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강민일행은 오마바와 화상통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나가 강민을 위해 옆에서 통역을 했다.
“감사합니다.”
커다란 화면 저편에서 오마바가 강민 일행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약속을 지켰을 뿐이죠.”
“이걸로 저희는 물론 아프간 시민들도 한시름을 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진심으로 강민은 그렇게 되길 원했다.
일억 달러도 좋고, 특권도 좋지만, 미국에 좋은 일만 하는 것이었다면 이 일을 했을리 없다. 탈레반이란 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데다 그들이 악행이 워낙 대단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손을 더럽히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강민은 이런 인사를 받는 것으로 이 일을 끝낼 수 없었다.
“그런데 꼭 하나 지켜 주십시오.”
“뭐지요?”
오마바가 물었다.
강민이 엄숙한 어조로 요구했다.
“이번 일이 제가 미국의 패권을 위해 이용당한 거라 생각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만일 그렇게 여겨진다면 미국은 저희를 적으로 만나야 할 겁니다.”
“그건... 무서운 이야기군요.”
오마바는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장갑맨을 적으로 둔다니. 그것은 모든 군사력자의 악몽이라 할만하다. 아니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들이 작심하고 어떤 국가를 망하게 하려 한다면 그 나라의 행정은 완전히 마비된다. 공식적으로 어떤 권력자도 취임 될 수 없을 테니까.
강민은 안심하라는 듯 이어 말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고 자부하는 그 말의 반의반만 지켜 준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UN결의를 무시하고 타국을 침공하는 미친 짓 같은 것만 안 한다면 말입니다.”
오마바는 웃었다.
“그건 지난 정권이 저지른 일입니다. 더구나 그건 미국의 패권을 위해서라기보다 도리어 큰 재앙이 되었을 뿐입니다.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랍시고 이라크에 갔다가 미국은 괜히 피만 봤다.
결국, 사담 후세인을 잡아 사형에 처하기까지 하긴 했는데... 미국에 별로 이득이 된 건 없었다. 사실 사담은 죽어 마땅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당시 미국의 행동은 정치적인 의도가 너무 뻔해서 아무도 그걸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 사담 후세인은 심지어 미국과 친했다!
그의 정권을 지켜줬던 것이 미국이었던 것이다.
“부디 그렇길 바랍니다.”
“네. 노력해야지요.”
오마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의 그의 태도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오마바는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하버드 최고 엘리트에서 인권변호사를 거쳐 여기에 이르렀으니 정의감이 강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미국을 완전히 변화시키기엔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제어력은 될 수 있으리라.
강민은 오마바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나서 강민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약속하신 건?”
“물론 이미 이행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민은 이번 일을 통해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받기로 햇다.
여기 오기 전 받았던 일억 달러는 착수금 정도에 불과하고, 성공하게 되면 이억 달러를 더 받고 그 외에 재단에 다양한 법적 특혜를 주는 것과. 미국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특혜를 부여받는 것들이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의 재단을 통해서도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길 기대합니다.”
“저도 노력하지만 그래도 제가 하는 것 따위는 벌레의 발버둥 같은 거죠. 미국의 행동 하나에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의 수가 얼만데.”
강민은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 미국의 정책에 따라 인생이 좌우되는 사람의 숫자는 수백만, 때로는 수억씩이 된다. 지난 금융위기 때도 그 덕분에 인생이 나락에 빠진 사람의 숫자는 족히 천만을 넘긴다. 그 여파는 아직도 세계에 남아 있다.
그러니 강민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해서 사람들을 구한다고 쳐도 미국의 정책이 한번 틀어지면 다 소용없게 된다.
“하하,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오마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강민은 몸을 돌렸다. 에이리가 물었다.
“끝났어?”
“응.”
“어때?”
“민주당은 공화당처럼 막장이 아니니까... 뭐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미국이 공화당 정권 잡기 전만 해도 재정 흑자를 자랑하는 견실한 국가였단 말야.”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은 오랜 적자의 터널을 지나 흑자 재정을 자랑하고 있었다. 통신산업쪽 버블이 있긴 했지만, 미국은 당시 매우 상황이 좋았다.
르윈스키 스캔들 사건만 아니었다면 클린턴은 대단한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공화당이 이기지?”
“정치란 복잡하니 말야. 보수진영이 민주당이 미국 정신에 위배 된다 같은 소리를 해서 이겼다고 하지.”
“그리고 그 결과가...”
이라크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재정 적자다.
“뭐 여러 가지로 미국에 피곤한 결과였지.”
“쯧쯧. 정치란 어렵군.”
“민주주의의 어려움이지!”
강민은 그리 말했다.
지나고 나면 뻔한데 그전에는 뭐가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실 그런 걸 알더라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서 아니다 싶은 쪽을 고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쉽게 도입할 순 없는 체제야.”
세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그래. 최소한 문맹률 90%의 나라에 넣을만한 건 아냐. 다들 배울만큼 배워도 문제가 많은데 말야.”
세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알기에 미국은 반대로 분해율이 90%를 넘는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선택이 항상 합리적이라 보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런걸 보자니 에이리도 세나도 강민이 자기 세계에서 뻘짓 하려던 걸 막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쉽구나.”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뭘?”
세나가 뻔한거 아니냐는 투로 답했다.
“그냥 갈 거야?”
“미국에 뭐 할 거라도 남아 있어?”
“할건 없지만, 관광 좀 하고 가지 않겠어? 시간은 있잖아.”
일을 끝내고 나서도 방학은 꽤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라는 미국의 문물을 구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앗다.
“뭐 보고 싶은 거라도 있어?”
“실은 다르파 연구소 초청이 왔었거든.”
웃으면서 세나가 고백했다.
“다르파?”
“미국 연구손데 재밌는 연구를 많이 하는 곳이래.”
다르파는 미국이 나사를 설립하면서 같이 만든 곳이다. 기상천외한 첨단 연구를 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기술의 한계, 상상력을 한계를 테스트한다.
실용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가능한가 그 자체만을 중요시하는 첨단 연구 시설 중의 첨단 연구 시설! 그 장소와 다른 첨단 지역 간의 기술 격차는 30년 이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다르파가 존재하는 한 미국의 과학력은 언제나 세계 1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거야!”
세나가 말했다.
첨단을 연구하는 다르파인 만큼 장갑맨의 육체에 커다란 관심이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강민은 재깍 거절했다.
“나는 패스.”
“나도. 동물원 원숭이 꼴 되는 건 사양하고 싶군.”
에이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재밌는 게 많던데...”
세나는 아쉬워했다. 학자로서 이곳 세계 최고의 기술을 접하고 싶은 욕심에 들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럴 만하다. 다르프는 전 세계 공돌이의 유토피아다.
“됐고, 그것뿐이면 한국에 돌아가는 게 어때?”
에이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민의 반응이 달려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잠시 있는 게 좋겠네.”
“갑자기 왜?”
“저기 가 보려고.”
에이리가 의아하게 묻는 데 대해서 강민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콘서트?”
에이리와 세나가 강민이 가리킨 곳을 보고 말했다.
거기에는 콘서트 소개 포스터가 벽에 일렬로 가득 붙어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 운운하는 어떤 여자 가수의 콘서트라고 했다.
여자는 동양인이었는데 한국에 비교적 일찍 왔었던 에이리는 아는 얼굴이었다. 뷰티걸의 수란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명성을 얻은 그녀는 미국에서 이제 괘 큰 규모의 콘서트를 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는 바로 카네기 홀!
미국 예술가들의 목표점 중 하나인 바로 그 카네기 홀이었다.
“친구가 콘서트를 하니. 대놓고 응원은 못 해도... 구경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여잔데.”
“여자군.”
강민이 하는 말은 무시하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에이리와 세나는 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두 여자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데 화들짝 놀라면서 강민은 말했다.
“아니 여자기는 하지만 친구야.”
“그래. 그래서 한국에선 여자친구라 부르지.”
“더러운 문어발!”
전혀 강민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두 여자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으며 강민은 쪼그라들었고, 평소의 그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아, 아니라니까!”
강민의 당황하는 모습을 두 여자는 보면서 갑자기 웃었다.
“후후, 반만 농담이야.”“반만?”
강민은 불만스레 말했다.
하지만 반만이라도 농담인게 어디란 말인가.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에이리가 콘서트 포스터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뭐 그러면 저 콘서트 정도는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할까.”
“이해해 줘서 고마워.”
강민은 환한 표정이 되었다.
“착각하지마. 이해하는 게 아니니까.”
“빚을 만들어 두려는 거지!”
에이리와 세나는 함께 강민을 째려보며 엄포를 놓았다.
“으윽.”
강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수란은 대기실에 앉아 심호흡하고 있었다.
“휴우.”
공연이라면 여러 차례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긴장됐다. 마치 처음 공연장에 섰을 때 같았다. 그럴 수밖에! 오늘 공연하는 곳은 카네기 홀이다.
모든 아티스트의 꿈의 장소라 할 수 있는 곳.
수란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잡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남자 하나가 모습을 보였다. 그녀 매니저가 다 되다시피 한 김남길이다.
“준비 다 됐니.”
“네.”
“좋아. 긴장하지 말고.”
김날길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수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좀 무리 아닌가요.”
“하하, 그렇긴 하지. 카네기 홀이라니.”
“갑자기 이렇게 유명한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요.”
여러차례 말하고 확인하지만 역시 잘 믿어지지 않는다. 카네기 홀. 그만큼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