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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에 달이 뜬다-14화 (14/250)

14화

“나 안 왔으면 어쩌려고 했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랬어요.”

“야, 이거 잡혀가. 안전시설 미비, 어?”

“존잘이랑 공중 산책할 수 있는 기회라면 죽기 전에 해 볼 만하다능.”

“미쳤네, 이주연.”

이주연이 깔깔 웃었다. 이번 축제는 경영대가 다 발라버릴 수 있다며 아주 자신만만했다. 이도하가 혀를 찼다.

손을 대지 않고 사물을 움직이는 특기, 편하게 말해서 염력은 가장 흔한 특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흔한 만큼 사용도 흔했다. 다들 불을 끄거나, 리모콘을 가져오거나, 떨어진 지우개를 줍거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띄우는 등으로 하찮고 알차게 특기를 활용한다.

리모콘이나 핸드폰은 무거워서 들어 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다반사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띄우겠다’는 걸 넘어서 ‘공중에서 산책을 시키겠다’는 이주연의 발상은 보통 비범한 것이 아니었다. 까딱했다가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정말 콩밥을 먹게 될 수도 있으니 인소더블인 이도하를 믿고 저러는 것이다.

“이주연 나중에 분명히 악덕업주로 잡혀간다.”

그러나 그 악덕업주는 어쨌든 부자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자신만만한 대로, 경영대의 부스는 문전성시를 이루며 아주 긴 줄을 세웠으니. 한국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언젠가 김윤혜가 표현했던 대로 정말 갓 태어난 올챙이 떼처럼 무시무시했다.

이쯤 되니 이도하는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게 그나마 피신이었다. 끄아악, 허억, 흐윽 등으로 다양하게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구경거리 중의 하나였다. 저녁이 되자 부스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야경도 제법 볼거리였다.

“저 한복은 뭐야?”

브레이크 타임을 틈 타 잠시 앉아있던 이도하가 물었다. 여기저기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중 이도하는 붉은색 곤룡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자연히 누군가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시오한은 황제인데도 특별한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지 편안한 가운차림이었다. 머리도 편하게 풀어 내리고, 왕관 같은 것도 없었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도하는 무심코 생각했다.

“패디과 부스요. 타임슬립 컨셉으로 자기들도 입고 다니면서 사진 찍어주고, 빌려주기도 한 대요.”

희희낙락한 이주연이 대답했다. 공중 산책 티켓이 진즉에 다 매진돼서 이주연의 동기들은 죄다 긴급 추가 티켓 제작에 투입된 상태였다.

“이주연 완전 돈독이 올랐어.”

홍보 피켓을 목에 건 윤윤형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부스로 배정받은 천막은 티켓을 팔다 이제는 대기실이 된 지 오래였다.

“회식 과비로 쏨. 소고기 가능.”

이주연이 잔뜩 쌓인 현금을 흔들었다.

“아이고, 부회장님, 아이고.”

윤윤형이 즉시 허리를 굽혔다. 한국대 남신과의 공중 산책이 단독 만원! 목에 걸린 피켓이 흔들렸다.

“자본주의라고요, 선배님.”

“그럼요, 후배님.”

“놀고 있다.”

만 원에 셔틀이 된 이도하가 싸늘하게 말했다.

“야, 이거 먹어라. 당 충전 해야지. 수고가 많으시다 우리 남신님.”

“좀 닥쳐, 제발.”

윤윤형이 내민 것은 반투명하게 반짝거리는 설탕과자였다. 그런데 모양이 하필 깜찍하게 웃고 있는 피캇츄였다. 이 새끼 노린 건가. 이도하는 미심쩍게 윤윤형을 보았다. 맥이는 눈치는 아닌데. 이도하는 뾰족한 귀를 빨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와락 미간을 구겼다. 와그작- 피캇츄 사탕의 얼굴이 산산조각 났다.

“이거 뭐야.”

“왜요?”

“나 왜 실검이야?”

이도하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도하. 인소더블. 인소더블 이도하. 유세오. 이도하 유세오. 윤윤형과 이주연이 시선을 마주했다가, 다시 이도하를 보았다.

“선배 어제 유세오 라이브에 나와서 그렇잖아요.”

“라이브?”

“너는 진짜 핸드폰을 뒀다가 어디에 쓰냐. 인터넷도 좀 보고 그래라.”

윤윤형이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너튜브 화면이었다. 유세오는 무드 등이 예쁘게 켜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보여 드릴게요-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별안간 눈이 반짝인다. 잽싸게 핸드폰을 받는데, 너머에서 이도하 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짧은 대화가 오가더니… 푸른빛 소환진이 펼쳐진다. 다녀올게요! 하고 발랄한 인사를 한 유세오가 곧 사라지고, 영상도 그걸로 끝이었다.

“……”

“유세오 의외의 인맥, 이도하 유세오, 나이를 넘어선 우정. 오즈에서의 인연….”

“다물어라, 윤윤형.”

기사를 줄줄이 읽어 내려가던 윤윤형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도하는 줄줄이 떠 있는 기사들을 살벌하게 노려보다 핸드폰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어버렸다. 매번 이런 일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뭐 어쩌겠나. 그런가 보다 해야지.

여기저기서 제 이름이 이야깃거리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저는 모르는 사람들이 절 알아보는 것도 썩 달갑지 않았으나 정말 별 수 없었다. 계약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바깥에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기자들이 문을 두드려대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이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이 웅성거렸다. 원래도 시끄러웠으나 이건 술렁거림에 가까웠다. 환호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자, 이도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불길함을 느끼고 허리를 세웠다.

“연예인 왔나?”

윤윤형이 의아해하는데, 천막이 펄럭 열렸다. 꺅- 이주연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네! 형, 안녕하세요!”

유세오였다. 들이민 얼굴이 해맑기 그지없다. 교복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얼떨떨해하는 윤윤형과 이주연에게도 넉살 좋게 인사한다. 뒷골이 슬 당겨오는 것을 느끼며 이도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애다, 애. 고딩. 미성년자. 관심이 필요할 나이. 곧 이도하가 서늘하게 말했다.

“…너 양반은 못 될 팔잔가 보다.”

“네? 왜요?”

“여긴 왜 왔어?”

“형이 학교 간다면서요. 저 들어가도 돼요? 아, 돼요? 감사합니다. 새치기하는 기분이라. 저 근데 티켓도 샀어요! 기다릴 건데 잠깐 형만 보려고요. 해줄 얘기가 있어 가지고.”

“대박. 팬이에요. 이따 사진 한 번 찍어주면 안돼요?”

윤윤형이 말했고, 유세오가 신나게 웃으며 찍어요, 찍어요! 하고 화답했다. 아기 강아지를 서른여덟 마리쯤 풀어놓은 것처럼 정신없었다.

“앗, 저도. 근데 오래는 안 돼요. 브레이크 타임 거의 다 돼서.”

철저한 자본주의자 이주연이 말했다. 그리고 둘은 잽싸게 천막을 비워 주었다. 이도하의 못마땅한 눈치에도 유세오는 끄떡없었다. 의자를 끌고 와 앞에 앉은 유세오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씩 웃었다 .

“형, 저 아까 오즈 갔다 왔지요.”

“뭐? 언제?”

이도하가 놀라 물었다.

“낮에요.”

“너 계약주도 좀 쉬어야 한다면서?”

“잠깐 정도는 괜찮아요. 황제처럼 막 피통, 아니, 기력이 바닥난 정도는 아니라서.”

“그래서?”

“의식은 돌아왔고요, 형이 말 좀 전해 달라했다, 했더니 보게 해 주더라고요. 진짜 봐도 봐도 존잘… 아무튼, 그래서 말은 전했는데요.”

“뭐라고 했는데?”

“어… 좀 돌려 말했죠. 형이 말했던 것처럼 개수작 부리지 말고 쳐 자라, 그런 말을 어떻게 해요. 우리 주인님 죽으면 어떡해….”

유세오가 울상을 지으며 약한 척을 해댔다. 이도하는 ‘주인님’이란 호칭에 또 얼굴을 구겨야 했다. 이건 또 무슨 변태적인 호칭이야. 눈치를 본 유세오가 헛기침을 했다.

“음, 그래서 돌려 말했다고요. 잘. 형이 폐하가 걱정돼서 그러니 당분간 좀 쉬시래요, 하고.”

“뭐래?”

“그냥 웃던데요.”

“웃어?”

“네.”

이 새끼가? 이도하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이제 고작 세 번 본 그의 계약주며,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지만 이 맥락에서 시오한이 웃었다는 건 별로 말을 들어먹을 의사가 없다는 의미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별안간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이도하는 억울했다. 누구는 옆집 가듯이 룰루랄라 갔다 오는데 누구는 갈 때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꼴을 봐야 한다니!

“너… 한 번 소환되면 보통 얼마쯤 있다 오냐?”

이도하가 이마를 짚고서 울분을 삼키는 사이, 어깨라도 두드려 줄까 하며 슬쩍 손을 내밀었던 유세오가 잽싸게 손을 물렸다.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 계약주의 성향 따라 다르죠. 이리나는 딱 필요할 때만 부르긴 하는데, 제가 안 돌아가도 별말은 안 해서, 좀 놀다 오면 어… 보통 하루 정도?”

“하루?”

하루우? 이도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나마 시오한과 밥이라도 먹었던 지난번에 얼마나 있었더라. 대충 짐작해 보면 한 2시간쯤 되는 것 같다. 그나마도 혼절 엔딩이었지. 절절 끓던 열을 생각하니 제가 다 열이 날 것 같다. 빡쳐서.

“제일 길게 있었던 건?”

유세오는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혀엉… 오즈랑 여기는 시간이 좀 다르게 흐르잖아요, 알죠? 그래서 오래 있을수록 시간대가 좀 애매해지는데… 그, 특기를 별로 안 쓰면 아마 세달 쯤…?”

“…세 달?”

달? 월 단위로 비비고 앉아있는 게 된다고?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었는데도…! 이도하는 생각을 멈췄다. 이건 자학이나 다름없었다. 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건 정말 옳지 않았다. 이도하가 말도 않고 씩씩거리고 있자, 유세오가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 조심스레 말을 텄다.

“그, 형. 좀 기다려 봐요. 형이 인소더블이라 소환을 유지하는 데만도 마력이 많이 들어서 그렇기는 할 텐데, 오르페노스 황제도 푹 쉬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은 그게, 첫 소환의 후유증이라고 보면 돼요. 있는 기력 없는 기력 다 끌어다 써가지고. 형 소환해낸 것만 해도 괴물인 거라니까요. 워낙 튼튼한 사람이고….”

“튼튼해? 누가? 이 과자도 그보단 튼튼하겠다.”

이도하가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설탕과자를 신경질적으로 탁, 내리쳤다. 이미 금이 가 있던 설탕과자가 파사삭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그걸 보는 이도하는 또 성질이 났다. 그저 소식을 전할 생각에 신난 제비처럼 왔던 유세오는 제가 왜 여기서 지금 혼나는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리스티리움 제1기사신데요….”

“누가?”

“황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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