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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26화 (226/227)

226화

“모솔 탈출을 못하겠다고.”

“모솔?”

에이리가 물었다.

“모태 솔로라고……. 태어나서 아직 여친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을 칭하는 거지요.”

“아니, 그게 그렇게 어려워?”

강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어려워!”

“쉬우면 우리가 이 꼴이겠냐!”

수구와 만수는 살기를 담아 외쳤다. 그 살기는 곧장 강민에 대한 분노가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너는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래. 우리가 모솔인 이유는 니가 워낙 괴롭혀서 소개팅할 시간조차 못 만들어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책임져!”

“아니 이것들이 자기들 못난 걸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강민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을 지경!

“못났다니!”

“우리가 이래 봬도 서울대생이라고!”

“그럼! 거기다 우리만큼 끝내주게 운동도 잘하는 남자가 어딨다고? 잘 빠진 몸매에 심지어 식스팩이 기본 장착인데!”

“그래! 우리야말로 21세기가 바라는 문무겸전의 인재잖아!”

그리고 다시 둘은 스펙 자랑을 했다.

사실 스펙만 보면 확실히 그들은 대한민국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다.

“말 잘했다!”

하지만 강민에게 그 주장은 도리어 역공의 빌미가 된다.

“그 잘난 스펙 누구 덕에 갖췄지?”

“그건 우리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헛소리하지 말고! 그게 다 내가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너희를 갈군 덕분이잖아!”

강민이 강하게 외쳤다.

“그래! 그건 갈군 거지! 가르쳐 준 게 아니잖아!”

“그래!”

수구와 만수는 반발했지만, 강민에게 그런 말이 들어 먹힐 리가 없다!

“어쨌건 니들이 내가 아니었으면 그런 스펙을 갖췄겠냐?”

“그, 그건…….”

“으음…….”

수구와 만수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들은 강민을 만나 많이 얻어맞고 구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요식업계 유통망의 미래를 짊어진 샛별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니까 니들은 나를 원망할 게 아니라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고. 그런 훌륭한 스펙은 다 내 덕이니까! 그리고 그런 스펙을 갖추고도 솔로로 지내는 것에 대해선 내가 도리어 묻자. 왜 그 스펙 갖추고 그러고 있냐?”

강민이 혀를 차며 물었다.

“몰라. 씨!”

“알면 솔로로 있겠냐!”

수구와 만수는 신경질을 내며 답했다.

호성은 그 꼴을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내가 보기엔 저렇게 껄떡대는 게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도 그런 것 같은데.”

강석도 충분히 그럴 법하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껄떡거리면 인간적인 매력이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두 사람은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린 듯 이번에는 에이리와 세나를 향해 쫄래쫄래 다가갔다.

“저, 저기…….”

“약속은 어떻게…….”

과거 에이리는 재철 일당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었다. 에이리는 곤란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리가 돌아갈 때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거라니까.”

“맞아. 그 업무의 지옥으로 돌아갈 때나!”

세나도 당장은 어렵다는 뜻을 표했다. 수구와 만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럽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뭐 그러니 앞으로도 자력갱생에 힘내 봐라.”

강민은 그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아…….”

“으으…….”

수구와 만수가 좌절한 다음 호성이 물었다.

“그런데 이젠 뭐 할 거야?”

“뭐 할 거냐고 해도……. 특별히 할 건 없잖아.”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미국에, 브라질에, 이젠 중국까지. 그것도 갈 때마다 세계를 뒤흔들어 놨으니……. 더 뭐 하고 싶진 않겠다.”

혜경도 그렇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쉴 건 아니지만 요즘 워낙 바빴으니까 한동안은 좀 푹 쉬어볼까 해요.”

“뭐 나도 그건 찬성.”

글로브 아미로 활동했던 재철 일당에게는 특히 반가운 이야기였다.

“느긋하게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쉬자고.”

“음, 그럼 여행 플랜이나 짜 둘까.”

“아, 그럼 다 같이 가지 않겠어요?”

지혜가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들었다.

“지혜 너도?”

“이왕 가는 건데 강민단원이 다 가는 게 좋죠. 마침 저희 여행사도 있고.”

빙그레 웃으면서 수줍게 말했다.

“헤, 그거 좋겠는데.”

“맞아.”

요즘 여행이라고는 대체로 피비린내 나는 여행밖에 없었으니 강민은 이번 기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며 느긋하게 지구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플랜도 부탁할까.”

“맡겨두세요.”

지혜는 기쁜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구석에 처박혀 슬퍼하고 있던 수구와 만수가 포기하지 않고 끼어들어선 물었다.

“우리 솔로 탈출을 도와줄 플랜은 좀 계획 없어?”

“그래! 재철 저놈만 살판났잖아! 이건 너무해!”

“후후후!”

자신을 지적하는 데 대해 재철은 득의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지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졸업하면 곧장 결혼하기로 약속해둔 상태였다.

강민은 재철의 잘난 척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수구나 만수처럼 솔로인 신세였다면 저 꼴에 많이 분통이 터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수구와 만수의 투정에 일일이 장단을 맞춰줄 수는 없는 법! 그는 단호하게 그들을 떨쳐냈다.

“아, 보채지 마! 명문대학생에 끝내주는 식스팩까지 스펙 갖춰졌으면 그다음은 좀 알아서 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돈까지 줬네.”

“그렇긴 하네. 그러고도 못 꼬시면 니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다.”

호성이 동감해서 말했다.

혜경은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서가 아닐까?”

“아니, 누나, 그 무슨 잔인한 말씀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 나쁜 얼굴은 아닐진대!”

수구와 만수가 쩔쩔매며 반론했다. 만일 얼굴 때문에 안 생기는 거라면 그건 정말 절망적인 일이다. 스펙으로 커버가 안 되는 외모라는 뜻이니까.

“아하하, 농담이야. 니들 얼굴 안 나빠.”

“응. 나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

둘은 수구와 만수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둘의 표정은 위로를 듣고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어째서 위로가 안 될까?”

“희망이 없는 이성이라서가 아닐까?”

호성이 이죽대며 지적했다.

***

강민은 오늘 세나의 집에 에이리와 함께 들러서 식사하기로 했다. 식사를 끝낸 다음 그들은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나가 갑자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안 돌아갈 거야?”

“어디, 원래 세계에?”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슬슬 시간 좀 되지 않았어?”

“음……. 그렇게 이야기하면 가볼 때가 되긴 했는데…….”

“그렇지?”

이 세계에 건너와서 지낸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휴가치고는 상당히 오래 있은 셈이다.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나도 이제 돌아갈 걸 생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여기도 재밌는 세계긴 하지만 결국 놀러 온 거지 살러 온 것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강민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리고 너도 왕이잖아.”

“왕으로서의 책무를 다 해야지.”

“아니, 마왕 때려잡고 평화를 되찾아줬으면 됐지. 나머지 잡무야 평생 그거 하라고 공부한 놈들 있겠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

강민은 왕이라는 말에는 반발했다. 왕으로서의 책무라는 게 무시무시한 노동 강도를 자랑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에이리는 비웃었다.

“그럴 거면 아예 왕이 되면 안 되지. 왕은 평생 직무라고.”

“그래. 아니면 애라도 얼른 만들어서 걔한테 주고 도망 다니든가.”

세나도 에이리의 말에 동의했다.

“음, 그게 좋을 거 같기도 하네.”

강민은 그게 좋은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했다. 자식한테 나라를 물려주고 자기는 자유롭게 모험을 즐긴다! 강민으로서는 이상적인 삶이라 할만했다.

세나는 씨익 웃었다.

“그건 에이리한테 아이가 생기면 양보할게. 나는 예약된 게 있어서 안 돼.”

“뭐? 정말로 마법사 길드에 처박아 넣을 거야?”

강민은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됐다. 에이리도.

“처박아 넣다니, 거기가 얼마나 엘리트 집단인데!”

세나는 좀 화난다는 표정으로 반발했다.

하지만 강민과 에이리의 입장에서는 엘리트도 좋지만, 마법사 길드는 어린아이가 갈만한 곳이 절대 아니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거기 솔직히 애 잡는 곳이지.”

강남 대치동을 바보 취급하는 공부하는 기계들의 집합소! 그것이 마법사 길드의 정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모두 동의한다. 세나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아주 행복했다고.”

“그건 니가 좀 변태라서.”

“솔직히 동감.”

강민과 에이리는 세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뭐? 책을 읽으며 진리를 연구하는 것만큼 즐거운 게 어딨다고!”

세나는 반발해 외쳤지만, 반발이라고 한 말이 두 사람의 확신만 키워준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다.

“저런 소리 하니까 변태 소릴 듣는다는 걸 모르니까 더 문제지.”

“그것도 그래.”

“하여간 내 아이는 반드시 길드에 넣어서 마스터가 되도록 할 거야.”

대화는 소용없다고 느낀 세나는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애를 아주 잡겠구나. 강남 대치동 아줌마들의 치맛바람도 거기 대면 살랑바람에 불과할 텐데.”

“그러고 보니 쟤가 엄마가 되면 그럴 위험이 클 것 같긴 하군.”

“상관 마!”

세나는 쌍심지를 치켜뜨고 외쳤다.

“내 자식인데 상관 안 할 수가 있나.”

하지만 세나 자식이면 자기 자식이다. 강민으로서는 자기 자식이 그런 지옥에 처박히는 꼴을 역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뭐, 보고 정 안 될 거 같으면 탈출시키는 데 나도 협력할게.”

에이리도 협력을 약속했다. 자기 자식은 아니겠지만 세나와 강민의 아이면 거의 자기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역시 지옥에 처박아 놓고 모른 척하는 것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누가 두고 볼 줄 알고!”

세나는 여전히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웅!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강하게 떨렸다.

“응?!”

“설마!”

“말도 안 돼!”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그들도 잘 아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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