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화
뭐? 하고 물으려던 이도하의 목소리는 묻혔다. 시오한이 그를 안은 채 몸을 틀었다. 동시에 쾅! 그들이 1초 전까지 밟고 서 있던 나무 데크가 폭발하듯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꺄악! 으악! 악! 난데없는 폭발에 영화라도 보는 양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놀란 쥐 떼처럼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도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뭐람?
공격인지, 사고인지 모를 이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쾅쾅! 폭발이 연이어 터졌고, 시오한은 그때마다 아주 최소한의 동작으로 말끔하게 피해 갔다. 걸음걸이가 가볍고 몸짓도 태연해서, 사방으로 나뭇조각이 미친 듯이 날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뭘 저리 서성거리나, 싶을 모양새였다. 어리둥절했던 이도하는 그 여유 속에서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했다.
쐐애액-! 미약하게 공기를 찢고 짓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가엾은 남산의 이 데크가 쾅! 하고 풍비박산 나는 것이다. 나무 조각뿐만이 아니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자물쇠들까지 날리니 수류탄이 터진 것 같다. 산 아래에서 누군가 뭔가를 쏴서 이곳을 맞히고 있었다. 꼭 총알 같은 것을.
그런데 한국에서 누가 총을 쏴? 이도하가 생각하는 사이 좀 불편하네, 하고 중얼거린 시오한이 그를 좀 더 꼭 붙잡았다. 몸이 홱 쏠리더니 바람이 세게 휘몰아치며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잠깐 추락감도 함께 휘몰아쳤다. 이도하가 정신을 차렸을 때, 시오한은 그의 머리칼에 붙은 마른 나뭇잎을 떼 주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이도하는 멍하니 그를 보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빼빼 마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꽤 멀리, 불빛이 번쩍이는 남산 타워와 조명으로 장식된 난간이 보인다. 이도하는 히야, 감탄했다.
“지금 뛰어내린 거야?”
그러니까, 시오한이 조금 전에 저를 안고 저 위의 남산 타워 난간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가 좀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쐐애액-! 뭔가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시오한이 팔을 휘둘렀다. 캉!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번쩍 튀었다. 쐐애액-! 연달아 무언가 짓쳐들어왔다. 몇 개는 빽빽한 나무에 박혀 들었고, 정확히 그들을 향해 날아온 몇 개는 시오한에 의해 튕겨 나갔다.
“이제 집에 갈까?”
웃으며, 시오한이 평온하게 말했다. 이도하는 그의 손에 뭐가 들려있는지 보았다. 뭘 들고 있기에 저런 걸 쳐 내나 했더니, 고작 남산이 새겨진 조그만 병따개 겸 손톱깎이였다.
“와, 대박이네.”
이도하를 돌아본 시오한이 수줍게 웃었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얼굴로.
“슬쩍 했어.”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가서 계산하면 돼.”
손톱깎이나 병따개가 필요해서 그랬을 리는 없고.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도 안 하고 그나마 쇠로 된 가장 단단하고 조그만 것을 슬쩍 했는가 하는 의문은 이도하의 고장 난 머릿속을 스치지도 않았다.
콰직!
연속해서 날아온 무언가에 코앞의 나무가 박살 나며 쪼개졌다. 산산조각이 난 파편이 튀었다. 누군들 한 대라도 제대로 맞는다면 틀림없이 죽는 위력이다. 그럴 의도로 쏘아 보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야 죽을 일이 없지만, 의도는 대단히 문제였다. 이도하의 얼굴이 그제야 좀 심각해졌다. 설마하니 이 나라에서 누가 대뜸 총을 갈기고 있을 리는 없다. 잠깐의 생각 뒤에 그가 꽤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냈다.
특기다.
“뭐지.”
착실히 시오한을 따라 바위와 나무뿌리 등을 밟으며 거친 산을 뛰어 내려가던 이도하는 심각하게 고찰했다. 넘어지는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듯 자연스럽게 특기가 꿈틀거렸다. 눈에 푸른빛이 감돌자 주변이 한차례 웅, 진동한다. 나무들이 메마른 가지를 부르르 떨었다.
“아, 안 되는데.”
이도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약간 고장 난 머리로도 그는 특기를 억눌렀다. 시오한이 옆에 있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었는지, 그게 세계나 그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특기는 쓰지 말자, 했던 주의 사항만은 어떻게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곤란하네.”
그치? 하고 덧붙이듯 시오한이 말했다. 한발 앞서 내려가던 그가 순간 다시 팔을 휘둘렀다. 캉! 또 불꽃이 팍 튀며 그를 향해 쏘아져 오던 것이 궤도를 틀어 바닥에 처박혔다. 언뜻 보니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조그맣고 얇은 쇳덩어리였다. 끝이 뾰족해서 칼이나 총알이라고 봐도 좋을 생김새다.
“그래? 그냥 엎어 버릴까.”
이도하가 눈을 들었다. 조금 전 스스로 되뇐 주의 사항은 잊고 금방이라도 말 그대로 산이 갈아엎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시오한이 그의 팔을 토닥이며 옆구리에 낀 인형을 한 번 추슬러 주었다.
“쉬쉬, 화이람. 괜찮아.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그저 쓸 만한 게 없어서.”
무척 귀여워하는 것 같은 눈으로 보며 시오한이 말했다. 그게 문제란 말이지. 이도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도하가 기억하기로 시오한은 대체로 긴 장검을 사용하곤 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이 조그만 산에서 갑자기 그런 검이 쑥 튀어나올 리가 없다.
이도하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하는 사이 그를 나무 뒤에 세운 시오한이 다시 캉! 날아온 쇳덩이를 쳐 냈다. 조그만 손톱깎이는 이미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가 미련 없이 고철 덩어리를 바닥으로 툭 내버렸다. 쐐애액! 쉴 새 없이 쇳덩이가 날아와 주변에 꽂혀 들어갔다. 나무며 흙이 파편으로 우수수 날린다. 시오한이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근데 이 새끼 뭐야?”
주변에 튀는 파편에 눈살을 찌푸린 이도하가 그제야 물었다. 시오한이 눈을 접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듯 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글쎄, 별로 똑똑하지 못하거나 많이 가난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죽는 것도 감수할 만큼 말이야. 시오한이 중얼거렸다.
“다 튀잖아.”
이도하가 시오한을 제게로 좀 더 당기며 말했다.
“확 다 갈아 버릴까 보다.”
“자, 화이람. 그건 내일 생각할까?”
부드럽게 이도하의 뺨을 매만지며 그를 달랜 시오한이 고개를 들었다. 쉬지 않고 쏘아지던 쇳덩이 세례가 어느새 멎어 있었다. 시오한은 의아해하거나 신기해하지도 않고 곧장 다시 아래로 향했다. 이도하도 그냥 당연하게 따라갔다. 마른 낙엽들이 발에 잔뜩 차이며 부스스 부서져 나갔고 흙과 자그만 돌덩어리들이 그들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갔다. 앙상한 가지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시오한이 갑자기 몸을 틀었다. 긴 황금빛 머리채가 붓으로 그은 획처럼 잔상을 남겼다. 조금 전까지 시오한이 있던 자리에 묵직한 것이 쿵! 떨어졌다. 그 여파로 바람이 잔뜩 일며 흙먼지와 바스러진 나뭇잎들이 날렸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이도하가 보니, 그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옮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바위였다.
“물체 도약과 발사…… 아니, 가속이구나. 까다로운걸.”
시오한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영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옆으로 슬쩍 비켜섰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움직임이었으나, 움직이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그 자리에 콰직! 요란하게 떨어지며 부서졌다. 이번에는 묵직한 철제 벤치였다. 공원에나 있을 법한 벤치가 우두둑 나무를 부수며 쾅! 찌그러진 채 옆으로 떨어졌다.
“이게 지금.”
이도하가 입을 뗐다. 시오한이 이끄는 손길에 순순히 따라가던 이도하가 서슬 퍼런 얼굴로 말했다.
“저게 지금 당신한테 떨어진 거야?”
“응?”
“어떤 새끼가 당신한테 벤치를 집어 던졌다고?”
어……. 시오한이 애매한 표정으로 답을 피했다. 던졌다고 하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몹시 험악하게 들렸다. 이도하의 표정이 무엇보다도 험악했다.
“당신한테 저딴 돌덩이를 집어 던지고, 벤치를 집어 던졌다고? 그래서 지금 도망치는 중이고?”
“음.”
시오한은 또 잠시 답을 미뤘다. 이것도 대답하기가 참 애매한 것이다. 이게 도망은 아닌데, 모양새가 또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물론 그런 것으로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체면이 구겨진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이도하에게 그렇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을 뿐.
“당신한테 벤치를 집어 던져?”
“화이람, 화이람.”
갑자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든 순간, 또다시 그들을 향해 떨어지던 무언가를 어디선가 쏘아진 흰 빛이 꿰뚫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무수한 흰 선이 빗줄기처럼 그것을 완전히 덮쳤다.
빛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참깨만 한 조그만 파편들이 투둑, 하고 머리와 어깨 위로 조금 떨어졌을 뿐이었다. 습격한 이가 그들의 머리 위로 도약시킨 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아예 알아볼 수도 없었다.
“서련이야.”
이도하의 머리와 어깨, 손바닥 위에서 파편 몇 개를 털어 낸 시오한이 말했다. 참깨만 한 흔적까지도 험악하게 노려보며 이게 대관절 무엇이었나 궁리하던 이도하가 금새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암군. 특기가 ‘1차원의 수수께끼’라고 했었나.”
“엉?”
시오한이 빙그레 웃었다. 잔뜩 흐트러져 부슬부슬해진 이도하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그가 말했다.
“절단을 잘해.”
바스락! 나무 사이로 누군가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인상도 유순하고 머리도 곱슬곱슬해서 조그만 소형견 같아 보이는 외국인. 이 외국인은 둘을 보고는 화색을 띠더니 시오한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시오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이 뭔가 말했다. 물론 시오한도, 이도하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오한은 특혜가 없는 탓에, 그리고 이도하는 도대체 저게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는 탓에. 어떡하나, 싶은 순간 시오한이 손을 몇 번 움직였다. 이 외국인-서련 역시 간단한 손짓으로 화답했다.
이도하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시오한의 손이 슬슬 내려와 이제는 그의 뺨과 턱을 치대는 가운데, 이도하만 전혀 알아먹을 수 없는 이 의사소통은 빠르게 끝났다. 서련이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앞장섰다.
“뭐라고 했는데?”
이도하가 물었다.
“응?”
돌아본 시오한은 이도하의 얼굴이 좀 뚱한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