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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화 (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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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한 남자가 도로변에서 손짓으로 허공에 자동차를 띄우는 영상이 인터넷에 업로드되었다.

자동차는 정확하게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가벼운 피자 도우처럼 휙휙 뒤집히기도 했다.

그러나 엄청난 능력을 선보이던 남자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남자가 떨어뜨린 자동차로 인해 추돌사고가 잇달았다.

그리고 잠시 후, 폭발이 일었다.

검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전복된 차량들과 파괴된 도로와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영상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조작된 영상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다른 블랙박스 영상이 몇 개 더 등장하면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역병이다, 저주다, 종말이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경련하는 친구를 껴안아 ‘폭발’을 막아낸 케이스가 생기면서 살아남은 초능력자가 생겼다. 생존자는 자신이 어느 순간 우연히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인류의 진화라고 보아야 할지, 혹은 변종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뜨거운 토론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편의를 위해 이능력자를 ‘에스퍼’, 폭주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을 ‘가이드’라고 칭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에스퍼로 인해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믿었다. 길을 가다 옆의 사람이 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었고, 자신이 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진화한 인류로부터 도태될 수 있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테러로 이어졌다.

에스퍼 발현 후 6개월이 지난 시점. 첫 테러 공격이 시작되었다. 돌연변이를 추방하라는 대형 스크린이 한 건물 밖에 설치되었고, 60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60분은 한 인종-그렇게 명명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의 존재를 부정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기엔 짧았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건물이 폭파당했다. 일반인 혹은 숨겨진 에스퍼를 포함하여 150명의 인간이 사망했다.

계속되는 테러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테러범들은 어떨 때는 에스퍼였고, 어떨 때는 민간인이었다. 그들의 이유와 요구 역시 다양했다. 그렇게 테러의 시대가 열렸다.

***

[알립니다. 금성 빌딩 전방 오 킬로미터 이내의 시민분들은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십시오. 차량이 있는 분들은 도보 중인 시민분들의 대피에도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금성 빌딩 테러 신고 접수 한 시간 경과.

안내 방송이 빌딩 근방에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와 염증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금성 빌딩 옆 건물 스크린에는 한 남성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하얀 피부에 곧고 부드러운 눈매. 강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눈빛의 남자였다. 전체적으로 선이 수려한 얼굴이라 멜로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로 보일 법한 얼굴이었다.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소속이 불분명해 보이는 제복을 걸친 채 정의로운 영웅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얼굴 옆에는 자막이 붙어 있었다. 히어로, 우민재.

“지랄한다.”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 옥상에서 민재가 중얼거렸다.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그는 스크린 속에서 천사같이 웃는 자신과는 전혀 닮지 않은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옥상 벽 쪽에 기대선 그는 들고 온 종이봉투에서 햄버거를 꺼냈다.

[침착하게 대피하시면 안전합니다.]

안내 방송에서는 안전하다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대 미사일이 건물에 틀어박혔다. 뒤이어 터져 나오는 경적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너무 커서 건물에 균열이 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사일에는 ‘에스퍼 타도’라는 붉은색 글자가 마구잡이로 휘갈겨져 있었다. 붉은색 락카로 쓴 모양이었다.

첫 에스퍼가 발현한 지 20년 넘게 흘렀는데 아직도 이러는 테러범들이 차고 넘쳤다. 우습게도 그 덕분에 에스퍼들은 히어로 대접을 받았다. 국가에 소속되어 시키는 대로 구르는 인생이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민재는 우물거리며 햄버거를 씹다가 남은 포장지를 구겨서 아무렇게나 던졌다.

“불발이네.”

민재는 무감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건물이 터져 나가거나 혹은 건물에 뭐가 틀어박히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기껏 용써서 만들었을 거대 미사일이 불발인 경우도 꽤 흔했다.

조잡한 예고장까지 날린 것치고는 미사일 만드는 실력이 모자랐나 보지. 민재는 비웃으며 빌딩을 바라보았다.

“열, 열하나, 열둘-”

우웅-

비행을 시작하는 비행기에서 날 법한 큰 소리를 내면서 건물이 기울기 시작했다. 초를 세던 민재는 재빠르게 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놨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마~ 일!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발랄한 음성이 크게 울렸다. 사진의 초점을 확인한 민재는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띠링! 띠리링! 띠리리리리릴리리리링! 이번엔 버튼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5미터가량 미사일. 불발. 건물은 13초 버팀.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민재의 귓가를 굉음이 때렸다. 눈앞으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거센 바람이 민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x나 염병. 욕을 짓씹은 민재는 문자를 고쳐 썼다. 17초 경과. 폭발. 인명 피해 다수 예상.

문자를 발송한 민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은 연기로 뒤덮인 도시를 바라보았다.

“퇴근 못 하겠네.”

한숨을 내쉰 민재는 재킷에서 수통을 꺼내 들이켰다. 정확히는 들이키려고 했다. 순간 몸이 달랑 들어 올려져 허공에 둥둥 떠가는 처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민재는 자신을 독수리처럼 잡아챈 존재에게서 벗어나려고 팔을 허우적거려야 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안전한 곳에 데려가 드릴 테니 가만히 계세요!”

뭐…?

민재는 억지로 고개를 틀어 상대를 올려다봤다. 운동선수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짙은 눈썹.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 딱 봐도 어려 보이는 꼬꼬마 에스퍼였다.

누구 멋대로 이런 잔챙이까지 보내…? 민재는 한숨을 삼켰다.

“으억! 아! 시민님! 가만히 계세요. 제가 있는 한 안전합니다!”

와- 훈련소에서 가르쳐 주는 멘트 실제로 읊는 애가 여기 있네.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제가 있는 한 뭐?

민재가 비웃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에스퍼는 위험한데 어쩌다 옥상에 계신 거냐, 다친 데는 없으시냐, 등등 시민 구조 시 에스퍼가 지켜야 할 응대 매뉴얼을 곧이곧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억! 으악! 에스퍼는 비행이 처음인지 궤도가 영 순탄치 않았다. 본인이 흔들리면서 자꾸만 비명인지 뭔지 모를 소릴 냈고, 덕분에 둘은 바람이 불 때마다 허공에서 휘청거려야 했다

달랑달랑 들린 민재는 최선의 인내심을 발휘해 멀미와 함께 짜증을 삼켰다.

“내려놓으세요.”

“네? 시민님! 아직 폭발 지역에서 많이 떨어지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폭발로 여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재는 자신을 잡은 손을 손날로 내리쳤다. 어? 순간 손에 힘이 풀려 민재를 놓쳐 버린 에스퍼는 허공으로 떨어지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스퍼가 민재의 재킷 끄트머리를 움켜쥐었다. 바닥에 착지하려던 민재의 몸이 뒤에서 당기는 힘에 기우뚱 기울어졌다.

중심을 잃은 민재가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민재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등 뒤로 진동이 느껴졌다. 여진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람이 먼지와 건물의 잔재들을 계속 쓸고 다니고 있어서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끙. 민재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앉았다. 결국 그 멍청한 새끼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민재는 생각했다.

왼쪽 어깨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오면서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골절이네. 염병. 여엄병. 신음처럼 욕을 뱉은 민재는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눌러 뼈를 맞추었다. 어깨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민재의 오른손에서 옅은 빛이 일었다. 깊게 한숨을 내쉰 민재는 자신의 상체 길이만큼도 남지 않은 콘크리트 벽에 몸을 기대었다.

“으… 시민, 님. 괜, 찮….”

우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민재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좀 전까지 잘 보이지 않던 시야가 확보되자 넘어지다 만 것 같은 이상한 자세로 쓰러진 에스퍼가 보였다.

아. 미친. 옆에 떨어진 모자를 다시 고쳐 쓴 민재는 당황해 그쪽으로 기어갔다.

“어디 다쳤어요?”

“네? 시민님… 시민님 피가… 피가… 어… 구조팀….”

어린 에스퍼의 꼴을 보아하니 한쪽이든 양쪽이든 다리가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그 와중에도 시민구조에 힘써보겠다고 낑낑대는 거 보니 영웅놀이에 보통 심취한 게 아닌가 보다 싶었다.

“오른쪽, 왼쪽.”

“네…?”

“어느 쪽 다리냐고요.”

“어….”

어린 에스퍼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거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안심하세요. 곧 구조팀이…! 민재를 달래려고 내민 손은 다 까져서 피범벅이었다. 무슨 고장 난 기계처럼 매뉴얼만 읊어대는 걸 보니 민재는 맥이 빠졌다.

“운 좋은 줄 알아요.”

퉁명스레 말을 내뱉은 민재는 몸을 일으켜 어린 에스퍼를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왼쪽 다리의 형태가 좀 이상하게 꺾여 있는 걸 보니 이쪽도 골절이었다.

민재는 그에게 다가가 발로 왼쪽 다리를 살짝 건드렸다.

“아악!!! 뭐 하세요!!”

소리칠 힘은 용케도 남았는지 에스퍼가 꿈틀거리면서 성을 냈다. 지렁이냐. 민재는 피식 웃더니 다리에 손을 대었다. 또다시 작은 빛이 일었다.

에스퍼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다리와 민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와….”

“현장은 처음이죠?”

피식 웃음을 흘린 민재는 에스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좀 편하게 복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민재는 에스퍼의 비행 실력을 떠올리고는 잽싸게 포기했다.

반면 민재가 내민 손을 덥석 붙잡은 에스퍼는 몸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제 가이드가 되어 주세요!”

주세요-! 세요-! 요-!

목소리가 너무 커 메아리가 울렸다. 반복되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재는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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