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믐밤에 달이 뜬다-32화 (32/250)

32화

“야, 최준원, 시발, 너는 뭐 하는 새끼야?”

등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이규원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영 꼴이 좋지 못했다. 입술은 다 터져 있었고,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양쪽 뺨은 벌써 새파란 피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쪽 눈을 핏발이 서 있었다. 찢어진 이마에서 흐른 피가 옷깃과 앞섶을 다 물들여 언뜻 보면 교통사고라도 당한 사람 같았다.

쯧쯧, 최준원이 혀를 찼다. 이규원이 눈을 부릅뜨건 말건 그는 태연하게 옆 소파를 두드렸다. 와서 앉아.

“또 나한테 화풀이냐. 내가 뭘?

“안 말리고 뭐했냐고?!”

“안 말리기는, 난 분명 말렸다? 영상, 안 봤어?”

아무 데나 검색해도 나오는데. 최준원이 핸드폰은 흔들었다. 이규원이 바르르 떨며 한껏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최준원은 이성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월 그룹의 손자였다. 그리고 이규원처럼 내다 버린 자식도 아니었다. 바로 문 뒤에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양껏 성질을 부릴 수가 없는 상대에, 장소였다. 결국 이규원은 거의 악에 받친 얼굴로 제 머리만 쥐어뜯었다. 으으으- 그가 분에 못 이겨 신음했다. 최준원은 늘 그렇듯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그래, 뜯어라. 가진 게 돈뿐인데 심으면 되지 뭐.”

“이 시발 새끼 진짜….”

으르렁거리면서도 이규원은 결국 그가 가리킨 소파에 털썩 앉았다. 주르륵, 몸을 미끄러트리며 드러눕다시피 했다. 최준원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이규원이 탁 잡아채 제 이마에 갖다 대었다가 화끈한 고통에 펄쩍 뛰었다.

“뭐라셔?”

“시발… 내일 뒤에 기자회견 할 테니까 공식적으로 사과하래. 개 같은 영감탱이 진짜….”

“와, 그 얼굴로?”

“지금 얼굴이 문제야?”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이규원이 흘긋 눈치를 보았다. 잘근잘근 이미 다 터진 입술을 씹던 그는 거칠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이규원은 어렸을 적부터 사고만 쳐 왔고, 맞는 데는 거의 이력이 나 있었다.

그 말 그대로 다 터진 얼굴은 이규원에게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오기로 바짝 선 자존심에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 게 문제지. 이규원의 상식대로라면, 열등한 사람들 앞에서. 팔걸이에 턱을 괴고 태연하게 그를 보던 최준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그냥 사과하고 수습해라. 일 더 키우지 말고.”

“닥쳐, 개새끼야.”

최준원이 느긋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규원은 구제불능의 쓰레기고 멍청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분별력이 없지는 않았다. 누구도 그 정도로 생각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성 그룹이 했듯이 재빠르게 사과하고 납작 엎드리고 있는 게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인 걸 지금의 이규원도 모르지는 않을 테였다. 하지만… 괜히 불씨를 놔둘 필요도 없긴 하지. 최준원이 삐뚜름히 웃었다.

“이규원.”

물감이 퍼져나가듯, 좁은 동공으로부터 푸른빛이 번져나갔다. 웅- 미약하게 공기가 울었다. 까만 홍채를 완전히 잠식한 새파란 푸른빛 눈동자로 최준원이 이규원을 바라보았다. 이규원은 여전히 제 손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일 길게 끌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는 거 알지? 고분고분 회장님 말 듣고, 당분간 조용히 지내.”

“…알어, 새끼야.”

이규원이 순순히 대답했다.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푸른빛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읏샤- 그가 일어서며 이규원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김 박사님한테 네 대가리 기워달라고 해야지.”

최준원이 빙그레 웃었다.

***

경영대18 이주연 - 선배 대박 멋있어요 역시 경영대의 자랑 사랑해 멋있어 잘했어 칭찬해 응원해

경영대18 이주연 - 그래서 선배 학교 언제와요 잘생긴 얼굴 좀 보여줘요

경영대18 김지희 - 선배 짱이에요 멋있어요 잘했어요 칭찬해요 응원해요

유세오 - 형 진짜 대박 멋있어요 (이모티콘) (이모티콘) (이모티콘)

유세오 - 근데 형 오즈에서 또 뭐했어요 폐하 또 왜 빈통뙛어요 형 저 진짜 힘들어요 엉엉이리나랑 놀고싶어요

유세오 - 형 나중에 저 너튜브 라이브 한번만 나와주면 안돼요?(이모티콘)(이모티콘)

경영대 윤윤형 - 난 네가 또라인걸 진작 알고있었다 자랑스럽다

경영대 윤윤형 - 근데 교수님이 취업계 레포트 내래 20장 11포인트 줄간격160

김똘 - 이도하씨 역소환 영상 계속 봐도 꿀잼 지친 하루의 활력소네요

김똘 - 내일 연구소 올 거면 올 때 메로나

01083726483 - 야 도하야 뭐하고 지내냐ㅋㅋㅋ밥 한 번 먹자

01069263321 - 도하야 안녕 잘 지내? 그냥 뉴스 보고 응원하고 싶어서 문자했어 내 주위 사람들도 다 너 응원해

경영대16 김석현 - 선배님 멋있어요 칭찬해요 응원해요(이모티콘)

삶과 문화 조별과제 - 멋있어요 잘했어요 칭찬해요 응원해요 (엄지척)

할머니 - 도하야우리손자는아무잘못업다할머니하고가족들하고다도하응원해기죽지말고화이팅

이도윤 - 형 존나멋있어 씨 형최고사이다 십팔만잠 마심 와 대박씨 형 언제와 크리스마스에와? 할머니생신때와? 나 고모네 놀러가도 됌?

이도율 - 오빠 이도윤 갑자기 발작하는 거야 신경쓰지 마 아빠가 오빠 잘했대(이모티콘) 오빠 머싯어ㅋ ㅋㅋ

01022937754 - 오한울입니다. 할 얘기가 있는데 좀 만나죠. 내일 3시.

“이거 진짜 웃기는 놈이네….”

질린 얼굴로 쏟아진 메시지를 정리하던 이도하가 까딱 눈썹을 올렸다. 위치가 함께 태그 되어 있었다. 상표도 뭣도 없이 그냥 주소지로 된 서울 외곽의 어느 장소였다. 싸가지도 없고. 이도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오한울을 가늠하듯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이도하가 오한울을 단번에 알아봤던 건 그만큼 여기저기서 정말 주야장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별 관심도 없었지만 그래도 오한울은 진짜 유명했고, 반듯하고 예의 바른 이미지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았다. 저는 완전 그림 같이 잘생긴 냉미남 취향이다 뭐다 하며 코웃음을 치던 이주연도 그건 인정했다. 상견례 프리패스 상이라고.

근데 이건 뭐지. 예의가 다 죽었네. 이도하는 생각했다. 약쟁이도 정말 상식 밖이었지만, 오한울도 이해할 수 없기로는 마찬가지였다. 이도하의 손끝이 핸드폰을 가볍게 두드렸다.

-난 내일 3시에 연구소에 있을 건데 급하면 그쪽이 오시던가.

이도하는 굳이 답을 기다리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아직도 문자가 와?”

이도하가 태연히 답했다.

“도윤이랑 도율이요. 백만 년 만인데.”

“안 그래도 너희 삼촌이랑 통화했어. 엄마 핸드폰도 완전 불났다.”

“음. 중국당면은 10시간은 불려야 된대요.”

흘겨보는 눈짓에 이도하가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우와, 그래? 안 되겠네. 그냥 당면 넣자. 떡도 넣을까?”

“너무 많지 않아요?”

“두어 개만 잘라 넣지 뭐.”

떡이면 떡이요, 당면이면 당면이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없는 이도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생에서 그는 요리와 영영 화해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도하는 카트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 호불호가 없진 않지. 공작 혀 같은 건 두 번 생각해도 못 먹을 음식이었다.

복숭아와 초코가 함께. 그게 무슨 맛이야. 과자 춘추 전국시대라고 하더니 요즘 과자는 왜 다 도전적인가. 달고나 맛 감자칩. 저건 또 뭐람. 오즈에 이런 마트는 없는 것 같던데. 하기야, 황제가 어디 장을 제 손으로 보겠나. 데리고 와서 쇼핑 한 번 한 번 재밌겠다.

“그래서 소속사랑 얘기는 잘 됐어?”

진열대를 구경하며 반쯤 넋을 놓고 카트만 질질 밀고 가던 이도하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뭐. 여론도 다 이쪽에 있고, 그쪽에서도 그냥 조용히 묻고 싶어 하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대요. 그냥 이대로 마무리될 것 같다고. 보는 눈이 있으니 치료비 정도는 좀 줘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어요.”

말하면서 이도하는 눈치를 보았다. 이미 아버지에게는 한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별말이 없어 은근히 마음을 놓고 있던 차였다. 시간차 공격이었구나. 이도하는 등짝으로 날아올지 모를 시원한 한 방을 기다리며 저도 모르게 등허리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건 정말 뒷일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꼭지가 빙글 돌아 저지른 일이었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돌아도 뒷일은 좀 생각하자, 하고 이도하는 반성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약쟁이를 잡아 팬 건 후회하지 않지만, 너무 공공연하게 팬 건 좀 후회가 되었다. 이도하는 원래도 매체에 등장하는 데 거부감이 있었지만 9시 뉴스에 그런 식으로 등장하는 건 정말 싫었다. 게다가 그걸 부모에게 보이는 건 잘잘못을 떠나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엄마가 사식 넣을 일 없는 거지?”

긴장하고 있던 이도하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터질 뻔한 웃음을 꾹 삼킨 그가 대답했다.

“…그럼요. 법원 갈 일도 없어요.”

“어휴, 그럼 됐네.”

그의 어머니가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겼다. 이도하가 조금 몸을 숙였다. 흘긋 주변의 눈치를 보며 어머니가 속삭였다.

“다음부턴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때리란 말이야.”

이도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는 사람들이 호들갑까지 떨어대며 제 편을 들어주는 게 좀 의외이고 얼떨떨했다. 무엇보다 민망했다. 묘한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들으니 그냥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는 제 어머니를 꼭 안았다가 놔주었다. 아들이 벌써 24살이 되었는데도 포옹에 인색함이 없는 어머니가 습관처럼 엉덩이를 두드릴 것 같아 얼른 그래야 했다. 평일 오후의 마트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건 남들 보는 데서 자주 하고.”

아들의 포옹에 흡족해하며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아들이 연예인은 아닌데 이제 파파라치도 있어요.”

“아들이 엄마 안아주는 게 어때서? 피할 수 없으면 이용하라잖아. 아들, 이것도 다 전략이라니까.”

“무슨 전략이요.”

카트에 과자 두 봉지를 담으며 이도하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로 오즈에서 돌아온 지 꼬박 삼 일째였다. 돌아오니 꼬박 하루가 지나있었는데, 대낮에 소환되어 하루가 지났으니 또 대낮이었다.

하필 카페 사장은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하필 엎드려 있다 역소환 되는 바람에 자세를 잘못 잡은 이도하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로 우당탕탕 떨어지며 뒹굴고 말았다. 그는 그런 작은 해프닝은 잊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