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탕-
총성이 울렸다.
2학년 1반의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로 어설프게 진을 치고 교실 구석에 모여앉아 있었다. 이따금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서는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떡해….”
“조용히 해….”
반장과 부반장은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거나 교복을 붙들고 자신들의 무서움이 소리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때 교실의 미닫이문이 열렸다. 아이들은 숨을 멈췄다.
“선생님…!”
한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를 불렀다. 아이들은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괜찮니?”
남자가 아이들을 불렀다. 남자는 품에 붕대와 약통 몇 개를 안고 있었다.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떨어지려는 붕대를 잽싸게 잡은 남자는 엎드려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수민이가요….”
아이들은 주춤주춤 남자에게 길을 터줬다. 남자는 아이들이 가리킨 수민이라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괜찮니? 의료진이 곧 올 거야.”
남자는 피로 물든 여자아이의 교복을 살폈다. 총알이 스친 팔에서 많은 양의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여자아이의 팔을 쳐다보다가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적당히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붕대로 상처를 압박했다. 보건실에서 급하게 훔쳐온 것들이었다.
“선생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 남자를 불렀다. 응? 남자도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떡해요? 아이들이 속삭이며 수군거렸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뭐라 말하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는 각자 손으로 자신들의 입을 막았다. 소리 없는 비명이 아이들 사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자는 숙이고 있던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책상을 끌어다가 문을 막았다. 의자도 올려두었다. 빠르지만 소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남자가 앞문을 막을 동안 같이 움직여 뒷문에도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두었다.
교실 안에는 아이들이 작게 내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겨우 책걸상으로 문을 막아냈을 때였다.
쿵.
문이 흔들렸다.
***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학교는 조용했다. 기척도 잘 느껴지질 않았다.
범인은 어디에 있을까. 민재는 학교의 복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점점이 이어진 핏자국이 보였다. 핏자국은 구석에 있는 반대편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작아?”
민재는 옆에서 투덜거리며 걸어오는 은정을 쳐다보고는 입을 오므렸다.
은정은 A급 에스퍼로 체력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에스퍼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스피드와 힘을 자랑했다. 그 덕에 일반 사람보다는 키와 덩치가 컸다.
다부진 근육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학교 천장은 은정의 머리와 닿을 듯 말 듯 한 높이였다. 덕분에 은정은 조명을 피해서 걸어야 했다.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보고 민재는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지금 자신이 비웃는 걸 들키면 피곤해질 터였다. 은정은 제대로 삐지면 꽤 무서운 편이었다.
엉거주춤하게 걷다가 조명에 부딪힐 뻔하고는 몸을 움츠린 은정은 욕을 마구 내뱉었다.
“씨발, 무슨 학교를 이렇게 지어. 애들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네가 큰 거야.”
무덤덤하게 타박을 하는 민재를 보며 은정은 입을 쭉 내밀었다.
“선배. 차가웡.”
“하나도 안 추워.”
엑, 아재 같아. 은정은 반응이 재미없는 민재에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그러는 사이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그때 민재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뭔가 떨어뜨리는 소리인지 아주 작은 파열음도 일었다.
은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몸을 숨기는 데에 상당히 어설픈 데다가 목소리가 어린 축에 속하는 것을 보니 인질 잡아놓고 설친다는 그 담임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아직 탈출하지 못한 아이들 중 하나인가? 요즘 애들은 대피 훈련을 제대로 안 받나? 하긴 그런 건 실제 상황에선 언제나 소용이 없기 마련이다.
“뭘까.”
민재는 자신이 걸어온 복도 쪽을 노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은정은 민재보다 앞서 교실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은정은 바로 옆에 있는 교실 안을 슬쩍 살피더니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또각. 자물쇠가 가볍게 끊기고 문이 열렸다. 민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야.”
“응? 왜?”
은정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재를 돌아보았다. 민재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쉽게 기물 파손하지 말라고 했지.”
은정은 민재의 잔소리를 들은 척 만 척 교실 안으로 들어가 청소도구함을 열었다. 빗자루와 걸레들이 은정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뭐야, 없넹?”
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다른 교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은정은 그런 민재의 뒤를 따랐다.
다섯 번째 교실을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민재는 교탁 아래에서 빼꼼 튀어나와 있는 머리통의 일부를 발견했다.
하. 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저 학생은 죽었을 것이다. 누가 저렇게 나 잡아달라고 숨어 있단 말인가. 애들 숨바꼭질도 아니고.
민재는 교실 문을 손으로 노크했다. 그러자 머리통이 티 나게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구조 에스퍼입니다. 문을 열어주실 수 있나요?”
머리통이 슬쩍 바깥을 살피는 것 같더니 다시 안쪽을 향해 주억거리는 것 같았다.
공포에 질려 미쳤나? 고민하는 민재의 옆에 은정이 바짝 붙어 섰다.
“애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세 명이라고?”
“엉, 교탁 저 건너편에도 애들 두 명 쭈그려 있어.”
민재보다 키가 큰 은정은 내부를 완전히 살필 수 있었다. 그럼 고개를 주억거린 게 본인들끼리 무언가 상의한 건가?
민재는 문에서 살짝 물러서며 은정에게 손짓했다.
“문 열도록 하겠습니다.”
민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정이 손을 뻗어 문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예의 머리통이 몸을 일으켜 완전히 민재 쪽으로 돌아섰다.
민재의 눈에 파란색 점프수트가 보였다. 그 파란색 점프수트를 입은 남자는 왜인지 만세 자세를 한 채로 자신을 소개했다.
“히어로 센터 소속 에스퍼 박지환입… 선배님?”
“박지환?”
은정이 어이를 잃어버린 목소리로 지환의 이름을 불렀다. 아, 그 S급. 지환을 알아본 민재는 지환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지환은 은정과 민재를 보더니 주먹으로 자신의 눈을 거칠게 벅벅 문댔다. 지환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훌쩍. 지환은 코를 먹었다.
설마 질질 짠 거야? 민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아구구, 애기들 완전 놀랐겠다. 그치? 여기 이 아저씨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은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은정은 유독 아이들-특히 여자아이-에게 약했다.
무슨 유치원생 달래냐. 민재는 핀잔을 삼키고는 다친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의 허리는 흰 천으로 둘둘 감싸져 있었고, 옆구리 쪽이 피에 조금 젖어 있는 걸로 보아 그쪽이 환부 같았다. 정신을 잃은 아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총상이야?”
“네?”
민재의 질문에 지환은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것도 제대로 파악 안 하고 있었던 건가. 민재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제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부상을 입은 친구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군. 민재는 다친 아이에게 감긴 천의 매듭을 풀어내고는 상처를 확인했다. 총알이 스친 상처 같았다. 피를 좀 많이 흘린 것 같긴 했으나 내상을 입을 정도로 깊게 다친 건 아닌 듯했다.
민재는 아이의 옆구리 쪽으로 손을 갖다 대었다. 옅은 빛이 일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상처가 봉합되는 것이 보였다. 옆의 아이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은정은 옆에 앉아 있는 아이를 흘끔 바라보더니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소독솜을 꺼내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는 손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너는 다친 데 없어?”
“네….”
“그래그래, 다행이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을 확인한 민재는 아이가 편안한 자세로 누울 수 있게 고개를 고정시켜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환에게 눈짓했다.
민재가 교실 뒤편 구석으로 가자 지환이 쭈뼛쭈뼛 따라왔다. 은정은 그런 민재를 보더니 아이가 그쪽에 신경 쓰지 않도록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민재는 본론부터 꺼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민재의 질문에 지환의 눈이 커다래졌다.
“저는 여기로 오면 된다고….”
“누구 맘대로?”
지금 현장은 인질이 잡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련한 에스퍼들이 필요했다. 많은 인원이 있어 봤자 방해가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경험이 많고 능률이 좋은 제1팀만 파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조무래기가 어떻게 사건 현장 위치를 알고 멋대로 난입했단 말인가. 민재의 신경이 곤두섰다.
“저, 저는 진짜 파견 명령을 받고 온 거예요! 일단 여기로 오면 현장 팀과 합류할 수 있다고 전달받았고요.”
지환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입꼬리가 잔뜩 처져 있었다.
하. 민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민재는 지환의 존재가 너무 거슬렸다.
“상황 보고해.”
“2층 복도에서 저 친구들 마주쳐서 우선 제 옷으로 지혈했고요. 그리고… 누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서 우선 급히 숨은 거였거든요. 너무 무서….”
무섭다는 말은 구조 작업 시 금기어였다. 민재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걸 느낀 건지 지환은 말을 하다가 급히 멈추고 민재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 선배님과 만나서 너무 다행이에요.”
상황 보고인지 심정 토로인지 모르게 보고를 마친 지환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다시 빨개진 지환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싫은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부릅뜨고 있었다. 꽤 괴상한 얼굴이었다.
멘탈 나갔네. 민재는 생각했다.
이런 현장에는 보통 신입을 투입하지 않는다. 그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은 또래였던 미성년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곳. 거기다 범인이 총기를 들고 있으니 어떤 돌발 상황과 맞닥뜨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피를 보았으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 동정심을 발휘할 만한 여유가 민재에게는 없었다.
“가이딩 얼마 남았는데?”
“저요?”
“그럼 내 걸 너한테 물어?”
민재의 짜증 섞인 말에 지환은 어물어물 대답했다.
“아직 초록이에요.”
“됐네, 그럼. 운동장 쪽에 일반 응급팀 있거든?”
“네.”
“거기 쟤네 데려다줘. 날아서. 참고로 창문 보이는 곳 말고 창문이 없는 벽 타고 내려가라. 인질범한테 나 애 안고 간다고 광고하지 말고.”
짧게 지시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아, 민재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여 줬다.
그러자 지환의 눈이 다시 빛났다. 뭔가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지환은 민재 쪽으로 얼굴을 조금 들이밀었고 민재는 인상을 쓰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선배님은 그럼 어디로 가시나요?”
“……?”
내가 현장에 있지 어디로 가. 민재는 어이가 가출해 버렸다. 그런 민재의 얼굴을 본 지환이 말을 덧붙였다.
“몇 층으로 가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 데려다주고 빠르게 선배님들 쪽으로 복귀할게요.”
지환의 얼굴은 비장했다.
아. 그제야 지환의 질문을 이해한 민재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나 했네. 복귀는 센터로 해야지.”
“네?”
이번엔 지환의 얼굴에서 얼이 빠져나갔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방해가 될 테니 계속 같이 다닐 순 없었다. 뭘 알고 현장에 난입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멘탈도 흔들렸을 테니 빠르게 복귀하도록 하는 게 민재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그러나 민재의 말이 지환이 기대하던 바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지환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