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당장은 중국이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까? 그 많은 중국인들이 공부하면서 기술을 쌓고 중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한국인은 우수하다?
그것은 개소리다.
한국인이 우수하다면 그만큼 중국인도 우수하다.
실제로 중국인은 노벨상도 여러 번 타 봤고, 필즈상도 탔다. 노벨상과는 인연이 먼 한국인이 감히 중국인에 대해 인종이 어쩌고저쩌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 중국인의 잠재력을 막고 있는 것은 그들의 낙후된 정치체제다.
“좋지 않군.”
강민의 걱정을 이해하고 에이리가 혀를 찼다.
“그렇지. 한국이 일본을 발라버렸던 그 코스로, 중국이 한국을 발라버릴 걱정이 크지.”
한국은 신데렐라처럼 기적의 성공을 이룬 나라다.
그 성공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일본 베끼기다. 한국은 철저하게 일본을 모방해서 여러 제도와 산업화를 시도했고 그것이 성공했다.
조선, 전기 전자, 철강, 자동차, 그 외 각종 제조업.
세계 최강이었던 국가가 다름 아닌 일본이다.
그걸 한국산 노동력으로 잡아먹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이 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잡아먹으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기기 힘든 싸움이다.
벌써 조선은 잡아먹혔다.
세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런 건 걱정해 봐야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집중해서 잘하자고?”
강민이 묻자 세나는 웃었다.
“그렇지.”
“뭐, 그 말도 옳긴 해.”
강민도 울적함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물었다.
“그런데 재철 일당은?”
“중국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 있냐면서 밖으로 갔다던데. 세계 3대 음식 중 하나라는 중국 본고장의 음식을 평정하겠다고.”
“아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을…….”
강민이 혀를 찼다.
“왜? 중국 음식 맛있잖아.”
에이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녀도 중국 음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명성도 알고 있다. 세계 3대까지 가는 지구의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MSG의 힘을 듬뿍 빌린 중국 요리를 에이리는 많이 좋아했다.
“그야 그렇긴 해도……. 음, 뭐 돌아오면 알게 되겠지.”
강민이 혀를 차며 말했고, 곧 재철 일당이 돌아왔다.
“다녀왔어.”
“왔냐.”
강민이 보자니 재철 일당은 다들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강민이 예상대로라 생각하며 혀를 차는데 세나가 물었다.
“중국 음식은 어땠어?”
“아, 먹을 게 못 되던데요.”
“그러게요. 영…….”
“세계 3대 음식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실망이었어요.”
재철 일당은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왜?”
에이리가 물었다.
“냄새가 이상해요.”
“진짜. 아우, 다른 건 괜찮은데 그 냄새가 너무 심해서……. 그 냄새 안 나는 음식으로 시켜 먹으려니 또 중국어를 그만큼 능숙하는 게 아니다 보니 말이죠.”
재철 일당이 나가서 사 먹은 중국 음식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냄새 때문이었다. 강민이 말했다.
“중국 음식에는 향차이라고 하는 향신료를 주로 사용한단 말이야. 그래서 한국인이 먹기에는 거북하지. 맛을 들이면 아주 좋아하게 된다지만 그런 향신료는 기호품이라서 쉽게 맛 들일 수 있는 게 아니야. 외국인이 한국의 김치에 맛 들이는 게 힘든 거랑 동일하다고.”
재철 일당은 투덜댔다.
“으으, 빨리 얘기해 줄 것이지.”
“뭐, 그때 나는 여기 없었으니 말이지.”
“한국 음식이 그립다…….”
“그래…….”
재철 일당은 한숨을 쉬며 향차이가 없는 고국의 음식을 떠올렸다.
***
강민은 전화를 받고 리웨이를 만나러 갔다
리웨이는 한 식당에서 강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강민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말했다.
“허가가 떨어졌다.”
“정말입니까?”
강민도 뛸 듯이 기뻐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래.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이제 너희는 삼합회의 동지다.”
“아! 감사합니다.”
“하하하, 이제 우리는 형제가 될 거다. 이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리웨이는 강민의 어깨를 탕탕 쳤다. 강민은 기뻐하면서 다소 비굴해 보이는 인상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그렇지요.”
“마침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자, 어서 가도록 하지.”
더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듯 리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일처리에 역시 강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써요?”
“물론. 좋은 일은 빠를수록 좋다고 하지 않더냐.”
리웨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요.”
강민도 그건 동감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식당을 나섰다.
***
리웨이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상해루라는 커다란 음식점이었다.
이곳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강민 일행이 맨 처음 들른 곳이기도 했다. 중국 하면 음식! 그러니 음식을 가장 잘하는 집에 가서 식사를 한번 해 볼 생각에서였다.
상해루는 상해에서도 가장 유명한 집인 만큼 해외 손님들도 많이 받기 때문에 중국인과는 구분해서 요리한다. 그래서 요리에 향차이를 쓰지 않는다.
덕분에 강민 일행도 맛있는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입니까?”
“그렇지. 여기 오늘, 네 가입을 승인해줄 어르신이 계신다.”
“높으신 분이겠군요.”
강민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총 5층으로 구성된 상해루는 일반 관광객은 4층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5층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한다. 하지만 소문에 듣기에는 그곳도 분명히 장사를 하는 층이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손님을 받기 때문에 보통 고객들은 4층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하, 그야 너나 나 같은 입장에서 보면 까마득하지. 이곳 상하이를 통괄하는 지부 대인이니까. 공산당 간부라도 함부로 못 할 정도야.”
“대단합니다.”
강민은 감탄하며 말했다.
진짜로 감탄한 것이다.
중국에서 공산당이라면 하나님 다음으로 높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조차 설설 길 정도라고 하면 그 권력이 어느 정도일지!
“어서 올라가자.”
“네.”
강민과 리웨이가 함께 움직이려 했다. 한데 리웨이가 우뚝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저들은?”
강민의 뒤에 따라온 차량이 있었다.
강민의 호위들이 탄 차였다. 거기서 사람이 내렸는데 여자 둘에 남자 셋이었다. 물론 그들은 얼굴을 변장한 강민 일행이다.
“제 형제 같은 녀석들입니다.”
“여자들도?”
“헤헤…….”
세나와 에이리는 변장했다지만 그래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리웨이는 저 둘이 애인이냐고 묻는 것이다. 강민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리웨이는 알만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군. 좋아. 다 같이 가입하지.”
“괜찮겠습니까?”
강민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강민 혼자도 아니고 데려온 이들 전부 한 번에 가입한다니. 이건 상당한 특혜다.
리웨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중앙 간부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입회하는 건데, 그리 어려울까 봐. 너는 내가 뒤를 봐줘서 다소 좋은 끝을 만들려는 거야. 그냥 입회하는 것만이면 어렵지 않다는 걸 너도 알고 있지 않았나?”
“그렇긴 했죠.”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 자체는 워낙 광대하고 어디서나 사람을 모으고 있어서 쉽게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가입해 봐야 끗발이 더러워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꽌시!
꽌시가 중요하니까.
“네가 살던 한국에서는 안 그렇다고 들었다만, 중국에서는 꽌시가 가장 중요하다. 명심하도록 해. 그리고 꽌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한 거고.”
“그래서 형님의 체면을 깎지 않도록 성심성의를 다할 생각입니다.”
강민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지. 그리고 네가 잘한 덕분에 내 체면도 올라가면 그것도 얼마나 좋은 일이겠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함께 상해루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에 올라가니 안에는 미리 와 있는 중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강민은 속으로 감탄했다. 하나같이 간 칼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게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리웨이가 긴장해서 말했다.
“앞에 계신다. 예의를 갖춰라.”
“네.”
강민도 공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5층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어르신, 도착했습니다.”
방 안쪽에는 이미 호화찬란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고, 그 앞에 정장을 입은 중국인 남자가 있었다. 덩치가 아주 크고 살찐 남자였다.
그는 강민을 보고 물었다.
“아, 이야기했던 그 한국인인가.”
“네.”
“처음 뵙겠습니다. 장각수라고 합니다.”
강민은 얼른 나서서 깍듯이 인사했다.
“나는 리샨웅이라 하네. 만나서 반갑네.”
“뒤에 저분들은?”
리샨웅은 이어서 강민 뒤에 서 있는 그의 동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제 동생들입니다.”
“어르신, 실은 이 녀석이 입회하는 김에 허락해주신다면 저 녀석들도 넣었으면 합니다.”
리웨이가 그들을 굳이 이 자리까지 동석시킨 목적을 조심스레 밝혔다. 리샨웅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나쁘지 않겠지.”
“아, 감사합니다.”
강민을 비롯해서 그의 동료들도 다 함께 리샨웅에게 인사했다. 그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하. 아니, 삼합회의 이념은 사해가 동포라는 것. 뜻을 같이할 동지가 생긴다면 언제나 기쁜 일이지. 더구나 리웨이가 추천했으니 듬직하니 믿을만하겠고 말이야.”
강민은 앞으로 나서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보아 주십시오.”
“오, 이건…….”
리샨웅은 그가 내민 상자를 받아 열었다.
그 안에는 금괴가 들어 있었다.
“마음을 담아 준비했습니다.”
“고맙군.”
리샨웅은 금괴를 흡족한 표정으로 받았다.
중국인은 여러 가지를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금이다. 금에 대한 그들의 선호는 문화적인 것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안전자산인 금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도 컸다.
“저야말로 어르신 같은 분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이 기쁩니다.”
“리 동생, 좋은 사람을 찾았군.”
리샨웅은 리웨이를 보면서 말했다.
리웨이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저도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