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죽립 노인은 비처에서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다.
세월을 낚는다고 하던가.
그는 정자에 앉아 낚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밤이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원래 낚시는 밤에 하는 것이 더 흥취가 있기도 하는 법이 아니던가.
수면 위에 달빛의 모습이 휘황찬란하게 비쳤다.
그런데 고요를 깨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싱룽이냐.”
익숙한 발걸음 소리를 노인은 찌푸린 얼굴로 맞이했다. 산룽은 노인 앞이라는 것을 잊은 듯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대피하십시오!”
“대파라니,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노인의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흐트러진 발걸음 소리에서 이미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대피라는 말까지 나오다니. 이것은 이차대전 이후로는 없던 일이다.
“시진핑이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진핑이 죽지 않았다니?”
많은 것을 겪어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노인도 그 말에는 크게 놀랐다. 싱룽은 일그러진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그는 죽지 않았을뿐더러 이번 사건을 자신에게 역심을 품고 있던 세력을 일소할 기회로 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 우리가 당했단 말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당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삼합회가 하는 일은 언제나 철저하다.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뒤처리를 제대로 못해 뒤를 밟히게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극히 그러하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싱룽도 답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놈인가…….”
두 사람 모두 짐작 가는 자는 있었다.
이번에 새로 금인이 되었던 장각수라는 자, 그 외에 의심을 둘만 한 곳은 없었다.
더구나 장각수는 시진핑의 암살을 진행했던 자기이도 하다.
싱룽은 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조사는 철저히 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일을 저지른 규모를 보니 삼합회의 눈을 속일만한 세력이 등 뒤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노인도 싱룽의 일처리가 어떤지 알기 때문에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싱룽은 그 말을 믿기 어려운 듯했다.
“그런 자들은 세계를 통틀어도 하나둘이 있을까 말까 합니다. 미국의 CIA쯤 되지 않는다면…….”
재력과 조직의 규모에서 삼합회는 기존의 모든 조직과 그 궤를 달리한다. 국가 경영을 목표로 할 정도의 집단이니 당연했다.
노인은 혀를 찼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 리가요.”
“그가 장갑맨이라면 어떠하냐?”
노인은 문득 말했다.
“헉!”
노인이 한 말에 싱룽은 비수에 꽂히는 듯한 충격을 맛봤다.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노인이 얼굴 가득 주름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일도 다 설명이 되겠지?”
“그놈이 이 모든 것을 노리고……”
“그렇다면 원하는 것도 뻔한 것이지.”
“정보겠군요.”
싱룽은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최고의 복수가 있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노인은 그가 무얼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정보를 풀어버릴 생각이냐?”
“그렇지요.”
대업을 망친 복수로는 시시하지만 장갑맨에 대한 복수라면 이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노인도 그것을 알기에 말리지 않았다.
한데 싱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읏?”
“왜 그러지?”
“통신기기가 전부…… 먹통입니다.”
“먹통이라고? 그럴 수가…….”
방금까지만 해도 전 세계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던 곳이다. 그런데 갑자기 먹통이 되다니. 삼합회는 비밀리에 자기 위성을 쏘아 올릴 정도의 기술과 재력이 있기 때문에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갑자기 어둠 한편에서 무엇인가가 외쳤다.
“그야 당연하지! EMP라고 들어봤냐?”
“헛!”
노인과 실룽은 놀라서 그쪽을 바라봤다.
어둠에서 유유자적하게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걸어오면서 해설을 하듯이 둘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다.
“EMP란 전자기펄스를 말하는 거라고. 핵폭탄 같은 게 터지면 강력한 전자파가 나와서 기계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지! 현대로 오면서 첨단기기를 많이 쓰게 되니까 이게 정말 멋진 공격이 될 거 같단 말이야. 미국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도리가 있겠냐? 그런데 이거 노리고 싸울 때마다 핵폭탄을 터뜨릴 수도 없는 거고, 어떻게 전자기펄스만 터뜨리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를 했지.”
“네놈…….”
싱룽과 노인의 눈가에 짙은 분노가 어렸다.
당장에라도 눈앞의 저자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그런 막대한 분노! 그러나 강민은 그런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며 유들유들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한 해 천조씩 국방비에 꼴아박는 미국은 결국 그걸 만들어 냈다고. 이 주변은 그 영향권 내에 들어 있으니 그 어떤 전자기기라도 이제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장갑맨…….”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래. 장갑맨이지.”
“잘도……!”
“나를 적으로 뒀고, 나에 대한 정보로 나를 위협에 빠뜨리려 했던 주제에 감히 억울한 척 지껄이다니. 대체 그 죗값을 어찌 치르려고 그따위 눈빛을 하고 있는 거지?”
강민은 자신을 노려보는 둘에게 도리어 날카로운 눈빛을 되돌려 보내며 외쳤다. 상룽은 후회하며 외쳤다.
“주화입마가 되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건 그래. 나도 그때 빡치긴 했는데, 대업이 있어서 참았던 거지.”
강민의 손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이제야 풀 때가 왔다는 데에 대한 기쁨이 손을 근질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이제 너희를 전부 작살낼 바로 그 순간이 왔다!”
“이놈! 마음대로 될 줄 아느냐!”
“물론이지!”
그리고 강민은 달렸다.
“나는 마그누스다!”
그의 달리는 속도는 그야말로 번개! 싱룽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기 어려웠다. 겨우 바닥을 박차 강민을 피했다.
그러나 피하는 순간 이미 강만은 바닥을 차며 그가 피한 쪽으로 달려들어 싱룽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강민은 싱룽은 공깃돌처럼 휘둘러 바닥에 내려쳤다.
“핫!”
쾅!
“크아악!”
싱룽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내리쳐진 순간 그는 낙법으로 최대한 피해를 줄였고, 자세를 바꾸어 강민을 공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얻어맞고서 공격해 오는 싱룽의 근성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제법이긴 하군. 그러나 역시 약해.”
슬쩍슬쩍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격을 피해내며 강민은 싱룽을 놀렸다. 싱룽은 권법의 자세를 취하며 한층 예리하게 강민을 공격해 들어갔다.
강민은 계속 쉽게 피했지만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 싱룽이 휘두르는 주먹은 지구에 와서 상대한 그 누구보다 예리하고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상대는 강민이니까!
강민은 공격 사이의 허점을 파고들어가 싱룽의 복부를 후려쳤다.
“컥!”
싱룽은 허리가 꺾일 듯이 몸이 붕 떴다.
강민은 히죽 웃으며 싱룽의 목덜미를 잡고 원을 그리며 내던져 버렸다.
부웅!
조약돌처럼 날아간 싱룽은 낙법으로 데굴데굴 굴러 겨우 피해를 줄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때 강민이 뛰어올랐다가 활강하며 독수리처럼 그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싱룽은 이를 악물고 이를 피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쾅!
강민이 내리친 곳의 땅이 쩍 갈라졌다.
강민은 웃으면서 싱룽을 추격해 금세 따라잡았다. 몇 번 강민에게 얻어맞고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인 그가 강민의 추격을 벗어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도망쳐봐!”
“큭!”
싱룽은 분노한 표정으로 강민을 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턱!
강민은 그 주먹을 간단히 잡았다. 그리고 싱긋 웃고는 꽉 잡았다. 피가 팍 튀었다.
“으아아아악!”
싱룽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강민의 손안에서 주먹이 뭉개져버린 것이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강민이 손을 놓자 그는 뭉개진 자신의 손을 보며 계속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후후, 멍청한 것.”
강민은 조소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누굴 상대했는지 모른 걸 원망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민은 호랑이처럼 달려 싱룽을 쫓아갔다. 싱룽은 강민이 자신을 추격하는 데 기겁하고 도망치려 했으나 도망칠 수 있다면 강민이 아니다!
강민은 금세 그를 따라잡고서 공격했다.
퍽!
“케엑!”
강민의 주먹이 싱룽의 흉부를 꿰뚫었다.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강민은 싱룽에게서 손을 빼냈다. 싱룽은 바닥에 쓰러져 벌벌 떨었다. 곧 그는 죽고 말 것이다.
그가 죽고 난 다음 강민은 고개를 돌려 이번엔 노인을 바라봤다.
이제 저자의 차례였다.
죽립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이러는 사이 주변의 공기가 매우 불온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싸움의 공기다.
이 일대가 포위당했고 정체 모를 병력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세력은 틀림없이 강민과 관계있을 것이다.
죽립 노인은 강민을 노려보며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거지?”
“원한? 원한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있는 거겠지. 너희가 애꿎은 소녀를 잡아 죽이려고 한국까지 건너오는 또라이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나랑 악연을 쌓을 일도 없었을 거란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강민은 노인을 비웃었다.
“허허, 인간 하나의 생명 따위…….”
노인은 전혀 자신이 잘못했다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중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국가를 위한 일을 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다.
인간 하나 따위, 그것도 한족도 아닌 오랑캐 따위 죽여도 뭐 나쁠 게 있단 말인가.
강민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너의 그 개미새끼 같은 생명 하나 따위 짓밟아 죽여도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 그러니 그냥 자살하지?”
강민의 비웃음에 노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례하기 짝이 없군.”
강민은 바닥을 침을 뱉었다.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 건드려 여기까지 오게 해서 수고하게 만든 것들이 누군데 무례를 따지고 있어? 나이 먹었다고 내가 대접해 줄 거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때려죽여야 할 것들에 대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비롭게 패 죽여온 사람이야.”
“미친…….”
노인은 이를 갈았다.
강민은 그저 그를 낄낄대며 비웃었다.
“이 글로벌 시대에 중화를 지껄이며 민폐 끼치는 너 같은 늙은이가 미친 거겠지.”
“말이 필요 없구나!”
노인이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그걸 이제 알았냐!”
강민은 기꺼이 그를 상대했다.
노인의 동작은 상룽에 비해서도 한결 부드럽고 정교했다. 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 하지만 상대는 강민!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그를 일일이 다 피해내며 노인과 붙어 공방을 계속했다.
탁!
타다닥!
탁!
그러나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수의 교환이라고 해 봐야 강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손장난일 뿐이었다.
당장 싸움을 끝내면 재미가 없으니 그저 놀아주고 있는 정도.
“흥, 이 정도냐!”
강민은 그를 비웃으며 손을 쳐내고 가슴을 비운 다음 거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크악!”
노인은 가슴이 함몰된 채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러나 노인은 낙법으로 착지하고는 강민을 향해 다시 달렸다. 놀랍게도 강민의 공격을 그는 버텨낸 것이다.
“대단한 외공이군!”
강민은 그가 기로 몸을 보호했다는 것을 깨닫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