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리오의 파벨라를 한 남자가 뛰고 있었다.
“헉헉...”
그는 끊임없이 뒤를 쳐다보며 달렸다.
한 손에 든 것은 권총.
하지만 총을 들고 있으면서도 남자는 너무도 무력해 보였다.
“잡아라!”
“저기다!”
여기저기서 그를 쫓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고함소리가 남자를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으!”
그는 어느 골목에 들어가서 울면서 외쳤다.
“제기랄 왜 이 꼴이!”
“왜긴 니 놈이 악당 짓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이지!”
그대 골목 맞은편에서 어설픈 포루투칼어가 대답이 되어 돌아왔다.
“아앗!”
“아앗은 무슨!”
경악하며 멈추는 남자 맞은 편에 나타난 것은 강민이었다.
그는 급속도로 달려 남자 앞에 달려오고는 그를 한주먹에 날렸다.
“컥!”
남자는 공처럼 날아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남자는 겨우 정신을 잃지 않았다. 고통에 끙끙거리는 남자 근처로 다가가며 강민이 물었다.
“네가 아멜의 측근이란 정보는 이미 입수했다. 그녀의 위치를 밝혀 주실까.”
“마, 말할 줄 알고...”
분노를 담은 눈으로 강민을 올려다보면서 그를 말했다.
강민은 빙그레 웃었다.
“아, 그러면 좋은 생각이 있지.”
강민의 눈으로 위험한 기색이 서렸다.
남자는 등골이 오싹했다.
“너는 산산조각으로 찢어 죽이고 그걸 신문에 싣는 거야. 그리고 다른 놈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그 꼴로 죽는다고 경고하는 거지. 효과가 좋을 거 같지 않아?”
“히이익...!”
강민의 말에 남자는 견디기 힘든 공포를 느꼈다.
지금 강민이 한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이 잛은 기간 동안 브라질의 모든 마피아는 지옥에 빠진 것 같은 공포를 맛보고 있다.
바로 이 장갑맨 때문에!
그의 잔혹함은 그들조차도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덜덜 떨면서 남자는 강민에게 말했다.
“마, 말하면 살려주나?”
“욕심히 과한데. 그런건 무리고 안 아프게 죽는 특권을 주지.”
강민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으으으...”
“후후, 이게 다 내 주변을 털어서 대응하겠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쥐잡기부터 시작해서 대가리를 사냥하려 했더니 쓸데없는 짓들을 하니... 쥐잡기는 적당히 하고 대가리 사냥에 나서야 하겠다 싶었단 말이지.”
강민은 두려움에 떠는 그를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걱정마. 너를 이꼴로 만든 니 위에 새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옥을 보여주고 죽일 테니까.”
절망한 남자의 표정에서 그 순간 분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민이 지금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 이렇게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은 전부 위엣 놈들이 잘못한 덕분이다. 한데 그들만 편하게 살아남고 자신만 죽어야 한다?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 아멜의 위치는...”
남자는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말했다.
강민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
방안의 공기는 뜨거웠다.
두 연인의 정사가 방금까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지금 이불에 누워 쉬고 있었다.
라틴 미인과 동양인.
재철과 지젤이었다.
지젤은 재철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리고 그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궁금한게 있어요.”
“뭔데?”
“재철씨는 한국에서 뭘 해요?”
재철은 그러고 보니 지젤에게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직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학생이지. 서울대학생.”
“대학생이었군요!”
지젤이 부러워하며 말했다.
“그렇게 놀랍나?”
서울대학생이라면 한국에서는 다들 부러워하는 스펙이다. 하지만 브라질 여자가 서울 대학이 얼마나 한국에서 절어주는 평가를 받는지 알게 뭔가! 그러니 지젤이 놀라워하는 건 대학생이라는 점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이란 건 재철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젤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브라질에선 대학생을 보기 쉽지 않아요.”
“한국에선 대학생이 되는 게 당연한 건데.”
재철은 새삼 한국과 다른 나라는 사정이 여러모로 틀리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말했다. 한국에서야 대학생은 인간 취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가야 하는 공통 코스 같은 곳이다.
지젤은 부러워하며 말했다.
“굉장히 좋은 나라네요.”
“그런가?”
재철을 비롯하여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불만이 아주 많기 때문에 지젤이 하는 소리에 재철은 좀 의아한 표정이 됐다.
지젤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
“젊은이들이 전부 대학생이 된다니. 나는 고등학교도 끝까지 못 했어요.”
지젤은 안타깝게 한숨을 쉬었다.
지젤은 그러니 고교 중퇴인 셈이다.
그 말을 하면서 지젤은 창피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철이 대학생 씩이나 되는데 자기는 고등학교 조차 못 끝냈다는데 격이 안 어울린다 싶었기 때문이다.
재철은 그런 지젤을 달래듯이 껴안으며 물었다.
“그런 거 안 중요해. 지젤은 착하고 예쁜 걸.”
지젤은 안심한 표정으로 재철에게 안겼다. 애인의 온기를 느끼면서 재철은 물었다.
“다시 공부하고 싶어?”
“기회가 되면...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던 것도 공부를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었으면 해서기도 했으니까요.”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를 끝까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던 사람은 대부분 공부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재철은 속삭였다.
“내가 도와줄게.”
지젤은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세를 질 수는 없지요. 일단 에반젤이 좋은 선수가 난 다음으로 미뤄둘께요.”
“응. 그것도 좋겠지.”
재철은 지젤의 말이 일리가 있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지젤은 웃으며 재철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좀 더 욕심부리면 당신처럼 대학생도.”
“한국에서 대학생이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거지만 다들 대학생이 된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냐. 문제도 많고.”
재철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국은 화이트 칼라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대부분 화이트 칼라가 되길 원한다. 이 때문에 이태백같은 말이 생겨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백수만이 문제일까!
과중한 학비로 인해 빛으로 인생 시작해서 빛으로 인생 끝내는 꼴까지도 부지기수! 대학에 대한 선호는 이런 문제의 핵심에 있다.
하지만 지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브라질보단 나을거 아닌가요?”
“뭐... 브라질 보단 나은 거 같지만.”
재철도 그 말에는 반론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브라질의 치안과 사회 상태는 한국에 비할 바 없이 낙후되어 있다. 브릭스라고 해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브라질에 비하면 아무리 욕해도 한국은 파라다이스!
“그거만 해도 굉장한 거지요.”
지젤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마약 문제 같은 걸로 속 썩이지 않는 면은 괜찮은 거 같아.”
재철도 그런건 인정했다.
지젤이 우울한 표정이 됐다.
“그렇죠. 여긴 어디서나 마약이 흘러넘치니까. 다들 범죄자도 쉽게 되어버리고...”
“두 사람은 아니지만.”
재철은 웃으며 지젤의 가슴을 애무했다.
신음을 짧게 흘리고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나도 에반젤도 운이 좋아요.”
“나도 그렇지.”
지젤 같은 미인을 얻어 이렇게 품에 안고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재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재철은 지젤을 새삼 쳐다봤다.
아름다운 얼굴에 한국 여자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완벽한 S라인의 몸매!
진짜 지젤은 미인이었다.
그래서 재철은 물어봤다.
“그런데 지젤은 모델 같은 거 관심 없어?”
한국이라면 지젤 정도면 여기저기서 모델로 모셔갔으리라고 재철은 생각했다.
하지만 지젤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던 건 아니지만 브라질에는 쟁쟁한 여자들이 많아서 무리죠.”
“지젤이 어때서!”
재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부정했다. 지젤은 재철의 그 모습에 기뻐하면서 설명했다.
“응원은 우리나라 모델들은 정말 굉장히 미인들이라구요.”
사실이 그렇다.
브라질 출신의 미인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모델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 데뷔하는 모델의 수도 아주 많다. 지젤은 대단한 미인이지만 모델이 되기 위해 전문적인 공부를 해 온 그런 여자들이 경연대회를 펼쳐 데뷔하는 모델이 되기엔 역시 무리였다.
“그래도 나는 밀린다고 생각 안 해.”
“그렇게 봐 준다니 고마워요. 그런데 학생이면서 어디서 그렇게 돈은 벌어요?”
지젤은 화제를 바꿨다.
학생이면서 돈은 어디서?
확실히 큰 의문 거리였다. 얼마 전 그에게서 받은 만 달러라는 큰돈은 에반젤의 클럽을 바꾸고 축구에 쓸 장비 같은 걸 사주고도 아직 한참 남아서 1년은 더 사용할 수 있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학생이면서 그런 돈을 선 듯 내 줄 수 있다니?
“뭐... 집이 좀 산다고 생각해 줘.”
답변에 곤란해하다가 재철은 창피한 듯 그리 말했다.
자신이 글로브 아미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이상 제일 무난한 답이긴 했지만, 남자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답이었다.
“아, 그건 좀 몹쓸 짓을 하는게 아닐지.”
지젤은 미안해 했다.
“하하, 그럴 리가. 지젤을 위해선데.”
“고마워요.”
통 크게 말하는 재철이 마음에 들어 지젤은 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재철은 욕정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몸을 돌려 지젤을 아래에 깔면서 말했다.
“그러면 한 번 더 하자.”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철은 지젤의 매끄러운 몸을 애무하다 아랫도리에 힘을 넣었다.
“으응...”
눈을 감으며 지젤은 신음을 흘렸다.
***
주변은 강철로 덮여 있는 방이었다.
그 방 가운데서 아멜은 덜덜 떨고 있었다.
“여, 여기라면... 안전해.”
그녀가 있는 이 방은 긴급 피난용의 벙커였다. 한창 냉전이 한창일 때 어느 부호가 만들었던 것을 아멜이 인수한 것이다.
살 당시는 반쯤 노는 기분으로 샀다.
진짜로 사용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손발이 잘리듯이 점차 간부들이 죽고 목을 죄이게 되니 역시 공포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안전하고말고...”
핵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벙커인 만큼 물리적인 수단으로 이곳을 돌파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비축 식량은 총 3년.
아멜은 여기서 장갑맨이란 재앙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곳은 튼튼할 뿐만 아니라 위치를 아는 것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벙커가 흔들렸다.
콰앙!
콰앙!
계속해서 흔들리며 큰 소리가 났다.
“히익!”
아멜은 놀라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