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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94화 (194/227)

194화

남의 연애에 저주를 퍼붓는 것도 그렇지만 애인이 꽃뱀 소리 들으며 모욕당하는 게 기분 좋을 남자는 없다.

“이것들이 맞고 싶어서!”

“저런 말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 걱정이긴 한데.”

하지만 강민이 일단 말렸다.

“그래. 사귀게 되자마자 거금이 필요하다니, 너무 뻔한 패턴이잖아.”

“그러게.”

세나와 에이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단순히 상황이 흘러가는 모습만 보자면 누가 봐도 재철은 꽃뱀에게 물렸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재철은 오해가 생각 외로 깊다는 것을 깨닫고 진화에 나섰다.

“아니아니, 그런거 아니예요. 이게 다 사정이 있는 거니까.”

“모든 꽃뱀이 사정은 있지.”

“그럼. 그럴듯한 사정을 만들어내는 게 호구 뜯는 핵심 비법 중 하나인걸.”

세나와 에이리가 말했고 강민이 측은하게 재철을 바라봤다.

“들었지?”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 그러네! 지젤은 착한 여자야!”

강민은 재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설득했다. “나도 그 아가씨가 꽃뱀이라 확신하는 건 아냐.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이런 범죄가 아주 흔하다고. 그러니 조심하자는 거지. 그리고 알아보고 도와줘도 늦을 건 아니잖아.”

“알았어.”

재철은 지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강민을 비롯한 친구들의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눠 지젤을 믿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강민이 물었다.

“그러면 일단 왜 돈이 필요한지, 그것도 사귀게 되자 필요하게 됐는지부터 들어볼까.”

“그게 실은...”

재철은 차분하게 사정을 설명해 나갔다.

***

이야기를 다 들은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었군.”

“그래. 그러니까 믿을 수 있겠지?”

강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꽃뱀은 아닌 것 같아.”

“그러게. 꽃뱀이라 치기엔 사건이 복잡해.”

강민에 이어 에이리와 세나도 꽃뱀이 아닌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재철은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이대 세나가 물 끼얹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너랑 사귀게 된 건 사랑 때문이 아닐 거 같기도 한데.”

“네?”

재철은 물론 당황했다.

세나가 설명했다.

“꽃뱀은 아니라도 동생 때문에 돈에 급한 건 사실이니까 네가 돈이 많은 관광객처럼 보여서 도움을 얻으려는 것일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지.”

“그럴리가요...”

재철은 표정이 썩으려는 걸 막고 세나의 말에 반대했다.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브라질이고, 그 여자는 파벨라 출신이야. 아무리 착해 보여도 한국에서 닳고 닳았다는 여자들보다 훨씬 험한 환경에서 살아온 거라고. 낭만적인 사랑 같은 거 믿을 거 같아?”

“그래. 그런 면에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에이리도 세나의 말에 동의했다.

세나와 에이리는 험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 같은 건 잘 안 믿는다. 그런건 있을 거 다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다.

그러니 세나와 에이리는 사랑을 안 믿는 주제에 자신들의 사랑은 진짜라고 생각한다.

“으으...”

재철은 우울한 얼굴이 됐다.

세나와 에이리가 이번엔 약을 줬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말 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는 거고.”

“아니라도 뭐 앞으로 잘 될 수도 있는 거고.”

“그, 그렇겠죠?”

재철은 희망 어린 얼굴로 웃었다.

세나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물었다.

“일단 그러면 우리가 가서 봐 줄까?”

“네?”

“역시 여자는 여자가 잘 알아보는 법이잖아.”

“응, 그건 재밌겠네.”

에이리도 관심을 보였다.

지젤을 실제 만나서 어떤 여잔지 알아보는 건 재철을 위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재미도 있을 것 같았고.

“으음...”

“그리고 나는 독심술도 쓸 수 있으니까!”

세나가 말했다.

“그런건 좀...”

재철은 곤란하단 얼굴을 했다.

세나가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그렇게 읽는 건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세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진심인가 아닌가 정도만 알아보는 거야. 괜찮지 않아?”

“네가 진퇴를 확실히 할 수 있다면 점에서 그 지젤이란 아가씨에게도 손해는 아닐걸.”

에이리도 세나에 동의했다.

괜히 진심도 아닌데 깊게 관계하려 했다가 나중에 힘들어지는 게 초반에 마음을 확실히 알고 행동을 결정하는 게 서로를 위해 나을 수 있다.

그건 재철로서도 그렇다 싶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면 그 정도만...”

“맡겨 둬!”

세나는 흥미진진하단 얼굴로 말했다.

***

재철은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눈에 띄는 미인이 들어왔다. 옷차림이 수수하지만, 전형적인 남미의 미인이었다. 지젤이었다.

“지젤 여기야.”

“아, 재철씨.”

웃으면서 지젤은 재철의 옆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아니요. 이런 거야... 무슨 일인가요?”

지젤은 오늘 재철이 갑자기 불러서 나왔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철은 일단 그녀에게 물었다.

“에반젤은?”

“다른 클럽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죠.”

에반젤을 이야기하는 지젤의 표정은 조금 우울해 보였다.

“다른 클럽이라...”

“실력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역시 좋은 클럽에 들어가긴 무리겠죠.”

지젤은 한숨을 쉬었다.

브라질에는 축구에 재능을 지닌 선수가 많아서 실력만으로 명문클럽에 들어가는 것은 힘들다. 에반젤 같은 경우 있던 클럽에서 감독과 싸우고 뛰쳐나온 셈이니 더욱 그 벽이 크다.

“실은 그것 때문에 부른거야.”

“방법이 있나요?”

지젤이 급히 관심을 보였다.

“방법이라고 할까... 뭐 방법이긴 하지.”

재철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거기서 한 뭉텅이 지폐를 꺼내 지젤의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아!”

많은 지폐 무더기에 지젤은 놀랐다.

언 듯 보기에도 족히 만 달러는 될 것 같았다. 만 달러!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브라질에서는 더욱 큰돈이다.

더구나 파벨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걸만한 돈!

“이 정도면 당분간은 충분하지 않겠어?”

“정말 고마워요...!”

지젤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재철은 어깨를 으쓱였다.

“남는 건 생활비로 사용해. 더 필요해지면 연락하고.”

“아껴서 사용할게요.”

고마운 듯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말라고 하고 싶지만... 하하, 뭐 그건 사실 무리야.

“그런건 이해해요.”

만 달러다.

한국 돈으로 천백만원.

브라질과 한국은 소득수준이 압도적으로 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 돈으로 천백만원이면 한국인에게도 정말 큰 돈!

연봉 일억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수치다.

“고마워.”

재철은 지젤의 사려 깊음에 만족하고 말했다. 지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야말로 도움을 받는 처지인걸요.”

그리고 두 사람은 키스했다.

지난번처럼 긴 딥키스였다.

입술을 뗀 다음 붉어진 얼굴로 지젤이 재철을 유혹했다.

“그런데 이제 나가서 저희 집에 가지 않겠어요? 에반젤도 없고.”

“으, 으음 그건...”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가서 지젤의 몸을 애무하며 사랑을 나누고 싶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 재철의 본능!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강민과 함께 브라질의 마약상들을 처리하러 가야 한다. 결국, 재철은 지젤에게 사과했다.

“미안. 오늘 할 일이 있어서 무린 거 같아.”

“그래요... 그럼 시간 비면 꼭 연락해줘요.”

지젤은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거야 지젤이 말하지 않아도 재철이 꼭꼭 챙길 일이었다. 그리고 지젤은 아쉽게 먼저 카페를 떠났다.

두 사람의 행각을 멀지 않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강민 일당이었다.

***

지젤이 떠난 다음 재철은 강민 일당이 있는 테이블로 왔다.

그는 시험성적을 확인받는 학생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어땠습니까?”

“착한 여자인 것 같은데.”

“미인이고.”

“너한텐 아깝더라!”

세 사람은 모두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헤헤헤.”

반즘은 자기를 가는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재철은 기쁜 듯이 웃엇다. 애인이 칭찬 들으니 자기는 욕 먹어도 역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런 걸 물은 게 아니고 말입니다!”

“아 걱정마. 그쪽도 확실히 조사했으니까.”

세나가 웃었다.

“그, 그렇겠죠.”

재철이 긴장된 표정을 했다. 오늘 이들에게 지젤을 선보인 것은 세나의 마법으로 지젤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세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이야기했다.

“알아본 결과 널 좋아하는 건 확실해.”

“역시 그렇죠!”

재철은 뛸 듯이 기뻐했다.

강민은 그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수구와 만수가 좌절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세나의 말은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야.”

“네?”

재철이 긴장했다.

세나는 재철이 일희비희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좋아서 사귀자고 한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지. 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반응이 급격히 올라갔어. 돈이 급해서 널 꼬신 것도 틀림없어.”

“으음... 그래도...”

재철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세나는 깔깔 웃었다.

“울상짓지 않아도 괜찮아. 누구든 사람을 사귀면서 그런 속물적인 기대는 하는 거잖아. 남자는 여자랑 어떻게든 자려고 애쓰는 거고.”

“그러게 말야.”

에이리도 동의했다.

그러면서 세나와 에이리가 함께 쳐다본 것은 다름 아닌 강민!

“거, 거기서 나를 왜...”

강민은 둘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면서 모르는 척했다.

세나는 코웃음을 치며 강민을 비웃은 다음 재철에게 말했다.

“어쨌든 그러니 돈이 이유의 상당 부분이긴 해도 저 아가씨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틀림없어.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기만 해도 충분히 멋진 커플이 될 수 있을거야.”

“축하해.”

에이리도 동의하며 말했다.

강민도 피식 웃으며 재철에게 말했다.

“사실상 좋은 아가씨라 도장 찍은 거나 마찬가지군.”

“휴우... 다행이다.”

재철은 기분좋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축하해.”

다들 지젤이 좋은 아가씨고 진심으로 재철을 좋아한다는 것에 축하를 보냈다.

“그러면 오늘도 열심히 악당을 때려잡아야지.”

강민은 이어서 재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

재철은 힘이 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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