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이도하는 미역국을 하면 되겠다고 가벼이 말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무언가는 당연히 미역국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도하도 그건 알았다. 누가 봐도 미역국이라고 할 모양새는 아니었다.
“……”
“……”
크레모아 짜장, 뒤틀린 황천의 튀김, 지옥에서 올라온 병아리빵…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망한 요리들이 떠오른다. 미역국이 되기 위해 힘주다가 실패한 제 음식은 그중에서도 꽤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하나. 황천으로 가는 늪지대…?
“화이람, 해장이라는 게… 토하게 도와주는 음식이었나?”
이런 괴팍한 모양의 음식은 난생처음 본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시오한이 물었다.
“…아니야….”
아닌데… 지금은 맞는 것 같다. 이걸 먹고 그냥 다 토하면 될 것 같다. 이도하가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뭐람. 미역인가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시커멓고 네모나고 바삭한 것은 미역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물이 끓을수록 그것은 불어나긴커녕 점점 흐느적거리며 풀어졌고, 반쯤 구워지다 만 고기는 이도하의 가위질에 처참하게 난도질이 되어 고문당한 살점처럼 둥둥 떠다녔다. 멸치인 줄 알았던 조글조글한 것들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아 이 지옥 늪에서 태어난 무언가의 애벌레 같았다.
돈을 억만금을 줘도 못 먹을 음식이라는 뜻이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졌다. 밥으로 인사를 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렇게까지 똥손이었다니. 어깨너머로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대충 따라 하면 먹을 만한 것은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도하는 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곧 인정했다. 다시는 주방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그가 냄비를 짚었고, 시오한은 숟가락을 들었다. 이도하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뿅 떠오르는 사이 말릴 새도 없이 시오한이 숟가락을 지옥 늪에 담갔다.
“어, 어어, 어….”
이도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시오한이 끈적끈적하게 흐물거리는 초록색의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이도하가 눈을 크게 떴다. 억! 그는 소리 없이 경악했다.
“…음.”
시오한이 낮게 신음했다. 눈을 감은 그는 미동도 없었다. 미끌미끌하고 흐물거리는 데다가 물컹하게 씹히는 고기 사이에 정체 모를 가는 알갱이들이 떠다니는 것이 입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니 이도하는 식은땀이 다 났다.
“야… 배, 뱉어. 시오한, 뱉어!”
이도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꿀꺽- 곧고 긴 목에 예쁜 모양으로 솟은 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놀라고 당황했던 이도하는 잠시 상황도 잊고 울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니 이 남자는 무슨 뼈도… 이게 아니지. 지금 시오한은 그 황천길로 가는 늪지대를 한 숟갈이나 삼킨 것이다!
“시, 시오한.”
이도하는 망부석처럼 선 시오한의 어깨를 짚었다가, 등을 짚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등을 두드려줘야 하나. 그러나 배로 들어간 그 음식이 속에서 흔들릴 생각을 하면 그것도 끔찍했다. 곧 시오한의 입에서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제 속이 다 메슥거렸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해. 진짜 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시오한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예의 느린 움직임으로. 해가 뜨듯이 황금색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났다. 늘 그렇듯 아름다웠으나, 약간 초점이 없었다. 시오한? 이도하가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시오한이 말했다.
“…맛있네.”
“……”
담담히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었다. 영혼이라고는 정말 한 톨도 없었다. 이도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를 더러 미친놈이라고 한 게 한두 번도 아니지만, 이건 뭐 어느 방향으로 미친 걸까.
“…한 입 더 줘?”
이도하가 물었다. 시오한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본인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로, 시오한은 애써 웃었다. 분명 말을 고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크게 글러 먹은 음식이고, 만들어낸 이도하조차 질색을 하는 마당에 뭘 그렇게 굳이 포장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감히 비할 바가 없는 거대한 제국의 만인지상 황제라는 사람이. 간지럽게.
“큽.”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보던 이도하가 결국 웃고 말았다. 풍선 바람처럼 조금 새어 나온 웃음은 부지불식간에 터졌다. 크게 터트린 웃음소리가 온 주방에 다 울렸다. 좀 잦아들래도 시오한의 얼굴만 보던 다시 터졌다. 명백히 괴로운 얼굴이었다가, 이제는 안도하면서도 약간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무려… 조금 귀여웠다.
“아하하… 그걸 왜 먹어?”
시오한을 붙잡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박은 채 끅끅 웃음을 털어내려 애쓰던 이도하가 물었다. 시오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만든 거잖아. 버리면 아까워.”
“하하.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뭐라고. 근데 진짜 미역국이 저런 음식은 아니야. 다음엔 제대로 배워와 볼게. 당신이 그렇게까지 먹어주니 막 사명감이 생긴다.”
“아니… 화이람. 다시 요리는 안 하는 게 좋겠어.”
결국 스며 나온 진심에 푸하핫, 겨우 잦아들어 가던 웃음이 또 터졌다. 그것 봐. 끔찍했지. 웃음 사이로 물어보는 말에 시오한은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 말이 맞아.”
고개를 든 이도하가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나 귀여운 거 좋아하네.”
토끼 머리띠를 씌웠을 때도 물론 시각적으로 굉장했지만, 시오한이 귀여워, 하고 물었을 때는 염병, 따위의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그것과 좀 달랐다. 심장이 따뜻하고 보슬보슬한 무언가에 닿은 것처럼 속이 간지럽고, 손끝이 간질간질하고, 시시때때로 생각나 푼수 같은 웃음이 픽 하고 나올 것 같았다.
전혀 뜻밖의 말이었는지 시오한은 조금 당황스럽게 이도하를 보다가 이내 탁 웃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이도하의 등을 감싸고, 끌어당겨 안았다. 실컷 웃어대다가 갑자기 안긴 이도하는 얼떨떨해졌다. 시오한은 그런 그의 어깨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크게 들이마신 숨을 아주 천천히 다시 놓아주었다. 목에 와 닿는 숨에 주뼛 솜털이 일어섰다.
“미안해, 화이람.”
“…갑자기?”
“이제 가야 해.”
아. 그저 얼떨떨해 있던 이도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바탕 신나게 논 것처럼 즐거웠던 마음이 찬물을 맞은 듯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이도하는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 늘 시오한이 정신을 잃는 기절 엔딩을 맞이하는 바람에 이렇게 정상적인 작별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매번 이도하는 튕기듯 갑작스럽게 제 세상으로 돌아갔고, 그건 마치 오즈에서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퉤, 하고 뱉어내진 것 같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서 있다가, 힘을 풀며 시오한의 어깨에 기대었다.
“당신 말이야.”
“응.”
“좀… 좀 충분히 쉬고 날 불러. 내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코 꿰였다고. 나 간병에는 취미 없어.”
매번 그렇게 열나고, 아프고, 쓰러지지 말고. 그러나 그 말은 도저히 낯부끄러워 할 수가 없다. 투덜거리는 듯한 이도하의 말에 시오한이 낮게 웃었다. 붙어 있는 몸에 울림이 전해져 기분이 이상했다.
“그럴 수가 없어, 화이람.”
“왜?”
“그대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시오한의 손이 차분히 이도하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도하는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시오한이 더 빨랐다.
“이제 정말 가야 해.”
다행히 기절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참았던 게 분명했다.
“금방, 금방 다시 봐 화이람. 그대를 부를 테니… 대답해 줘.”
“…그래.”
맞닿은 몸은 무척이나 따뜻했지만, 그게 열이어서는 안 되었다. 이도하가 손을 들었다. 시오한의 이마를 짚어보려 했지만, 손은 애꿎은 허공만 짚었다.
과방이었다.
찌그러진 캐비닛, 더러운 소파, 여기저기 널브러진 전공 책들과 만화책, 과잠, 셔츠. 퀴퀴한 냄새. 품에 가득했던 온기는 꿈인 것처럼 그 자리에는 서늘한 공기밖에 남지 않았다. 이도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제 얼굴을 더듬었다. 눈 밑을 매만졌다.
다른 살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분명 그곳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화이람- 그가 부르는 이름이. 그렇게 하니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차가운 겨울에 따뜻한 차를 머금은 것처럼 속이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이도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 42분. 단축번호를 누르며 그는 날듯이 과방을 나섰다.
-이도하씨, 저 아직 출근 전인데요. 업무 시간 외 호출 금지.
“밥 사줄게.”
-콜.
“알키오라 특기, 그거 어떻게 쓰는 거지?”
***
품에 가득 안겨 있던 온기는 사라졌다. 시오한은 천천히 팔을 떨어트렸다. 그는 물끄러미 제 손을 내려다보다, 가만히 그 손끝을 감싸보았다. 벌써 사라져가는 온기나마 붙잡아 보려는 양. 그는 적막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울리던 웃음소리만 환영처럼 남았다.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가서 멎었다. 의자에 붉은색 옷과 토끼 머리띠가 걸쳐져 있었다. 그가, 화이람이 이 주방까지 챙겨 왔다가 깜빡한 것이다. 뭘 하려고 그랬는지. 옅은 웃음을 머금으며 시오한이 토끼 머리띠를 들었다. 보들보들한 털이 손끝에 연약하게 밀리며 흩어졌다.
이런 걸 다 쓰고 오고.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이런 걸 쓰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손 안의 토끼 머리띠가 희미해졌다. 시오한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윤곽부터 흐릿해지던 머리띠는 곧 스르륵 형체마저 흩어져 그의 손 안에서 사라졌다. 연기처럼, 작은 숨 한 톨에 스러졌다. 흔적도 없었다. 의자에 걸쳐져 있던 붉은 옷가지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자들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은 모두 그들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이 세상에 애초에 지음 받지 않은 불청객으로서, 그들을 이곳으로 초대한 계약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 동안만 머물다 가는 계약자들 그 자신처럼.
시오한이 문득 옅게 웃었다. 정말로 속이 영 좋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태 냄비에 가득 차 있는 괴악한 물건을 바라보았다. 화이람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이건 정말 괴악하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긍지 높은 에트레제의 주방장이 보았다는 제 주방에서 이런 물건이 만들어진 게 수치라며 앓아누울지도 몰랐다.
시오한은 한 쪽에 내팽개쳐진 숟가락을 들어 다시 한 수저 떴다. 초록색 해초가 괴롭게 흐느적거리며 죽 늘어졌다. 약간 놔두었더니 심지어 약간 끈끈해지기까지 했다. 딱히 본의는 아니었으나 태어나 완벽한 것 외에는 입에 대 본 적도 없는 시오한의 속은 이 새로운 경험을 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오한은 숟가락 끝을 조금 머금었다. 아직 떠나가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입술에 닿았다. 이상하게 씁쓸하고 달큼하면서도 비린내가 나는 처참한 맛이 아주 강렬했다.
“미안, 화이람… 두 번은 못 먹겠어.”
낮게 웃으며 시오한은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화이람이 끔찍하게 요리를 못해 다행이었다. 이 주방의 어느 누구도 만드려야 만들어낼 수 없었을 무언가를 만들어놔서 도리어 다행이었다. 그럴 듯한 무언가를 남겨두었다면, 그가 머물렀던 흔적이라고는 또 시오한 자신의 기억밖에 없었을 테니.
Chapter 2. 귤이 탱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