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며칠이 지났다.
조사를 위해 리웨이 측에서 요청한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강민 일행은 상하이의 문물을 만끽했다.
그리고 조사 보고가 도착했다.
“조사원이 연락을 보내 왔습니다.”
“결과는?”
“깨끗하다고 합니다.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긴 한데 자금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땅도 벌써 여럿 매입했고, 아는 사람들은 무슨 사업을 하여는 건지 크게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호오.”
리웨이는 군침이 돈다는 표정이었다.
장각수가 한 제안은 다 매력적이었지만 단 한 가지, 장각수라는 사람이 믿을만한가가 가장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프로를 고용해서 조사한 결과가 깨끗하다고 하니 이제 걸릴 게 없는 셈이다.
“그리고 서울에 대해 시장조사도 했습니다.”
“우리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있겠더냐?”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습니다. 마약이나 여자는 깐깐해서 유통이 힘들지만, 용역 소개 같은 건 최적입니다. 용역 소개를 해서 소개료를 양쪽에서 받고, 임대사업으로 돈을 벌고, 그 주변 상권을 장악하면 정말 큰 수익이 될 것 같더군요.”
“부동산은? 이제 한국에서 부동산으론 재미 못 본다던데.”
지금 사업에는 부동산 개발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돈을 번다 해도 부동산으로 너무 손해가 크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렇긴 한데 그런 건 결국 시장이 결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노동자가 몰려가서 개척하면 상관없는 이야기죠. 거긴 돈이 벌리게 되니까. 그러면 초기 매입 가격의 두 배 이상은 확실합니다.”
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른 모든 건물 가격이 떨어져도 돈을 확실히 버는 건물이 있다면 그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외국인 투자는?”
“그건 좀 역시 무리인 모양입니다. 상업지구가 아니라 거주구다 보니. 하지만 그래서 그 녀석들과 같이 사업하려는 거 아닙니까.”
어느 나라든 외국인의 투자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제약을 두기 마련이다. 비상업적인 시설이나 건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긴 하지. 가능하면 우리끼리 독식하고 싶었는데……. 역시 무린가.”
“그건 안 좋습니다. 고려빵쯔 놈들은 속국 주제에 중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안 좋은 것도 있고요.”
리웨이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지들이 일을 안 해서 우리 한족이 가서 해 준다는 데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그러게 말입니다. 추악한 놈들이죠.”
그렇게 둘은 함께 한국을 잠시 욕했다.
그 뒤 리웨이는 부하에게 정리를 요구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직접 현지에서 땅 매입에 건물 매입에, 사업까지 벌이는 건 반발도 클 테고 안 좋습니다. 현지인들과 충돌이 없어지려면 역시 현지인을 내세우는 게 최선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에 접촉해온 놈들은 괜찮은 상대입니다.”
“알겠네. 그럼 그렇게 하지.”
리웨이도 상대의 신용이 확실하다면 이 사업은 추진할만하다고 믿었기에 부하에게 조사를 더 요구하지 않았다.
“네.”
“초기비용이 꽤 필요할 텐데 가능해?”
이어 리웨이는 자금 사정을 확인했다.
“저희 지부 운영 자금만 10억 위안은 족히 됩니다. 초기 사업 비용으로야 충분하죠.”
“그럼 곧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지.”
이제 결정에 방해될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네, 곧 불러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곧 강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
강민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둘은 서로 포옹하고 인사를 한 다음 마주 앉았다. 강민이 앉자마자 리웨이는 용건을 꺼냈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도록 하지.”
“아, 결단에 감사합니다. 저희도 좋은 투자자를 찾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정말로 기쁘다는 듯 강민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리웨이도 호탕하게 웃은 다음 물었다.
“초기 투자 자금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저희가 51%, 그쪽이 49%로 해서 합작 지분 회사를 세우는 거로 하고, 총 자본은 일천 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중국인을 소개해 수수료를 받고, 또 그 중국인들의 거주 생활에서 수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불법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큰 규모의 사업이 불가능하다. 합작 법인으로 용역회사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한데 리웨이는 강민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 그건 곤란한데.”
“뭔가 문제가 되는 점이라도?”
“우리가 49%라는 것 말이야.”
강민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그게 왜…….”
“우리가 51%를 하지.”
리웨이가 간결하게 목적을 밝혔다. 49대 51. 이것은 작은 차이 같지만, 사실은 결정적인 차이다. 누가 기업을 지배하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강민은 곤혹스러운 얼굴이 됐다.
“그건…… 곤란합니다.”
“이것 봐. 자네도 수고하지만, 우리도 수고한다고. 너무 욕심내면 곤란하지. 어차피 그게 잘 된다 해도 우리 측에서 노동자 공급을 끊어버리면 다 허사가 될 거 아닌가?”
리웨이가 선글라스를 벗고 강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폭력조직의 보스답게 선글라스를 벗은 리웨이의 눈은 레이저라도 뿜어져 나올 듯이 날카로웠다.
“그렇지만…….”
“자자, 같이 살자고. 앞으로 한두 해 같이 지낼 것도 아니잖은가.”
강민은 거절하려 했지만, 리웨이는 그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강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강민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으음…….”
“대신 우리가 600억을 투자하지.”
리웨이가 유화책을 쓰듯 말했다.
강민도 혹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600억이요?”
“그래. 49%를 400억에 사는 거야. 괜찮지 않나.”
“아이고, 그러면 감사합니다.”
강민은 얼른 좋다구나 했다. 기업을 넘겨야 하는 것은 쓰라리지만 초기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말이 통하니 다행이군.”
“헤헤, 그런데 저…….”
리웨이의 만족한 얼굴을 살피며 강민이 말했다.
“뭔가 더 할 이야기가 있나?”
“실은 저도 삼합회의 회원이 되고 싶은데 받아들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부탁에 리웨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이 됐다.
“삼합회? 하지만 자네는 한국인 아닌가.”
“삼합회는 인종과 국가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사해의 결사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강민이 슬쩍 하는 말에 리웨이는 이제야 이해한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뭘 좀 아는군. 그래. 우리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꽌시이고, 그 꽌시의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삼합회지. 공산당을 제외하면 어떤 집단에 소속된 것도 삼합회의 이름 앞에서는 양보하지 않을 수 없지.”
꽌시는 관계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맥이다.
어느 나라나 인맥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빽이라고 하며 인맥을 얼마나 중시하던가.
하지만 중국의 인맥에 대한 집착은 한결 더한 면이 있다.
강민은 아부하듯이 말했다.
“심지어 공산당이 삼합회의 아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영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
리웨이는 자부심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역시 그렇군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저도 그 관계 가운데 들어가서 여러분과 서로 상생하고 싶습니다.”
“좋아. 내가 윗선에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하지만 그만큼 이번 사업이 잘되도록 힘을 써줘야 하네.”
어차피 강민과 하루 이틀 사업을 같이할 게 아닌 이상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나쁠 게 없겠다 싶어 리웨이도 금세 찬성했다.
“물론입니다.”
강민도 아주 기쁜 표정이 되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강민은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세나와 에이리에게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다 했다. 이야기를 들은 두 여인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첫 단계는 넘어갔군.”
“시작은 순조로운데.”
리웨이는 강민이 삼합회에 건너가 자리 잡기 위한 첫 다리가 되는 인물이다.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앞으로의 작전 진행에서 확실히 중요하다.
“음, 그래도 앞으로도 건너야 할 길이 여럿 있으니 조심해야지.”
“꽤 상위자 아냐?”
에이리가 의아하게 물었다.
굳이 리웨이를 통해 삼합회와 접촉하려 한 것은 중국 특유의 꽌시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 들어갈 때 정상적인 절차보다는 높은 사람을 통해 그 조직의 핵심에 쉽게 접근하는 게 중국 문화의 특징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거대한 전제 정권이 유지되어온 나라다운 특권이었다.
그런 국가에서는 황제의 총애가 곧 권력의 크기니까.
“리웨이가 상위자긴 해. 하지만 장갑맨에 대한 정보는 극비 취급을 받고 있을 거란 말이야. 관련자들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가거나, 아니면 감히 이 정보를 가지고 장갑맨을 괴롭히려 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줄 만한 위치에 있는 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해. 그걸 생각하면 리웨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하긴 그렇겠지.”
“공포야말로 최강의 무기니까.”
세나와 에이리는 강민의 말에 동의했다.
삼합회는 수가 너무 많아서 공포로도 쉽게 제압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뱀 대가리가 되는 자들을 처리해서 공포를 심는 것이 빠르다.
대화가 일단락되자 그들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에이리는 쉬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상하이의 야경은 백만 불짜리였다.
이 이상 가는 도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했다.
“그런데 중국이란 나라는 정말 대단한 것 같군.”
“왜 그런 생각을 해?”
강민이 물었다.
“여긴 한국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라며?”
“일단 보통 사람들 생활 수준은 그렇지.”
“그런데 이 도시는 서울 따위 가볍게 바르겠는데?”
한국보다 훨씬 평균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서울보다도 화려하고 커 보이는 도시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아, 그것도 그렇지. 상하이와 베이징은 전 세계 돈들이 다 몰려들다시피 하니까.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부자라고 할 만한 사람의 숫자만 해도 오천만에 달한다지 뭐야.”
“한국인 전부가 갑부가 되는 것만 한 숫자란 말이네.”
에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대단하긴 대단해.”
세나도 동감이었다.
“그래. 그러니 앞으로 세계가 중국을 중심으로 돌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한국도 그러니 중국에 대비해 여러 가지를 해놓아야 할 텐데. 쯧.”
“왜, 잘 안 돼?”
강민이 혀를 차는 걸 보고 세나가 물었다.
“적절한 방도가 없으니 말이야. 중국의 기본 전략은 한국 따라 하기인데……. 이걸 떨치기가 쉽지 않거든.”
“기술이 있잖아?”
에이리가 물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조악한 품질의 대명사!
‘중국에서는 모든 것이 폭발한다. 폭탄만 빼고.’라는 조롱마저 있을 정도로 그 품질에 대한 비판은 흔하다. 하지만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그것은 착시효과다.
중국에서 워낙 많은 공산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불량품으로 인한 문제도 많이 일어나서 불량품이 많다는 인식이 있을 뿐, 전체 비율로 따지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중국 애들 대가리 수가 몇인데. 그리고 요새 해외 유학 가는 아시아인들을 따져보면 중국인이 가장 많아. 노벨상만 따져도 중국인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받은 지는 오래됐고. 한국은 그런 거 하나도 없어. 그런 판에 기술로 중국을 얼마나 떨칠 수 있을까. 거기다 임금 문제라든가.”
강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바로 이것이 중국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