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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09화 (209/227)

209화

상하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달하는 도시.

중국의 발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발전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뉴욕을 능가하는 마천루가 지어지고, 밤이 되면 그 건물들이 내뿜는 빛으로 번쩍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엔 하루 세끼조차 챙겨 먹지 못해 굶주려 죽어가는 빈민들의 숫자 역시 족히 수백만에 달한다고 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의 도시였다.

그 도시의 한 높은 건물 사무실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리웨이, 상하이의 상천 지구를 지배하는 밤의 황제.

그가 거느린 조직의 이름은 승룡단이다. 하지만 이는 별명 같은 것에 불과하고 그 진정한 정체는 삼합회의 지방 지부였다.

그러나 지방 지부라고 해도 상하이를 맡고 있는 곳이다. 그가 삼합회 내부에서도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오늘 한국에서 오는 사업 상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되었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경을 쓴 젊은 남자였다. 나이는 알기 어려웠다. 스물 초반 같기도 했고, 서른을 훨씬 넘긴 원숙한 느낌도 주었다.

리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자넨가, 장각수가.”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네.”

둘은 악수를 했고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국에 투자하실 생각 없습니까?”

“한국에? 뭐 하러.”

리웨이는 별로 관심 없다는 식으로 일단 말했다.

투자를 요청하러 온 이에게 우세를 점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고식적인 방법이다. 장각수라는 한국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아시잖습니까. 요즘 한국은 투자에 아주 적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출산율이 낮은 걸 보조하기 위해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죠.”

“그렇긴 하지.”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낮다. 일본 이하일 정도다.

한때 1.2선까지 깬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이다.

장각수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는 전 세계 어딜 가도 있다는 차이나타운이 없습니다.”

“없진 않아.”

“그야 있긴 하지만 그게 어디 차이나타운입니까.”

“그렇긴 하지.”

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인은 어디서든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것이 차이나타운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러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이 아주 강력한 화교 외국인 억압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본적인 재산권의 사용조차 억압당했다.

왜 박정희가 그렇게 화교에 민감하게 반응했는가 하면 화교의 경제적인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최빈국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교의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놔두면 한국의 경제가 화교에 종속될 우려가 아주 컸다.

때문에 박정희는 화교를 때려잡다시피 억압해서 그들의 경제력을 억압했고, 그 덕에 한국의 경제는 중국인에게 종속당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국에 제대로 된 큰 규모의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그곳의 상권을 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서울입니다. 어마어마한 사업 아니겠습니까?”

“흠…….”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그 수익을 차지한다.

분명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사업이긴 했다. 더구나 그 무대가 서울이라니. 서울이라면 아시아의 핵심 도시다. 세계 10대 도시를 뽑으면 빠지지 않고 꼽힐 정도. 경제 대국 한국의 경제력의 30% 이상이 그 작은 면적에 몰려 있다.

장각수는 열렬하게 설득했다.

“앞으로 한국 내 한국인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대신할 건 외국인이죠. 그 가운데서도 중국인! 그들이 서울에 가서 지금 서울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겁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설득력이 없진 않군.”

리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한국이 외국인을 받아들인다면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은 중국인이 된다. 얼른 가서 조직을 만들고 활동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서울을 중국인이 장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헤헤, 그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죠.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발전한 도시이고, 한국의 사업적 인프라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대단히 친기업적이기 때문에 사업을 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친기업적이라고? 내가 들은 거하곤 좀 다른데.”

리웨이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나 장각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죠. 중국하고 비교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비슷한 나라하고 비교해야지. 한국은 비슷한 수준의 나라에 비교하면 나라가 가장 적극적으로 기업 편을 들어줍니다. 노조를 박살 낼 수 있는 방법도 여럿 있고,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와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죠. 특히 저도 그렇지만 그쪽도……. 노조 부수기엔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리웨이가 선수끼리 왜 이러느냐는 식으로 물었다.

리웨이는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헤헤, 우리도 용역질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해 봤거든요.”

“같은 취급하나.”

리웨이는 장각수가 한 말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방 촌것이 세계급 진짜에게 개기려 드는 느낌이 들어서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고요…….”

“뭐 됐어. 이야기나 계속해봐.”

장각수는 리웨이의 허락을 받고 계속 떠들었다.

“네. 일단 거점 삼아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겁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하우스 푸어라고 해서 빛을 끌어안고 집을 샀다가 망한 바보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우스 푸어란 집을 사려고 얻은 빚 때문에 인생이 망하게 생긴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빛이 워낙 커서 이자 부담 때문에 생활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집값이 오르면 문제가 없는데 한국 집값은 거의 거품의 절정이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집값을 부양할 수요층이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금융위기도 정확히 같은 과정에서 일어났고, 사실 중국도 현재 진행 중인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매로 급매 처분이 아주 많이 들어와 있죠. 그중 싼 걸 많이 구매해서 일단 근거지로 삼고, 임대촌을 만들어 중국인 노동자를 들여온 후 그곳의 방을 임대하는 겁니다.”

“너무 비싸지 않나.”

리웨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계획 자체는 그렇다 쳐도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꺼지는 도중이다. 괜히 매수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위험이 있었다.

괜찮다는 듯 장각수가 말했다.

“원룸도 개축했다 망하는 놈들이 부지기숩니다. 그런 걸 매입해서 중국인 노동자가 거주하게 하면 이익률이 10%는 나올걸요. 10년이면 다 회수하고 그때부턴 순익이죠.”

“흐음…….”

이익률 10%면 정말 괜찮은 사업이다.

믿을만한 국채를 사 봐야 수익률은 2%가 될까 말까 한다.

“현지 법인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중간 다리만 해 주세요.”

“중국인을 소개하면 그걸 다 소화할 방법은 있나?”

미심쩍다는 듯이 리웨이가 물었다.

지금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법과 사업 쪽으로 광범위한 인맥이 있어야 한다. 중국인을 소개시켜줘도 그들이 일한 자리를 마련해 줄 능력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또 소개받아 간 중국인이 일자리를 받는 과정에서 잘 안 되면 리웨이 조직 측을 불신하게 되고, 그러면 이후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장각수는 자신만만했다.

“쿼터가 이미 할당되어 있습니다. 천 명은 무난하죠. 한국 새끼들은 배에 지방이 가득 들어차서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항상 아우성칩니다. 이번에 국가 정책도 중소기업 진흥으로 가서 지원금도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쓸 만하겠는데.”

리웨이도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의 브로커로 꽤 일해 봤다. 지금 장각수의 말이 꽤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대료만이 아니고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상권을 만들면 그걸 관리해서 얻게 되는 돈도 어마어마할걸요. 정말 할 만한 사업이 됩니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군. 하지만 그런 사업을 할 기반은 정말 있나?”

계획 자체는 괜찮다는 걸 리웨이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기본적인 투자금액이 정말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장각수는 웃으며 말했다.

“의심이 드시면 조사해 보세요. 저희는 그동안 여기 머물겠습니다.”

“그러지. 자네들을 의심하는 게 아니고 이건 한두 푼이 들어갈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이해합니다. 이건 비즈니스니까요.”

장각수도 크게 고개를 끄덕여 리웨이의 말에 동의했다.

***

장각수는 리웨이와의 만남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장각수는 얼굴에 손을 잡고 피부를 뜯어냈다. 피부 아래에서 드러난 것은 새로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바로 강민!

그는 변장을 통해 새로운 신분을 마련한 뒤 중국으로 건너와 리웨이를 만난 것이다. 지금 사용한 변장용 가면은 미국에서 지원받은 것으로, 감촉과 온기까지도 실물과 동일하게 느껴지는 걸작이었다. 미국의 첨단과학이 집약된 물건으로 이번 일을 위해 CIA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호텔 방 안쪽에서 아름다운 두 여인이 나오며 그를 맞았다.

“어서 와.”

“어땠어?”

두 여자는 세나와 에이리였다.

“뭐, 괜찮았어.”

그리고 강민은 리웨이와의 만남을 설명했다.

강민의 이야기를 다 들은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단계는 비교적 잘 성공했네.”

“그렇지.”

“그런데 정말 그런 사업이 가능해?”

에이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못할 이유가 있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인맥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하긴…….”

강민은 막대한 돈을 사비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인맥 역시 호성과 지연이라는, 대한민국 10대 그룹 두 곳의 대주주를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건 사업성도 굉장히 크다고.”

“음 그럴 것 같긴 하더라.”

세나도 강민의 지금 계획이 사업성이 크다는 걸 인정했다.

강민은 투덜대듯 말했다.

“사실 한국이 지금처럼 계속 재벌 편만 든다면 한국인은 장래 사라지고 중국인이나 동남아인, 하여간 저 멀리서 온 다른 나라 사람들로 수혈해 꾸려나가는 수밖에 없기도 하지. 안 그러면 나라가 망할 테니까.”

“그건 그냥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지는 거 아냐?”

에이리가 의아하게 물었다. 이민자를 받는 것도 좋지만 한국인이 사라질 지경까지 받아들일 거라니. 이상한 이야기였다.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상관이야. 돈 많은 것들은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면 그뿐이잖아. 사람들이 다 살기 힘들어서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는데 한국인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되게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세나가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강민은 한숨을 쉬었다.

“뭐 화는 나지만 어쩌기 힘들다는 점에서 별수 없다 싶어서 말이야. 다들 자기 한 몸 잘살자고 발악하는 것뿐이니까 그걸 가지고 따져봐야 소용없지. 있는 놈들은 있는 대로 약한 자들을 착취해서 살아가는 거고, 약한 것들은 피를 쪽쪽 빨리다가 자식에게라도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 아예 자식을 안 낳는 거야. 이런 게 자연의 법칙이지.”

강민은 한국인으로서 애국심이 있다.

한국이 잘 됐으면 하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나라의 왕이고, 이제 와서 한국인이란 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입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한국이 잘 됐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답답했다.

세나도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한국인은 사라질 거라더라.”

“한때 일본 새끼들이 저출산으로 먼저 사라질 거라고 좋아한 날도 있었는데 우리가 더 심하다니!”

일본은 저출산 문제를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나라다.

장래 일본인이 사라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일본이다. 하지만 그런 일본은 한국보다 꾸준히 출산율이 높다. 게다가 원래 인구도 3배 규모니까 한국에 비하면 아주 안전권이다.

에이리는 굳이 그걸 또 일본이랑 비교하는 게 우스웠다.

“그것도 일본이랑 비교해?”

“뭐든 일본보단 낫고 싶은 게 한국인의 바람이라고. 근데 빡치게 저 새끼들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란 말이야! 한국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출세했는데도 열등감을 가지는 이유가 일본 놈들 때문이야!”

한국은 신데렐라 같은 국가다.

정말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발전을 이루는 데 성공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을 제외하고 선진국에 들어간다는 나라치고 식민지를 안 가져봤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세계대전 이후 폭삭 망하고도 기어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국가가 결국은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한국은 최빈국, 최악소국이었다.

한국이 지금처럼 경제대국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 한국인들은 이런 성공에 자부심이 별로 없는데, 그 핵심에는 옆에서 알짱대는 일본이 있다.

저주받을 원수!

그러나 그 원수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아무리 한국이 성공해도 세계 2위와 비교하면 초라할 수밖에 없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다. 한국의 기록을 보니까 기적의 국가라 불릴 정도로 발전했는데 정작 제일 복수하고 싶은 나라에 비교하면 열등하단 말이지.”

“으으……. 에이 됐어! 내가 혼자 열 받아 봐야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민은 혼자 버럭버럭 화내다 포기한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런데 무슨 얘기 하다 그런 말까지 나왔더라?”

“지금 이게 사업성이 있냐 없냐 하는 거였지.”

세나의 지적에 강민은 원래 주제로 돌아갔다.

“아, 그래. 하여간 본격적인 차이나타운이 건립되면 중국인은 죄다 거기 몰려가서 살 거라고. 중국이 발전하는 만큼 그곳에서 돈도 많이 들어올 테니까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가 될 가능성도 있어. 사업성은 정말 높지. 게다가 한국은 전체적으로 부동산이 폭망하지만 중국인이 계속 거길 중심으로 유입될 테니까 부동산 가격도 다시 올라갈 거야. 정말 성공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일걸.”

“듣고 보니 그렇군.”

에이리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진짜 제대로 사업을 벌이는 것도 좋겠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놈들의 핵심부에 접근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럴듯한 척하는 게 중요한 거야. 다들 익혀야 할 내용은 다 숙지해 두라고.”

“물론이지.”

세나와 에이리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한 대화의 내용은 정리돼서 내일 재철 일당에게도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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