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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5)화 (6/181)

005

“바이탈 체크해!”

“체온이 너무 낮습니다!!”

“실장님 언제 오셔?”

가이드 센터 로비는 비상사태였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등바등 뛰어다니는 가이드들이 로비를 더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체온이 낮아? 일단 뭐 핫팩이라도 붙여? 되겠냐, 이 멍청이들아! 가이드들은 되지도 않는 처방들을 내리며 쑥덕거렸다.

10분 전,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S급 에스퍼가 SSS급 우민재를 안아 들고는 센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살려주세요!”

그렇게 외친 S급 에스퍼는 그 유명한 우민재를 떨구고 자신도 꼬꾸라졌다. 그들의 위로는 사람들 앞에서 하얀 빛을 내보이며 사람을 살려내는 민재의 영상이 커다란 스크린 가득 떠 있었다.

가이드들은 위와 아래를 번갈아 보았다. 1초간의 정적 후 가이드 센터 로비에 비상이 걸렸다.

“야, 잘 좀 들어봐!”

“아니, 잠시만. 왜 이렇게 무거워?”

보통은 이렇게 응급 상황인 상태로 가이딩실에 오는 에스퍼들이 잘 없었기 때문에 가이드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졌다.

가이드 두 명이 쓰러진 지환에게 다가가 일으키려다 실패해 두 명이 추가로 붙었다. 그 과정에서 지환의 머리가 쿵 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잠시 얼음이 된 상태로 서로를 쳐다보던 가이드들은 아무런 말 없이 다시 지환을 들어 올렸다.

두 에스퍼는 침대에 눕혀져 각각 특실로 실려 갔다. 침대에 각각 5명씩 붙어서 끌고 갔는데 거의 날아가는 총알 수준의 속도였다.

S급 에스퍼의 병실에는 A급 가이드 6명이 뛰어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러나 SSS급인 우민재는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폭주 전조 증상을 보이고 있어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방 뛰기만 했다.

“야, 좀 불안한데… 나가서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

“실장님 호출 갔어?”

“네, 아까 갔습니다!”

응급 특실은 작은 방공호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에스퍼가 폭주해 폭발을 일으켰을 때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문을 닫으면 외부에는 영향이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우민재의 특실 앞에서 자리를 지키던 가이드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냥 가이딩해 드리면….”

신입 가이드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실내가 조용해졌다.

몰린 시선들을 받으면서 눈알을 도르르 굴린 신입 가이드는 어깨를 조용히 접었다.

“너 신입이지?”

움츠러든 신입을 어깨로 툭 친 한 가이드가 말했다. 신입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죄송합니다….”

“여기서 SSS급 가이딩할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밖에 없어. 잘 알아둬.”

“그… 분이 누구신데요?”

“여태 뭘 들었어? 실장님.”

선배 가이드는 별소릴 다 듣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입 가이드를 쳐다보았다.

아… 근데 왜 그런 건데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신입은 조용히 입술을 말아 넣었다. 가뜩이나 콩알만 한 간이 더 쪼그라든 기분이었다. 신입은 거북이처럼 목도 접었다.

그때, 가이드 센터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시 시끄러워지려던 가이드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입을 말아 넣은 신입은 이번에도 눈치 없이 누가 온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다행히 눈치를 되찾았다.

선배 가이드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사람이 온 것이었다.

신입은 선배 가이드들을 흘끔거리고는 열린 가이딩실 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민재, 어딨어?”

가이드 센터의 최고 권위자. SS급 가이드 최우석이었다.

***

삐- 삐-

기계음이 들려왔다. 병실에서 들릴 법한 소리였다. 누군가 지환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지환은 온몸이 푹신한 마시멜로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님!”

“박지환 에스퍼님!”

누군가 지환을 불렀다. 아직 머릿속이 솜사탕으로 찬 것처럼 보드라운 기분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환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누군가 지환의 눈꺼풀을 잡아 올렸다.

“악!”

갑자기 들어온 빛에 놀란 지환이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왜 이러세요….”

“의식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대답을 안 하셔서 코마 상태인 줄 알고 식겁했단 말이에요. 저 좀 봐요. 머리 아프거나 그러지 않죠?”

지환이 천천히 이불을 잡아 내리자 눈앞으로 불쑥 손이 들이밀어졌다.

“이거 몇 개예요?”

지환의 눈앞에서 손가락 3개가 팔랑거렸다. 지환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세 개요….”

“네, 시력 정상~”

빙글거리는 목소리의 가이드가 차트에 메모를 했다. 그게 안 보이면 정상의 문제가 아니지 않아요…? 조금 울컥한 지환이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환 에스퍼님.”

“네.”

“진짜 자주 오시네요.”

“…네.”

가이드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지환은 흐린 눈으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흠, 흠. 아 눈이 조금 뻑뻑-”

“거의 매주 오셨잖아요? 거기다 오늘은 폭주 직전이었고요.”

“…네?? 폭주요? 제가요??”

지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이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게 정신을 잃으셔 놓고 본인이 그냥 지친 건 줄 알았어요?”

“어… 네….”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나요?”

가이드가 물었다. 지환은 뻑뻑한 눈을 비비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지환은 기자회견을 하는 히어로 우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한 순간, 지환의 몸이 먼저 나갔다.

지환은 곤란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좀처럼 할 줄 몰랐다. 그랬는데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지 민재 선배님이 뭐라고 화를 냈고….

그대로 픽 쓰러지는 바람에 지환은 기겁하면서 민재의 몸을 안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날아다녔던 기억만 나는데, 어떻게 센터에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제가 가이딩실 문을 열었고….”

“네에.”

“그리고…?”

애꿎은 허공만 노려보는 지환을 보고는 가이드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더 이상 지환 님만의 몸이 아닙니다. 국가 재산이니 유의 좀 해주세요.”

“제가요?”

가이드는 주머니에 펜을 집어넣으며 당부했다. 지환은 그 말에 솟구치려는 입가를 눌렀다. 국가의 재산이래…! 내가…! 엄마 나 좀 출세한 것 같아!

가이드는 입을 씰룩거리는 지환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엄청 유명해졌던데요?”

“누가요?”

“지환 씨가요.”

“제가 왜요?”

설마 첫 임무부터 SSS급 에스퍼한테 이상한 실수 왕창 한 게 기사로 나갔나요. 지환은 질문을 하는 대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S급이니까요. 자세한 건 기사 한번 찾아보세요. 전 괜히 말 얹고 싶진 않아서. 그럼.”

무슨 말을 얹고 싶지 않으신 거죠…? 지환은 조금 불안해졌다. 그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급히 나가려는 가이드의 손목을 붙들었다. 가이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환을 돌아보았다.

“저… 그… 저랑 같이 오신….”

지환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민재 실장님이요?”

“네!”

“…가보시려고 물어본 거라면 안 그러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리고 어차피 만나지도 못하실 거고요. 오늘 밤까지는 입원한 셈 치고 여기 계속 누워 계셔야 해요. 바이탈 체크해야 해서.”

지환에게 붙들린 손목을 슬쩍 빼낸 가이드는 빠른 걸음으로 특실을 나섰다. 지환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이다가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화 많이 나셨겠지. 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

“민재야…! 우민재!”

누군가 민재를 불렀다. 숨이 막혔다.

“헉!”

민재는 눈을 떴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코앞에 날카로운 눈매와 수축된 동공이 보였다.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신 민재는 호흡을 멈췄다. 상황 파악이 잘 되질 않았다.

주사, 주사가… 민재는 방금 전까지 꾸던 악몽에 대해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민재는 몸을 더 웅크려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쉿- 자신을 달래듯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서 뜨끈한 손이 자신을 뭉근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따뜻한 체온에 약간의 안정감이 들었다. 손은 목 뒤를 눌러 지압하고 그의 몸을 적당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숨 쉬어.”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 우석이었다. 민재는 천천히 숨을 내뱉고, 다시 들이쉬기 시작했다. 상대방도 조금 안심이 되는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꽤 긴 시간 민망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우석은 계속해서 목, 팔, 이마, 손 등을 가볍게 지압하며 가이딩을 주입했다.

아… 민재는 나지막하게 숨을 뱉으며 물었다.

“나, 어떻게 된 거냐.”

“그걸 지금 나한테 물어봐?”

우석은 진심으로 어이없는 듯했다. 며칠 전 대뜸 우석에게 ‘나 점심 뭐 먹었냐?’ 하고 물어봤을 때보다 더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되었더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큼큼, 민재는 목을 살짝 가다듬었다. 좆같은 기자회견장에서 갑자기 번쩍 들려서 하늘을 날고, 그 꼬맹이 새끼랑 실랑이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너 이번엔 위험했어. 어쩌려고 그런 거야? 아니다, 진성이 그 새끼가 개새끼지.”

타박 반 걱정 반을 담아 우석이 말했다.

민재는 어릴 적 센터에 의해 모종의 실험을 받았다. 실험은 꽤 오랜 기간 강행했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민재는 그것의 부작용으로 가이딩 수치가 제멋대로 오락가락했다. 두통과 종종 환각을 보는 것은 덤이었다.

이런 민재의 상태를 아는 건 센터장과, 센터에서 같이 자라다시피 한 우석과 은정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석은 민재의 몸에 관한 부분에서는 늘 예민하게 반응했다.

민재는 가볍게 웃으며 우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 있잖아. 고마워. 얼마나 지났어?”

“대략 열두 시간? 해 떴어.”

우석은 창 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민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였다.

“너 안고 온 S급 말이야.”

“누구? 아.”

기억을 더듬던 민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새끼가 왜? 민재의 질문에 우석은 눈썹을 들썩였다.

“상당히 유명세를 타던데.”

“줘봐.”

민재는 우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네 꼬봉이냐? 툴툴거리면서도 우석은 착실하게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해 민재에게 내밀었다.

-뉴 히어로, 낭만의 비행.

-히어로 우민재를 안고 날아오른 그 남자, 대체 누구?

-한국에 새로운 S급 에스퍼 출현!

-SSS급 정상 히어로 우민재, 신의 능력 선보여.

새롭게 등장한 가십거리에 신이 난 듯한 제목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뉴 히어로에 S급. 간만의 등장이니 한동안은 두고두고 주목받을 만했다.

근데 왜 지금이냐 이거지. 민재는 센터장이 박지환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민재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 S급과 이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기사들을 살피던 민재는 자신의 능력 시연에 대해 쓴 기사를 확인했다. ‘신의 능력’. 민재는 그 네 글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민재는 생각했다. 누군가 칼끝을 목에 들이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네 기사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우석아.”

민재 옆에 앉아 같이 화면을 보던 우석이 말을 하다 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왜.”

“나 술 좀 갖다 주라.”

“안 돼.”

“나 진짜 머리 아파.”

민재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도 안 돼.”

“아아아아아- 나 죽는다.”

민재가 성의 없는 곡소리를 내자 우석은 질색했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아아아아~ 민재가 계속 성의 없이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내자 민재의 머리를 베개에 더 깊게 파묻은 우석은 그대로 특실을 나가 버렸다.

누가 봐도 삐진 사람처럼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는 모습에, 민재는 입을 오므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은근 귀엽다니까. 중얼거리며 민재는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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