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케에다는 도피처를 마련하기 위해 탈레반과 협상해서 마사드를 죽인거야. 그게 성공해서 알카에다는 탈레반에게 몸을 의탁했고, 열 받은 미군은 알카에다를 내놓으라 탈레반에게 요구했는데 안 먹혀서 전쟁이 벌어진 거지!”
“그랬군.”
“흠,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된다. 정말 아까운 사람이었어.”
왜 미국이 아프간을 습격해서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싸우고 있는지 그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이해됐다.
“그래. 그 사람만 살아 있었으면 미군이 물러나도 아프간 문제는 걱정할 게 없었을 텐데.”
군사적인 실력도 있고 인기도 있다.
거기다 성격도 좋다!
지도자로서 이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
그러나 죽어버렸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뭐, 그럼 유지를 잇는 것까진 못해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네.”
“그래. 영웅의 원수도 갚고.”
“내가 영웅이다보니 더욱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로군!”
강민이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세나와 에이리가 서로의 얼굴을 맞대며 수군거렸다.
“요새 쟤 자뻑이 좀 심해진 거 같지 않아?”
“그래? 항상 저랬던 거 같은데?”
***
수염이 길게 난 남자가 탁자를 주먹으로 쾅 때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남자 앞에 도열해 서 있던 다른 남자들은 모두 목을 움츠리며 그의 분노를 감당해 냈다.
이들은 현재 탈레반의 수뇌부다. 주먹을 내리친 자야말로 샤브구나로 현재 탈레반의 수장이다.
맨 앞의 남자가 쩔쩔매며 말했다.
“그게 저희도 어떻게 된 건지...”
“연락은 안 했어!”
샤브구나가 외쳐 물엇다.
“다 했습니다. 중요한 전사들에게는 모두 숨어서 나오지 말라고도 했고... 그런데 귀신같이 찾아내서 모두 죽이고 있습니다.”
“미군 놈들...!”
샤브구나는 부하의 말에 이를 갈았다.
요즘 그들을 크나큰 고민에 빠져 있엇다.
중요한 조직의 간부들이 하루걸러 하나씩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일곱명째.
설명하던 부하는 계속 말했다.
“그게 미군인지도 애매합니다. 총탄 하나 발견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번 암살을 대처하기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이유였다.
정말로 총탄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총탄만이 아니다. 화약도 쓰이지 않은 듯 화약 냄새도 현장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화약 없이 가능한 암살은 아니었다. 암살현장의 반수 정도가 벽을 뚫고 암살자들이 습격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아주 두꺼운 콘크리트도 박살 냈는데, 습격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그런 두꺼운 벽을 파괴하려면 화약을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괴이쩍을 수밖에.
“총알이 남으면 선조도 남고, 장약 같은걸 봐서 누가 했는지 알아 볼 수 있을 텐데, 총알은 전혀 없이 암살을 하고 있습니다.”
“전설의 어쌔신 이기라도 한다는 거냐?”
샤브구나는 이를 갈며 물었다.
어새신은 암살자의 영어 이름이지만 그 기원은 중동 지방의 산 노인에 있다. 그가 하쉬쉬에 츃나 자들을 훈련해 어쌔신이란 걸로 만든 것에서 유래되어 암살자가 곧 어쌔신이 된 것이다.
“그보다 더합니다.”
“이런...”
샤브구나는 이를 갈면서도 부하를 더 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자면 부하들이 무능해서 당한 것이라 보기도 힘들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조심스럽게 부하는 물었다.
“카불을 습격한다.”
“네?”
샤브구나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부하는 당황했다.
간부들이 다 죽어가면서 전투력에 커다란 손실이 생기고 있는 판에 수도 습격이라니. 그러나 샤브구나는 역시 그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기 외국인 놈들을 잡아 인질로 만들고 공표해라! 암살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것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그건...”
부하들은 샤브구나가 미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임을 알았지만 쉽게 찬성하지 못했다.
테러집단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협상은 없다는 것!
자칫 역풍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각종 봉사단체도 많이 와 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걸 모른 채 할 수 없을 거라고 샤브구나는 생각했다.
사실 미국이 탈레반을 테러집단이라고 협상하지 않으려다가 엄청난 꼴을 당한 적이 있다. 바미얀 불상이 그것이다.
미국이 완강하게 나가다 결국 탈레반이 파괴하게 만들어서 탈레반과는 별도로 엄청난 욕을 얻어먹은 것이다.
그리고 샤브구나가 생각하기에 만일 미국이 응하지 않아서 인질을 모두 죽여야 하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꾸란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목숨 따위 벌레 만한 가치도 없다!”
“알겠습니다.”
부하들도 어쩔 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
강민 일행은 호텔 근처의 고급 식당가에 가 있었다.
그곳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업무차 온 외국인과 미군을 주로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현지 음식으로 만든 요리도 많이 있어서 아프간의 풍미를 느낄 수는 있었다.
“후, 오늘도 보람찬 일을 끝냈다.”
그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강민이 뿌듯하게 말했다.
에이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살인을 끝내고 그렇게 웃는 건 좀...”
“아니 몬스터 백 마리쯤 도륙내고 내장과 피를 땅바닥에 비처럼 뿌린 뒤에 맛있다고 식사하던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몬스터잖아.”
강민이 투덜거리자 에이리가 부정하듯 말했다.
그러나 강민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사인종에 가까운 오크도 마찬가지로 처리했으면 이제 와서 무슨.”
“하긴 우리가 피에 익숙하긴 해.”
세나는 그냥 인정했다.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같이 살았지 뭐. 그리고 솔직히 말해 몬스터만이 아니고 사람도 많이 죽였잖아. 나는 숫자 기억도 안나. 천은 확실히 넘길 거 같은데.”
강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불가피했고 악당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인간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사실 자체를 지울 수는 없다.
“나도.”
“솔직히 나도.”
세나와 에이리도 고백햇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죽일 만하니까 죽였다고 할까. 전쟁에 나가 사람을 죽인 거라면 차라리 죄책감이 있었겠지만 죽인 놈들이 대체로 진짜 나쁜 놈들이라...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강민이 피식 웃었다.
“누가 들으면 희대의 사이코패스 집단인 줄 알겠다.”
“시대가 그랬을 뿐이야!”
“그래!”
“근데 뭐...”
반발하는 두 애인을 보면서 강민은 사실 우리가 사이코패스 기질은 좀 있는 거 같다고 말하려다가 괜히 공격을 받을까 봐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두 여자는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무슨 생각 한 거지?”
“아니, 아니야.”
강민은 서둘러 얼버무렸다. 에이리가 이어서 추궁하려 할 때였다. 구원자처럼 식당의 창문이 쨍그랑 깨졌다. 꺄악 하는 비명소리고 들렸다.
“응?”
소리가 난 쪽을 봤다.
터번에나 돌격소총을 든 무장 괴한 여럿이 창문을 깨고 식당에 돌입해 있는 상태였다.
“모두 움직이지 마! 지금부터 우리 지시에 따라라!”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외치면서 총구를 천정에 향하고 쏘았다.
타다당!
“꺄아악!”
“꺅!”
요란한 소리가 났고 식당안의 사람들은 혼비백산에 몸을 숙였다.
강민일행은 동요하지 않고 그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몸은 숙였다. 그래야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뭐야 저것들?”
“뻔한 거 아냐?”
“잠시 두고 보자.”
그들은 잠시 테러범들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테러범의 선두 남자가 부하들을 향해 지시했다.
“야, 얼른 묶어! 데리고 간다!”
“네!”
그의 부하들은 서둘러 움직이며 사람들을 묶어대기 시작했다.
“납치하려는 거 같은데.”
“아, 이게 그 유명한 외국인 납치의 현장인가.”
“그리고 몸값을 받아낸다고 했지?”
“그럼 해야 할 것도 뻔하네?”
“그것도 그렇지!”
그 광경을 보고 세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상시 가지고 다니는 스타킹과 마스트, 그리고 선글라스 같은게 있어서 문제 없었다.
“뭐야 이것들!”
납치범의 대장은 세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즉각 반응했다.
타다당!
주저없는 총질! 사람 여럿 죽여본 솜씨였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 그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총알을 간단히 피한 강민과 에이리가 바람처럼 달려 테러범들을 향해 접근했다. 테러범들은 두 사람의 동작에 크게 놀라며 대응하려 했지만 그건 생각뿐!
두 사람의 움직임은 반응하고자 해서 할 수 있는 그런 느린 것이 아니다!
퍽!
“케엑!”
팍! 퍽!
“악!”
“으악!”
순식간에 세 사람은 강민과 에이리에게 얻어맞고 바닥에 누웠다. 기절해 있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강민이 만족한 듯이 손을 털었다.
“휴우. 정리 끝.”
강민 옆으로 에이리와 세나가 왔다.
“여기 경찰 오기 전에 얼른 자리를 뜨자.”
“그게 좋겠어. 눈에 띄어 좋을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강민도 그녀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식당을 빠져나갔다. 한데 식당을 빠져나가 주변을 돌아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청성 소리도 많이 들려왔다. 또한, 군경찰의 차가 바쁘게 도로를 달렸다.
“어라?”
“여기저기 시끄럽네.”
“비슷한 짓을 다른 데서도 한 거 아냐?”
세나가 의견을 제시했다.
“갑자기 왜?”
“글쎄...”
“뭐 보고가 들어오지 않겠어?”
에이리가 어차피 호텔로 돌아가 기다리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했다.
“하긴, 남의 일이 아니니까.”
“세나 말대로면 인질구출 업무가 추가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게.”
그들은 에이리의 의견대로 일단 호텔에 가서 미군측의 정보를 기다려 보자 생각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에는 카불의 곳곳에서는 총성과 비명소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