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숙소로 돌아온 강민은 동료들과 이번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드디어 대면이군.”
“그쪽은 장갑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겠지?”
“그야. 아무래도 대가린데 알겠지.”
“만나면 어쩔 거야?”
세나가 물었다.
“장기적으로는 교섭해볼까 해.”
“안 통하면?”
“글쎄. 일단 주요 간부 목록 같은 걸 얻어두도록 해야지.”
“그럼 당장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네?”
세나가 지적하자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록이 먼저니까. 인적 사항이 일단 확보되면……. 그다음은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없지. 그리고 그게 시진핑과 했던 약속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하긴.”
대화를 듣고 있던 에이리가 물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야. 거기가 어딘진 물론 나도 모르지.”
강민에게 당한 척한 시진핑은 아군에게 그 시신이 회수되어 어디론가 옮겨졌다. 극비를 요하는 사항인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강민에게도 비밀이었다.
에이리가 걱정인 듯이 물었다.
“흠, 괜찮을까? 뒤통수치려다가 혹시 정말 군대가 장악되거나 하면 곤란하잖아.”
충성심이란 살아있을 때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죽고 난 다음까지 기대해선 안 된다. 삼국시대에도 그런 건 어려웠다.
“중요 간부에게는 벌써 연락을 해 뒀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 없을 거야.”
“하긴, 치열한 정치투쟁에서 살아남았을 테니 그 정도 대비를 하지 않을까.”
세나가 그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러면 드디어 이 일도 종반부에 접어들기 시작한 거네?”
재철이 끼어들어 말했다.
강민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려다가 그 말도 맞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따지고 보면 그런가.”
삼합회의 대가리를 만나고,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그리고 교섭을 통해 정보를 완전히 봉인한다. 남은 것은 그 정도 작업이다.
“잘해.”
“그래. 괜히 망치면 안 하는 것만 못해.”
동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알고 있어.”
강민은 평소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그들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
딩동.
강민이 묵고 있는 호텔 방에 벨이 울렸다. 강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에 달린 카메라로 밖을 봤다.
밖에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부하 둘을 대동하고 와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긴 강민을 찾아올 사람 중에 평범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도 하지만.
“누구십니까?”
“장각수인가.”
남자는 답 대신 도리어 물었다.
강민은 누구인지 속으로 짐작하며 멋쩍게 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삼합회다.”
“아!”
예상했던 대로였다.
남자는 건조하게 자신이 할 말만 계속했다.
“면담이 확정됐다. 내일 저녁 8시에 차를 보내지.”
“준비하겠습니다.”
강민은 화급하게 답했다.
그 말만 하고 남자들은 떠났다.
***
다음 날 저녁 8시가 됐다.
강민이 호텔 밖으로 나가니 어제 보았던 남자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강민은 그들을 따라갔다. 대기하고 있는 차가 한 대 있었다. 롤스로이스였다.
강민은 뒷문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제 보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강민을 보자 흥미로운 듯 웃으며 물었다.
“자네가 장각수인가.”
“네.”
강민은 공손하게 답했다.
상대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느낌이 풍겼다. 과거 이세계에서 모험을 하며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자를 몇 번이고 만나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위험한 자였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싱룽일세.”
“반갑습니다.”
강민은 그의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그는 싱룽이 위험한 자라고 느꼈지만, 전혀 겁먹지 않았다. 위험한 자라고 느끼는 것은 강민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자라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니까.
실제로 위험하다 싶었던 자들은 강민에게 전부 다 두들겨 맞고 비참하게 죽었다.
“나도 자네를 보게 되어 반갑네. 나는 어르신의 사업을 보좌하고 있지.”
“그러시군요.”
인사를 하는 사이 차가 움직였다.
비싸고 좋은 차답게 차가 흔들리는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승차감이 끝내줬다. 싱룽은 강민의 연출된 모습에 넘어간 듯 웃으며 대화를 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굳지 말게. 시진핑조차 처리하지 않았나. 내가 삼합회에서 나름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해도 시진핑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
“하지만 그렇게 쉽게는 되지 않군요.”
강민은 비굴하게 자신을 낮췄다. 싱룽은 그런 강민의 모습이 마음에 든 듯이 웃었다.
“그건 별수 없으려나.”
싱룽은 이어 부드럽게 말했다.
“실은 이렇게 자투리 시간을 만든 것은 자네를 좀 더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네.”
“저를요?”
“흥미로우니까. 그리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싱룽의 눈이 강민을 검색하듯이 번쩍였다. 강민은 얼른 고개를 조아리듯 하며 말했다.
“저는 삼합회에 충성을 다할 생각일 뿐입니다.”
“하하하, 그게 가장 좋지. 하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일이니까 그걸 대비한 일이라고만 생각해 주게.”
“네에…….”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강하더군.”
“몸을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강민은 시선을 들며 말했다.
“특별한 외공을 익혔다고?”
“네. 사부님에게서요.”
“어떤 것인지 들을 수 있겠나?”
강민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은 그게 뭔지 저도 정확히 듣진 못했습니다.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안 가르쳐 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군. 비전의 무공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
중국 무술에는 비전이 많다.
그렇게 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신해혁명 당시 무술가들이 대학살을 당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후 정권은 무술가들을 싫어하게 됐고 무술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숨기고 무술을 건강법이라고 가르치는 식으로 명맥을 이었다.
“그렇지요.”
“맥문을 내밀어보게.”
싱룽의 요구에 강민은 공손히 따랐다.
“네.”
“힘을 사용해 보게.”
강민의 맥문을 잡고서 싱룽이 요구했다. 강민은 약간 망설이다가 어차피 알아보지 못할 테니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그의 요구에 따라 힘을 사용해 몸에 돌렸다.
“흠…….”
눈을 감고 힘을 돌리는 가운데 싱룽의 힘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강민의 힘을 막고 방해하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놈이.’
강민의 마음속에서 살심이 일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주화입마라고 불리는 상태에 빠뜨리려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다만 매우 교묘해서 대단한 고수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다.
나중에 때려죽여서 갚아주기로 하고 강민은 일단 참았다.
“어떻습니까?”
“강하군. 그리고 특이해.”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강민에게 싱룽은 놀란 모양이었다.
“그, 그런가요?”
“그런데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전혀 여기엔 중국적인 특징이 없군.”
이어서 싱룽이 힐난하듯 묻는 질문에는 강민도 뜨끔했다. 하긴 강민이 기른 힘은 중국이 출처가 아니고 저 머나먼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상관없지. 도착했네.”
차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상해루군요.”
“자네에게 가장 편한 장소일 것 같아서 이쪽으로 고르셨지.”
“네에.”
그리고 그들은 함께 상해루의 꼭대기로 이동했다.
곧 5층에 도착했다. 5층에 도착하자마자 싱룽이 말했다.
“예의를 차리게.”
“주의하겠습니다.”
그들은 함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싱룽이 들어가 인사를 했다.
“어르신, 데리고 왔습니다.”
“아, 우리의 영웅이 왔는가.”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이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은 노인이 보였다. 검박한 복장을 하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 노인을 보는 순간 강민은 느꼈다. 저 노인은 싱룽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다. 강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그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각수라고 합니다.”
“하하하, 기대했던 대로 영웅의 상이군.”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이쪽으로 앉게.”
“네.”
강민은 그가 권하는 대로 가서 앉았다. 강민이 앉자마자 노인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그의 공을 칭찬했다.
“자네 덕에 중국은 더욱 강해질 거야. 그리고 삼합회 역시.”
“오래전부터 중화에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강민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목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라곤 해도 역시 속이 뒤집힐 듯이 재수 없는 말이었다. 중화에 뜻을 품다니. 조국인 한국도 애국애국 거리며 바보짓 하라고 부추기면 짜증나는데 남의 나라 장단에 맞춰서 만세라니. 소름 돋는 일이었다.
“하하하, 그것은 기쁜 말이군.”
하지만 확실히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노인은 웃으면서 한결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 자기소개부터 할까. 나는 죽립 노인이라 하네.”
“죽립 노인요?”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명칭이었다. 노인은 왜 강민이 의아하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말했다.
“그렇게만 알아두게. 중화를 위해 이름을 버린 입장이니까.”
“그러시군요.”
강민은 같잖다고 생각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선물이 있네.”
노인이 근처에 서 있던 보좌관 하나를 바라봤다.
그는 서둘러 다른 방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왔다. 작은 상자 같은 것이었다. 노인은 그 상자를 건네받고는 그걸 강민에게 넘겼다.
“여기 받게.”
“아, 이것은!”
공손히 받아 상자 뚜껑을 열자 거기에는 삼합의 상징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금색 배지!
그게 무엇인지는 강민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자네는 오늘부터 우리 삼합회의 금인이 되는 것이지.”
“가, 감사합니다.”
감격한 표정으로 강민은 배지를 받아들었다. 죽립 노인은 강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제 천만 삼합회의 모두는 자네가 하는 일을 전력으로 도울 걸세.”
“노력해서 저도 협회의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한데 궁금한 점이 있는데…….”
“뭐든 답하겠습니다.”
“어째서 한국인인 자네가 중화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죽립 노인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