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강민일당은 해변에 나와 있었다.
“흐음.”
“설마 떠난 거 아냐?”
세나가 바다를 바라봤고, 에이리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강민이 부정했다. 그리고 카를로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 줬다.
“도망가면 조직이 와해할 거고 그러면 모든 것을 잃을 거라고 하니 그렇게 쉽게 이곳에서 도망갈 생각을 하지는 못할 거야.”
세나와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세계에서 다양한 적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은 뒷세계의 생리도 숙지한 편이라 지금 강민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곧 에이리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면 답은 뻔하군.”
“뻔해?”
“그래.”
세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 근처 어딘가의 무인도에라도 있는 거겠지.”
“그렇군.”
강민은 세나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 사람의 생각에 동의했다.
“배를 구하자.”
“그리고 돌격.”
작전이라 하기도 어려운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이 욍 지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강민이 마지막 확인차 물었다.
“다 모여 있을까?”
“물건 셋에 대한 반응이 동일하잖아?”
그러면서 세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호세, 당케, 멘돌라의 사물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
“틀림없이 다 같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선 무서워서 버틸 수가 없겠지.”
재철 일당도 안다는 듯 떠들었다.
“그럴테지.”
에이리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매섭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 공포를 끊어줄 때가 왔군.”
“공포뿐만이 아니지. 모든 근심·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거야.”
세나가 상큼하게 이어 말했다.
강민은 자비를 베푸는 듯한 두 애인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우리가 천사인 것 같잖아?”
“다를 것도 없지 뭐야.”
“그래. 죽음의 천사도 천사니까.”
세나와 에이리는 그리 말했고, 강민은 그것도 맞는 소리라며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재철 일당은 재들은 역시 사이코패스라고 수군거렸다.
***
바다 위를 한 대의 날렵한 보트가 달리고 있었다.
부우웅!
부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보트 뒤로는 물이 갈라졌다.
주변으로는 물방울이 튀었다.
그런 보트의 선두에는 세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지금 손바닥에 보스들의 사물을 올려놓고 그들이 사라진 곳을 찾아 보트의 항로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에이리가 물었다.
“다 왔어?”
“아니. 좀 더 가야 해.”
그렇게 말하면서 세나는 자신의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흐음...”
사물들의 방향이 꺾였다.
“좀 더 왼쪽으로 꺾어달라고 전해줘.”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곧 그녀가 다시 나오며 말했다.
“선장에게 이야기하니까 사람이 사는 섬은 그쪽 항로에는 없다는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해. 꼭 사람 사는 섬에만 사람이 살 건 아니잖아. 이놈들은 잠시 피난가 있는 거라고.”
에이리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뭐 그 정도는 알고 있어. 혹시 모르나 해서 물어본 거지.”
에이리는 그리 말하고 들어갔고 보트는 방향을 바꿨다.
부우웅!
그렇게 계속 달린 지 한 시간 정도였다.
“저기다!”
세나는 신이 나서 외쳤다.
그 외침을 듣고 강민단원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찾았어?”
“그래. 저 섬이 보이지.”
세나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섬 하나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그 섬을 보면서 세나는 즐거운 듯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저기야말로 우리가 싹쓸이를 해야 할 놈들이 잠복해 있는 섬이야.”
“호오.”
“겨우 찾았군.”
“방학 숙제 마무리다. 신나게 털자고!”
강민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그래!”
“물론이지!”
다른 강민단원들 역시 환호하며 호응했다.
복수의 시간이다!
***
황폐한 섬의 해변을 경비하는 남자들이 둘 있었다.
돌격소총을 배고 해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어디서부터 어딜 봐도 훌륭한 마피아였다.
둘 중 초췌해 보이는 쪽이 옆의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약 좀 있냐?”
“이런데서 발작 일으키면 주사도 못 맞고 죽는다.”
혀를 차며 동료가 말했다.
마약으로 발작을 일으키면 안정을 위해 약물치료가 필요해진다. 그걸 받지 못하면 혈관이 터져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초췌한 마피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이런 형편에 그런게 무슨 상관이야.”
“그것도 그렇군. 자.”
동료를 수복했던 마피아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해 자기 마약의 일회분을 상대에게 던져 줬다. 어차피 오늘내일하는 위태로운 생활이다. 먼 미래를 걱정하기는 어려웠다.
“쌩큐.”
초췌한 마피아는 고맙게 동료의 약을 받고는 그것을 자기의 팔에 주사했다.
“어... 좋다.”
그의 표정이 황홀해졌다. 주사기를 비운 다음 그는 진정된 표정으로 동료를 향해 물었다.
“우리 어떻게 될 거 같냐?”
“죽든가 크게 벌든가 둘 중 하나겠지.”
초췌한 마피아는 그 말을 듣고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크게 벌 거라 믿는 거냐?”
“잃어봐야 죽을 뿐인 거지. 안 그러면 내가 어디 이런 자리까지 오겠냐?”
옆의 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현재 보스의 피난처에 경비를 위해 와 있다.
본래 이런 자리를 대단한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 출신의 엘리트 마피아 같은 놈들이 와서 지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그럴 수가 없어서 이들처럼 마약에 찌든 인원을 사용하고 있었다.
“큭큭. 다른 놈들 다 도망간 구멍 덕분이지.”
“그래.”
“하지만 죽는 것보다 더러운 꼴을 당할거야. 장갑맨에게 걸리면.”
구박하던 마피아는 옆의 동료를 겁주듯 그리 말했다. 실제 장갑맨에게 죽는다는 건 브라질 마피아 최대의 악몽이다. 그것은 초췌한 마피아를 적지 않게 동요시켰다.
“씨발 그렇게 겁줄 거면 너는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야?”
“나는 이걸 믿는 거지.”
구박하던 마피아는 품에서 알약을 하나 꺼냈다.
“그게 뭐야?”
“잡힐 거 같으면 이거 먹고 뒤지려고 그런다.”
그것은 청산가리 알약이었다.
“어...”
초췌한 마피아는 부러운 눈으로 그 알약을 바라봤다. 저 약이 있으면 만일의 경우에도 끔찍한 고문은 안 당하고 죽을 수 있다.
“멍청한 새끼, 여기 있는 놈들은 최소한 이거 하나씩 가지고 있어. 똑똑한 놈들은 이빨로 위장해서 끼워 뒀다던데.”
“실수로 씹어 먹으면 어쩌려고.”
초췌한 마피아는 투덜거렸다.
“그런 바보는 너나 있겠지.”
“씨발. 약 팔아라.”
초췌한 마피아는 동료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상대는 매우 냉정했다.
“이거 비싸. 여긴 무인도라 더 구할 수도 없어.”
“미리 준비해 뒀어야 하는데.”
초췌한 마피아는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늦었다.
“쯧쯧.”
갑자기 들려온 소리.
당황하며 경비병들은 시선을 돌렸다.
“읏...”
그런데 마약을 했던 마피아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약 기운이 도는 모양이군.”
동료는 큰일 났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수풀 사이로 몇 명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민 일당이었다. 재철 일당이 마약을 하고 알딸딸한 상태인 마피아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와, 여기 새끼들은 경비서면서 약도 하네.”
“헉!”
“허억!”
두 마피아가 지금 모습을 나타낸 이들을 보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강민은 친근하게 우선 인사했다.
“안녕.”
“자, 장갑맨!”
“그렇다!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브라질 쓰레기들을 청소하러 현대의 영웅 장갑맨님께서 나선 것이다!”
공포에 질린 마피아들 앞에서 강민은 빠지면서 말했다. 그의 뒤에서 세나와 에이리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런걸 여기선 중2라 한데.”
“중2?”
“중2때나 하는 허세라고.”
에이리의 설명에 세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중2에 대한 모욕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에이리는 세나의 평가에 동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강민은 참 실속 없이 뻐기는 짓을 잘 안다. 더구나 촌스럽기까지 하니!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 가볍게 생각했다.
“뭐 곧 작살날 놈들에 대해 저런 장난 거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것도 그렇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전투는 이미 시작됐다.
“으아악!”
“크악!”
비명만 길게 남기고 전투는 시작보다 빨리 끝났다.
그만큼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
밖에 시끄러웠다.
마피아 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서 방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보스!”
“설마 장갑맨이냐!”
당케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으으!”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벌써! 대체 어떻게 이곳을 찾아내서 공격한단 말인가. 호세를 죽이고 도망갔던 놈들 중에 탈출에 성공한 놈이 있었던 것일까?
당케는 벌써 전신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를 보면서 부하가 외쳤다.
“어서 대피해야 합니다!”
“아, 알았다! 너희들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알겠습니다.”
부하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 후에 연락하겠다! 그대 보다!”
당케는 그렇게 명령하고 서둘러 비상 탈출로를 향해 움직였다.
“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당케는 호흡을 헐떡이며 길을 달렸다. 어느 정도 달린 지점에서 그는 멘돌라와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여기까지!”
“끔찍하군!”
“어디로 갈 거야?”
“아프리카나 중동 쪽이 좋을 거다. 거긴 정부가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돈이 있다면 충분히 거처를 마련할 수 있어.”
당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멘돌라가 말한 것처럼 지금 여기서 탈출하면 그 정도가 가장 안전한 탈출처가 될 것이다. 당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곳까지 이놈들이 쫓아오지는 않겠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멘돌라 역시 불안한 모양이었다. 장갑맨은 이제까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선 짓을 너무 많이 해 왔다. 여길 발견한 것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당케는 애써 밝은 표정을 했다.
“추적할 수단이 없으니 불가능할 거야. 정부가 있어서 우리 행적을 파악하고 조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그렇겠지.”
둘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며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곧 그들은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에 도착했다.
“얼른 가자!”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갔다. 사다리가 끝나느 곳에서는 작은 잠수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조금 안심하는 표정을 보였다.
“비싼 돈 들여 사 놓길 잘했군.”
그들의 산통을 깨고 목소리 하나가 개입했다.
“안 됐는걸. 비싼 돈이 소용없게 돼서.”
“헉!”
“자, 장갑맨!”
당케와 멘돌라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강민은 그들의 공포를 즐기는 것처럼 즐거운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 숨바꼭질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