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으음……. 대통령 각하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꼭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미국 대통령에게 비밀이라니? 기밀문서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 네. 이상하게 들리실 것은 압니다만 그 요원이 저희 측과 일반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어, 아시나요?”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갑맨이 맞습니다.”
장갑맨의 이름이 나오자 대화가 부드러워진 듯 국장의 얼굴표정이 편안해졌다.
“네, 네. 네. 힘내겠습니다. 네.”
결국, 통화가 끝났고 국장은 의자에 앉았다.
“하아……. 죽을 거 같다. 이 자식, 연락이라도 얼른 해 줄 것이지…….”
뚜르르-
전화가 울렸다. 끔찍하단 얼굴로 국장은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 확인했다. 다음 순간 그는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였다.
“장갑맨!”
“네. 장갑맨입니다.”
전화를 받으니 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됐나?”
“어떻게 됐을 거 같습니까?”
국장은 팍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전 세계가 난리야! 중국의 갑작스러운 쿠데타에 시진핑의 부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고! 소련과 한창 냉전 중일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할 만큼 지금 우리는 끔찍하게 바쁜 처지야! 장난치지 말게!”
“그렇겠지요. 하지만 뭐 짐작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강민의 목소리는 쾌활했고, 거기서 짐작할 수 있었던 국장의 얼굴은 환해졌다.
“잘된 거군?”
“그렇습니다. 악의 축은 무너졌고, 시라이는 체포됐고, 시진핑은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잘했어!”
국장은 강민의 대답을 듣는 순간 환호하며 외쳤다.
강민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후후, 누가 나섰는데요.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죠.”
“아아, 얼마나 초조했었는데. 이제 한시름 놓겠군.”
국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강민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빌려 간 폭탄 신세 크게 졌습니다.”
“뭐 뒤처리가 골치 아프겠지만, 해준 일 생각하면 그 정도는 괜찮아.”
전자기펄스 폭탄은 다르프에서 애지중지하는 거지만 중국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면 다들 입을 다물 것이다. 강민은 계속 말했다.
“한동안 미국과 중국도 친하게 지내겠군요.”
“자네 덕분이지.”
시진핑이 정권을 되찾는 데 성공하고 시라이와 삼합회가 중국 본토에서 축출되었으니 중국과는 매우 협력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한국에 나쁘게 작용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
강민은 그게 살짝 걱정이었다.
“하하하, 그건 대통령 각하에게 직접 얘기해 보게. 이번 자네가 중국을 안정시킨 공은 정말 크니 대통령께서도 어느 정도 배려를 해 주실 거야.”
강민이 부탁하면 FTA관세 문제 같은 거로 어느 정도 특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강민은 그 정도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걸 한다 해도 기껏 득을 보는 건 한국에서 국민들을 빨아먹기 바쁜 대기업일 뿐 일반 시민이 아니다.
“뭐, 지금 정도면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거라면 위안부 비나 좀 더 많이 세워달라는 정도일까요.”
“아, 일본 새끼들이 잔인하고 치사하긴 하지.”
미국에서도 일본의 억지에 질려 각지에서 위안비를 세우고 있다.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자는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리라.
사실 일본도 2차대전 때 미국이랑 싸우면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대미감정이 좋지 않다. 그리고 일본은 배신의 족속답게 자기들이 저지른 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들이 얻어맞은 것만 과장해서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중한다.
미국이 화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죠. 일본의 진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단 말이죠. 근데 이런 거야 개인적인 거니 됐고, 어쨌든 일처리가 끝나고 신세 질 겸 감사 인사를 위해 연락했습니다.”
“이쪽도 신세 크게 졌네. 다음에 큰일 생기면 꼭 좀 부탁하지.”
국장도 쾌활하게 말했다.
“하하, 그건 의뢰의 내용을 보고 결정하죠.”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강민은 전화를 끊었다.
*
휘이이잉!
비행기 한 대가 인천공항에 내렸다.
그 비행기는 중국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 바로 강민 일행이 타고 있었다. 인천공항을 내려오면서 재철 일당은 새삼스럽게 감탄한 표정이 됐다.
“역시 인천공항이 멋지군.”
“그렇게 말이야.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이보다 멋진 공항은 본 적이 없어.”
세계 공항 평가 일등!
전 세계 공항의 모범인 인천공항이다. 멋진 게 당연했다. 옆에서 그들을 보면서 강민이 쯧쯧 혀를 찼다.
“무슨 외국 두 번 가보고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녀 본 것처럼 떠드냐.”
“가방끈 긴 자랑 좀 하면 어때.”
“맞아. 얼마나 대모험을 하고 돌아왔냐.”
“이번엔 별로 건진 것도 없이 고생만 했다고.”
재철 일당이 강민의 핀잔에 투덜댔다.
수구와 만수는 재철보다도 한층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으으. 아름다운 꾸냥을 기대하며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었는데.”
“아름다운 꾸냥은 커녕……. 중국 음식에 학만 떼고 왔네.”
안타까움이 가득한 불평이었다.
“향채가 익숙해지기 힘든 건 사실이지.”
잡담하며 공항 안쪽으로 가니 호성을 비롯한 다른 강민단원들이 이미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왔구나!”
“뭐하러 이런 데까지 마중을 나오냐.”
“이번에 중국에서 큰일 한 거 같아서 말이야.”
호성에 이어 혜경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매일매일 중국이 어쩌고저쩌고 떠드는데 그거 전부 너희가 관계된 거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면 해 드리죠.”
“응.”
“기대돼요.”
다들 그들이 중국에서 어떤 모험을 하고 돌아온 건지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요즘 전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고 어마어마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내막을 제대로 밝혀낸 곳이 없다.
“그동안 한국에는 별일 없었고?”
“한국이야 뭐 특별히. 그냥 장갑맨이 좀 오래 안 보이다 보니 요새 뭐 하고 있냐고 언론과 인터넷이 심심해한다는 정도지.”
“그리고 니가 안 나오니까 그것 때문에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던데.”
“훗. 내가 나서서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군.”
강민은 자신의 존재가 범죄억지력이 되고 있었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강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찬동했다.
“그동안 특히 주요 성범죄자들이 끔찍한 꼴을 많이 당했지.”
그들은 대체로 강제 고자가 됐다.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그것들은 저지른 죄에 비하면 정말 처벌이 약하다니까. 국가가 나설 의지가 없으면 내가 나서서 일일이 고자 겸 병신으로 만들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만들어야지.”
“그건 그래!”
“지젤이란 아름다운 애인을 둔 입장에서 정말 찬성하는 이야기다!”
재철의 찬동에 수구와 만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
“저놈의 자랑질 하곤.”
호성은 둘의 표정이 찌그러지는데서 사정을 눈치채고 놀리기 위해 물었다.
“꾸냥 건지겠다며 포부에 가득 차더니, 건졌어?”
“하아…….”
“말을 마라…….”
“역시 그렇군.”
호성은 기대했던 대답이 돌아온 데 만족했다. 여자 친구 같은 거 마음만 먹으면 절세미인으로 구할 수 있는 입장이긴 해도 역시 수구나 만수에게 추월당하면 기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의 경쟁심이란 복잡하고도 유치하다.
“일단 다 같이 돌아가자. 그리고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건데 다 함께 멋지게 식사나 하자고.”
“후후, 그건 좋은 생각인데.”
다들 찬성했고, 그들은 차를 타고 최고의 요리점으로 향했다.
***
강민 일행이 중국에서 돌아오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 곧 방학이 끝났다.
다시 학기 생활이 시작되었고 강민단원들은 공부를 하며 평화로운 한때와 장갑맨의 이름으로 행하는 영웅 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학기 중의 하루.
강민단원실에 강민단원들이 모여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 좋다.”
“평화로운 시간이 나쁘진 않지.”
만화책을 보며 시간을 때우던 재철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말에 순순히 동의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수구와 만수!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렇고말고!”
“뭔데?”
눈에 불길을 담고 수구는 호성에게 답했다.
“그야 여친을 만드는 거지!”
“아직도 포기 안 했냐?”
호성이 혀를 차며 묻자 수구는 강력하게 반발!
“무슨 개소리야! 남자는 여친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생물이라고!”
“그렇고말고!”
만수도 동의했다.
“와, 과감한 선언이다.”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슬프군.”
강석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일찌감치 멸망했을 테니까!
“뭐 상관없어, 나는.”
“으으, 나도 저기 끼는 건가?”
호성은 수구와 만수의 외침에 여유로웠지만, 강석은 아니었다. 그도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태 솔로라는 슬픈 신세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자, 너도 우리의 동료다!”
“너도 모태 솔로잖아! 줄여서 모솔!”
“아아……. 비참하다.”
강석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하지만 수구는 개의치 않고 동료들과 함께 혜경에게로 다가가 애걸했다.
“저기……. 소개팅 좀.”
“미안, 내 친구들은 연하는 다들 별로…….”
“으으…….”
만수가 억울한 듯 나서서 가슴을 탕탕 쳤다.
“저 서울대생입니다!”
“나도요!”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스펙이잖아요!”
“싸움도 잘해요! 사랑하는 여자 지켜주는 정도야!”
혜경은 곤혹스러운 웃음을 떠올리고 물었다.
“그렇긴 한데……. 너희는 내가 어느 대학에 다닌다고 생각해?”
“그야 선배시죠.”
뻔한 질문을 왜 하냐는 태도로 수구가 물었지만, 강석은 이미 혜경이 뭘 말하려는지 알아챘다. 그리고 혜경은 강석이 예상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대답을 그들에게 되돌렸다.
“그러니까 내 친구들도 다 그렇겠지? 너희들 스펙이 나쁘진 않은데……. 내 친구들은 다들 서울대가 기본 장착이니까 별로 의미가 없는 거지.”
염원과 소망을 담아 수구가 이번에 바라본 것은 지혜!
“그, 그러면 지혜 너는?”
“저기……. 나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 미안.”
하지만 쩔쩔매면서 결국 지혜도 거절하고 말았다.
“하긴 지혜는 동아리실에 너무 자주 오더라.”
혜경이 말했다.
물론 동아리실에 자주 오지만! 붙어살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아싸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 지혜는 얼른 반발했다.
“그래도 남자인 친구들은 많아요.”
“아, 그거 다 흑심 덩어리들이겠군.”
혜경이 뻔하다는 듯 말했다.
“틀림없겠죠.”
호성이 동감했다.
“조, 좋은 사람도 많다고요.”
지혜는 다시 반발!
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 좋은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흑심이 없을 리가 있겠어! 좋은 사람이라도 노리는 건 다 똑같은 거라고!”
“그, 그런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지혜는 소개팅이 무리라고 하네.”
어쩔 줄 몰라 하는 지혜를 옆에 두고 혜경이 말했다.
“젠장…….”
“하, 세상을 다 가져도 모솔을 벗어나지 못하니 글로브 아미인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수구와 만수는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동아리실 문이 열리고 강민과 세나, 에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다!”
“우리도.”
“바보 데리고 놀다 왔지.”
오늘은 일찍 수업을 끝마치고 미인 둘을 끼고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다 오는 길이었다. 특별히 대단한 건 하지 않았지만 미인 둘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한데 안으로 들어온 동아리실의 분위기가 어쩐지 어두운 것을 느끼고 물었다.
“응? 왜 괜히 분위기가 어두침침하냐?”
“분위기 어두운 거 아냐. 쟤들만 그런 거지.”
호성이 수구, 만수, 강석을 가리켰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