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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05화 (205/227)

205화

정원.

정원의 중앙에는 호수가 있고, 그 정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중화풍의 전통 가옥이었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는 한 노인이 죽립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수염이 아주 새하얗고 길어서 마치 신선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지금 낚싯대를 쥐고 있었다.

호수의 표면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고, 낚싯대를 잡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살아있다기보다 인형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가 잡고 있는 낚싯대의 끝이 흔들렸다.

노인은 손을 들었다. 무지갯빛 잉어가 그 끝에 걸렸다가 빠져나가 호수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노인은 텅 빈 낚싯줄 끝을 보며 혀를 찼다.

“흠, 이것 참 쉽지 않군.”

노인은 투덜거린 다음 다시 낚싯대를 호수에 던져 넣었다.

“허허.”

큼지막한 잉어를 놓친 노인의 행동은 허허로워서 방금 놓친 잉어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가 있는 곳으로 조용히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노인의 등 뒤에서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을 걸었다.

“어르신.”

“아, 무슨 일인가.”

노인이 자세를 바꾸지 않고 물었다.

“장갑맨 일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여 고개를 돌렸다.

죽립 안쪽에서 예리한 눈동자가 번쩍였다. 남자는 죄송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실패했습니다.”

“역시 그런가.”

노인이 혀를 찼다.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놔둬라. 좋은 기회가 생기겠지.”

“장갑맨은 잔인하게 보복하기로 유명합니다.”

남자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허허, 우리가 누구지?”

노인은 웃었다.

“우리는 삼합회입니다.”

삼합회라 자신을 밝히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진한 자부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중원의 혼을 이은 진정한 한의 결사다. 천년의 세월조차 우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기껏 그런 하찮은 오랑캐가 우리의 위협이 될 수 있을까?”

한의 결사를 자칭하는 노인의 목소리에서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남자는 그의 말에 동조하는 굳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고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무익한 피는…….”

사형제는 이들의 조직 내에서도 꽤 상층부에 있는 요원들이었다. 한데 그토록 간단히 당하고 말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브라질에서 장갑맨이 보여준 활약을 보고 그는 우려하고 있다. 그 정도 힘이라면 틀림없이 협회 내에서도 상대할 자가 거의 없을 정도.

안과 밖을 따질 필요 없이, 장갑맨은 최강의 위치에 있는 자였다.

그러나 노인은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익한 피란 없다. 그것은 장강의 흐름처럼 모든 것을 우리 중원으로 돌리기 위한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이지.”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중원으로 돌아온다.

노인의 이 말에 대해서는 그도 동의하고 있었다.

중국은 최강의 국가였다. 시황제가 통일을 이룬 이래 한번도 빼놓지 않고 언제나 그러했다 말해도 좋다. 그 거대한 경제력과 군사력!

중화는 세계를 지배하는 문명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세월을 지났지만, 그것도 대륙의 관점에서 보자면 짧은 한때의 흐름일 뿐, 세계는 다시 중국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갑맨이란 특수한 자도 그런 흐름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장갑맨이 네가 말하는 것처럼 위험한 자라면 우리는 한층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실례했습니다.”

섣부른 대응은 더 큰 피를 부를 수 있다는 질책에 남자는 창피해진 듯했다.

“괜찮다. 젊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

“공산당 서기 말씀이십니까?”

남자가 반문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이후 누가 중국의 권력을 쥘 것인가 하는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 권력의 선출에 일반 중국 국민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지만 여기 있는 두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래. 대충 정리가 됐겠지?”

“시진핑과 시라이로 좁혀졌습니다.”

시진핑은 총서기인 동시에 국가주석, 시라이는 현재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시진핑이 더 강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시라이는 군사력을 쥐고 있다.

중국은 언제나 군벌이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고, 아편전쟁 이후 중국 분열은 언제나 군벌의 분열과 쟁투가 있었다. 국공합작 이전에 이 구도는 누구도 깰 수 없었고, 지금도 잔재는 남아서 각 지방군은 한 나라의 군대와 마찬가지인 독자적인 세력이다.

시진핑을 지지하지 않는 지방군벌이 시라이를 통합해 지지한다면 현재 시진핑의 우위 따위는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굴 응원하지?”

“어느 쪽도 우리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시라이 쪽이 좀 더 이용하기 쉽습니다.”

시진핑은 말하자면 문관이고, 중앙관료체계를 장악하고 있다. 시라이는 군사 통제권을 쥐고 있는데 중국 군사력의 특성상 그것은 여러 영주를 거느린 왕과 비슷하다. 뇌물이나 꽌시의 힘이 끼어들 여지가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시라이가 정권을 장악하도록 조정해 봐라.”

“네.”

남자는 미국 다음가는 세계 대국 중국의 다음 권력자를 결정하는 일을 마치 아침 체조하듯 간단히 말했다.

“명심해라. 중국은 점점 더 원래의 힘을 되찾고 있다. 이런 때에 어떤 균열도 생겨선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한 한족은 반석에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서는 신념이 넘쳤다.

“그렇다. 그것이 중화다.”

노인의 눈이 다시 의지로 번쩍였다.

한족의 영화를 되찾아 세계를 중화의 발아래 꿇게 한다!

그것이 삼합회의 현재 이념이다.

***

서울대도 새 학기가 시작됐다.

시끌벅적하던 법인화 논쟁도 결국 법인화가 되는 거로 끝났다. 학생들은 당장의 변화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각자 학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새 학기 수업을 끝내고, 강민단원들은 동아리실에 모였다.

수구가 동아리실의 의자에 앉아 멍한 눈길로 천정을 바라봤다.

“다시 학교생활이군.”

“싫냐.”

옆에 세트로 붙어 있는 만수가 물었다.

“싫진 않아. 어차피 방학 때 놀았던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냥 자극이 좀 덜 하는 정도일 뿐이지.”

만수도 수구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방학 때 브라질에서는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오랜만에 귀환했으니 한동안은 느긋하게 지내야지.”

“그래. 나도 이제는 공부하면서 평화롭게 지내야지.”

브라질에서는 정말 뼈와 살이 튀어 오르는 경험을 했다. 당한 건 아니지만 정말 못 볼 꼴도 여러 번 봤다. 그러니 한동안은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게 수구와 만수, 두 사람의 솔직한 속내였다.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재철이 웃으며 말했다.

“후훗, 그러냐. 나는 앞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

수구와 만수의 표정이 함께 일그러지는 건 당연지사! 바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데 그 바쁜 이유가 두 사람도 뻔히 알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악!”

“저 화상! 죽여버리고 싶네!”

“으하하하! 나는 매일매일이 알콩달콩 즐겁다고! 너희 같은 모태솔로와 비교를 하지 마라!”

수구와 만수의 분노는 재철에게는 감미로운 음악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받을수록 승리했다는 것과 같다. 기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브라질에 가서 가장 성공한 건 재철인 것 같군.”

“그야 미인을 건져 왔으니까.”

호성과 강석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남자들의 바보 같은 대화를 듣고 있던 지연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뭐가?”

혜경이 물었다.

“미인이 애인인가 아닌가 하는 데 너무 신경을 쓰잖아요.”

“그렇긴 한데……. 뭐, 너나 나도 원빈이 애인이라면 기분 좋을 거 아냐.”

남자들이 물론 애인의 얼굴을 밝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자라고 밝히지 않는 건 아니다. 심지어 꽃거지니 뭐니 해서 잘생긴 사람에 대한 선망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도 지연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렇긴 해도 저렇게까지야. 그리고 원빈이 미남이긴 하지만 얼굴만 잘생겼다고 다 만족할 것 같진 않아요. 다른 것도 많이 필요하죠!”

혜경이 호호 웃은 다음 슬쩍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다른 거라면 역시 싸움을 잘하는 거?”

혜경이 슬쩍 쳐다본 곳에는 나른하게 의자에 누워 놀고 있는 강민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에서 싸움을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치챈 지연은 크게 당황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뭐야? 좀 많이 색골에 쓸데없이 잘난 척이 심하고 그런 거 말이야?”

혜경은 당황하는 지연의 모습이 귀엽고 재밌었던지 한층 더 추근댔다.

“아, 아니에요! 놀리지 마세요.”

지연은 어린아이처럼 붉어진 얼굴로 버럭 화냈다. 혜경은 후배가 귀여워 깔깔 웃었다.

“깔깔, 귀엽긴.”

“그런 게 아니라……. 흠, 남자는 자상해야죠!”

지연은 붉어진 얼굴로 완강히 주장했다.

그 말을 듣고 혜경은 그것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생판 모르던 여자애가 위험하다고 기꺼이 나서서 귀찮은 적들을 다 때려눕히고 구해주는 것만큼 자상한 경우도 많지 않긴 하지.”

“그, 그게 아니라니까!”

이번에도 혜경이 뭘 노리고 하는 말인지는 뻔했다. 지연은 완전히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혜경은 그럴수록 지연이 귀여운 모양이었다.

“후후, 다 아니까 걱정 마렴.”

“정말 언니는!”

지연은 혜경을 당할 수가 없다는 듯이 투덜투덜 댔다. 그 대화를 세나와 에이리, 두 사람도 보고 있었다. 에이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쟤도 독아가 걸렸나 보네.”

“그렇지. 근데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

세나는 별스럽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당연해?”

“강민이 말야, 그냥 보면 굉장하잖아.”

에이리는 조금 불쾌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람들에게 굉장해 보일 거란 건 인정해.”

“그렇지. 하지만 단지 대단해 보이는 것으로만 따지면 호성이라는 애가 더 나을 수도 있지. 용모도 강민보다 약간 더 낫고, 또 재벌 집 아들이잖아.”

의외로 강민이 대단하다고 말했던 세나가 대화의 초점을 옮겨갔다. 에이리는 갸우뚱한 얼굴이 됐다.

“그런가?”

“그래. 한국은 돈의 힘이 굉장히 강력한 나라기 때문에 강민처럼 힘이 센 사람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까지 큰 존경을 얻을 수 없어. 하지만 돈이 많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설령 범죄를 저질러도 많은 사람이 우러러본다고.”

“그 정도야?”

에이리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됐다.

한국에 살게 된 지 이제 일 년도 훌쩍 넘었는데 아직 재벌이라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건 처음 알았다. 사실 한국은 별 시시한 것까지 다 이유를 붙여 잡아들이는 쓸데없이 엄격한 나라라는 인상이 에이리에게는 더 강했다.

“쯧쯧, 한국에 나보다 일찍 왔다더니 영 모르는군.”

“나는 너처럼 활자 중독이 아니라고.”

세나의 질책에 에이리는 투덜댔다.

사실 에이리는 책도 즐기지 않고, 그렇다고 드라마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 현대사회의 다양한 정보에 소원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이런 건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야. 재벌이 주인공으로 얼마나 많이 나온다고. 잘생긴 건 덤이지.”

에이리는 그건 그래 봐야 드라마의 이야기일 뿐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건 픽션인 거지. 사실이 아니잖아. 몇 사람 정도 법망에서 빠져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런 거야 뭐 운 좋게 빠져나간 거겠지.”

“아니야. 증거까지 다 잡아놓고도 판사가 봐준다고.”

“뭐? 그게 말이 돼?”

세나가 고개를 흔들며 하는 말에 에이리는 어이가 없었다.

돈의 힘으로 어떻게 무마시킨 것도 아니고 증거까지 다 모아 놓고서도 봐준다니, 정상적인 사법체계를 가진 국가에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세나는 한국에서 그런 일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다 국가에 공이 있다고 봐준다나…….”

“어이가 없네.”

“우리가 보기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지.”

세나도 어이없는 감정은 에이리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혀를 차면서도 시니컬하게 말했다.

“찾아보면 생각보다 의외로 문제가 많은 나라로군.”

“그렇지.”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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