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중국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총서기.
군사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이 셋을 모두 가지면 사실상 중국을 지배하는 전제군주나 다름없이 된다. 마오쩌뚱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마오쩌뚱 이래 이 셋을 겸직한 자는 없었다.
저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건 역시 위험한 데다 파벌 간에 지나친 피의 숙청이 일어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중국 권력은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한 세트로,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를 하나로 해서 구성된다. 이 두 체제다.
물론 이 두 체제라고 해도 실질적으론 군사주석이 실권을 가진다. 그러나 중?군?위도 충분히 제어력이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양 세력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별 충돌 없이 사이좋게 잘 이끌어지고 있었지만, 요즘은 다소 상황이 변하게 됐다.
일단 한 무리라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 자연히 새로운 파벌이 생기고 그로 인한 다툼도 발생하게 됐다. 시라이와 시진핑은 각자 그 파벌의 우두머리다.
그리고 대외환경이 크게 변했다.
단순히 공산당으로 중국을 통치하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족하던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 미국이 위기에 빠지면 중국이 발 벗고 나서서 구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같이 망하게 되는 꼴이다!
미국은 중국 최대의 소비시장인 동시에 채무국이니까. 싫어도 구할 수밖에 없는 동반자가 되고 만 것이다. 특히 요즘 세계 경제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공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중국은 미국과 갈등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한데, 이는 대만과 일본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현재 중국과 상당한 갈등 관계에 있는데 이들 나라는 또 모두 미국과 강고한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즉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개입해야만 한다.
일본의 경우는 조어도 때문이다.
이건 독도나 쿠릴 열도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일본이 그냥 나쁜 놈이다. 제국주의 시대 때 사악한 짓으로 땅을 먹어놓고 내놓지 않으려 들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이 체면과 도덕심이 없는 꼴로 땅에 대한 욕심을 내다보니 빡친 중국은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대항하고 있다. 이건 사실 일본이 중국에게 설설 길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걸 생각하면 큰 걱정거린 아니다.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도 국내의 여러 문제를 일본을 통해 없는 셈 치고 정부 지지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바보짓을 하면 속으로는 살짝 좋아하고 있기도 한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만이다.
하나의 중국!
이것은 현재 중국의 국시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달성하기 위해 대만과 수교하던 나라 모두에게 그 수교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전 세계를 향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힘의 논리!
전 세계는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나름 잘 나갔다.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도 깨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다른 국가들과의 군사동맹도 걸려 있어서 대만을 포기할 수가 없다.
만일 중국이 대만해협을 넘으려 들면 참전해야 한다.
그러니 대만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진핑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맞춰 미국과의 공조를 원하고, 시라이는 하나의 중국을 위해 미국을 싫어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런 군사적 갈등이 첨예할수록 시라이의 입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라이는 일본의 도발에 이어 대만 문제로 인해 세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시진핑은 그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군부세력을 잘 다독여야 할지. 그를 위해 필요한 예산은 얼마일지 생각하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도 시라이 역시 바보는 아니니……. 괜찮겠지.”
미국과 싸워 무사할 수 있는 나라 따위는 없다. 아무리 야심가라도 조국을 멸망의 길로 끌어들이면서 권력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시진핑의 믿음이다.
똑똑.
갑자기 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시진핑은 당황해서 창을 봤다.
“억?”
그는 심장이 떨어질 듯이 놀라고 말았다. 창밖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창밖의 존재는 우호적인 자세로 손을 흔들었다. 시진핑은 침착하게 서 있는 자를 잘 살폈다.
“자, 자네는?”
시진핑은 더 깜짝 놀랐다.
지금 창밖에 서 있는 자의 모습은 분명 그도 알고 있는 어떤 존재, 바로 장갑맨이 아닌가. 장갑맨이 창문 너머로 입을 열었다.
“열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시진핑은 잠깐 망설이는 것 같다가 순순히 창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장갑맨은 방 안으로 들어오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가 들어오자 시진핑이 물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장갑맨인가.”
“그렇습니다.”
“장갑맨이 왜 나를…….”
시진핑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장갑맨은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는 거로 알려져 있다. 범죄자를 많이 때려잡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다. 시진핑과는 별로 관계를 맺을 일이 없다.
장갑맨은 일단 입을 열었다.
“일단 저같이 정체 모를 자를 안으로 들여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아니, 악의가 있다면 나는 이미 살아남지 못했겠지. 단순하게 생각했을 뿐이네.”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용무는 뭐지?”
시진핑은 쓸데없는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꼭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단 말인가?”
장갑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를 아십니까?”
“……모를 수가 없지.”
시진핑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삼합회.
공산당조차 우습게 볼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한 그들은 시진핑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이미 정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제 그들을 구축하기도 힘들어졌고, 이대로 가면 중국의 미래에 어둠이 될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당신을 싫어하더군요.”
“친미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하는 모양이더군.”
삼합회와 시진핑.
둘 다 사실 목적은 같다.
중국을 부강하고 강하게! 하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이유는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삼합회는 중화의 위대함을 추구하고 시진핑은 국제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도 아편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가 됐거늘…….”
시진핑은 혀를 차며 말했다.
중국의 역사는 아편전쟁 이후로 멈췄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서구 열강이 중화 제국에게 안겨준 충격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아편전쟁이란 치욕의 전쟁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영국이라는 국가가 도덕심을 모두 내버린 채 파렴치의 극한을 달려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왜 마약을 못 팔게 국가가 개입하느냐?!
어처구니없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당시 이 일을 맡았던 임칙서는 마약값을 물어주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영국 내부에서도 그 부도덕함에 대한 질타가 많았지만 결국 돈 앞에서는 아무도 이길 수가 없었다. 영국은 추악한 짐승의 국가가 되어 중국을 침략했다. 결국, 이겼고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이 지금 선진국인 양하는 건 그렇게 추악하게 긁어모은 세계의 부 덕분이다.
강민도 어느 정도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
“중화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죠. 그래서 서양 열강과 공조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권력이 무척이나 거북한 모양입니다.”
“그 말은?”
시진핑은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물었다.
“예상하시는 그것이죠. 쿠데타, 자칫하면 암살입니다.”
장갑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대일까요.”
시진핑 개인에게는 쿠데타 쪽이 살아날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 중국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암살 쪽이 피가 훨씬 덜 흐르는 권력 교체의 방법이다.
그리고 쿠데타는 자칫 중국을 내전으로 이끌 위험까지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무리가 있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너무 뜬금없군.”
시진핑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가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갑자기 면식도 없던 자가 찾아와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면 그걸 순순히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시진핑 당신 편만이 아니거든요.”
장갑맨은 품에서 서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시진핑은 불길하다는 얼굴로 그걸 받으며 물었다.
“이건?”
“CIA의 극비문서입니다.”
“어떻게 이걸?”
“미국과 제가 좀 친합니다.”
장갑맨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시진핑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 보고에 카불에서 어떻게 인질이 구출된 건지 모르겠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게 자네였군.”
“아, 역시 들켰군요.”
“신빙성 없는 내용이라 생각했네. 하지만 이런 자료를 보게 되면 싫어도 눈치챌 수밖에 없지.”
“미국을 도운 건 아닙니다. 탈레반이 짜증 나는 놈이었거든요.”
“역시 그랬군. 자네는 미국을 돕는다는 인상은 없었거든.”
장갑맨이 변명처럼 한 말에 시진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용을 확인하시죠.”
“음…….”
시진핑은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곧 그의 표정이 꿈틀 움직였다.
“어떻습니까?”
장갑맨은 그가 핵심이 되는 부분을 읽었다는 걸 알아채고 물었다. 시진핑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다가 결국 말했다.
“믿지 않을 수가 없군.”
“그렇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삼합회는 벌써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나는 그저 중국을 위해 움직일 뿐인데…….”
시진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경우야 많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목표는 같지만, 수단이 달라서 싸우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사실 국내의 정치적인 싸움은 대부분 그런 성격을 가진다.
파일을 한쪽에 내려놓고 시진핑은 물었다.
“그러면 나를 어떻게 도와주겠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한 가지는 당신을 보호하는 거죠. 저라면 핵폭탄이 머리 위에서 터지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당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도, 뭐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그렇지 않다면 세계를 상대로 이런 짓을 못하겠죠.”
강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이 방법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장갑맨의 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방법을 택해 보아야 근본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이 삼합회라면 그들에게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일평생 장갑맨이 보호해 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시진핑은 다른 방법을 물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뭔가?”
“저와 협력해서 그 핵심부를 소탕하는 겁니다. 기왕이면 정적도 제거해버리는 거죠.”
“어떻게 말인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걸 어떻게 가능케 하느냐가 문제였다. 장갑맨은 쾌활하게 답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로미오의 작전이죠!”
“로미오?”
시진핑은 대체 그게 뭔지 몰라 물었다. 장갑맨은 뻔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잘 아시면서. 유명한 게 있지 않습니까.”
“설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로미오를 말하는 건가?”
시진핑은 당황해서 물었다.
“그렇죠.”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로미오라 하면 누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단 말인가.
“눈치가 없으시군요. 하긴, 그러니까 삼합회 따위의 나쁜 놈들에게 이용당하고 계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장갑맨은 시진핑을 힐난하듯 혀를 찼다.
어이가 없는 심정이 되어 시진핑은 장갑맨을 닦달했다.
“얼른 설명이나 해 보게.”
“그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