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호성은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걸었다.
그가 곧 도착한 곳은 강민단의 기지가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그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 아는 사람이 왔다. 강석이었다. 강석은 호성을 보고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어! 호성.”
“아, 너도 연락받고 가는 길이야?”
“그렇지 뭐.”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지. 수업도 다 빼먹고 기지에 모이라니.”
지금 호성과 강석은 폰으로 수업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당장 모이라는 강민의 연락을 받고 모이는 참이었다.
“그래. 정말 놀랐어. 강민이 이제까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수업 빼먹고 모이라 한 적이 없었잖아.”
“그렇지. 중국에 갔던 것만 해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다소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올라갔다.
“긴장되는데.”
“뭐 큰일은 아닐 거야.”
“그러길 바라야지.”
“사실 큰일이라고 해 봐야 그 녀석한테 큰일다운 큰일이 생길 리도 없고.”
강석이 안도하기 위해서인 듯 말했다.
호성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런 사건을 만든 놈들은 삼합회 꼴이 나겠지.”
“하하하, 맞아. 딱 그렇게 되고 말걸.”
대화하던 중 엘리베이터가 목표한 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둘은 기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은 비밀번호로 열리기 때문에 열쇠가 필요 없다.
덜컹.
“왔어.”
“무슨 일이야? 이렇게 갑자기.”
둘이 안으로 들어가며 등장을 알렸다. 거실에 있던 다른 강민단원이 그들을 맞았다. 표정은 전에 없이 다급해 보였다.
“아, 호성, 강석.”
“어, 어서 와봐.”
“뭐, 뭐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둘은 다른 강민단원의 모습을 보고 오늘 일이 과연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못 보던 남자가 있었다.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헉, 누구세요?”
“누, 누구?”
놀라며 둘은 물었다.
“아, 처음 보네. 나는 시앙쿠르라 하네.”
노인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그들을 맞았다.
“그, 그러세요.”
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와 인사를 나눴다. 간단히 인사가 끝난 다음 노인은 자신에게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참고로 용이네.”
“네?”
“요, 용이요?”
어이없는 말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강석이 되물었지만, 용은 도리어 고개를 끄덕이며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확인해 줬다.
“그래. 여기서 드래곤이라 부르는 존재.”
“아, 아니…….”
“그러면……?”
놀라긴 했지만 납득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이미 강민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으니까! 둘은 강민을 바라봤다. 강민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저 세계에서 나를 찾아온 내 친구야.”
“단순한 친구는 아니고, 내가 강민을 우리 세계로 불러서 청소를 시켰지.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료이며, 스승이기도 할까.”
노인은 자랑하듯이 말했다.
“음, 신세 진 게 많긴 해.”
강민도 순순히 인정했다. 시앙쿠르가 아니었다면 분명 영웅 마그누스는 없었을 것이다.
에이리가 충고 삼아서 말했다.
“참고로 저 늙은이 나이가 만 살이 되니 안 되니 할 정도니까……. 겉보기에 속으면 안 돼.”
“마, 만 살…….”
“한국 역사가 오천 년도 안 되는데…….”
“과연 판타지다. 스케일이 달라.”
“그러게 말이야.”
“놀라워요…….”
강민단원들은 만 살이란 말에 저마다 충격을 받아서 중얼거렸다.
“하하하, 놀라운 건 나도 마찬가지지. 강민 군에게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정말 놀라운 세계가 아닌가. 이런 걸 마법으로 다 해내려고 하면 주민들이 전부 엄청난 고위 마도사여야만 될 거 같은데.”
유쾌하게 웃는 시앙쿠르를 보며 강민단원들은 그가 좋은 사람, 아니 용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찾아온 것은 확실히 놀라웠지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강민이 정리에 들어갔다.
“자자, 긴소리는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음, 그래 그러지.”
강민은 자신에게 집중된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간결하게 목적을 이야기했다.
“실은 내가 이 세계까지 온 건 강민 군을 데리러 오기 위해서네.”
“네?”
“그러면 강민이 떠나야 한다는 건가요?”
모두 놀라 물었다.
“그렇지. 사실 여기 올 때부터 해야 할 일이 잔뜩 있던 걸 다 내팽개치고 도망쳐 온데다가…….”
시앙쿠르가 강민을 째려봤다.
“크흠……. 어쩔 수 없잖아! 그런 건 내 전공이 아니라고!”
강민은 반항하듯이 외쳤다.
사실 반항 맞다.
시앙쿠르는 혀를 차며 강민을 질책했다.
“도망쳐서 노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벌써 삼 년이 다 되어가니 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강민 군은 일국의 왕이기도 하고 말이야.”
강민은 반론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군요…….”
“그런 것 같아.”
다른 사람도 다들 시앙쿠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떠나기 전에 여러분과 인사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만든 것이지.”
“하지만 꼭 이렇게 떠날 필요가 있나요. 오갈 수 있다면 굳이 안 떠나도……”
“그게 그렇지가 않네. 일단 오갈 수 있긴 해도 자유롭진 않지. 이게 아주 비용이 많이 들거든. 그리고 왕인데다 전후처리도 문제가 되긴 하는데…….”
시앙쿠르는 한숨을 쉬며 강민을 데리러 온 가장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마왕이 부활했데.”
“뭐요?”
“마, 마왕이 부활?”
“그, 그게 무슨 농담이야?”
강민단원 모두 경악했다.
“농담이면 좋겠다만…….”
강민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까우나 사실이지. 마그누스가 쓰러뜨린 마왕은 아니네. 지옥은 여러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여러 세력 중 또 다른 우두머리가 지상을 침공한 것이니까. 그 이름은 테켈리리. 저 머나먼 외우주에서 왔다고 이야기되는 무시무시한 촉수의 괴물들이지.”
다들 적의 모습을 상상하고 전율에 떨었다.
“그래서 싸우러 가야 한다는 거야.”
“그, 그래?”
“괘, 괜찮은 거야?”
“위험할 거 같은데.”
다들 강민을 걱정했다. 시앙쿠르는 껄껄 웃었다.
“다행히 별로 위험하진 않네. 지난번에 당한 게 있어서 다들 준비도 철저히 해 뒀으니까. 무엇보다 테켈리리는 외우주에서 우리 세계로 빠져나오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놈들이라 결계의 파괴만 막으면 되네. 마그누스에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그럼 강민이 굳이 갈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요?”
“맞아.”
지혜와 혜경이 섭섭하다는 얼굴로 지적했다.
“아니, 그렇겐 안 돼. 강민의 힘은 절대적이니까.”
“그는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험이거든.”
세나와 에이리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지금 당장은 크게 위험하지 않아도 적이 강대한 마왕의 일족인 이상 어떤 수를 내밀지 모른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강민의 힘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야?”
“굉장하다…….”
다들 강민이 중요시되는 데 놀라워했다. 강민은 존경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데 뿌듯함을 느끼며 잘난 척을 했다.
“후후, 내가 괜히 마그누스가 아니라고.”
“그런 이유로 이제 떠나야 하게 됐네.”
“그래서 너희와 인사를 하려는 거야. 이제까지 고마웠어. 언제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다들 건강하게 지내.”
강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진짜 헤어지는 인사였다. 수구가 그때 갑자기 나섰다.
“자, 잠깐!”
“왜?”
“나, 나도 가자!”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들 놀랐다. 강민은 찌푸린 얼굴로 그를 말렸다.
“뭐? 나는 괜찮지만 너는 위험해.”
“젠장 위험한 꼴 한두 번 겪냐? 그리고 그 정도 대비는 해줄 거 아냐. 이세계 구경도 좀 해 보자.”
“그래. 나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만수도 나섰다.
“아니, 이놈들이 위험하다니까…….”
강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수구와 만수는 결심을 굳힌 모양이다.
“이런 거 아무나 못 한다고. 너랑 같이 다니면서 간이 커져서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할까.”
“나도 마찬가지야. 아 그리고…….”
이어 수구와 만수는 에이리를 보면서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응?”
“헤헤, 도착하면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리는 피식 웃었다. 이런 때가 되어서도 결국 잊지 않는 정신이라니! 어쩌면 이세계 구경이란 건 핑계고 진정한 목적은 솔로 탈출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저 근성은 인정받을 가치가 있었다.
“좋아. 최고의 미녀를 소개시켜 줄게.”
“오오!!”
“읏, 나, 나도…….”
강석이 그걸 보고 관심이 생겼는지 가려고 손을 들려 했다. 하지만 재철이 말렸다.
“아서라. 너는 글로브 아미도 아니잖아.”
“그, 그렇지만…….”
강석의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다가 에이리는 이어 혜경을 향해 물었다.
“아참, 두 사람은 어때요?”
“네?”
“어때요? 가보지 않겠어요?”
“그게…… 저기…….”
혜경은 세나를 힐끔 보면서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아마 이세계까지 찾아가면 구박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세나는 그게 귀여웠던지 웃으며 말했다.
“후후, 괜찮아요. 나도 당신은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리고 가게 되면 늙지 않는 마법도 가르쳐 줄게요.”
“그건 진짜 끌리는데. 그, 그러면…….”
혜경은 기쁜 듯이 세나 옆에 가 섰다. 그런데, 이어서 지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 저도요!”
“어, 지혜도?”
“아니, 여기서 모든 걸 가졌으면서 괜히 이 세계에는 괜히 왜……?”
다들 의아하게 물었다.
지혜는 이쁜 데다가 부자다! 굳이 이 세계 따윌 동경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이런 거 아무나 못하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다들 말리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지혜의 결심은 이미 굳어버린 모양이다. 시앙쿠르는 도리어 마음에 든 듯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좋아. 뭐 마그누스가 친구들 하나 못 지킬까. 그 정도는 괜찮지. 그러면 이걸로 다 결정된 건가?”
“아……. 그런가. 그러면 호성, 뒤처리를 부탁한다. 한 3년 뒤쯤에 다시 들를게.”
강민은 떠나려 하니 역시 아쉬운 듯 호성에게 부탁했다.
“저, 정말 가는 거야?”
호성도 이제 헤어진다고 하니 아쉬웠던 듯이 물었다.
“그럼 이런 걸 농담으로 할까봐?”
강민은 씨익 웃었다.
“그럼 열어줘요.”
“그러지.”
시앙쿠르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방의 중앙에 눈부신 빛이 발생하더니 공간이 쩍 갈라져 원형의 문이 생겼다. 시앙쿠르는 남은 강민단원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짧은 시간이지만 만나서 반가웠네. 다음에 돌아올 때는 나도 같이 오도록 하지!”
“다들 건강하게 지내! 그리고 기억해 둬! 마그누스는 돌아온다!”
“알았어. 기다릴게!”
“몸조심하고!”
그리고 강민과 그의 동료들은 차원의 문을 건너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새로운 모험과 정의를 위해! 마그누스의 전설은 시공의 벽을 넘어 계속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