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지환은 첫 임무에서 사고를 친 후 민재를 다시 만나 사과를 하고 싶었다.
지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로비 쪽에서 서성이며 우연히 민재를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지환이 밥을 먹고는 로비 쪽으로 향하던 때였다.
온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에스퍼실 로비에는 붉은 조명이 번쩍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에스퍼들은 모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연락망을 확인했다. 붉은 경보의 의미는 상시 대기였다. 언제 누가 호출될지 알 수 없으니 대기하라는 의미였다.
[…인근 중학교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에 인근 경찰들이 대거 출동했습니다. 총기를 든 범인은 경찰에게 학교로 난입하면 인질로 잡은 아이들을 모두 죽이겠다 협박했습니다. 경찰 측은 아이들의 생명 보호를 우선으로 구출 계획과 협상 계획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로비의 스크린에서 실시간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환은 복도에서 서서 로비 쪽을 힐끔거렸다. 핸드폰과 복도 쪽을 계속 번갈아 보던 지환은 옆에 서 있던 남자를 툭툭 쳤다.
“형, 우리도 나가게 될까?”
남자는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는 끈으로 얼굴이 작게 보이게 조였다. 모자 밖으로 은색으로 탈색된 앞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우린 안 나갈걸.”
“왜?”
지환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대답한 남자는 지환과 같은 시기에 히어로 센터에 들어온 신태현이었다.
태현은 지환보다 한 살이 많았다. 보통 에스퍼들은 10대 초중반에는 능력이 발현하는 반면, 지환은 19살에 뒤늦게 발현된 케이스였다. 그래서 센터에 들어와 또래인 태현을 만나 무척 반가워했다.
태현도 그런 지환을 싫어하지 않았고 둘은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친구 같은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
“우린 아직 수습이니까?”
“아.”
태현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센터에 들어온 지환과 달리 태현은 센터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보다 빨리 센터에 소속되었고, 자신도 발현되어 들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지환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바로 태현에게 물었다. 높은 확률로 태현의 말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속보입니다. 학교를 점령하고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범인은 해당 중학교의 2학년 1반 담임선생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학교에서 도망쳐 나와 도움을 청한 교직원 몇 명과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성이 세 번 울렸고, 복도에 핏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상자 혹은 사상자가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환의 입꼬리가 축 처졌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한데 출동하지 못하는 데 시무룩해하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근데 또 모르지, 너는…. 태현이 중얼거렸다.
지환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누군가 지환을 불렀다.
“박지환 에스퍼! 박지환 에스퍼?”
“네! 저 여기 있어요!!!”
에스퍼들이 웅성거리는 복도를 살피던 행정실 직원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지환의 앞으로 다가왔다.
태현은 그런 지환이 부끄러운지 후드를 더 조이며 벽 쪽을 마주 보고 섰다. 가까이 다가온 직원은 지환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말했다.
“임무 투입 준비하세요.”
“네? 헉, 진짜요?”
지환은 신남을 숨기지 못했다. 형, 우리 가나 봐. 지환이 입 모양으로 태현에게 말했다.
그러나 태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무슨 뜻이지? 지환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박지환 에스퍼 단독 투입입니다.”
“네, 얼른 준비… 네?”
“역시.”
직원의 말에 지환은 놀랐고, 태현은 작은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직원은 힐끔 태현을 노려보았으나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저만… 요?”
“네. 위치 전송할 테니까 빨리 복장 준비해서 출발해요.”
직원의 표정은 단호했다. 지환은 당황했다. 임무에 투입되길 바랐으나 혼자서만 가길 원했던 건 아니었다. 지환은 눈을 굴렸다. 뭐라도 거들어달라는 눈짓을 했으나 태현은 지환을 외면했다.
“어떡해요…?”
지환은 타깃을 바꿔 직원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직원은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기 가서 알아서 현장 팀에 합류해요.”
직원은 간단한 지시 사항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알아서요? 지환이 물었지만 대답해 주지 않았다.
태현은 지환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S급도 쉽지 않네.”
“형… 형, 나 어떡해? 저번에도 혼자 나갔다가 나….”
말도 아니었단 말이야…. 지환은 다시 떠오르려고 하는 그날의 기억을 다시 집어넣었다. 말끝을 흐리는 지환의 손에 태현은 가이딩 알약을 몇 개 쥐여주었다.
“저번에 좀 넉넉하게 타온 거야. 혹시 모르니까 잘 사리면서 다녀.”
태현은 지환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주었다. 혼자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어깨를 늘어뜨린 지환은 옷을 갈아입으러 공동 락커룸으로 향했다.
[히어로 센터는 아이들의 빠른 구조를 위해 SSS급 히어로 우민재가 이끄는 제1팀을 인질극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에스퍼가 투입된 현장인 만큼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 선생은 괴물을 찾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괴물을 모조리 말살하는 것이었다. 싸늘한 아들의 시체를 안고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괴물을 제거하면 아들의 영혼은 이 세상을 구원해 줄 신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김 선생은 아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교주는 이 학교가 ‘괴물들의 씨앗’의 터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때 자신의 직장이자 아이들의 꿈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괴현상을 만들어내고 괴물들을 낳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그는 아들의 굳어가던 몸을 떠올렸다. 아들은 자신의 손을 꼭 붙들었었다. 무섭다고 했다. 작은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감염원. 교주는 에스퍼가 좀비와 같이 감염되어 변이되어 버린 존재라고 했다. 그 근원인 ‘씨앗’은 아이들을 숙주로 삼는다.
그리고 숨어다니면서 아이들을 변이시키고 종국에는 괴물로 변하게 만든다. 씨앗이 숙주를 찾아 힘을 키운 다음 아이들의 모습을 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히어로라 불리는 저것들은 죄다 괴물이다.
“그건 축복이 아니에요. 저주 같은 전염입니다.”
세상은 이능력을 가진 괴물들을 떠받들었다. 같은 인류로 인정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는 존재들이라 칭송했다.
‘히어로’라니. 영웅이라니. 내 아들이 죽을 때 그 히어로는 어디 있었지? 김 선생은 분노를 떨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자신을 빼앗기고 괴물의 몸체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교주의 말이 김 선생의 가슴에 울렸다.
교주는 자신이 비밀리에 손에 넣었다는 연구 자료도 보여주었다. 인류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비밀리에 부쳤다는 것이다. 그것이 김 선생이 교주의 말을 완전히 믿게 된 계기였다.
눈앞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죽어버린 아들의 사인을 정확히 알고 싶었던 그에게는 교주의 말이 모두 진실이었다.
폭주라니, 인간의 몸이 어떻게 갑자기 터져 버린단 말인가. 폭발의 여파로 일주일간 중환자실에 있다 눈을 뜬 김 선생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뉴스에서 에스퍼니 무어니 그렇게 떠들어댈 때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왜 자신의 아들이어야 했지?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정부와 히어로 센터라는 곳은 진실을 함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괴물에게 몸을 빼앗기고 있단 말이다!
“선생님…?”
한 아이가 김 선생을 불렀다. 김 선생은 몸을 돌려 자신을 부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보고는 눈의 크기를 키웠다. 그러고는 덜덜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몸이 떨리는 건 폭주의 전조다. 이 아이도 결국 감염되어 버렸다. 괴물이 완전체의 모습을 갖추기 전에 죽여야 한다.
김 선생은 총을 장전했다.
***
“악!”
불안정한 착지를 한 지환은 학교 뒷문과 거의 입을 맞추다시피 해야 했다. 지환의 얼굴은 먼지 얼룩이 묻어 있는 유리문과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멈추었던 지환은 몸을 뒤로 젖혔다.
허리를 삔 건지 은근하게 아파왔다. 도약은 쉬운데 착지가 늘 어려웠다. 지환은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허리를 양옆으로 스트레칭한 다음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학교 안은 조용했다. 지환은 자신이 걷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당황해 걸음을 멈추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1층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환은 까치발을 들고는 2층으로 향했다.
그에게 출동 지시를 한 직원은 이곳에서 합류해야 하는 팀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환은 어디로 가야 팀과 합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환은 고민하는 사이 복도 끝에 다다랐다. 흡, 꺾인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누구야!”
당황한 지환이 주먹을 쥐고 견제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복도가 지환의 목소리로 울렸다. 그러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환은 잠시 고민했다. 보이지 않는 쪽에 있는 사람이 적일까? 아니면 시민? 그러다가 시민일 경우 자신이 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저, 저는 구조 에스퍼인데요! 혹시 시민이신가요?”
지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에도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좀 믿음이 안 가는 목소린가? 조금 머쓱해진 지환은 큼큼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저 파란 제복 입었어요! 저 이제 천천히 복도 돌아갈게요.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상대가 겁을 먹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겁에 질릴 법한 소리를 내뱉은 지환은 양손을 허공에 들어 올린 항복 자세로 천천히 복도 끝에서 몸을 틀었다. 자신의 소매를 상대가 먼저 확인할 수 있도록 팔을 내미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환은 피를 흘리는 아이와 그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또 한 명의 아이를 발견했다.
“어어… 괜찮아요?”
너무 놀란 지환은 손을 내리고는 아이들 쪽으로 급하게 다가갔다. 소매에 흰색 날개 문양이 수놓아진 파란색 점프수트는 히어로 센터에 소속된 인명구조팀의 복장이었다.
친구를 안고 있던 아이는 파란 점프수트를 입은 지환을 보고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헉헉거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어어어… 어떡하지? 울지 마요….”
지환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아이를 달래었다.
“친구 옆구리가… 피가 안 멈춰요….”
친구의 옆구리를 막고 있던 아이의 손은 피에 젖어 있었다. 흐윽… 아이는 피를 보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지환은 다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현장에서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지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들고 옮겨? 그렇지만 어디로? 지환은 아이와 함께 울고 싶어졌다.
그 순간, 지환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치료해 주었던 민재를 떠올렸다.
빌딩이 무너져 내린 현장에서도 침착하게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나가던 단단한 사람. 지환은 점프수트의 지퍼를 내리고 안에 입고 있던 반팔 티를 벗었다. 그리고 천을 길게 찢었다.
“이거, 내가 30분 전에 갈아입은 거라 깨끗해요…!”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에게 다소 이상한 설명을 한 지환은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의 상처 쪽을 옷으로 동여맸다.
이게 맞나? 적당한 세기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환은 최선을 다해 너무 세지도 않고, 너무 헐겁지도 않게 매듭을 지었다.
그때 위층에서 작은 소음이 일었다. 천장을 바라보던 지환은 다친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복도 구석 계단에 아이들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혹시 들어가 숨을 만한 교실이 있을까요?”
친구를 안아 올리는 지환을 지켜보던 아이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살피며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환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아이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