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홧김에라고.”
“홧김에.”
시오한이 덧붙였다.
“그대가 소환된 걸 알고 나도 모르게.”
“두 번째 것도?”
“그건 알고.”
“어떻게?”
“글쎄… 설명하기가 어려운 걸. 그냥, 이라고 하면 또 혼을 낼 거지?”
“내가 언제 혼을 냈다고 그러냐.”
“말하지 않았다고 막 윽박지르고… 웃지 말라고 하고….”
“그르치. 그건 혼을 낸 거지, 맞지.”
불쑥, 끼어드는 말에 시오한과 이도하가 앞을 보았다. 손바닥만 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낸 가판의 상인이었다. 시오한이 ‘오리도스’ 라고 설명한 음식을 내밀며 상인은 두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투덜거렸다.
“우리 아내도 말이야, 맨날 그랬어, 안 그랬어? 하면서 실컷 혼 내놓고는 자기가 언제 혼을 냈냐고 나한테 그러는데 나 원 참, 억울해가지고… 혼나는 사람 따로 있고 혼난 사람 따로 있다니까.”
“아, 예….”
이도하가 떨떠름해하는 동안 시오한이 상인에게서 오리도스를 받아 건넸다. 주변이 어두운 데다가 그들은 입구에서 팔던 싸구려 로브의 후드를 하나씩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라고 해봤자 고작 예사롭지 않은 턱선이나 코끝 정도나 어렴풋이 보였다. 그래도 웃고 있다는 건 알겠다. 이도하가 슬그머니 시오한을 밀었다. 가쇼. 상인이 대충 손을 흔들었다.
“거 봐, 화이람. 나 혼난 거잖아.”
시오한이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씁. 이도하가 입술을 물었다.
시오한이 그를 이끈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손톱만 한 등을 무수하게 걸어놓은 야시장이었다. 거미줄에 걸린 별처럼 등은 아주 작고 낮아서 키가 큰 시오한의 머리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기 일쑤였다. 발밑과 물건만 겨우 비출 정도로 조심스러운 빛이 어렴풋하게 예쁘고, 수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많지만 은밀히 소란스러운 곳이었다.
미로처럼 뻗은 이 좁은 골목에는 팔아도 되지만 어디에서도 팔지 않을 것, 팔면 안 되는 것, 가지고만 있어도 큰일이 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가끔 굉장한 것을 건질 때도 있다고 시오한은 설명했다.
“다시 할 수 있는 거야?”
“아마도. 그대가 소환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큰 힘을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도약은 그대가 있는 곳으로만. 사실 그만하면 충분하지.”
길가에 서서 무언가를 먹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용케 휩쓸리듯 걸으면서 물건도 사고 음식도 먹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둘 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둘은 막다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고작 건물 사이로 들어왔을 뿐인데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한층 더 조용해졌다. 아주 좁아 각자 벽에 등을 기대고 서도 발끝이 교차되고 무릎이 닿았다.
이도하는 ‘그냥’이라고 하는 시오한의 말을 이해했다. 어차피 특기라는 게 그랬다. 특기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고 하면 역시 ‘특기를 쓸 때 어떤 느낌인가요? 어떻게 쓰나요?’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건 특기자들에게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나요?’ 하는 질문과 같았다. 설명할 길이 없다. 본능과 감각에 의존하는 영역이었고, 아마 시오한이 말한 ‘그냥’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능력 공유.
이건 정말 고민할 것도 없이 맹약의 힘이 분명했다. 분명 엄청난 일이었다. 우와! 대박! 쩐다!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도하는 이상하게 싱숭생숭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주춤주춤한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시오한을 보던 이도하는 숟가락만 휘적거리던 오리도스를 한가득 퍼 입에 넣었다.
이도하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본 시오한이 얼굴로 물었다.
“맛있어?”
“…맛있네.”
엄청나게. 이도하는 제가 뭘 먹었나 싶어 다시 한 번 그릇 안을 살폈다. 쌀과 밀가루 찰떡같은 것을 각종 채소와 함께 소스로 버무린 음식은 피자와 스파게티, 리조또가 만나 하면 안 될 짓을 하고 낳은 음식 같았다. 생긴 건 좀 의심스럽게 생겨서 맛은 엄청나게 자극적으로 좋았다.
이도하가 연이어 찹찹 숟가락을 놀리는 것을 본 시오한도 그제야 느린 숟가락질을 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그대의 힘을 써봐야 서툴고 미약하기만 해, 화이람.”
“발전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마음이 없어.”
이도하가 그를 보았다. 왜? 하고 묻지는 않았다.
“그냥 그대가 곁에 있으면 되는걸.”
“…그렇기는 하지.”
입 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을 음미하며 이도하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이 오리도스라는 게 왜 불법 야시장에 파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거의 불법적인 맛이다. 우물거리며 이도하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시오한과 눈이 마주쳤다.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의 것처럼 조그만 숟가락을 물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시오한은 퍽 귀여워 보였고, 그래서 이도하는 그냥 웃었다.
“뭐가 더 있으려나.”
이도하는 그 시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형수의 심장에 검이 관통하던 순간. 저는 그를 등지고 있었는데도 이도하는 분명 그를 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고통과 공포에 질린 눈, 가슴을 뚫고 들어간 검, 그 검을 잡은 시오한의 손. 시오한의… 시선.
“궁금해?”
“당신은 안 궁금해?”
이도하가 되물었다.
“맹약에 대해 모른다고 했잖아.”
“응.”
꼬박꼬박 대답은 하는데 참 영양가가 없다. 모르는데 왜 안 궁금하냐고. 시오한은 때때로 의뭉스럽게 굴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다 아는 사람처럼 굴면서 모른다고 한다.
이도하의 눈초리를 받은 시오한이 느릿하게 숟가락을 놀렸다. 배가 고파서 힘이 없다는 사람치고는 참 느린 속도였는데, 손짓이 정말로 힘이 없는 사람 같기는 했다. 이도하가 시오한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열이 오르고 있었다. 한여름 밤에 산책을 한 사람처럼 따뜻하고, 땀이 배어 있다.
“시오한, 당신 말이야.”
“응, 화이람.”
이도하가 시오한의 손에서 오리도스를 가져갔다. 숟가락을 몇 번 놀리는 것 같지도 않더니 과연 거의 먹지도 않았다. 이 불법적인 맛이 나는 음식을 과연 환자가 먹어도 괜찮을까 싶은 의문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아플 때는 뭐든 먹어야 한다. 시오한의 열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직접 퍼서 입에 대 주자 시오한은 잠시 놀라다, 곧 입을 벌렸다. 언제는 숟가락도 무겁다던 사람이, 새삼스럽게.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내내 깨작거리기만 해 소스에 젖은 그릇이 흐물흐물하게 손에 달라붙었다. 이도하는 남은 것들을 저어 마지막 숟갈에 퍼내며 여상하게 물었다.
“…내가 그대에게?”
“아니야?”
이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시오한이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도하가 숟가락을 내밀었다. 시오한이 이도하의 손을 잡아 숟가락을 물었다. 이도하가 손을 빼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시오한이 그의 손에 들린 것들까지 가져가 한쪽에 대충 던진다. 조그만 생쥐들이 기다렸다는 듯 구석에서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남은 오리도스를 찢어갔다.
“그렇다면 물어봐, 화이람.”
시오한이 제 로브 자락으로 이도하의 손을 닦아주었다. 생전 누군가에게 뭘 해 줘 본 적이 없어 몹시 서툴렀다. 이도하는 그 서툴고 다정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들었다.
“거짓말, 안 하는 거다.”
이도하가 말했다. 생각해 보면 시오한이 그에게 거짓말 같을 걸 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뭘 해야 말이지. 이도하는 옆에서 놀고먹기만 하는 그의 계약자이고 맹약자였다.
만일 시오한이 정말로 제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이도하는 맹약자라고 해도 제가 그것을 판별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사실 몰랐다. 이도하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오한의 감정이지 생각이 아니었다. 시오한이 거짓말을 한다고 심장이 벌렁벌렁 뛸 사람은 아니다. 시오한은 늘 다정했으나 이렇게 의뭉스럽게 굴 때가 있었고, 또한 그는 위정자였다. 그가 저를 아낀다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게 반드시 진실만을 말해야 할 전제는 아니었다.
거짓말하기 없기다- 퍽 유치하게 들리는 것 같은 그 말에 시오한이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웃었다.
“내가 의심스러워?”
“의심이 아니라….”
이도하가 콧등을 찡그렸다. 그게 아니라.
이도하는 거짓말을 대단케 여기지는 않았다. 거짓말하기 없기, 새끼손가락 꼭꼭- 따위는 세상이 오색찬란한 유치원 시절에나 하는 짓이다. 절대로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 살겠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코웃음이나 나올 일이다. 게다가 그는 평범한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해 봐야 뭐. PPT 다 만드셨어요?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그런 정도의 거짓말?
그러니 시오한이 그에게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혹은 한다고 해도 이도하는 그랬구나, 할 수는 있었다. 그런 일에 지나지 않을 테였다. 이도하는 시오한의 감정을 의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정말 그렇다고 하면… 망할. 이도하가 민망함에 입술을 꾹 물었다가, 말했다.
“서운한 것 같아서.”
최대한 무덤덤하고 여상하게 들리기를 바라며 이도하가 말했다. 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잉잉 엉엉. 그런 걸 보면 저런 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난린가, 하고 살았었는데. 이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고… 어느새 멈춘 시오한의 단정한 손끝만 바라보고 있던 이도하는 턱을 받치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코끝이 스치더니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한 걸음 밖으로 발걸음이 소곤거리는 인파가 지나는 골목 안에 입맞춤 소리만 울렸다. 엇갈린 발이 좀 더 깊숙이 들어가고, 허벅지가 스쳤다. 균형을 잃은 이도하가 시오한이 기댄 벽을 짚었다. 우둘투둘한 낡은 벽이 파고든 손가락에 우수수 가루를 흘렸다. 입술이 떨어지고, 이도하가 눈을 떴다. 지척에 다가온 속눈썹 한 올 한 올 사이로 그를 보는 눈은 꼭 기뻐하는 것 같았다. 착각도 아닌 것이, 곧 그가 즐겁게 웃었다.
“맛있다.”
“…이….”
마침 오리도스를 먹고 키스를 하니 굉장한 맛이 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속으로 좀 낯부끄러워하던 이도하는 충격을 받았다. 불의의 습격을 받고 말문을 잃어 뻐끔거리는 입술을 시오한이 말끔히 쓸었다.
“거짓말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꾸며서 말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영영 없을 거야, 화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