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하긴 그렇다.
중국에 대해 한국인이 선망을 가질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과거의 중국이야 대제국이었는지 몰라도 지금 한국인에게 중국이란 짱깨들이 바글바글 사는 낙후된 나라일 뿐이다. 그런 나라를 선망하고 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니?
중국사를 전공하거나 아니면 중국 문화를 전공한 사람이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싶은 것이다.
물론 강민도 그 점에서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얼른 준비했던 변명을 내세웠다.
“사부님이 중국인이셨습니다. 그분의 은덕으로 저는 이때까지 살아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분은 중국을 사랑하셨고, 때문에 저도 중국에 애착이 있는 것이지요.”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가?”
죽립 노인은 물었다.
“저는 한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찌푸린 얼굴로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인가?”
“한국이란 나라는 제게 아무것도 베풀어 준 게 없기 때문입니다.”
강민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고통만을 안겨준 조국보다는 차라리 제 진정한 은인이 사랑했던 곳을 저의 나라로 삼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라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한국인이 세금 뜯기며 가장 자주 하는 말을 핑계로 삼았다. 그러나 노인은 역시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흠, 그렇군. 하지만 중국은 자네 사부를 쫓아냈었네. 그리고 자네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한국에서보다 훨씬 가혹한 생활을 했을 것 같은데.”
물론 강민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논리적으로는 아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은 옳군. 알겠네. 그러면 식사를 하지.”
“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 노인은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음식이 하나하나 들여져 왔다. 호화롭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하하, 자, 오늘은 십 년 만에 금인이 탄생한 날이다. 모든 것을 잊고 성대히 즐기도록 하지!”
“건배!”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술잔을 들고 강민과 삼합회를 축하했다.
***
술자리도 여러 시간이 지났다.
주변은 모두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강민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쯤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싱룽에게 물었다.
“실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장갑맨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장갑맨?”
강민이 갑자기 장갑맨을 묻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어낸 연유를 그에게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그자에게 원한이 있는 것도 그렇고……. 또 한국에서 앞으로 사업을 하려면 어떻게 대비책이 있는 것이 좋을 텐데 전혀 수단이 없습니다.”
“확실히……. 그냥 부딪히지 않는 게 최선 아니겠나?”
싱룽은 강민의 말을 긍정하면서 제안했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그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죠. 장갑맨이 결정하는 것이지. 그리고 장갑맨은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를 한 번 쓸어버리다시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같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다시 그 재앙이 들이닥칠지…….”
“정식의 사업을 한다고 들었네만?”
정식 사업을 하는 사람을 장갑맨이 건드릴 리가 없다. 그는 주로 범죄자들을 상대해 왔다. 정치적인 부분에도 별로 연관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고.
“네. 일단 합작 회사 형식으로 한국에 인정받은 회사를 세울 겁니다. 하지만 사업이란, 아시겠지만 음지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특히 이런 일은…….”
강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둘러댔다.
“……확실히 그렇군.”
이민자들을 관리하는 사업이다. 불법적인 폭력이 꽤나 필요해질 건 뻔한 일이다. 그걸 장갑맨이 찔러 공격할지 모른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방법이 없을까요?”
“장갑맨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네.”
싱룽은 딱 잘라 말했다.
“아! 삼합회조차도 무리입니까?”
강민은 속으로 당연하다고 뻐기면서 겉으로는 울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싱룽은 고개를 저으면서 힘들다는 듯 말했다.
“그는 신출귀몰하니까 말이야. 그를 잡기 위해서는 장갑맨 이상 가는 고수가 필요하지만 그런 자는 세계를 뒤져도 없지.”
“하긴…….”
장갑맨의 힘과 파워, 기동력은 유례가 없다. 어떤 첨단병기가 있어도 그를 막을 수 있을지. 정면으로 대결하면 몰라도 장갑맨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무기가 있는 자들과 정면에서 충돌할 리도 없고.
싱룽은 이어 고백하듯이 말했다.
“과거 우리 협회에서 그와 충돌한 적이 있긴 했었지.”
“그랬습니까?”
걸렸구나!
강민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반문했다.
“장갑맨을 목적으로 갔던 것은 아니야. 용돈 벌이하러 갔었는데 그만 중요한 인재만 넷을 잃고 돌아오는 데서 그쳤지.”
“저런.”
죽을 짓을 하다 걸려 감옥에 가는 데 그쳤고, 거기서 니들이 죽였으니 전혀 동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강민은 동정하는 척을 했다.
“실은 신참인 자네를 이렇게 중용하게 된 것도 당시 잃어버린 인재로 인한 공백 때문이네.”
“그런가요.”
강민은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아쉬워할 필요 있나. 어쨌든 자네는 이제 금인이고, 또 실력으로 볼 때 우리 협회가 잃어버렸던 그 인재들과 비교해서 부족함이 없을 지경인데.”
“높은 평가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면…….”
싱룽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네?”
“흠, 장갑맨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쓸만 한 게 있긴 했지.”
“그, 그게 뭡니까?”
드디어 진짜 목표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끼며, 강민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싱룽은 그의 반응에 놀라면서 물었다.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려면 가장 중요한 위험요소니까요.”
사실이긴 하다.
장갑맨은 법으로도, 폭력으로도,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재앙이다.
“흠, 이런 곳에서 말할 만한 정보는 아니지.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네.”
“기다리겠습니다.”
강민은 고개를 숙여 간절한 태도를 보였다. 싱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강민은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뭔가 더 할 말이 있나?”
“별건 아니고 저도 이제 삼합회의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된 셈이니 다른 분들과 친분을 쌓는 게 어떨까 하는데…….”
“하하하, 그건 일리가 있군.”
싱룽도 그게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인사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끈을 대어주실 수 있으신지?”
“문제없지. 가까운 인사부터 정리해서 자네에게 알려주도록 하겠네.”
강민이 직접 나서서 인사를 해야 할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삼합회에서도 요직이다. 그들은 중국 각지에서 삼합회를 지배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정보를 강민이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시진핑에게 넘기기 위한 것!
“감사합니다. 나중에 선물을 보내겠습니다.”
“기대하지.”
싱룽은 강민의 마음속에 들어찬 음모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
강민이 여러 차례의 보안을 거쳐 화상통화를 시도했다.
파직, 파직.
다소 노이즈 낀 화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시진핑이었다.
강민은 그에게 인사했다.
“잘 지내고 계신지?”
“죽은 척하고 지내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군.”
초조한 표정으로 시진핑이 답했다.
그는 지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몸을 숨긴 채 언제 다시 활동할까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 활동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 강민의 활약이다.
“하긴 그렇겠지요.”
“오래 이렇게 있을 순 없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장악력이 떨어질 테니까. 그건 정말로 죽은 것과 차이가 없게 되지.”
시간이 흐를수록 시라이의 세력은 확실히 확장되고 지지 세력도 견고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시라이의 뒤통수를 역으로 쳐야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움직이고 있죠.”
“성과는 있나?”
“저는 금인이 됐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이 한 말에 시진핑은 놀랍다는 표정이 됐다.
“금인? 호, 삼합회의 최상위층이 됐나.”
“그렇죠. 당신을 죽인 게 크게 평가받은 모양입니다.”
“흥, 내 목숨값이 비싸게 평가받는다니 기뻐해야 하나.”
“하하하.”
시진핑이 냉소적으로 말하는데 강민도 그저 웃으며 받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은 그런 정보는 관심 없다는 듯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다른 정보는?”
“삼합회 주요 인사에 대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잘됐군. 일망타진이 가능하겠어!”
강민이 생각했던 대로 시진핑은 매우 기뻐했다.
삼합회의 주요 인사라면 현재 시라이의 가장 중요한 지지 세력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을 처리하면 이후가 매우 편해진다.
“그래도 결국 간부 선에 불과하지만요. 그리고 이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제거하더라도 곧 재생할 겁니다.”
“그건 문제군.”
강민의 지적은 옳아서 시진핑은 얼굴을 다소간 찌푸렸다.
애당초 화교의 발생이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을 떠나야 했던 많은 중국인들의 불행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별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좀 더 정보를 얻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네.”
시진핑은 초조하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최대한 노력해 보지.”
강민의 부탁에 시진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강민도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진핑과의 통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