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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에 달이 뜬다-104화 (104/250)

104화

“앞으로 재난 구조 안 하겠습니다. 이드로도 탈퇴합니다.”

또 한 번의 충격이 쓰나미처럼 기자들 사이를 휩쓸었다. 은퇴를 입에 담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은퇴할 겁니다- 하고 협박하는 것과 탈퇴합니다, 하고 단정 짓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더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요? 그럼 시발 니들끼리 알아서 해라, 하고 가버릴 수가 없다는 게 제일 환멸 나요.’

충격에 빠진 얼굴들을 보며 이도하는 지난 캘리포니아 대지진 당시 케이시 윌리엄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드로의 단장으로서 인소더블의 탈퇴 선언을 수습해야 할 케이시 윌리엄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녀가 했던 말은 여러 번 이도하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생각 날 때마다 매번 참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제가 무슨 성자도 아니고. 욕 먹어, 고소 먹어… 기분이 상해서 더는 못 해먹겠네요.”

할 수 없긴 왜 없나, 어디 한 번 알아서 해 보라지.

“단장과 합의된 사항입니까?!”

“합의가 왜 필요합니까, 내가 관두겠다는데. 기자님은 봉사하다 그만둘 때 허락받아야 그만두는가 봐요?”

이도하가 아주 싸가지 없이 말했다.

“이드로의 다른 단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그러는 기자님은 저한테 안 미안하십니까? 내가 사람을 몇십만 명을 구하고도 이 자리에 앉아서 이런 질문이나 듣고 있는데?”

이 정도 되니 기자들도 슬슬 깨달았다. 대화는 무슨. 이도하는 오늘 그들을 두드려 패려고 아주 작정을 한 것이다. 분위기 파악을 한 기자들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언론의 힘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나중 문제고 원래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했다. 이도하가 정말 저렇게 세상과 맞짱 뜰 기세를 보이는 성질머리라면 몸을 좀 사려야 하는 게 맞았다. 제 책상에서 기사를 쓸 때나 신났지, 사실 그들 중 누구도 이도하와 진짜 척을 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물론 사람은 참 다양해, 개중 몇은 아주 흥미로워했으며, 그중에 또 눈치 없이 아주 분개한 사람도 있었다.

“특기가 아깝다!!”

누군가 소리쳤다. 앉은 채였다.

“그럼 능력 좋게 가져가서 정의롭게 써보시던가요. KCS 이지원 기자님.”

이도하가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상황은 얼마든지 더 재미있는 난장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오래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더 하면 추해진다.

“누가 그런 말 했더라고요, 똑같은 인소더블인데 독일의 우르슬라는 뭐 했냐고. 저도 궁금하던데요, 이드로에 들어 사람 구한 나는 기껏 고소나 당하고 있는데 우르슬라하고 독일은 참 팔자 편하구나, 내가 사람 구하는 동안 그들은 뭐 했을까, 하고.”

우르슬라? 인터넷의 댓글 놀이가 아니라 이도하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이름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이도하가 그 이름을 직접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기자들의 손놀림이 한층 더 분주해졌다.

우르슬라가 세상으로부터 사라졌을 즈음에 이도하가 인소더블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두 인소더블은 서로에 대해 거론조차 한 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인소더블이 단 셋인데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기는 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인소더블과 인소더블, 이건 세상 모두가 기대하는 그림이었다.

“우르슬라가 이드로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이든 뭐든 나 몰라라, 해도 상관없는 거면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탈퇴하겠다는 거고, 은퇴를 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라면 나도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도하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우르슬라의 특기가 ‘되돌아오는 태엽’이었죠. 시간을 다루는 특기라는데… 지진 자체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억울하면 그쪽에 가서 한 번 하소연해 보시라고요.”

“같은 인소더블로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어느 기자가 물었다. 비교적 앞줄에 앉은 기자는 아주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보였다. 안경 너머의 눈이 이도하를 관찰하듯 응시했다. 이도하가 마주 보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STB 김연지 기자입니다. 특기는 워낙에 다양하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특기는 전례가 없고, 금기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도하씨 말씀은 지금 우르슬라의 특기라면 시간을 돌려 캘리포니아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이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들이 잦아들더니 정적이 찾아들었다. 다들 숨조차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인소더블. 지금 인소더블은 세상에 단 셋이며, 역사를 다 통틀어도 고작 넷에 불과하다. 개중 제 특기를 단 한 번이라도 바닥까지 끌어다 써 본 인소더블이 있을까, 하고 물어보면, 이도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인소더블인 저조차도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데 아무렴 저들이라고 대중이 있을까.

“글쎄요, 어떨까요.”

조용한 로비에 그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퍼졌다.

“다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기라면….”

이도하가 삐죽 입꼬리를 올렸다. 꼭 뭔가 알고 있는 듯이.

“이미 한 번쯤 해 보지 않았겠습니까?”

낮게 가라앉은 의미심장한 말에, 촤르르르- 다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도하는 물병을 따서 가볍게 목이나 한 번 축였다. 이 정도 했으면 시나리오는 알아서들 쓰겠지. 이번에 기자들이 얼마나 시나리오를 잘 쓰는지 알게 됐으니 기대를 해 봐도 되겠다.

“오즈에서 혹시 우르슬라를 만난 적이 있는 겁니까?!”

“이리스티리움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혹시 우르슬라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이번 지진에 오즈의 영향이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은호 군 폭행 사건도 연관이 있는 겁니까?!”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하던 이도하의 귀에 마지막 질문이 꽂혔다. 신은호- 이도하가 미간을 구겼다. 잠깐 미뤄두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요 며칠 내내 신은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액정에 조금 금이 간 걸로 그 난리를 쳐댔으니 죽으나 사나 핸드폰을 안고 다닐 것 같은데 여태 연락이 없다.

그 망할 보육원의 원장은 여전히 이도하보다도 더 바쁘게 인터뷰를 다니며 감성팔이를 하는 와중에 신은호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제 공식적으로 계약자가 되어 아이라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원장은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성질이 보통이 아니기는 해도 신은호가 나이에 비해 사리에는 제법 밝아 보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도하가 절 때렸다며 세상이 난리인 와중에도 묵묵부답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세상에 이름이 떠들썩하게 알려지기도 했고, 원장도 신은호를 잃어 좋을 게 없으니 그 꼬맹이가 다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기억 저편으로 미뤄두고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신은호는 신발 안에 굴러들어 온 돌멩이처럼 이도하의 머릿속을 심란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연관 없습니다.”

이도하가 짧게 대답했다. 신은호에 대해 길게 언급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뭐라고 얘기해 봐야 결국 신은호에 대한 관심만 커질 뿐이었다. 이도하는 차라리 리스트 빌딩 사망자 유족들이 저를 고소한 일로 신은호의 이름이 묻히길 바랐다. 그러나 이도하의 단답은 별로 좋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실컷 이죽거리던 이도하가 말을 줄이자, 몇몇 기자들은 뭐가 있긴 있구나!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만 것이다.

“어떻게 만난 겁니까? 왜 아이라에 먼저 밝히지 않았죠?!”

“오즈에서의 일로 부딪친 겁니까? 그래서 폭행했습니까?!”

“김대훈 원장은 아직까지 이도하씨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가요!”

“사과는 하셨나요?!”

사과는 내가 받아야 한다니까. 이도하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연관이 없다고 했는데 마치 때렸다는 말로 알아먹으니, 정말 미친 듯이 앞서간다. 이도하가 드르륵,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신은호 일은 해명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폭행이라고 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입증할 것도 없다. 결국 김대훈 원장이라는 사람이 해대는 짓이 껍데기뿐인 언론 플레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애 보호자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우린 피해자다.

그렇게 선수 쳐서 먼저 그런 프레임을 쓰려고. 나중에 가서는 아니었네, 하고 다들 시들해져 잊고 말 것이다. 물론 누구도 사과는 않을 테고.

그러니까, 이 일은 이대로 잠시 묻어놔도 된다. 이도하에게는 지금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이도하가 자리를 뜰 모습을 보이자 기자들이 다급하게 일어섰다. 한 명이 이도하의 코앞으로 다가오자 다들 너나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앞으로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은퇴라는 건 에너젠과 정부와도 협의해야 하는 사항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재난도 외면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오즈에도 가지 않는 겁니까?!”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이도하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독일 갑니다.”

우우웅- 이명이 울리더니 이도하의 눈에 섬광이 달아올랐다. ‘독일 갑니다.’- 그 말과 함께 푸르게 물든 눈동자를 본 사람들은 일제히 어? 하고 얼이 빠졌다. 여전히 너튜브 라이브로 그를 찍고 있던 유세오 마저 어, 어어어- 하고 저도 모르게 이도하를 향해 다가갔다. 초조하게 다리를 달달 떨던 더 브릿지의 직원들이 어어어어- 비슷한 소리를 냈다.

이도하가 빙그레 웃었다. 사뭇 다정하게 손을 흔든다. 어어? 이도하의 지척에 있던 어느 기자가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아주 지척이라, 보슬보슬한 카디건이 바로 손에 잡혀야 맞았다. 그러나 뻗은 손은 황망하게 허공만 휘저었다.

없었다.

방금 전까지 이도하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공기만 황망하게 맴돈다.

좆 됐다.

그나마 상황 파악이 빠른 누군가 하얗게 질려 중얼거린 목소리가 조용히 침묵을 깼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전에 없는 공황에 빠져들어 눈만 꿈뻑거렸다. 느리게 진행되던 상황 파악이 마침내 완료된 순간 전구가 반짝 들어오듯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

남은 것은 모든 이들이 패닉에 빠진 아비규환이었다. 여전히 현실을 믿지 못하고 이도하가 서 있던 자리를 손으로 휘저어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도하가 투명해지기라도 했다고 생각했는지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보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사람, 갯강구들처럼 잽싸게 흩어져버린 더 브릿지의 직원들을 쫓아 뛰어나간 사람, 핸드폰에 대고 역정을 지르는가 하면 그 와중에도 침착하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한 개판이었다.

“헐….”

그 가운데 오도카니 선 유세오는 허망하게 핸드폰을 내렸다. 이도하가 장담했던 대로 조회수는 역대 최고를 찍었으나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무리 멘트도 뭣도 없이 라이브를 끈 유세오가 고개를 저었다.

“…인생은 이도하처럼…. 와.”

***

<속보>기자회견장서 사라진 이도하... ‘독일 간다’

<속보> 인소더블 이도하, 장막 찢고 국경 넘었나...

<속보> 인소더블 이도하, 이드로 탈퇴 선언.

<속보> 이도하 ‘우르슬라라면 시간 돌릴 수도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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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하 발언 화제… ‘짜증 나게 굴면 은퇴 한다.’

이도하 아동 폭행 논란 일축 ‘폭행한 적 없다.’

‘고소 내 알 바 아냐…’ 거침없는 이도하 발언.

캘리포니아 지진, 정말로 되돌릴 수 있나… 독일은 묵묵부답

독일 외교부, 이도하 위치 독일 내에서 파악 안 돼… 벌써 이주째.

외신 ‘독일은 세계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 있어.’

기자회견 전 유세오 라이브에 포착된 이도하, 여유로운 모습…

마력 특수에 쏟아지던 각종 정책 올스톱.

국회 ‘인소더블 특별법’ 발의.

‘인소더블 특별법’, 유성호법, 지유법과 충돌… 강행 가능한가.

ㄴ 조졌네 시발 다 조졌어. 좀 살만해지려나 기대한 내가 등신이다.

ㄴ이도하 진짜 실망... 솔직히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말을 저렇게 밖에 못 하나. 유족들 한테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미안하다 빈말이나마 했으면 됐지 알바 아니라는 둥 처신이 진짜 잘못됐음. 그러니까 기껏 사람들 구해놓고도 욕먹지. 이제 보니 캘리포니아 지진 때 바다 갈랐던 것도 쇼로 보임. 진짜 그렇게까지 안 해도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ㄴ솔직히 인소더블씩이나 되는데 예의 겸손까지 바라는게 존나 웃기는거지 술담배마약존나 하고 놀아도 마력만 매개하면 되는 거 아님? 그냥 좀 내버려두지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 그놈의 유교 다 나가디져라 좀

ㄴ이제 범법잔데 뭘 내버려둬ㅋㅋㅋㅋㅋㅋㅋ국제법까지 무시하는 인소더블 클라스 지리고요

ㄴ와 그럼 독일은 이제 인소더블 둘이나 보유한 거네

ㄴ뭐 이도하가 이미 독일인 된것처럼 씨부려 빡치게

ㄴ개쇼한거다에 한 표 아무리 인소더블이 좋아도 독일 이미 우르슬라 있고 이도하가 저따구로 넘어갔는데 받아들이면 걍 우리나라랑 붙자는 거임 입장 난처해서 안 받아들일 것

ㄴ개소리 지껄이고 있네 진짜 짜증나게 모르면 걍 아닥하고 있어 인소더블 둘이나 붙으면 우리나라따윈 그냥 개찌끄레기되는건데 뭐라는거야

ㄴ인소더블 특별법을 이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국개의원들 일 잘한다 아주 설레발치면서 나대다가 시망했네ㅋㅋㅋㅋㅋ

ㄴ이모형 믿었는데...

ㄴ독일 입 다물고 있는게 제일 빡침 저새끼들은 입이 다 쳐막혔나 우르슬라가 그래서 뭐 어떻게 된건데 시간 ㄹㅇ 돌릴 수 있나

ㄴ이도하 저 인성 보니까 진짜 애 때렸고, 일 커지니까 독일로 튀튀 한 거다. 인소더블이다 이모형이다 사람들이 다 우쮸쮸 해주니까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본데 인소더블 특별법 진짜 빨리 했어야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ㄴ아니 제일 어이없는 건 저렇게 법이고 뭐고 싸그리 다 씹고 다른 나라로 날랐는데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는 거임ㅋㅋㅋㅋㅋㅋ이거 진짜 심각한 건데 인소더블 존나 무섭다 무서워

Chapter 5. 토막나무 끈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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