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강민이 묵고 있는 호텔 방에 방문자가 찾아왔다.
문을 열고 맞이해 보니 리웨이였다. 그는 강민을 보자마자 이전과는 달리 잔득 주눅이 든 모습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 형님.”
강민이 놀라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리웨이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형님은요. 금인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금인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형님은 형님인 것이죠.”
“휴우,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기쁩니다.”
리웨이는 옛정을 잊지 않는 강민의 태도가 반가운 듯이 웃었다. 강민은 손을 내저으며 한결 더 관대하게 그를 대우했다.
“하하, 이전처럼 대하셔도 됩니다.”
“그러면 허락도 떨어졌으니 그렇게 할까. 금인이 됐다고 듣긴 했지만 정말 놀랍군.”
리웨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도를 원래대로 회복시켰다.
“놀란 건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싱룽 어르신이 자네를 보자고 하네.”
“싱룽께서요?”
싱룽이라면 강민을 찾아와 노인에게 데려갔던 남자다. 강민은 감히 자신을 주화입마에 들게 하려 수작을 부리던 그놈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야. 그분도 금인이시지.”
“네. 저보다 훨씬 일찍부터 금인으로 활동하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일단 뻐기는 태도부터가 오래도록 윗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던 자였다.
“삼합회는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정보가 외부에 밝혀진 바는 그다지 없어. 하지만 싱룽에 대해서는 소문 정도는 돌던 게 있지.”
“어떤 것입니까?”
강민은 호기심에 물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용이라고 하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인 거지요?”
허세 넘치는 별명이라 생각하면서 강민은 물었다.
“모든 면에서!”
“못하는 게 없는 모양이군요.”
강민이 속으로 싱룽을 조롱하며 말하자 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천재인 데다 무섭도록 강하고 심성도 냉혹해. 삼합회의 다음을 이끌어 나갈 가장 뛰어난 인재로 오래전부터 인정받고 있었지.”
“제가 조심할 게 있나요?”
“공손하게 지금처럼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명심하죠.”
꼴같잖긴 해도 일단 일이 끝날 때까지는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춰주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나중에 복수의 쾌감도 더 늘려주는 법이고.
“그럼 가지.”
“네.”
둘은 방을 나서서 함께 움직였다.
***
다른 어느 훌륭한 호텔의 방으로 강민은 안내되었다. 문밖에서 전화를 해서 리웨이는 싱룽에게 보고했다.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장공은 들어오게 하고, 당신은 물러가도록.”
“네.”
전화로 그런 답변을 들은 리웨이는 강민에게 손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강민은 혼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지.”
“아, 그 약속.”
강민은 환한 얼굴이 됐다.
“하하 두 가지가 있었지.”
“네.”
당시 했던 약속은 장갑맨과 금인에 대한 것이었다.
“둘 다 어느 정도 지킬까 하네. 우선 여기.”
싱룽은 두툼한 서류뭉치를 강민에게 내밀었다.
“이건?”
“금인들의 연락처야.”
강민은 서류를 슬쩍 살폈다. 전화번호나 주소나 그 외에 중요한 사항 같은 것들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연락하면 그분들과 만날 약속을 할 수 있는 거군요.”
“그렇지.”
강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 있다면 이제 시진핑과의 약속은 지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강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다.
“그러면 장갑맨은……?”
“장갑맨이 작년 브라질에서 설쳤던 것은 알고 있나?”
“물론이죠.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으니까요.”
장본인인데 모를 리가 없다.
“그렇지. 한데 그 사건 가운데는 한 가지 이야기되지 않은 비밀이 있지.”
“어떤 건가요?”
“후후, 장갑맨이 짧지만 대단한 위기에 처했었다는 거야.”
싱룽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강민은 그가 무얼 말하는지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하고 놀란 모습을 보였다.
“못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긴 뭐 장갑맨의 위기라 말하기도 좀 거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효과는 확실하네. 장갑맨을 알고 있거나, 장갑맨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그때 납치가 되었으니까.”
역시!
속으로 다시 울분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강민은 때려죽이고 싶은 걸 꾹 참고서 그의 비위를 맞춰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전혀 그런 얘기는…….”
“하하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건 어디서도 유출된 적이 없는 이야기니까.”
“그러면?”
“그 일을 했던 것이 바로 우리 삼합회였던 거야.”
싱룽은 매우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강민은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장갑맨을 적대시했던 세력이야 지구상에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일방적으로 탈탈 털리다가 멸망했을 뿐이다.
강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삼합회뿐이다.
그 점은 분명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강민은 계속 그에게 장단을 맞춰 나갔다.
“아! 그럼 삼합회는 장갑맨의 근처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래.”
“엄청난 정보군요……!”
강민은 놀라면서 말했다.
“무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짐승을 제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 해도 좋을 거야.”
“정말 그렇겠군요.”
그렇다.
그래서 강민이 때려죽이고 싶은 놈들을 살려두면서 이런 비굴한 꼴을 보이고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나중의 복수도 그만큼 처절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들은 생각하고 있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런 정보이니만큼 쉽게 취급할 수는 없지.”
“네. 협상 가치가 높은 정보입니다.”
“하지만 자네도 이제 금인이니……. 필요하다면 조금씩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열람권을 주도록 하지.”
강민은 속으로 낄낄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금인이신 분들은 전부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겁니까?”
“열람권이 있을 뿐, 접속해서 알아내는 것하고는 다른 문제지. 장갑맨이 비록 대단한 화제라곤 해도 우리의 사업에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알만합니다.”
강민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알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참살하는 거야 쉽다. 하지만 그들을 금세 죽여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정리해야 하는데 수가 많으면 그 작업이 어려워진다.
그런 면에서 금인들이 이 정보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 주소를 알려줄 테니까 인터넷으로 접속해봐. 거기서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강민의 폰으로 주소 하나가 전달되어 왔다.
그걸 보고 강민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인터넷이군요.”
“하하하,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으니 정보를 관리하긴 더없이 편리하지.”
“유출의 위험이 있지 않나요?”
강민이 걱정스레 물었다. 만일 이곳의 정보가 유출된다면 강민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재앙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인터넷에 정보가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강민의 표정이 우울해진 것이다.
“그 점이 걱정이지만 접속하는 사람의 수 자체가 많지 않고 위치가 극비라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알겠습니다.”
싱룽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조금은 안도하며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강민은 평소 그랬던 것처럼 만남을 끝낸 다음에는 동료들이 있는 호텔 방으로 갔다. 그가 오자 표정을 보고 상황이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다들 느꼈다.
“표정이 안 좋네?”
“잘 안 됐어?”
“아……. 조금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안 좋아.”
강민은 한숨을 쉬었다.
“어떻기에?”
“이놈들이 장갑맨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렸네?”
강민이 이를 갈며 한 말에 강민의 동료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러면…….”
“그래. 자칫하면 전 세계에 정보가 다 퍼져버릴 우려가 있지.”
한순간의 실수로 장갑맨의 정보가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마 상상 가능한 최악의 사태일 것이다.
심각한 얼굴이 되어 에이리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것만 일단은 확실해진 셈이지.”
강민은 무력하게 그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흐으음……. 그러면 그 정보에 접속한 사람은 많은 거야?”
“그렇진 않은 모양이야. 접속 가능한 사람 숫자만 금인에 한정되어 있는데다 그들이 장갑맨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접속하지 않은 모양이더군.”
그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누군가 접속해서 정보를 얻으면 그에 대한 기록도 남는다고 했어. 그 점에서 보면 아직도 장갑맨에 대한 정보는 삼합회 가운데서도 거의 퍼지지 않은 정보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강민은 싱룽에게 물어 미리 확인했다.
“그건 다행이네.”
“그래.”
“그래서 어떻게 공략할 거야?”
에이리가 채근하듯이 물었다.
“그건 좀 고민 중이야.”
“흠……. 어렵겠다.”
세나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한 번만 잘못 건드리면 다 망치는 셈이 되니까 말이지.”
“뭘 어떻게 하든 우린 널 응원해!”
“그럼!”
재철 일당이 강민을 위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강민에겐 지금 그들의 응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건 실패할 경우 책임 전가를 하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 아냐!”
“그렇고말고!”
그들은 손을 크게 흔들며 강민의 말을 부정했다. 그 모습을 보니 지금 강민의 말이 정곡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