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해져서 놀러왔다-173화 (173/227)

173화

미국 동부의 한 교외 마을에서 지내고 있는 고등학생 잭은 전화를 받았다.

“야, 뉴스봤냐?”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친구 앨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뉴스도 다 보냐?”

“보다가 진짜 재밌는 게 나왔더라고.”

“뭔데?”

뉴스가 재밌어 봐야 뭐가 재밌을까 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한국, 중국,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에서 장갑맨 따라 하는 자경단이 생겼다는 거야.”

“너드 코스프레 행렬이냐.”

조금 흥미를 느끼며 잭은 물었다.

너드는 nerd 라는 것으로 일본의 오타쿠와 비슷한 어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오타쿠와는 물론 같은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진짜로 한다니까?”

“뭐? 범죄자하고 싸운다는 거야?”

잭은 놀랐다.

앨버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한국 놈들은 벌써 범죄자를 50마리도 넘게 잡았다는데!”

“우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있냐?”

앨버트가 부추겼다.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 걸 감수해야 영웅이 되지!”

“하긴, 좋아, 하자!”

“그래!”

척하면 딱!

그날로 장갑아미 미국 지부가 탄생했다.

그 뒤로 우후죽순격으로 각 주에 그런 단체나 개인이 발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이 소식은 물론 한국에도 전해졌다.

이대로 좋은가! 장갑맨 흉내내기!

저런 헤드라인을 달고 여기저기서 뉴스로 만들었다.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갑맨 팬인 사람들도 저런 위험한 짓을 하면 안 된다면서 장갑맨을 따라 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장갑맨 강민은...

“당연히 안 좋지!”

강민단 기지에서 버럭 화를 냈다.

“걱정이네.”

“그러게.”

세나와 에이리도 좋지 않게 생각했다.

강민은 소파에 얼굴을 묻으며 짜증 냈다.

“으으, 쟤들은 무슨 깡으로 저 짓이람!”

“정의감이겠지.”

“니가 너무 쉽게 설렁설렁 범인을 잡으니까 영화와 현실을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강민은 강민단원들이 각자 분석해 한마디씩 하는데 버럭 화내면서 외쳤다.

“나는 초인이라고! 슈퍼맨처럼! 총알을 맞아도 튕겨내는 강철의 신체와 코끼리도 들어서 내던질 수 있는 근력! 그러니까 이런 거 해도 돼! 하지만 쟤들은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한번 눈이 멀면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겠지.”

팬은 맹목적이다.

자신의 영웅을 닮고 싶어 한다.

문제는 강민을 닮으려면 최소한 기본 조건이 초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인이 아닌 이들이 강민 흉내를 내면 인생 망한다.

“니들 때문이야!”

강민이 재철 일당을 비난했다.

“아니 우리가 왜...”

“그리 니가 도와달라고 해서 한 건데!”

당연히 재철 일당은 버럭 화내면서 반론했다.

하지만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책임은 강민에게 있지만, 너희들이 영향력이 큰 건 사실이지.”

“그래. 이제까지 강민이 아무리 화제가 됐어도 따라 하려는 사람은 없었는데 글로브 아미가 탄생하면서부터 그게 무너졌으니까.”

혜경도 동감이었다.

“너희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들 가지게 된 것 같아.”

지연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럴지도...”

“그런 면은 있는 거 같아. 강민에 비하면 우리야 그냥 일반인이니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재철 일당의 표정도 다소 심각해졌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글러브 아미의 활동에 방향은 고려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강민은 그동안에도 고민을 계속했다.

“으으, 이걸 어쩐다.”

“빨리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어?”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크게 다치는 애들이 나올 거야. 죽는 사람 나올 가능성도 사실 매우 높고 말야.”

세나와 에이리가 말했다.

“너희들 말이 맞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한다...”

“방송국을 사용하는게 어때?”

“방송?”

세나의 제안을 강민은 잠시 생각했다.

에이리도 그게 좋겠다는 듯 큰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래. 미국방송을 사용하자!”

“나 따라하지 말라고?”

“응. 그러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음... 좋아. 한번 시도해 보자. 이대로 놔뒀다가 바보들이 병원에 실려 가는 꼴이 매일매일 톱뉴스에 오르는 꼴을 보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훨씬 더 낫겠지!”

“훨씬 정도가 아니지.”

강민이 하는 말에 대해 에이리가 말했다.

강민단원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분명히 훨씬 나은 정도가 아니다.

***

쇳뿔도 단김에 뺀다!

한국 속담이다.

강민이 좋아하는 속담이기도 했다.

그래서 강민일당이 지금 연락하고 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인 오마바였다. 물론 세나의 동시통역을 통해서다. 그는 사정을 쭉 설명한 다음 그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그래서 미국 방송국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수 없습니까?”

“뜻은 잘 알았습니다.”

오마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그걸로 걱정이 많아서 그렇지 않아도 소란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듣기 괴로운 말이군요. 문제라니.”

강민이 괴로워하며 말했다.

“하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긴, 대통령께선 매일 문제를 접하실 테니.”

강민은 진심으로 오마바를 동정했다.

미국 대통령이면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데도 동정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강민은 그 문제라는 것에 치여 지구로 도망쳐 온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오마바가 얼마나 불쌍한지 안다.

“그것도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당장 돕기 어려운 것은 장갑맨 당신과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어떤 관계도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하.”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아하야?”

“오마바는 지난 아프간 사태에 우리가 연루된 걸 들키는 걸 걱정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

강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

“알겠지?”

세나와 강민이 함께 아는 척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에이리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정확히 뭐라는 거야?”

“아프간 때문이라는 거야.”

강민이 답했다.

“문제는 아프간. 그렇죠?”

세나가 확인하면서 오마바에게 물었다.

오마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인질 사건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게 너무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당신들의 편의를 봐 준다면 아프간에 보냈었다는 것도 의심하는 이들이 나올 겁니다. 아니 그게 당연하겠지요. 인질구출 당시 목격자들이 본 건 믿기 힘든 것이 많았지만 장갑맨이라고 하면 다 납득 되는 것들이니까요.”

“그렇군.”

에이리는 오마바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오마바의 말대로였다.

오파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여기서 미정부가 장갑맨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면 아프간의 암살과 인질구출에 장갑맨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이건 미 정부와 강민 둘 다 에게 좋지 않다.

세나가 의견을 구했다.

“그럼 어쩌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까? 당신들 연락이라면 어떤 방송국이라도 기꺼이 시간을 만들어 줄 겁니다.”

뻔하다는 듯이 오마바가 말했다. 세나가 그걸 강민에게 전달했다.

“방송국에 그냥 직접 연락하래.”

“우리가 좀 세계적인 스타기는 하지.”

“뭐 그렇긴 해.”

그것도 좋은 방도다 싶어서 강민과 에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고 나면 방송국 측이 우리에게 연락해 주면 다른 방송국으로 이야기를 내려보내서 미국 전역에 동시발표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거 좋군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여 그게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장갑맨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를 생각하면 정부에서 그 정도 편의를 봐주는 건 이상할게 없다.

“그럼 얼른 하자.”

“그래.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니 급할수록 좋을 거야.”

에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런데 장갑맨 따라 하기는 전세계적이라며 미국에서만 방송해도 돼?”

“괜찮아.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중계도 할 거고, 또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국가인 만큼 거기서 방송하면 다른 곳에도 다 전달되는 거니까.”

“그러면 문제없겠군.”

그래서 세 사람은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또 미국에 건너가게 됐다.

***

미국 여우 방송사.

가장 큰 방송국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 뉴스는 공화당에 편중되어 있다는 평가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들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별로 다지지 않는다.

그저 돈 되는 쪽이면 쌩큐!

훌륭한 자본주의 방송국이다.

그래도 뉴스부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의감이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서 일하는 프로듀서 몇이 휴게실에서 잡담하고 있었다.

“오늘 취재 정리한 거 봤나?”

“봤지.”

“뉴스거리야 항상 많은 것이지만 요즘은 말이지.”

처음 입을 열었던 프로듀서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동료의 심경을 이해한다는 듯이 혀를 차며 동료 프로듀서가 말했다.

“영웅놀이 때문에 그러지?”

“그래. 영웅놀이 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

취재해온 뉴스 가운데 열 개중 하나가 장갑맨 따라 하는 놈들이 벌인 소동에 관계된 것이었다.

시내에서 산탄총을 쏴서 범인을 잡았다느니, 망치로 후드려 패서 범인을 잡았다느니, 다리 골절의 아픔을 감수하고 잡았다느니.

웃긴데 웃을 수 없는 내용 들이 가득!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인데...”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건 역시 좀 곤란했다. 엄연히 경찰이 있는데 말이다.

“이러다 죽는 놈이 나와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러게 말이다.”

아직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게 참 천만다행이다 싶었지만 이대로라면 죽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다윈상 후보에 올라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윈상이란 한해의 죽은 사람들 중 가장 바보 같은 짓으로 죽은 사람을 뽑아 기리는 것이다. 다윈상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멍청한 유전자를 일찌감치 죽여 없애 인류의 유전자 풀을 더럽히지 않은 공로를 기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인 모욕!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항상 인기가 있는 상이기도 했다. 번지점프를 했는데 줄이 뛰어내린 높이보다 길어서 죽은 사람 이야기라던가, 술을 먹고 누가 용기를 자랑하다 체인쏘로 머리를 잘라버린 사람이라던가. 어떤 바보들이 여자를 걸고 오토바이로 치킨 게임을 했는데 둘 다 피하지 않아 즉사했다던가.(정작 여자는 그 바보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인 중에도 있다.

대전에서 있있던 일인다. 장애인이 전동차를 타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 거기서 문을 여러차례 들이받고 문이 박살나 떨어져 죽었다. 그는 그해 다윈상 1위가 됐다.

그런데 그들이 떠들고 있는 사이 창문으로부터 무언가가 훅 하고 날아들었다.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어온 사람이다. 프로듀서 둘이 화들짝 놀래는 게 당연했다.

“헉, 당신은 누구?”

“보시면 알지 않나요.”

갑자기 들어온 건 한 사람이 아니었고, 셋이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로 보였다. 모두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했고, 손에 장갑도 끼고 있었다.

딱 보면 영화촬영을 하려는 것 내지는 도둑놈이 뭔가 털 준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재 저 차림은 미국에서 가장 트렌디하다고 말해도 무방한 모습이다. 장갑맨의 차림새가 바로 저러니까!

“서, 설마 진짜?”

“어떻습니까.”

강민은 반신반의하는 프로듀서를 위해 근처 빈 캔을 하나 쥐어 손가락으로 딱딱 잘라냈다. 알루미늄 캔이 무슨 종이쪽처럼 그의 손에서 찢어졌다.

“트, 틀림없는 진짜로군요.”

“여기 국장님에게 연결 좀 해 주세요.”

알루미늄 캔을 버리면서 강민이 부탁했다.

“아, 알겠습니다.”

휴게실의 프로듀서는 모두 화들짝 놀라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문 앞에서 멈추고 강민을 돌아봤다.

“아참.”

“하실 말씀이라도?”

강민이 부탁하자 그들은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강민에게 내밀었다.

“사인 좀 부탁합니다.”

“저, 저도...”

강민은 기꺼이 그들의 내민 수첩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이놈의 인기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