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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에 달이 뜬다-94화 (94/250)

94화

“잠깐만, 아주 잠깐만 볼게.”

“응, 화이람.”

이도하가 눈을 떴다. 섬광이 완전히 달아올라 형형한 푸른빛을 띤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도하의 손바닥에 닿은 그림자, 천 년 전부터 늘 그곳에 있었던 어둠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방사형의 파장이 그의 손으로부터 확 퍼지는 순간 푸르게 물든 그림자가 수천, 수만 조각으로 깨어졌다.

깨어진 조각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갈래갈래 뻗어 나온 빛줄기들이 동공을 관통하듯 펼쳐졌다. 사위가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 천 년 동안 켜켜이 쌓여 있던 흔적, 기억들이 묻혀 있었다.

우우웅-!! 거대한 힘에 대기가 찢어질 듯 바르르 비명을 질렀다. 어느 순간, 이도하는 다급한 발소리를 들었다. 내달리는 달음박질 소리. 신발 밑굽에 부딪힌 바닥이 쿵-! 쿵-! 울린다. 비명 소리가 들린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비명 소리가 석벽에 부딪혀 산만하게 뒤엉켰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속이 진탕 뒤집힐 것처럼 역겨운 피 냄새가 이 동공에 온통 가득하다.

-살려줘.

그리고 이도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핏기가 느껴지는 쇠락한 목소리. 쇠가 부딪치는 것처럼 날이 선 갈라진 목소리였다. 울며 흐느낀다.

-살려줘, 살려줘. 살고 싶어.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어 번뜩였다. 이곳에 빛이 있었다. 붉게 어른거리며 타오르는 곳은 촛불이었다.

-제발 살려줘.

바람이 불었고, 빛이 사그라들었다. 남은 것은 어둠뿐이었다. 어둠이 이도하에게는 시야였다. 잘못된 곳에 초점도 맞지 않게 빔으로 비춘 화면처럼 뿌옇던 것들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도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 소환되어 나타났다. 철컹! 쇠가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가 동공을 차갑게 울렸다. 무거운 무게. 가쁜 숨. 낯선 바람 냄새.

-…이게 뭐지?

거친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도하는 문득 푸른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당혹과 경악, 불신으로 가득 찬 눈.

-당신은 뭐요?

그 순간, 쨍그랑-!! 모든 게 깨어졌다. 사위를 가득 채웠던 푸른빛도, 수만 개로 깨진 그림자 조각도 없었다. 다시 어둡고 고요한 동공 안이었다.

“시오한!”

이도하가 곧바로 시오한을 찾았다. 그는 이도하의 옆에 앉아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어두워서 안색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시오한이 이도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으켜줘, 화이람.”

이도하가 얼른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켰다. 거짓말처럼 그 큰 키가 쑥- 딸려 올라왔다. 분명 열이 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아주 차가웠고, 쏟아지듯 이도하에게 기대오는 몸도 서늘하기만 했다. 시오한이 농담처럼 칭얼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어.”

“가자.”

이도하는 마음이 조급해져 재빨리 도약했다. 빛 한 점 없는 지하 감옥에서 시오한의 침실로. 순식간이었다. 서늘한 석벽 냄새를 품은 축축한 냄새는 사라지고 산뜻한 침실에 그들은 서 있었다. 이것도 벌써 몇 번째인지, 이도하는 이제 제법 능숙하게 시오한을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시오한이 끙, 소리를 냈다. 빛 아래에서 보니 핏기라고는 없이 창백했다.

“속이 안 좋아.”

“물 갖다 줘?”

“입 맞춰 줘.”

“…….”

이도하가 대답이 없자, 시오한은 이마에 손을 얹은 채로 슬그머니 실눈을 뜨더니 사르륵 웃는다. 이도하는 헛웃음을 흘리고는 그의 이마에 꾹, 입술을 눌렀다.

“우르슬라가 아니었어, 시오한.”

“허면?”

“남자였어.”

이도하가 말했다. 모든 게 흐릿해 마치 꿈을 회상하는 것과 같았다. 순간순간 강렬했던 장면만이 사진처럼 남아 있었다.

“비명 소리가 가득했고, 피 냄새가 많이 났어. 누군가가 살려 달라고 빌고 있더라. 살려 줘, 살려줘, 제발 살려줘… 계속 그렇게만. 그게 소환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던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명 소리는 배경처럼 멀었고, 목소리는 크고 분명했으며, 하나였다. 엎드린 남자. 이도하는 그를 본 순간 알았다. 그자가 소환주였다. 그의 목소리였다.

“소환된 건 우르슬라가 아니었어.”

이도하는 지친 마음이 들어 시오한의 이마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당신은 뭐요?

굵은 목소리. 이도하는 진실로 묻고 싶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지?

“그 여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맹약을 시도했던 사람, 혹은 맹약을 만들어낸 사람. 그런데 우르슬라가 아니었다. 어째서 아니지?

그렇다면 모든 건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모든 추측은 현자의 탑에 있던 천 년 전의 고서와 그와 유사한 기록을 담고 있던 우르슬라의 스크랩- 맹약에 연관된 두 기록을 근거로 우르슬라가 천 년 전의 계약주에게 소환되어 계약했을지도 모른다는 데서 시작했다.

천 년 전 멸망했다는 이름 없는 왕국, 그 왕국에서 살해되었을지도 모르는 우르슬라의 계약주, 어쩌면 그 죽음을 예측했을지도 모를 우르슬라가 맹약을 만들어냈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시간을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리다 모든 게 뒤엉키고 말았다고.

하지만 그 유적의 소환진에서 소환되었던 건 또 다른 계약자였다.

“하지만 그건 분명 맹약이었어, 시오한. 피 냄새가… 피 냄새가 엄청 났다고.”

제가 소환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살려달라고 했어.”

아주 잠깐 엿본 천 년 전의 순간은, 이도하가 아는 유일한 맹약의 순간과 일견 닮은 곳이 있었다. 저와 시오한의 맹약이었다.

‘살려주겠어?’

시오한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이도하의 생각을 눈치챈 듯 시오한이 말했다.

“화이람, 내 기원은 목숨이 아니었어.”

시오한이 이도하를 당겨 안았다. 이도하가 팔에 힘을 풀고 완전히 그의 위로 몸을 겹쳤다.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다.

“기적이라고 했었지.”

“응.”

그래, 닮아 있지만 같지 않다. 살려줘, 살려줘. 메아리처럼 울리던 간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흐느끼고 있었다. 빌고 있었다. 그게 그자의 기원이었다. 그는 단지 살고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천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우르슬라도, 맹약도, 저도 자꾸 그 시간에 조우하게 될까.

“…내가 찾아낼게, 시오한.”

그게 뭐든 간에, 이제는 아무것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절대로 잊지 않고….”

이도하가 말했다. 어린이 이도하는 특기로 방학 숙제를 다 해결하지 못해 결국 엉엉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실 울었던 것도 숙제를 다 못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특기로 난생처음 하지 못하는 일에 부딪힌 어린아이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혼이 나긴 했지만 용맹한 어린이 이도하는 에이씨, 하고 말았으니 숙제를 못 했다고 큰일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일 역시 그럴지도 몰랐다. 시간이 뒤엉키건 말건 인식하지도 못한 채 지금껏 멀쩡히 잘 살았으니 그대로 두어도 큰일 같은 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멸망하지도 않을 테였고, 지금껏 그랬듯 뒤엉킨 채로도 그냥 흘러갈 것이다. 방학 숙제처럼, 뒤엉킨 시간 같은 건 뒤로 한 채로. 그래도 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나도 지금의 당신이 제일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도하는 시오한이 웃었다고 느꼈다. 등을 감싼 손이 그를 더 꽉 안았다. 이도하가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가야 했다.

여태 이 순간들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려고 했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평생을 볼 테고, 이런 순간들은 수도 없이 올 테니 결국 아무것도 아닌 때가 올 거라고.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도하는 어째서 이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매번 시오한이 절 그렇게 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의 그대를 가장 사랑해.’

어쩌면 당신은 그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몰라서. 갑자기 속이 따끔하게 아파 와, 이도하는 좀 더 말없이 시오한을 끌어안고 있었다.

“잘 자, 시오한.”

조금 뒤, 이도하가 말했다. 화답하듯, 위로하듯 시오한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두 어 번 토닥였을 때에는 이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과도 같은 푸른 알갱이만 맴돌다 떠오르며 사라졌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텅 빈 제 손을 바라보던 시오한이 작게 기침했다. 그가 입가를 훔쳤다. 침의 소매에 핏자국이 번졌다. 그러나 시오한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이, 깜깜한 창밖에 침잠한 시선을 던졌다. 이내 빛줄기 같은 속눈썹 아래로 흐려진 황금색 눈동자가 자취를 감추었다.

***

<단독> 이래서 행적 숨겼나… 인소더블 이모 씨, 미성년자 폭행 의혹

최근 캘리포니아 대지진 당시 논란에 휩싸였던 인소더블 이모 씨(24)가 오즈에서의 일로 미성년자를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피해자는 12살 신모 군. 2살 겨울에 은혜의 집 담벼락에서 발견되었던 신모 군은 그 날 이후로 쭉 은혜의 집 원장인 김 원장(57)의 보호 아래 밝고 구김 없이 자라왔다. 놀라운 것은 이런 신모 군이 계약자라는 것. 김 원장은 신모 군이 10살 때 계약자가 되었다고 밝혔으며, 그런 신모 군을 보호하기 위해 여태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신모 군이 세상에 단 셋뿐인 인소더블 중 하나인 이모 씨(24)를 오즈에서 조우했으며, 오즈에서의 일로 앙심을 품은 이모 군이 신모 군을 찾아 협박, 폭행했다는 것.

김 원장은(57)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불 속에 숨어 울기만 한다. 시설에서 자랐음에도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는데, 침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상처는 크지 않지만 신모 군은 현재 폭행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김 원장은 이후 아이라(IERA)에 신모 군이 계약자인 것을 밝힌 상태이며, 경찰에서 이에 대해 특별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신모 군의 법적인 보호자로서 신모 군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미성년 특기자들은 소환에 응할 만큼 성숙하지 못해 계약자가 되지 못한다고 여러 번 강조해 왔던 아이라가 이번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며, 유명세에 비해 그동안 오즈에서의 행방이 묘연했던 이모 씨에 대한 파장 역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소더블로서, 또한 사회적 명성을 가진 공인으로서 행보에 대한 책임감이 촉구된다.

권덕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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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26474)

12살에 계약자 미친 거 아님 오졌다;;;;; 아이라 이 새끼들 다 대가리 박아라 미성년자 계약자 절대 나올 수 없다 ㅈㄹ 하더니 결구 일 났네

ㄴ 12살에 와 도랏다 진짜 존나 인재네

ㄴ 그냥 어렸을 때 계약했다 뿐이지 뭔 인재야 똨ㅋㅋㅋㅋ얼마나 많은 마력을 매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특기자들 18살 이후로 특기 크게 변화 없는 거 모름?

ㄴ 그러니까 인재지 18살까지 앞으로 6년이나 남았는데 그 동안에 특기 개발 충분히 할 수 있음ㅋㅋㅋㅋㅋ열등감 봐라 그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난 존나 부러우니까 시발 12살에 돈길 폈네

ㄴㅋㅋㅋㅋㅋㅋ린정

??????????

ㄴ또 믿고 거르는 권덕훈 이 새끼네 기레기 새끼야 애가 폭행당했다는 증거 하나라도 내놓고 얘기해라 보육원 감정 물타기 오지네 ㅅㅂ

ㄴ애가 폭행당했다는 증거를 기자가 찾아야 함? 경찰에서 수사를 해야지 믿고 거르는 경찰 추가요 ㅅㅂ 이모형 무서워서 무슨 수로 수사하겠냐 형군단들 무서워서 ㄷㄷㄷㄷ

ㄴ형군단은 또 뭐야 도랏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상식적으로 이모형이 뭐가 아쉬워서 12살짜리 애를 때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쫌 제발 쫌

ㄴ말이 되건 안 되건 피해자가 있으면 일단 수사를 해야지 인소더블 무서웠으면 처음부터 밝히지ㅣ도 않았을텐데 저 원장 용기있는 사람인듯

ㄴ저 시설 근방에 사는데 원장 좋은 사람임 ㄹㅇ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애들도 엄청 좋아함 이런 일로 어그로 끌 사람은 아님.

ㄴ내가 보기엔 개쓰레기같은뎈ㅋㅋㅋㅋㅋㅋ아니면 애가 10살에 계약자가 됐다는데 그걸 왜 숨김? 전문가들한테 보내서 보호를 받게 해야지 지가 뭐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보나마나 애 마력 지가 뒷구멍으로 다 팔아먹었다

ㄴ네네 뇌절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그래서 ㅇㄷㅎ 가 애를 때렸다는 거야 말았다는 거야 진짜 때렸으면 존나 실망이다 ㅅㅂ

기자 제목 고쳐라 12살이면 미성년자 수준이 아니고 아동이다 아동, 아동 폭행

사람 죽이더니 아동 폭행까지 ㅇㄷㅎ 인성 클라스

저번에 그 카페에서 뺨따구 치던 거 보면 사람 한 둘 패본 솜씨가 아니긴 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이게 또 이렇게 돌아오네?”

긴 소파에 누운 남자가 높게 들어 올린 핸드폰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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