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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에 달이 뜬다-213화 (212/250)

213화

이도하 이 시국에 에너젠 다 털어 가셨답니다. 글 내려 주세요.

└ ??????

└ 아 시발 존나 뭐래 시발

└ 아니 시발 안 도와줄 거면 마력이라도 내놓든가 있는 것도 털어 갔다고?

└ 인소더블 특별법 때문에 계좌 동결되니까 개빡쳐서 다 털어 갔다던데 레알인 듯

└ 미친 존나 돈 때문에 세계도 팔아먹을 새끼

존나 억울하다 왜 이도하 같은 새끼들이 인소더블이냐? 이도하 캘포 때 미 서부 해안가 다 막아 냈는데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더만. 그 정도 되면서 어떻게 한 명을 안 도와주냐? 인소더블쯤 되면 감정도 없냐? 난 뉴스만 봐도 눈물 나고 화병 나던데 이도하는 시발 아 시발시발시발 존나 개억울하다 진짜 나 같았으면 한 명이라도 더 못 도와줘서 미안했겠다.

└ 2222222

└ 33333 내가 이도하만 한 능력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을 것 같은 사람들 생각 땜에 ㄹㅇ 잠도 안 옴.

……

└ 27272727

└ ㄹㅇ 대구에서 유치원 다 무너져서 애들 죽은 거 자꾸 생각나서 우울증 옴….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이틀이나 갇혀 있었는데 길 다 막혀서 장비도 하나도 못 들어가고 사람은 들어 올릴 방법이 없고. 특기자들 몇 명 도와주러 가서 애들한테 다 괜찮을 거라고, 금방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것밖에 못 했다며. 그랬는데 애들 결국 하나도 못 지켜 줬잖아. 이도하 왔으면 그거 그냥 한 방에 들었을 거 생각할 때마다 진짜 증오스러움.

“…….”

세운 무릎 위로 이마를 떨어트리며, 이도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하얀 바탕 위로 줄지은 까만 글씨들이 그의 망막에 새겨지듯 눈을 아프게 찌른다. 숨이 답답해서, 그는 한가득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어 보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폐부가 찌그러진 것처럼 여전히 숨 막히기만 한다. 차갑게 언 얼굴 위로 뜨거운 것이 주르륵 흘렀다. 이도하가 무심하게 그것을 슥 닦아 냈다. 그가 눈을 감았다.

‘화이람. 어쩌면, 그저 모르는 게 좋을지도 몰라.’

그가 무엇을 느껴 그런 말을 했는지, 이도하가 보지 못했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이 맞았다. 이도하는 생각했다. 네 말이 맞았어, 시오한.

‘다 알 필요는 없을 수도 있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걸.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해도, 뭔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그대로는 둘 수 없다고 했던 제 말은 오만이고 자만이었다.

제가 손에 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또 감추어진 것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모든 걸 확실히 하겠다고 달려들었으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대와 나를 이리 이어 주고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 족해.’

뒤엉킨 시간. 언제 또 뒤엉키거나 비틀려 버릴지 모르는 그 불확실한 가능성이 무서워서.

‘내가 당신을 잊을 수도 있잖아.’

‘내가 잊지 않아, 화이람.’

‘그대의 웃음, 목소리, 온기… 절대로 잊지 않을게.’

하지만 시오한. 내가 어떻게 또 네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던 맹세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어야 했을까.

‘화이람.’

“…응.”

이도하가 제 회상 속 목소리에 대답했다.

‘화이람.’

“…응, 시오한.”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이고 재차 깨문 입술에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일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화이람.’

“…미안.”

그러나 늘 그랬듯, 절 부르는 목소리는 지독하게 다정해서. 이도하가 결국 흐느낌처럼 말했다. 모든 걸 다 잊은 채 자란 24살의 이도하는 8살의 이도하와 다른 게 없었다. 저는 여전히 그때와 같다. 제가 또, 다 망쳐 버렸다.

“…미안해, 시오한.”

‘화이람.’

목소리가 다시 그를 불렀다.

‘왜 울고 있지?’

이도하가 번쩍 눈을 떴다.

“시오한?”

‘응. 그대를 염려하느라 밤잠을 못 이루고 있는 시오한이야.’

환청이 아니었구나. 입을 벌린 채로 이도하는 잠시 굳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시오한이라고 칭하는 걸 들으니 약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또 다른 게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약간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그냥 갑자기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가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도하는 황급히 얼굴부터 대충 쓸었다. 차갑게 언 얼굴을 아무렇게나 문지르니 사포를 갖다 댄 것처럼 쓰라렸다. 큼, 목을 가다듬은 이도하가 몇 번 입을 달싹인 뒤에야 겨우 말했다.

“…무슨 밤잠을 못 이뤄. 겨우 몇 시간 지났다.”

‘하루가 지났는걸.’

이도하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대륙을 오간다고 낮과 밤을 순식간에 왔다 갔다 했으니 제가 정말 시간 개념을 잃었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제가 돌아오고 정말 고작 서너 시간 지났을 뿐이었다.

이도하가 문득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하루나 이틀쯤 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다.

“…그건 몰랐네.”

이도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오한과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이후로, 세계 간에 시차가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이도하가 태연히 물었다.

“어때, 거긴? 업데이트 좀 해 줘. 최근 들었던 소식이 전쟁이었잖아.”

‘업데이트?’

아, 계약자 특혜. 이 무전기 방식으로 그런 건 없었지. 그것도 새삼 깨달은 이도하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꿀꺽, 지그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삼켜 낸 이도하가 입술을 당기며 물었다.

“새 소식 좀 달라고. 좋은 소식.”

‘좋은 소식이라…. 내 나라는 내가 안녕한 한 괜찮아, 화이람. 그리고 내 안녕은 그대에게 달려 있지.’

“…….”

‘그러니 대답도 그대가 가지고 있네.’

이도하가 고개를 숙였다. 시오한이 물었다.

‘화이람, 괜찮은 거야?’

그리고 문득, 이도하는 시오한이 언젠가 이렇게 비슷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이람, 잘 지내고 있어?]

처음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피시방에서 제 악플을 달고 있던 신은호를 붙잡아 도약했던 곳. 녹슨 운동기구들이 낡아 가고 있던 한적한 뒷산의 공원에서였다. 신은호와 씨름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고, 갑작스럽게 머리에서 울린 시오한의 목소리에 놀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늘 그대에게 묻고 싶었거든. 지금 어때… 잘 지내? 그런 것들을 말이야.]

그때는 몰랐다. 뜬금없고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도하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가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제가 묻어 버린 시간, 그 시간 속 시오한의 모습이 떠올라서.

제 세계를, 나라를 무너트려 놓고 사라진 아이. 그 모든 걸 다시 되돌려 놓고, 그의 죽음조차 되돌려 놓고는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작은 꼬마. 멋대로 그의 인생에 나타나, 끝까지 제멋대로 군 아이를 생각하며 창가에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서.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제가 뭘 했는지 똑똑히 겪어 놓고도 저를 생각하던 그는 여전히 이렇게 묻는 것이다.

괜찮냐고.

아니.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이도하가 속으로 대답했다. 괜찮지 않다. 전혀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 그럼.”

이도하가 대답했다. 웃으면서, 장난처럼.

“날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어. 당신 자꾸 까먹는 것 같은데, 나 인소더블이잖아. 당신 세계까지 다 쳐도 내가 제일 세다니까.”

그도 조금 웃는다.

‘그대의 말이 다 맞아. 그저 눈에 뭐가 들어가거나 했을 테지. 그대에게라고 바람이 불지 않는 건 아니니.’

“…….”

‘추운 곳에 있지 말아, 화이람. 그대도 감기에 걸려.’

망할. 이도하가 배에 잔뜩 힘을 주며 얼굴을 감싼 손으로 눈을 꾹 내리눌렀다.

다정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그대는 자꾸 끼니를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고 손 닿는 것에 있는 것을 대충 입에 넣고 마니까. 식사를 잘 챙기고. 제발 물로 배를 채우지 마. 이 잔소리에 이도하는 정말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망했다. 얼굴을 감싼 손 안쪽이 뜨거워져 그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찬바람에 얼어 버린 손이 그렇게 따뜻해지자, 꼭 다른 누군가의 손처럼 느껴졌다.

‘상처가 생기면 놔두지 말고, 감싸 놓기라도 해 줘. 나중에라도 내가 들여다볼 수 있게.’

“…나 안 그래.”

이도하가 간신히 대답했다.

‘물론이지. 행여나 보지 못한 사이에 그대에게 흉터가 남는다면 아플 내 마음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몹시 연약하여 쓰러질지도 모르잖아.’

“…참 나.”

입술을 꾹 한번 문 이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제 입술을 만져 보았다. 순간 몸이 움찔 떨릴 정도의 고통이 느껴진다싶더니 손에 피가 축축하게 잔뜩 묻어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걸레짝이 되었다고 해도 되겠다.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던 이도하의 눈동자가 곧,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손끝에도 푸른 빛무리가 어른거린다. 그 손끝이 입술을 가볍게 쓸자, 엉망으로 찢어져 피가 흐르던 살이 제자리를 찾아 말끔하게 붙었다.

‘난 여기 있어, 화이람.’

시오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꼭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였다. 이도하가 옆을 돌아보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도 없다. 찬바람만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 너머에 희끗희끗한 불빛이 뿌옇게 어른거린다.

그가 눈을 문질렀다. 삐죽빼죽 솟아오른 까만 도시의 지평선 너머로 이도하는 희미하게 동이 터 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우웅,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엄마 - 도하야 엄마가 미안해.

“…….”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던 섬광이 다시 일렁였다. 그의 발밑이 수면처럼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동심원의 파형을 그리며 사방으로 쫙 흩어졌다. 숨 쉬듯이 가볍게 도시의 흔적을 훑으며, 이도하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밤잠 설치지 마, 시오한.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괜찮다며.”

이도하가 말했다.

“내가 당신을 엄청 생각하고 있거든.”

‘…이럴 때면 그대는 꼭 그대를 부르지 못하게 했는데.’

“부모님 얼굴은 봐야지.”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이도하도 그에 맞춰 느리게 숨을 내쉬어 보았다. 공허한 한숨이 형태도 없이 곧장 바람에 흩어졌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그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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