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이도하가 다시 나타난 곳은 아주 비싼 어느 호텔 방이었다. 통유리가 있을 자리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한쪽에는 벽난로와 얼어 죽을 그랜드 피아노까지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부모님이 벌써 꽤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시골의 주택은 아닌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선 호텔 중 가장 비싼 스위트룸이다.
주변에 느리게 시선을 주던 이도하는 안쪽에서 두런두런 나는 말소리에 발을 옮겼다. 거의 벽을 다 덮다시피 한 거대한 벽걸이 TV 앞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실루엣이 있다.
이제는 도가 터 버린 추적으로 숨 쉬듯 그들을 찾은 이도하는 어째서 그의 부모님이 한적한 그 시골의 주택이 아니라 이런 값비싼 호텔 방에 와 있는지 따위는 묻지 않기로 했다.
돈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넘쳐난다고 해도 적어도 그들이 이런 때에, 이런 호텔에 돈을 쓰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고, 그렇다면 적어도 이 일에 누군가의 의사가 개입되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누구일지 또한.
“…엄마, 아빠.”
이도하가 그들을 불렀다. 이상하게도 퍽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소리에, TV에 집중하고 있던 두 인영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도하야!”
나란히 외치며, 그의 부모님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를 덥석 껴안았다. 이도하가 어정쩡하게 그들을 마주 안았다. 그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말한 지가 얼마 만인지 되새겨 봐야 했다. 포옹이 썩 인색한 가족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낯설었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버석거리는 모래를 한 움큼 삼킨 것처럼 껄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다.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마주 안고도 낯선 사람에게 안긴 것처럼 멍하니 있던 이도하가 몸을 뒤척였다.
“도하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안 자고 뭐 해요? 꼭두새벽부터.”
이도하가 사뭇 태연하게 말했다.
“시골 생활 좀 해 보니까 저절로 아침잠도 없어지더라. 너 뭘 입고 있는 거야?”
긴 소매를 잡아 보며 그의 어머니가 장난스레 답했고, 그의 아버지가 옆구리를 쿡 찔러 본다.
“우리 아들 살 빠졌네.”
“그래요?”
볼을 쓸어 보며 이도하가 픽 웃었다.
“응. 더 잘생겨졌는데. 어른 같다.”
그들 뒤로 보이는 긴급 재난 뉴스 화면에 지나가는 무너진 건물과, 그 아래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사망자, 실종자 숫자에 그의 웃음은 조금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가 흘긋, 눈치를 채고는 소파에서 리모컨을 찾아 TV를 껐다. 화면이 까맣게 죽자, 유난히 방이 조용하다.
이도하는 몇 번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닫고 말았다. 별것 아닌 안부, 장난, 그런 것들이 잠시 오가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잘 지내셨어요? 집에 가요, 뭐 그런 말? 아니면, 다 괜찮아요. 그런 거짓말.
“도하야, 너 울었어?”
내내 이리저리 그를 살피던 그의 어머니가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이도하는 뭔가 말하려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닫았다. 그의 어머니도 머뭇거렸다.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잠시 맴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며.
“저, 도하야. 엄마는….”
말을 고르는 듯, 그의 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버지와 잠시 눈길을 교환한다. 이도하가 저도 모르게 제 가슴을 문질렀다. 꼭, 뭔가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는-.”
“엄마.”
이도하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는 세게 이를 꽉 물었다. 괜히 목이 메었다.
“…그날, 있잖아요. 나 갑자기 엉엉 울었던 날. 나 원래 별로 안 울었잖아. 근데 진짜 엄청 울었을 때.”
잠긴 목소리로 이도하가 말했고, 그의 어머니가 문득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러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한다. 이도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 8살, 때. 엄청 울었던 날….”
그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고, 그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므로 그렇게밖에는 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말해도 충분히 떠올릴 만한 일이었다.
그날 8살 이도하의 울음은 고작 8살짜리의 울음이 아니라, 통곡이나 오열이라고 표현할 만한 수준이었고 그 일은 그의 부모님에게 퍽 큰 충격으로 남아 있을 게 분명했으니.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하야, 언제?”
“…엄마.”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가쁘게 요동쳤고, 이도하는 좋지 않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오리무중으로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아연해졌다.
더는 안 된다. 오늘 그는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더는 필요 없었다. 이것만큼은. 그가 제 어머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나 그냥 울기만 했잖아요, 엄청. 진짜, 진짜 엄청 울었고, 엄마가 다 잊어버리라고….”
이제 그의 어머니는 완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이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기억, 안 나요?”
“…도하야, 엄마가….”
그의 어머니가 말을 골랐다. 이도하가 재차 물었다.
“기억 안 나요?”
“…응. 엄마 기억에 네가 그렇게 울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조심스레 아버지를 쳐다본다. 도하가 엄청 울던데…. 그렇게.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그의 어머니는 분명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을 테고, 그럼 적어도 아버지라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의 아버지도 퍽 당황스러운 얼굴이다. 헷갈리는 기색도 아니었다. 정말 금시초문인 것처럼 그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잊어버리라고 했잖아요, 엄마가.”
이도하가 물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쁜 기억은 다 잊어도 된다고, 그럼 다 괜찮아진다고, 그랬잖아요.”
“…….”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당최 무슨 일인지 몰라 섣불리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적은 없다고도, 혹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도. 다음 날이라도, 혹은 그다음이라도 언제든 한 번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을 거라고도.
주춤, 이도하가 물러섰다. 그는 어느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도, 도하야.”
“…엄마가, 그랬는데.”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우는 그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면서. 정신없이 그 품을 파고드는 이도하를 쓰다듬어 주면서.
[잊어버려, 도하야. 나쁜 기억은 다 잊어도 돼. 그래도 돼.]
수십만 명을 죽이고, 그 애도- 시오한도 죽이고 말았던 저를 품에 안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잊어버려. 그럼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은 8살의 이도하에게 구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말 그렇게 했었다. 모든 기억들을 꼼꼼히 다 그러모아 조그만 상자에 처넣고 닫아 버렸다. 그러고는 그런 상자를 버려두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었다. 그래서 여태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살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그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서. 그렇게.
[잊어버려.]
우뚝, 이도하가 멈추었다. 푸르게 섬광이 맴도는 눈이 크게 확장됐다.
‘그럼 다 잊어버려요.’
언젠가 그에게 속삭였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또다시 구명줄처럼, 그를 다 꿰뚫어 본 것처럼 나지막이 말하던 목소리가. 만약 그게, 그렇게 말했던 게 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돼요.’
[그럼 다 괜찮아질 거야.]
주승현.
후드득,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그의 부모님이 놀란 얼굴로 손을 뻗는 게 보인다. 걱정이 역력한 얼굴로. 그러나 순간, 이도하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따뜻한 빛이 감도는 화려한 호텔 방은 사라지고, 사무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소파와 테이블 같은 건 다 한쪽으로 밀어 놓고, 바닥에 장식품 잔해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는 넓은 사무실이었다. 멀리 동이 터 오는 빛 아래 까맣게 잠긴 도시가 비치는 거대한 창은 창틀만 남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컴퓨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책상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주승현이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이도하를 보고 놀란 눈치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얼굴을 한다.
“메시지 봤어요? 도하 군 부모님은-.”
“잊어버리라고 했지.”
이도하가 말했다.
“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던 듯, 주승현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싫으면, 외면하고 싶으면 다 잊어버리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
주승현의 표정이 변했다.
“그런 말을 또 들은 적이 있거든.”
그런데 그 말을 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전혀 기억을 못 하고…. 황당한 것처럼 중얼거리며 이도하가 걸음을 뗐다. 저벅,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와중에 발소리가 심장 소리처럼 울렸다. 그가 뿌연 빛이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창틀의 그림자를 밟고 섰다. 이도하의 얼굴 위로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게 우연일까 싶어서. 최근에 겪어 보니 세상에 우연이란 게 별로 없더라고.”
“없죠, 그런 건.”
일어서며, 주승현이 나지막이 답했다.
“그냥 물어봐요, 도하 군.”
어차피 이도하가 작정하면 그에게 뭔가를 숨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주승현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도하가 물었다.
“…당신이야?”
빠득-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이도하가 저벅저벅 다가섰다. 주승현의 앞에 선 그가 우뚝 멈추었다. 찬바람이 까만 머리칼을 흔든다. 새까만 눈동자가 좀 더 낮은 눈높이에서 절 마주 보는 주승현을 훑었다. 마흔에 가까울 텐데 그가 아주 어렸을 때 TV로 보았던 것보다 별로 늙지도 않은 얼굴. 아니, 조금도 변하지 않은 얼굴을.
“당신이었어?”
이도하가 다시 물었다.
“나예요.”
주승현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