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민족?”
“아프간은 여러 민족이 통합해서 이루어진 국가거든. 탈레반은 그중 가장 숫자가 많은 파슈툰족이 모여 만든 거라고 하지. 그게 아마도 탈레반 지원의 이유 중 하나일 거야. 미국이 미운 것도 있겠지만.”
아프간은 파슈툰족을 페르시아어로 읽은 것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란 말은 파슈툰 사람들의 땅이란 뜻이다.
그러니 아프간의 주류 민족이 파슈툰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비율은 40% 정도. 나라 이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 치고는 비율이 낮지만, 최대 다수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국가 안에 또 민족끼리 파벌 만들어 싸운다는 거네?”
에이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네.”
“바보같군. 종족이 다른 것도 아닌데.”
강민은 코웃음을 쳤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한국은 단일민족 주제에 지역이 다르다고 싸웠는데!”
쭉 그랬다.
이른바 전라도!
이건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짓인데. 통제하기 힘든 국내 민심을 처리하기 위해 전라도에 악역을 뒤집어씌운 것이란 말도 있었다.
이것이 현대에도 이어져서 한국에서는 아웅다웅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뭐? 지구인은 이상해.”
에이리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지구인이라서 그런게 아냐! 뭐 고향에선 다를 거 같아! 그쪽도 파벌이라면 질리도록 있잖아!”
강민은 반발해서 외쳤다.
“그거하곤...”
“아니, 생각해 보니 같은거 같긴 해. 종족차가 민족이나 국가차를 덮고 있긴 하지만.”
에이리가 아니라고 하려 했지만 세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별 다를 것도 없었으니까. 세나도 파벌을 이끄는 입장이니까 잘 안다. 파벌이란게 얼마나 사소한 기준으로도 생기고, 어떤 걸로도 싸움이 벌어지는지.
학연, 지연, 혈연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마법의 사용 스타일 같은 거로도 얼마든지 나뉘곤 했을 정도!
“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지구인을 바보 취급하지마!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지.”
강민의 강한 역설. 설득력도 충분했기 때문에 에이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괜히 화내긴.”
“그야 지구인이니까.”
강민이 세나의 지금 한 말에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어차피 같은 인간 주제에 지구인과 비지구인을 나누다니! 그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아, 한방 먹었다.”
“그건 반성해야겠군.”
강민이 날린 반격이 꽤나 날카로워서 어쩔 수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두 여자에게서 입으로 이기고 강민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
다음날.
강민 일행은 선글라스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차림을 한 다음 호텔을 나서서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선글라스를 낀 뚱뚱한 남자가 가게 안족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세 사람도 거기 가서 앉았다. 세 사람이 앉자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품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넘겼다.
강민은 그에게서 봉투를 받았다.
다음 표적의 위치 정보가 있는 자료였다.
“항상 고맙습니다.”
“뭘요. 이런 건 기꺼이 도와야지.”
세나가 한 말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눠 보아야 좋을게 없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적을수록 안전하다.
언제 적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세나가 막었다.
“그런데 좀 사적으로 묻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물으십쇼.”
사적으로 친분을 쌓는 건 피해야 하지만 질문에 답하는 정도는 어려울게 없다고 생각했던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아프간 사람이잖아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미군을 도와도 괜찮은가요? 밉지 않아요?”
꽤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그건 당신은 매국노가 아닌가요? 하고 묻는 거 하고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남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미군이 밉지 않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타수스인이요.”
“타수스인?”
옆에서 세나의 통역으로 이야기를 듣던 강민이 격한 반응에 놀라워하며 물었다.
“아프간의 소수민족이라고 들었어.”
남자는 화난 기색이 역력한 어투로 계속 외쳤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어차피 파슈툰놈들만 배부르게 될 거야! 게다가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질 않나, 남자는 면도만 해도 사형이라니, 그런 미친 법률이 어딨어!”
“그건 그렇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반의 갖은 미친 짓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미친 짓이었다.
남자는 계속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의 진정한 영웅 샤마사드님만 해도 그놈들과 연관되어 있던 알카에다에 의해 암살당했지! 철천지원수요! 절대 탈레반 따위완 친하게 지낼 수 없지!”
“그렇군요.”
모두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프간에서의 상황도 단순히 탈레반 대 미군의 싸움 정도로 정리도리 수 없는 복잡미묘함이 있는 모양이었다.
“미군이 항상 좋은 건 아니오. 오폭 사건 같은 걸 일으키고, 꾸란을 함부로 대하거나 하는걸 접할 때면 속이 뒤집어지지! 그렇지만 탈레반에 비할바는 아니야!”
“미군이 가끔 뻘짓을 하죠.”
“응.”
미군은 좋은 건 아니다!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살상도 여러 차례 있었고, 꾸란을 함부로 대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권 문화를 잘 몰라서 이슬람을 뭉뚱그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로 보는 것도 문제!
“그래도 미군이 아프간을 평정해서 탈레반 놈들을 싹 쓸어 버리고 예전의 평화로운 국가로 돌려주기만 나를 기대하고 있소.”
미군이 싫어도 미군 이후에 지배할 놈들이 너무 막장이라 미국을 응원한다!
간단한 논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죠.”
세난느 말했고, 남자는 화냈던 걸 진정하고는 물러갔다.
“반응이 아주 격렬하네.”
“그래. 생각 이상이야.”
“근데 마사드가 누구지?”
강민이 방금 아저씨가 했던 말에 나온 인명을 더올리고 물었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세나도 뭔가 생각나려 했지만 결국은 모르겠던지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알아볼게.”
“부탁해.”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저녁.
밖에 나갔던 세나가 호텔 방으로 돌아오면 외쳤다.
“마사드에 대해 알아봤어!”
“뭐 하는 사람이야?”
에이리와 함께 카드 게임을 하던 강민은 손을 멈추고 세나에게 물었다.
“아주 아까운 사람이던데.”
“그래?”
“응. 그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타자크인이고, 별명은 판지시르의 사자라는군.”
세나는 강민 옆에 앉았다.
에이리는 감탄한 표정이 됐다.
“별명 멋지다.”
“더 마그누스만은 못해!”
강민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랑했다.
세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됐고, 본격적으로 활약한 건 소련-아프간 전쟁부터라고 해. 소련군을 박살내는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군! 심지어 소련이 만명 단위로 아홉 번이나 쳐들어와서 다 발렸다는데!”
“그래서 영웅인가.”
“그쯤 되면 진짜 어마어마한 실력인데.”
에이리가 감탄해서 말했다.
현대군과 싸워본 적이 있는 에이리는 만명이란 숫자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장비도 만명쯤 되면 맨몸에 총기만이 아니고 각종 중장갑차 같은 것도 있었을 게 아닌가! 그것을 아홉차례나 전부 격퇴해 냈다니!
무시무시한 지휘실력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도 좋았다고 해. 온화하고 다른 종교에 관용적이고, 여자와 아이는 절대 손대지 않고, 심지어 고문도 자기 군에서는 안 했다는데!”
“와, 전쟁하면서 고문도 안 한 건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세나와 강민이 특히 놀란 부분이었다.
열세로 싸우면서 적을 고문한 적이 없다니!
“우리는 일상인데.”
“아니 그건 뭐...”
“사실이라 뭐라 할 말이 없군.”
세 사람은 밥 먹듯이 고문을 해서 악마조차 울부짖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세나가 이야기를 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도 별로 못 받았다고 해. 타자크인이라서 차별 받은거지. 근처 파키스탄에서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파수툰족을 몰아 지원했고.”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군.”
아저씨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분기탱천해 외쳤다.
“영웅은 어디서나 차별받는다니까! 나도 그랬지!”
“뭐 어쨌건 그래서 결국 소련을 물리치고 아프간 새 정부를 만드는데 까지 갔어.”
강민의 말을 무시하고 세나는 이야기를 이었다.
“그럼 해피엔딩 아냐?”
“아니니까 그 아저씨가 화냈겠지.”
강민이 말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피엔딩 아냐. 국방장관에 임명은 됐는데 신정부가 파벌을 만들어 세력싸움을 하는걸 보고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돌아가려 했다는군. 그런데 정부가 말렸데.”
“그래?”
“역시 어디나 비슷하군.”
강민은 싸움이 정리되면 전리품을 두고 승리한 세력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던 걸 생각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바로 탈레반이 일어난 거야! 그리고 정부군을 물리치고 카불까지 점령하지.”
“마사드는 뭐 했고?”
“요인들 데리고 탈출했고, 탈출한 곳에서 다시 탈레반과 싸웠다는군.”
“그러면 진 거야?”
이야기 흐름상 그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세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죄다 이겼어. 탈레반은 수도를 다시 뺏길 정도였다는데.”
에이리와 강민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뭐야?”
“그런데 왜 지금 카불은 이래?”
“그게, 알카에다에서 암살해 버렸다는군.”
아쉽게 세나가 말했다.
강민은 이해가 되지 않아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아니 왜? 같은 이슬람 아냐?”
“탈레반의 부탁이라도 받은 거겠지. 그게 성공해서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진짜 안 됐다.”
에이리가 혀를 찼다.
좋은 사람인데다 천재적인 지휘관이기도 해서 국가를 구하고 인기까지 있던 영웅인데 결국 암살당하는 거로 인생을 마치고 말다니, 소설 주인공 같았다.
세나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건 미국으로서도 엄청난 손실이었던 것 같아.”
“그래?”
“얼마 안 있어서 911이 터졌거든. 아니다. 이틀 뒤다.”
“뭐야 그럼...”
강민이 놀란 얼굴을 했다.