스러움, 찝찝함. 그런 것들이 죄다 뒤섞인 눈이었다. 민재는 그런 눈에 익숙했다.
“…괜찮겠죠?”
민재의 치료가 끝난 뒤, 호영에게 업힌 아이를 바라보며 선생이 물었다.
“부작용 있을까 봐 걱정되세요?”
“네? 아니….”
선생은 얼굴을 붉혔다. 민재는 무감한 표정으로 다시 위로 솟아오른 호영에게 턱짓했다.
“선생님도 모셔다드려.”
“네!”
호영은 씩씩하게 웃으며 선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호영의 팔을 붙잡았다.
선생을 안아 든 호영의 머리가 아래로 사라질 때쯤이었다.
탕!
총알이 민재의 귓가를 스쳤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민재는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진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저자다.
지환의 머리통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남자를 본 순간, 민재는 그가 이번 사건의 범인임을 확신했다.
남자는 핏줄 선 눈으로 민재와 은정을 노려보았다. 지환은 남자보다 키가 컸지만 총 때문에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낮춘 채로 거의 질질 끌려오다시피 했다. 민재는 귓가에 이는 작열감을 느끼며 욕설을 짓씹었다.
민재가 지환에게 내린 지시는 간단했다. 애들을 응급 의료팀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고, 센터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범인의 손에 붙잡혀 인질로 나타나다니.
좆된 거 같은데. 은정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민재는 지환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이 자신이 손이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입 다물어.”
지환은 무서운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민재를 불렀다. 그 소리가 범인의 주목을 끌 수도 있기 때문에 민재는 빠르게 지환을 저지했다.
지환은 민재의 말에 서러운지 입을 앙다물고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그러고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이들은 무사해요.
민재는 지환을 째려보다가 그 말에 눈을 살짝 깜박였다. 알겠다는 표시였다. 민재의 사인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지환은 민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데려와!”
총구가 민재 쪽으로 향했다. 민재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려 귀를 만졌다. 지환의 눈이 민재의 손을 따라 올라갔다.
총알이 스쳤던 귀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쓰라렸다. 좆같네. 민재는 힐을 주입했다. 남자의 충혈된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총구가 까딱였다.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역시 이것에 반응할 줄 알았다. 민재가 생각함과 동시에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
탕!
한 번 더 총성이 울렸다.
악! 지환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반면 민재는 눈을 감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총알은 민재를 빗겨 나갔다. 잔뜩 흥분한 범인은 손을 떨고 있었다. 조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민재는 미동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민재에 남자가 동요하는 게 보였다. 지환은 실눈을 뜨고 민재가 무사한지 확인하고는 숨을 내쉬었다.
“괴물 새끼들! 데려와! 애들을 데려오란 말이야!”
“아이들은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현재 당신이 잡을 인질은 없어요.”
인질범은 자신의 반에 있던 아이들이 사라진 것에 흥분했다. 그는 마치 에스퍼들이 애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민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인지시키며 범인을 살폈다.
원래라면 범인을 자극할 말은 많이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총구는 민재 쪽으로 향해 있으니 자극해 보는 것도 방법이었다. 타깃이 지환인 쪽보다 민재 본인일 때가 훨씬 편리했다.
“아니야… 아니야…! 데려와! 검사를 해야 한다니까?”
민재는 남자의 전신을 찬찬히 살폈다. 중년 남성. 딱 봐도 이런 범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검사? 무슨 검사요.”
민재가 물었다.
“괴물… 괴물이 되었을 수도 있어. 검사를 해야만 해….”
남자는 민재와 대화를 하는 듯하다가 계속 혼잣말을 되뇌었다. 괴물과 검사. 낯이 익은 단어였다.
“멀쩡했어. 멀쩡했다고… 그런데….”
은정은 남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범인의 뒤쪽에서 거리를 좁히며 다가서고 있었다.
민재는 긴장을 해서인지 목이 졸려서인지 점점 퍼렇게 질려가는 지환의 얼굴을 보고는 은정에게 눈짓했다. 우선 대기하라는 신호였다.
까딱하다 S급이나 남자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었다. 민재는 그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은정은 그런 민재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을 홉떴다가 그 자리에서 짝다리를 짚고 섰다.
“아이들은 모두 괴물이 되지 않았어요. 멀쩡합니다.”
“너 같은 괴물들은 몰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는 총으로 민재를 겨누는 것도 잠시 잊고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내리쳤다. 총을 다루는 솜씨가 너무 서툴렀다.
저러다 일 나지. 민재가 은정에게 총을 빼앗으라는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창밖에서 호영이 솟아올랐다.
창으로 들어오려던 호영은 상황을 맞닥뜨리고는 눈 크기를 키웠다.
민재와 눈이 마주친 호영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는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사각형을 만들어 자신의 눈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손을 허공에 들어 올려 반짝이는 모양을 표시할 때 하는 손동작을 해 보였다. 앞과 뒤의 동작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민재는 깨달았다.
기자들이 또 진을 쳤구나. x발.
기자들이 단순히 진만 친 게 아니라 상황이 세세하게 중계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SSS급과 S급이 같이 투입된 현장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총성이 몇 번 울렸지? 돌아버리겠네. 민재는 심란해졌다.
작은 금속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총구가 다시 지환의 머리통 쪽으로 들이밀어져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와. 안 그러면 이 새끼를 쏴서 죽이겠어.”
지환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외면했다.
“쏴.”
“…뭐?”
남자가 되물었다. 민재는 망설이지 않았다.
“쏘라고.”
지환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올린 지환은 민재를 바라보았다.
그 짧은 찰나 민재는 지환이 무슨 눈을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원망이나 분노가 가득 찬 눈. 겁에 질렸거나 실의에 빠진 눈. 어쩌면 자신을 향한 살기가 담긴 눈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환은 결의에 가득 찬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민재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저 괜찮아요. 지환의 눈이 감겼다. 지환의 얼굴은 성자의 그것 같았다.
와, 진짜 시건방진 새끼네. 민재는 몸을 움직여 지환을 겨누고 있는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쏜다? 쏜다고!!!”
남자는 당황한 듯 윽박지르며 총으로 민재를 겨눴다가 다시 지환 쪽으로 가져갔다. 민재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총구를 틀어쥐었다.
탕!
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선배!”
은정이 놀라 민재를 불렀다.
총구를 가로막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민재의 손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뼈가 튀어나와 보였고, 손 안의 혈관이 터져 피가 철철 흘렀다.
소란한 소리에 눈을 뜬 지환은 혼자 호러를 찍고 있는 민재의 손을 발견했다.
어… 어… 지환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은정은 빠르게 남자의 팔을 뒤로 꺾었다. 잠시 멍해졌던 남자는 몸을 뒤틀며 반항했다.
은정이 주먹을 쥐는 것을 본 민재는 멀쩡한 쪽 손을 뻗었다.
“망가뜨리면 안 돼. 밖에 기자 깔렸어.”
썅. 욕설을 내뱉은 은정은 주먹 쥔 손을 펴 손날로 남자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남자의 손을 뒤로 해 포박한 은정은 민재를 바라보았다.
“선배, 괜찮아?”
“선배님, 괜찮으세요?”
은정과 지환이 동시에 물었다.
지환은 피가 흐르는 민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더니 얼굴을 우그러뜨렸다. 어, 어, 어떡해요. 아프시죠. 누가 보면 지환이 총상을 입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민재는 반대편 손으로 다친 손에 힐을 주입했다. 뼈가 맞춰지고 손의 조직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민재는 신음을 삼켰다.
“발사된 총알은 범인이 잘못 발사시킨 것이고 부상자는 없는 거야.”
민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은정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고개를 가볍게 주억거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온 호영도 마찬가지였다.
“임무에 투입되었던 전원 무사하고, 범인과 대화 끝에 체포 성공한 거야. 어떤 머저리가 인질로 잡혔던 일도 없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알겠어?”
민재는 지환을 보고 말했다.
머저리라는 단어에 강세를 주었으나 지환은 별다른 반응 없이 상처가 아문 민재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처는 사라졌으나 그의 손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지환은 민재의 손을 놓지 않고 소매로 살살 문대어 피를 닦아냈다.
“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지환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