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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4)화 (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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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매가… 도시에도 있나요?”

호영은 멍청한 질문을 하고는 민재를 따라 허공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매’라는 건 기자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현장에서 기삿거리를 건지기 위해 민재를 찾고 있을 터였다.

은정은 종종 민재가 곤란할 상황에 대해 미리 언질을 주곤 했다. 날 수 있는 호영을 보냈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월! 월! 월! 월! 그때 호영과 민재의 사이로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재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민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진상 새끼, 라고 적힌 화면을 본 호영은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여보세요.”

[아, 민재 군. 다행히 받았네. 그래, 현장은 좀 어떤가?]

“이미 보고드린 것 같은데요.”

[허허, 이 사람 참. 까칠하긴.]

“…….”

민재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기자들이 현장에 들어왔는데 센터장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오다니. 민재는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때가 온 것 같은데. 잘 부탁하네, 민재 군.]

센터장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는 무슨 때. 정치 놀음 하는 새끼라 그런가, 말도 뭣같이 하네. 민재는 모자를 깊숙이 고쳐 썼다.

가라앉은 민재의 표정을 확인한 호영은 똥 마려운 개처럼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이미 소식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어찌 되었든 민심이 그러하니 나도 별수가 있나. 미안하네.]

모른 척하고 싶은 민재의 말을 센터장은 무시했다. 경고가 어린 목소리로 하는 사과였다.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참. 박지환 군도 잘 부탁해요. 오늘이 데뷔거든.]

“…박지환?”

민재의 눈썹이 비뚜름하게 치솟았다. 그러나 민재가 되묻는 것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까고 있네. 민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음흉해 빠진 센터장이 꾸민 일에 놀아나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때 민재의 옆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네! 선배님!”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목소리였다. 조금 전에 자신한테 가이드가 되어달라니 어쩌니 했던 놈이었다.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또 언제 온 거야. 민재는 삐딱하게 지환을 쳐다보았다.

“…뭐야.”

“네? 선배님이 부르셔서….”

민재의 말에 상대의 눈매가 우그러지는 듯 늘어졌다. 상당히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고 억울한 듯했다.

지금 그러니까 이 새끼가 박지환이라는 건가. 민재는 박지환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굴려보았다.

“몇 급이에요.”

“네?”

지환은 당황한 표정으로 민재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다.

“아, 선배님 반말하셔도 됩니다!”

“그래?”

“네!”

“…그래서?”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민재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지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민재는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물어본 것에 답하지 않고 딴말이나 하는 지환에 짜증이 배가 되고 있었다.

“아….”

지환은 작게 탄식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호영은 추워진 분위기에 어쩔 줄을 모르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 선배님… 호영이 일단 말려보려고 입을 떼던 찰나에 지환이 입을 열었다.

“저… S급입니다!”

그 말을 하는 지환의 귓가가 살짝 붉었다.

S급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부터 민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민재는 몇 주 전 새로운 S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이런 현장으로 올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한국에 아주 오랜만에 등장한 S급이 에스퍼실장도 모르게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것도 제1팀이 필두로 전담하는 구조현장으로.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일이 좀 좆같이 돌아가네. 민재는 이를 앙다물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진짜 완전 팬이에요! 시민을 구하는 멋진 히어로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아 그리고 아까는….”

어쩌구저쩌구 지껄이는 말을 듣는 민재의 표정이 점점 더 구겨지기 시작했다.

더 구겨지기 힘들 정도로 구겨진 얼굴로 민재는 말했다.

“꺼져. 역겨우니까.”

지환의 입이 다시 헤벌어졌다. 그와 동시에 민재의 옆쪽에서 강렬한 빛이 번뜩였다.

***

펑!

플래시가 터지며 촤르륵, 하고 연사 찍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포즈 잡아주세요!”

“이쪽에도 인사해 주세요!”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능력을 보여주세요!”

“오늘 현장에서 능력 시연을 하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요청에 민재는 이를 악물었다.

사고 현장이 기자회견장이 되어버린 것은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지환과 대치하고 있는 민재의 앞으로 카메라 하나가 들이밀어졌고,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민재 앞에 있던 지환도 빠른 속도로 뒤쪽으로 밀려났다. 몇몇 기자가 S급인 지환을 알아보고는 관심을 보였으나 지환보다는 민재가 더 뜨거운 가십거리였다.

“야, 너 이쪽으로 와.”

멍하니 민재 쪽을 바라보는 지환의 어깨를 호영이 두드리는 게 보였다. 호영은 멍하니 서 있는 지환을 끌어당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은정도 멀리서 뛰어오더니 망연한 표정으로 민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도 알아. 좆 된 거. 민재는 기자들 사이에서 계속 이리저리 치였다. 은정이 기자들을 밀치고 다가오려는 것을 보고 민재는 손짓으로 저지했다. 지금은 은정이 나서면 일이 더 커질 게 분명했다.

이렇게까지 기자가 모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히어로 우민재는 종종 공익광고를 통해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곤 했으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터뷰에 응하거나 초능력을 내보이는 일이 없었다.

정확히는 없어도 되게끔 용인되고 있었다.

히어로 센터에 소속된 모든 에스퍼들은 국가의 자산이었다. 그래서 히어로들이 가진 능력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었고, 히어로의 상징인 민재도 비밀스러운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민재는 상황 파악을 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능력 시연이라니. 민재는 동의한 적도 없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언론플레이를 즐겨 하는 센터장이 결국 우민재를 팔아넘기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씨발. 민재는 남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살피며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초록불과 주황불이 번갈아 깜박이고 있었다. 불안정하다는 이야기였다.

민재는 빠르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뒤로 감추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아직 구조 작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펑!

또다시 플래시가 터졌다.

사고의 경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두 다 살릴 수 있나요?

사상자는 몇 명인가요?

이번 일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국민들에게 전할 말이 있나요?

엄청난 질문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질문이 지금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것임과 동시에 현장에 투입되어 계속 일을 한 민재가 답변하기 곤란한 것들이었다.

개중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도 있었다. 애인이 있으신가요? 본인이 올해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로 뽑히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친 거 아니야?”

은정이 큰 소리로 빈정거렸다. 예의가 없는 질문이었다.

팡팡 터지는 플래시 앞에서 민재는 덤덤한 표정으로 질문을 가려가며 답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정중하게 구조 작업을 이어가야 함을 어필했다.

중간중간 민재는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지환은 민재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민재로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능력 시연해 주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조 작업이….”

“여기 환자 있어요!”

누군가 외쳤다. 어떡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준비까지 해두셨어, 그래. 민재는 속으로 비꼬았다. 긴장감 때문에 손이 계속해서 떨리고 편두통이 밀려들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 많은 인파 앞에서 험한 꼴을 보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후우. 민재는 숨을 내쉬었다.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우와아아!!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살렸다! 우민재! 우민재!”

“히어로다!”

사람들은 히어로 우민재를 찬양했다. 누군가는 신의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누군가는 SSS급은 다르다고 했다.

민재는 이 모든 게 끔찍했다. 숨이 막힌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의 사람들이 녹아내렸다. 끈적한 액체로 이루어진 괴물 같았다. 민재가 꿈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손을 뻗어왔다.

민재는 뒷걸음질을 치며 눈으로 다급히 팀원들을 좇았다.

아까부터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민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

바람이 뺨을 스치고 있었다. 민재는 눈을 뜨고 뒤로 고개를 돌려 작아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시 제대로 보였다. 작은 머리통들이 돌멩이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불빛이 번쩍거렸다.

또 환각을 보나. 뭐지? 상황 파악을 하려는 민재의 눈앞으로 붉은 하늘이 펼쳐졌다.

위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엄청나게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스퍼가 보였다. 박지환이라고 했던가? 이 미친놈은 자신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 날고 있었다.

어쩌다가 얘랑 이렇게 엮이게 되었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한숨을 푹 내쉰 민재는 자신을 안아 들고 있는 지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예!”

가까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짜증이 치민 민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시끄러워.”

“앗, 네.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또 금방 축 처졌다. 녀석은 할 필요가 없는 사과까지 했다. 그런 주제에 착실하게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좀 전에 내가 한마디 했다고 어디 높은 데서 떨어뜨리는 거 아냐? 가이딩 수치가 떨어진 지 한참이 지난 민재는 조금 오싹함을 느꼈다.

“…어디 가는데.”

“어? 그냥… 무작정 날고 있었는데…. 내리시겠어요?”

어디로 가냐고 묻자 대뜸 내리겠냐고 물었다. 이 새끼 알고 보면 사이코 아냐? 식겁한 민재는 지환의 멱살을 두 손으로 꼭 붙들었다.

“돌았어? 착지할 곳 찾아.”

“아, 네!”

지환은 고개를 홱홱 돌려대며 내릴 곳을 찾더니 착지를 시도했다.

도시 변두리의 학교로 보이는 곳의 옥상에 내려진 민재는 불안정한 착지 때문에 멱살을 쥐어 잡고 균형을 맞추며 착지했다.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인 자세로 자신에게 멱살을 내주고 있는 지환이 보였다.

“야.”

“네…?”

“너 비행 실력이 왜 이따위야?”

“죄… 죄송합니다. 제가 첫 임무여서….”

그렇겠지. 자신보다 덩치도 큰 주제에 무슨 말만 하면 입을 우물거리며 시무룩해지는 게 영락없는 꼬맹이였다. 민재는 뒤늦게 밀려오는 피로감을 느꼈다.

뒷주머니를 뒤지던 민재는 자신이 늘 들고 다니던 수통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저… 선배님.”

“왜.”

자신이 계속 멱살을 잡은 상태라는 걸 잊어버린 민재는 대충 대꾸하며 지환 쪽을 바라보다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얼굴에 당황했다.

큼, 헛기침을 하며 민재는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그러나 그가 멱살을 놓았는데도 지환은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민재의 표정을 살폈다. 민재는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괜찮으십니까?”

지환의 질문에 민재는 조금 멍해졌다.

“뭐가?”

“어… 곤란해 보이셔서요.”

그 말을 하고 지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민재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기자회견에서 날 냅다 보쌈해서 나른 게 내가 곤란해 보여서 그랬다는 건가?

“뭐?”

“곤경에 처하신 거 아니었나요?”

지환은 당황한 얼굴로 민재를 쳐다보았다.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왜 쟤가 겁을 먹지? 민재는 지환이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곤란해 보여서 구해준 거다?”

민재는 ‘구해준’이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어 물었다.

“…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지환은 얼굴을 붉히며 되물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민재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민재는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배 속이 부글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민재의 말에 지환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어졌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뭉개지면서 흔들렸다. 곧이어 민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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