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지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특기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던 그 비극적인 사건 말이야. 아버지가 딸을 위해 유서를 남기고 아이가 죽은 놀이터에서 분신해 영웅적으로 목숨을 바친 사건.”
한지유. 6살의 나이에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은 아이.
“그 애 아버지는 쓰레기였어. 딸을 사랑하기는커녕 매일매일 폭언을 퍼부었지. 아내가 도망간 건 모두 아이 탓이라고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실수라도 힘을 쓰면 아이를 쥐 잡듯이 했어. 애를 거의 세뇌하다시피 해서, 그 애는 정말 자기가 다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니까. 다 제가 그런 이상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탓이라고 그 어린 애가 자학을 했어.”
물기 어린 까만 눈동자가 이도하를 노려보았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하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갇혀 태어난 것처럼 제대로 제힘을 발현하지 못했다.
“현실 조작 능력을 가진 아이가, 자기방어조차도 하지 못하고 고작 돌에 맞아 죽었다고.”
스케치북. 자기가 그린 그림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이의 힘은 고작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현실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인소더블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는 있었으나, 언뜻 이도하와 능력의 궤가 가깝기는 했다. 제 능력을 꺼려 한 탓에 그 힘이 그림이라는 매개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
“그 애는 살해당한 거야. 저 인간들한테.”
놀이터에서 돌을 던진 건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던 부모들이었다. 새끼를 품은 짐승처럼, 행여나 제 아이에게 위협이 될까 두려워하며 아이를 몰아댔다.
“그래 놓고 그 일이 알려지면 일어날 여파가 두려워 허겁지겁 뭘 모르는 아이들이 저지른 사고로 덮으려고 했지. 그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아니? 모두가 다 피해자?”
으드득, 주승현이 이를 갈았다.
“사건을 뒤집은 그 유서는 내가 쓴 거야. 그 버러지는 살려 달라고 빌었어.”
그녀가 싸늘하게 냉소했다.
“도하야, 너는 쉬운 세상에서 태어났지.”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물건을 들어 올리고, 날아다니며, 불꽃을 피워 올리고, 맨손으로 총알을 튕겨 내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두려워하고 핍박하는 게 아니라, 선망하는 세상. 그런 이들이 물고 오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세상.
“자기들이 공평하고 평화롭게, 정의롭게 우리와 잘 어우러져 산다고 착각하는 세상.”
주승현이 말했다.
“인간들이, 자기들의 이해 너머에 있는 것들이라면 알레르기라도 돋는 것처럼 발작을 해 대는 저 버러지 같은 멍청이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하호호 박수나 쳐 대는 세상이 정말 그냥 왔을 것 같아?”
“…….”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렇게 만든 거야. ‘우자의 눈’, ‘되돌아가는 태엽’, ‘잡을 수 없는 꿈’?”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주승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우습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지. 다들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잖아. 그래서 말하기 싫어한다고 믿지. 특기명 공모전도 있는 거 아니? 인간들이 얼마나 열광하고 재미있어하는데. 특기명을 들으면 그게 어떤 특기일지 추측하는 것도 좋아해, 인간들은.”
추리 놀이에 빠져서, 정작 그 특기가 뭘 할 수 있는 힘인지 자기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별로 생각지도 않고서.
“특기라는 그 같잖은 단어조차도.”
한때는 A급, B급 하며 급을 매긴 적도 있었던 힘. 초능력이나 이능력이라고 불렀던 힘. 그 힘이 운동이나 미술, 음악, 그런 재능을 타고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편적인 사람들보다 그냥 특정 분야에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걸 발휘하는 게 다른 이들에게 차별받을 일이 아닌 것처럼, 발휘하지 않는 것도 본인의 자유인 것처럼 그런 힘 역시 똑같이 그저 재능일 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초능력, 이능력. ‘다름’을 담고 있는 그런 단어들을 쓰는 건 차별이라고. 나쁘다고.
“‘인식’이라는 건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단어 하나에서 배어 나오기 마련이니까.”
요즘은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지 굳이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초능력, 이능력, 그런 단어들은 그냥 쓰기만 해도 무턱대고 차별주의자로 욕먹기 마련이다.
“알겠니, 도하야? 공존이 아니야. 처음부터 아니었고,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 저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경계해. 그게 본능이야.”
조소를 머금은 주승현이 말했다.
“이건 잠식이라고.”
“…….”
어느새 표정이 사라진 이도하가 그녀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섰다. 마치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생겼는지 이해해 보려는 것처럼. 주승현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그런 그를 마주 보았다. 눈이 시리게 밝은 새벽을 등 뒤로 둔 그녀의 얼굴도 이내 무너졌다.
“내버려 뒀어야 한다는 네 말은, 그 세상을 다 누리고 하는 말이잖아. 네가 원하는 대로, 계약자가 되기 싫으면 싫은 대로, 특기를 쓰기 귀찮으면 귀찮은 대로 널 내버려 두는 세상이 싫었다고 할 수 있니? 그 당연한 것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만 세상이 이상한 거 아니야?”
힘을 잃은 목소리로, 주승현이 말했다.
“아니면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 마땅히 써야 한다고, 그게 네 책임이고 의무라며 널 윽박질러 대는 지금의 세상이 맞니. 지금 저들이 널 사람 취급이나 하고 있기는 해?”
마땅히 모두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감내해야 하고, 영웅적으로 모든 걸 바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너의 잘못이 되는 세상.
“이게, 옳은 거야?”
***
짹짹, 참새가 운다. 아침이 온 것도 모르게 하늘은 흐리고, 앞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데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참 평화롭다. 세상이 망한다고 해 봐야 사람에게나 다 망하는 거지. 저 조그만 참새들이야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을 것이다.
아니지, 사람 세상이 아니라 그냥 이 세계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도하는 제 실없는 생각에 픽, 헛바람을 터트리며 이슬에 축축하게 젖은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현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의 집은 지진으로부터 거의 무사했다. 집 안의 가구나 물건 따위가 강도라도 당한 것처럼 죄다 바닥에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건물 중에는 그야말로 모래성처럼 와르르 다 무너져 내린 것들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괜찮은 편이었다.
이도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있던 물건들이 떠오르더니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아서 다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선이 잠시도 머무르지 않은 소파 밑의 물건들도 마찬가지로 스르륵 빠져나와 제자리로 움직였다.
특기로 무심히 집을 정리하며 이도하는 냉장고를 열었다. 물을 꺼내려던 그가 움찔, 멈추었다. 이윽고, 그가 뻗었던 손을 떨어트렸다.
몇 없는 음식은 죄다 상했고, 텅 비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냉장고에 덩그러니 앉은 물 두 통을 그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삐, 삐, 소리가 날 때까지.
탁, 미끄러진 이도하의 손에서 벗어난 냉장고 문이 저절로 닫혔다. 이도하가 몸을 돌렸다. 거실을 가로질러, 제 방문을 연 그는 문가에 잠시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그의 방은 이전과 거의 똑같았다. 변한 건 거의 없었다. 중학생 때 확 크면서 책상이며 침대를 바꿨지만 구조는 여전했다. 느린 걸음으로 책상 앞에 선 이도하가 가만히 그 위를 쓸어 보았다. 그때 썼던 책상은 이것보다 더 작았다. 그 작은 책상 아래에 구겨져 들어간 것이다. 어린 이도하가.
부모님의 침대라도 찾아 들어갈 것이지, 책상 따위가 다 뭔가. 하여간 여러모로 별종이었다, 저는.
털썩, 이도하가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대를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던걸.]
[두려워하긴, 아주 잡아먹으려고 들지.]
[그대를? 그것참, 굉장한 믿음이네.]
시오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묘해 보이던 그의 얼굴도.
[그대가 이전에 재해를 막은 적이 있다고 했었지. 바다가 덮치려는 것을 막았다고. 그 모습을 모두가 보았을 텐데, 그런데도 그대가 그 힘을 저들에게 쓰지 않으리라 여기는 건 정말 대단한 믿음이지.]
[나 좀 짜증 났다고 사람 패고 그러는 양아치 아니야.]
멍청한 이도하.
[6살에? 굉장한 힘인데.]
[6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는 거야?]
[참 기이하다 했더니….]
[그대가 이리 마음이 약한 것에 감사할 줄을 모르니, 참 기이하지.]
[화이람, 내 눈에는 꼭 이자의 두려움이 거세된 것처럼 보이거든.]
다른 세상으로부터 불려 온 이들이 계약자라는 이름으로 힘을 행사하는 그의 세계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여겼다. 계약자라고 불리는 그 특별한 이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 세계가 좀 독특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대는 좋은 사람이야, 화이람.]
사흘, 나흘 남짓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이미 알았던 것이다. 이 세계에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제 계약자가, 이도하가 가진 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게 시오한이고, 또한 그는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한 제국을 다스리는 위정자였기 때문에. 제가 틀렸었다. 제가 둔했다.
[화이람.]
다정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기억해. 그대는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무엇도 그대의 탓이 아니고, 의무가 아니야. 태어났다는 이유로 의무와 책임이 주어지는 건 불공평하지.]
푸른 수조의 차가운 불빛과, 다정한 황금빛이 섞여 잔잔히 흔들리던 얼굴. 걱정하고 염려하는 듯했던 얼굴.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것 같았던 그를 이도하는 이제야 이해했다.
[그냥, 이대로 이곳에 있을까, 화이람?]
이도하의 세계에서 느꼈을 기이한 부조화로,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음에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시오한이 무슨 수로 제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인소더블인 네가 어찌 그렇게 평범하게 여태 살았는지, 그게 참 이상하다고.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무언가 조작이 가해졌을 거라고? 그가 무슨 수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걱정, 염려, 그리고 차라리 제가 몰랐으면 했을 망설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다고 해도 결국 이도하를 기다리고 있을 것들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는 차라리 이도하가 돌아가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