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실은 그것 때문에 에반젤의 보호자와는 어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에 이렇게 됐으니 운이 좋군요.”
“저도요!”
지젤은 구아나의 음심에는 눈치채지 못한 채 그 말에 기뻐했다.
“그러면 이런 곳에 서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니 제 사무실에 가시지요.”
“경기는 어쩌시고?”
“하하, 이건 연습 시합이라서 제가 없어도 됩니다. 항상 하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지젤은 구아나의 말을 의심없이 믿고는 그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
파벨라의 한 곳에서는 오늘도 커다란 전투가 있었다.
전투만이 아니라 살육과 고문도 있었다.
그런 전투에 방금전까지 참석해 있다가 공기가 되는 마법으로 이제 일상에 돌아와 택시에 탄 것은 재철이다.
그는 뒷좌석 의자에 몸을 기대며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오늘도 시원하게 했네.”
그리고 오늘 전투를 회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기뻐하는 강민의 모습이다.
“강민 그놈은 자기 현상금 천만 달러로 오르는데 그렇게 좋을까.”
강민은 오늘 자기 현상금이 천만달러로 올라 노리고 온 현상금 사냥꾼들을 불구로 만들어 주며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가히 사이코패스!
하지만 묘하게도 재철은 강민의 기분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뭐, 현상금이 올라가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좋을 것 같기도 하네.”
어쨌든 적에게 현상금이 올라갔다는 것은 위협이고 강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건 강민이나 가능한 이야기. 재철로서는 현상금 사냥꾼이 더 달라붙으면 곤란해진다.
“나는 몸조심 좀 해야 하려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주머니가 떨렸다.
“응?”
핸드폰이었다.
“웬 메일이람.”
재철이 핸드폰을 열어 확인해 보니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빨리와 급해!
에반젤에게 온 영문 메일이었다. 에반젤에게는 지난번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메일 주소를 알려줬었다.
재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 있나.”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르지만, 걱정됐다.
“이봐요.”
가서 사태를 확인하기로 하고 재철은 운전기사를 불렀다.
***
구아나와 지젤은 사무실에 들어왔다.
지젤은 의자에 앉았고, 구아나는 대접용 커피를 타러 들어갔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이 사무실은 단둘.
곧 구아나가 커피잔을 들고 나왔다.
“드시죠.”
“감사합니다.”
지젤은 긴장된 표정으로 커피를 받았다.
구아나는 지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네.”
고개를 끄덕이는 지젤을 탐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구아나는 말했다.
“브라질 축구에서 마피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십니까?”
“그냥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도만요...”
TV 같은 데서 마피아와 축구 선수, 혹은 팀 간의 부패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돈이 되기 마련이니 마피아가 거기 눈독들이지 않을리 없는 것이다.
구아나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선수의 선발은 물론이고, 그들의 급료 중 일부를 챙겨 받기도 하죠. 심한 경우는 선수에게 조작 경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럴수가...”
지젤은 놀란 표정이 됐다.
구아나의 말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그녀도 브라질 사람인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만큼 경기가 깨끗하기를 바란다.
구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합리한 상황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죠. 이미 이 나라는 마피아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뛰어난 선수들은 모두 브라질을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고요.”
“아아...”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에반젤의 상황이 악화된 것만 같아 지젤은 어두운 기분이었다. 이때 구아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브라질 선수들에게는 바로 마피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마피아 때문에 브라질 축구계가 썩는다 했으면서 이제 필요하다니,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구아나는 설명했다.
“하하,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는 마피아입니다. 마피아를 상대해서 자기를 지키고 선수로서의 경기력을 잃지 않으려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경찰은 믿을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 결국 선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다른 마피아 뿐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군요...”
지젤은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아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마피아들은 좋은 선수에게 눈독을 들여 투자도 합니다. 스타가 되면 투자한 돈의 백배는 받아낼 수 있으니까 말이죠.”
지젤이 놀란 표정이 됐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선수를 선택한 다음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기도 하죠.”
“좋은 일도 하는군요.”
생각 외였다. 마피아가 축구에 관여한다면 뜯어먹기만 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니.
“마피아도 장사입니다. 축구로 돈을 벌려면 축구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아나는 이제부터라 생각하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렇지만 마피아들이 직접 선수를 선별해서 투자를 결정하고 명문팀에 올려보내고 하는 일은 할 수 없죠. 그들은 그들의 본업으로 바쁘지 않겠습니까.”
“네.”
“그러니까 대리를 둡니다. 자신들의 일을 대신 해 줄.”
지젤은 애절한 표정이 됐다.
“에반젤이 그들의 눈에 들면 좋겠군요.”
구아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제가 그 일을 지금 맡고 있습니다.”
“감독께서!”
지젤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곳 까지 와서 자기가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유는 에반젤을 키울 생각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눈이 썩은 녀석들이 진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해 파벨라에 스타의 재목이 묻혀 있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시군요.”
지젤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구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젤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앗...”
지젤은 놀라 굳었지만,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힘을 써 보도록 하죠.”
구아나는 속삭이듯 말하고는 몸을 기울여 지젤의 입술을 빼앗았다.
“웁!”
“읏!”
눈을 크게 뜬 지젤은 이내 견디지 못하겠는 듯 양손으로 구아나를 밀어냈다. 연약한 그녀의 팔힘으로 구아나를 밀어내긴 어려웠지만 발버둥을 치며 밀어내서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구아나는 지젤을 보고 음탕하게 웃었다.
“헤헤, 동생을 선택해 주지. 명문팀에 가는 거야. 좋지 않아.”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지젤이 몸을 물렸다.
구아나는 그녀에게 다시 접근하면서 협박처럼 말했다.
“동생을 생각해야지. 무슨 일을 하고 있지? 동생 뒷바라지가 가능하겠어?”
“그건...”
지젤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구아나의 말이 반의반만 사실이라도 정직하게 성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에반젤이 축구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펠레처럼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뒷바라지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지젤에게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있다면 몸을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몸을 파느니 감독의 애인이 되는 게 차라리 더 확실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지젤은 구아나가 접근하는데도 더는 도망갈 수가 없었다. 구아나는 지젤이 자신을 받아들인 거로 생각하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그렇지.”
구아나는 지젤의 몸을 당겨 품 안에 안고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한 손으로 주물렀다. 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거유의 감촉은 손이 녹아날 것만 같았다.
“아아...”
지젤은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구아나는 상관하지 않고 애무를 계속하면서 말했다.
“이게 모두 다 좋은 거야. 이대로 가다간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몸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게 될 거 아냐? 아가씨한테도 이게 제일 좋다고.”
구아나의 손이 이제 지젤의 하체로 가려고 했다.
쾅!
그때 갑자기 문이 박살나고 누군가 쳐들어왔다.
“이 새끼가!”
갑자기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자는 경악할 틈도 두지 않겠다는 듯이 구아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구아나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뭐, 뭐야!”
“아앗!”
지젤도 몸을 움츠리며 놀랐다.
한데 그녀의 표정이 곧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지금 들어온 남자가 바로 재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크게 놀랐고, 지젤이 놀라기도 전에 재철이 달려들어서 구아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우 짜증나!”
퍽!
“억!”
퍼퍽!
“아악!”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껏 내려치는데 한 방만 맞아도 죽을 것 같았다. 재철의 체격이 한국인 치고는 큰 편이지만 남미인인 구아나에 비하면 다소 왜소한 걸 생각하면 그 기세는 놀라웠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정도 파워로 때리는 것도 많이 참는 것이다.
재철의 정체는 글로브 아미!
사람 하나 때려죽이는 건 간단하다. 결국, 분이 안 풀리는 정도만 두들겨 패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엇다.
“후, 뭐 일단 이 정도에서 참아주마.”
“으으...”
구아나는 얻어맞은 채 끙끙대며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또 같은 짓을 하다 나한테 걸리면 넌 그 자리에서 고자다. 알겠냐.”
구아나는 재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공포에 질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철은 지젤을 향해 말했다.
“나가시죠.”
“네, 네”
지젤은 수치스러운 얼굴로 그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