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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06화 (206/227)

206화

사람이 사는 동네는 대충 다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에이리가 화제를 돌렸다.

“내 말은 쟤가 강민의 독아에 걸린 건 단지 멋져 보여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해줘서 그런 것 같다는 거야.”

“간단한 이야기군.”

짧은 이야길 괜히 길게 했다면서 힐난하듯이 에이리가 말했다.

“간단하지만 아주 핵심적이지 않겠어? 생명의 은인인 데다 인생을 뒤바꿔줬고, 거기다 능력도 있는걸. 반할 만하지.”

“뭐, 그런가.”

에이리도 크게 의견이 다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서 세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잖아?”

“그건 뭐, 인정해.”

에이리도 멋쩍은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과 두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것과 결국 이렇게 몸을 섞을 정도로 깊은 연인관계가 된 것은 강민의 강한 힘과 책임감, 그리고 그 능력으로 여러 차례 함께 싸워온 과정에서 쌓게 된 호감의 결과다.

에이리는 창피함을 감추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직 안 왔는데. 조사할게 있다나 어쨌다나.”

세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뭘 조사한다는데?”

“그건 나도 못 들었어. 하지만 뭐 어떤 걸지 대충 짐작은 가.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얼마 전에 이야기했었잖아.”

“하긴 그런가.”

에이리도 현재 강민이 딱히 조사랍시고 나설만한 거라곤 하나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지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 때문에 브라질에서 큰일이 날 뻔했으니.”

“돌아오면 이것저것 이야기 좀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겠지. 그러려고 간 걸 테니까.”

둘은 얼른 강민이 오길 기다렸다.

***

그날 강민은 동아리실로 늦은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강민 곁에는 지친 얼굴의 호성도 있었다. 그도 오늘 강민과 함께 조사에 나섰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왔다!”

“아, 어서와.”

“갔던 일은 어때?”

다들 두 사람을 환영했다.

“그럭저럭 성과가 있었어.”

“흠, 표정은 좋지 않네.”

성과에 대해 말하는데 강민의 얼굴이 굳은 것을 보고 에이리가 말했다. 그 지적에 대해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

“하긴, 그래.”

정황을 생각하면 좋은 정보를 얻었다면 좋은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좋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굳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일단 다 거실에 모여봐.”

강민이 거실로 들어가 말했다. 다들 모여들었다.

“뭔 대단한 이야기길래 또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그러게. 사람 불안하게스리.”

“그럴 만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모두 이번에 우리가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동안 큰일이 일어났던 건 알고 있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얼굴이 됐다.

“응. 납치사건 말이지.”

납치사건은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중, 아니, 장갑맨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최대의 위기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자칫했으면 단원들의 가족 중 상하는 사람이 나올 뻔했다.

“그래. 그 정보가 어디서 샜는가, 그리고 샜다면 어떻게 새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오늘 호성이랑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재철 일당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놈들, 죽었다며?”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랐잖아.”

“역시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던 거야?”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 그것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호성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어. 아니, 평범한 죽음이라서 평범하지 않다고 해야 하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사인을 알 수가 없는 거야. 조사 결과 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자연사?”

수구의 말에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그게 전부래.”

“그게 말이 돼? 그놈들 괴물이었는데.”

재철이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재철만이 아니었다. 그 중국인들과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만큼 강력했다.

호성도 고개를 끄덕여 그 생각에 동조했다.

“그러니까 조사하던 사람들이 다 난색을 표했지. 게다가 시체는 너무 깨끗한데 정작 죽은 놈들이 전부 한 조직 출신이고 비슷한 시기에 죽었잖아. 이건 누가 봐도 청소한 거지.”

“수상한데.”

“원래 조직에서 처리하러 보낸 거 아냐?”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놈들이 우리에 대한 정보를 마피아들에게 팔아넘겼던 거라 생각해.”

“뭐, 그게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라 생각해.”

세나가 말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해 봤거든. 시체를 만져 봤어.”

“시체가 아직 남아 있었어?”

당연히 다 화장해서 재로 돌렸으리라 생각했던 수구가 신기한 듯 물었다. 강민도 그 물음의 의도를 알고서 답했다.

“너무 이상하잖아. 자연사라 그냥 넘겨야 하냐면서 담당자가 고민하고 있더라고. 조금 더 늦었다면 시체를 태웠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아직 모른다고 놔뒀지.”

“그래서 그걸 운 좋게 우리가 가서 조사할 수 있었단 말씀.”

“근데 그런 게 의미가 있어? 법의학자도 아니고…….”

재철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시체에서 무언가 범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일반 상식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지, 강민 같은 초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민은 자신의 향한 그 의혹에 가슴을 탕 쳤다.

“어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야 중2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2지.”

에이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세나가 동의했다.

모두 낄낄대며 웃었다. 강민은 움찔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가 이런 순간에는 차라리 더욱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외쳤다.

“됐어! 나는 강민이라고! 기의 흐름 같은 건 간단히 알아볼 수 있단 말야! 그 정도도 조사를 못 할까 봐! 그래서 시체를 직접 만진 거야.”

“그래서 뭔가 발견한 거야?”

혜경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죠.”

“그래서 결과는?”

에이리가 물었고, 강민은 찌푸린 얼굴이 되어 설명했다.

“역시 정상적인 죽음이 아냐. 이건 기는 흐름을 뒤틀어서 죽인거야.”

“기의 흐름을 뒤틀어?”

재철이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가 될 법한 설명은 아니었다. 강민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가 말했다.

“응…….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아, 그래. 여기 무협 소설에 보면 사혈을 찔러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 같은 게 나오잖아.”

“무협 소설?”

“사혈을 찔린 거란 말이야?”

무협 소설을 적지 않게 읽어본 경험이 있는 만수가 알겠다는 듯이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슷하지. 생명의 핵심이 되는 힘의 흐름을 강력한 다른 기가 방해해서 일격 사 시킨 거야. 겉으로 보기엔 자연사지만 엄연한 살인인 거지.”

모두 어두운 표정이 됐다.

“으음…….”

“그러면 그놈들을 보낸 조직이 여기까지 개입했다는?”

“그렇게 봐야 하지 않겠어? 이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잖아.”

“그럼 어쩔 거야?”

“그놈들만 죽었다면 뭐 그냥 모르는 체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도 방법이라 할 텐데……. 아쉽지만, 이놈들은 아주 위험한 정보를 쥐고 있지.”

강민이 진지하게 거론했다.

“하긴, 정말 위험해.”

모두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놈들이 쥐고 있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장갑맨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다. 그것은 현재 강민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처럼 작용할 수 있다.

“만일 널리 퍼지게 되면 장갑맨 노릇을 하는 것도 끝장이야. 역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숨어 살면서 암살자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며 살아야 할 거야.”

“마음에 안 드는데.”

“악당 놈들에게 패배하는 꼴이라니.”

세나와 에이리가 불쾌한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강민도 마찬가지로 분한 표정이 되어 외쳤다.

“그렇지! 나는 한 번도 악당에게 그런 식의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게 자랑이라고!”

“왜냐하면, 거슬리면 다 쳐 죽였거든.”

“그러게.”

세나와 에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이제까지 강민이 해온 바를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충격적이라 새삼 놀란 표정이 됐다.

그러나 강민은 어디까지나 당당했다.

“당연한 거 아냐? 정정당당히 싸워 패배한 놈도 저지른 짓이 포악하면 당연히 죽여야 하는데 그런 놈들이 내 개인 정보를 쥐고 협박까지 하려 한다니.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헉!”

“설마……!”

강민의 단호한 외침에 재철 일당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강민은 후후하고 웃었다.

“눈치챈 모양이군. 그래! 이번 목표는 중국 놈들을 작살내는 거다! 우리 개인 정보를 쥐고 흔드는 놈들을 결코 놔둘 수야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런 정보는 전파되는 게 너무 쉽다고. 우리가 너무 강하게 나서면 엿 먹이기 위해 그냥 풀어버릴 우려도 있어.”

재철이 쩔쩔매며 말했다.

정말 걱정인 것도 있지만 브라질에 갔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중국에 가서 설칠 생각에 대한 우려가 제일 컸다. 그는 되도록 한국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강민은 그의 소망을 꺾었다.

“아, 그런 우려도 있지. 물론 그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할 거야.”

“어떻게?”

슬픈 얼굴로 묻는 재철에게 강민은 기대하라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차차 알려주도록 하지. 하여간 그런 의미에서, 한동안 장갑맨 활동은 최소한으로 억누르고 중국어 공부에 돌입한다. 알겠냐!”

재철 일당은 동시에 반발했다.

“아니, 학교 공부만 해도 빡세 죽겠는데 웬……!”

“그래!”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고!”

재철도 분노해서 외쳤다.

서울대는 명문대인 만큼 학생들의 질도 매우 우수하다. 공부해야 하는 양도 당연히 많다. 권총을 차지 않는 것만 목표로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공부해야 한다.

그가 외치는 순간 반발하던 수구와 만수의 태도가 동시에 변했다.

“저 새끼만 굴려! 제발!”

“아니, 다 같이 구를 수 있다면 기꺼이 한다! 하지만 확실히 해 줘! 데이트할 시간 따위는 절대 만들어 주면 안 된다고.!”

“헉, 이것들이……!”

재철의 표정이 곤혹스레 변했다. 독이 오른 모태솔로의 분노가 이런 식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재철의 표정을 보며 수구와 만수는 서슬 퍼런 얼굴로 외쳤다.

“후후후! 이것이 바로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거야!”

“그래! 혼자 승리자의 기분을 맛봤겠다? 이제 정반대로 만들어 주마!”

그 광경을 보고 세나가 에이리에게 말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남자도 못지않은데?”

“그렇긴 한데……. 소인배 같은 건 어쩔 수가 없군.”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에이리가 혀를 차며 한 말에는 세나도 동감이었다. 그리고 호성은 재철 일당의 슬픈 꼴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석에게 말했다.

“나는 글로브 아미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야.”

“나도 동감이다.”

강석도 동감이었다.

저것도 여러 사람 왕따 만들고 괴롭히던 업보의 결과라면 결과겠지만, 그래도 역시 불쌍하다고 강석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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